[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낯설게 하기 / 신금숙
심상숙 추천
낯설게 하기
신금숙 수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른 아침 눈을 떴다.
밖에서 추적추적 비 오는 소리가 우울한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매일 같은 일상이 아닌 다른 하루를 살아보고 싶
다는 생각에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 지지를 않는다.
머릿속은 세상을 휘젓고 있지만 내 현실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일주일에 겨우 일요일 하루 쉬는데 그 하루의 시간마저 나는 없고
가사 일만 해야 하는 로봇으로 움직일 뿐이다
몸은 벗어나지 못하지만, 마음만이라도 벗어나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
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 벗어나는 방법도 내가 찾아야지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 재개하고 츨근 날이나 다름없이 얼굴에 화장도 하고 가장 괜찮은 옷으로 갈아입고 살며시 방문을 열고 바깥 분위기를 살핀다.
네 개의 방에 사람들은 일요일이라 모두가 늦잠을 자는 듯 잠잠하다.
머릿속을 비우기로 했으니 모두가 낯선 것들,
우선 우아하게 차를 한잔하며 주방 쪽 창문으로 바라다보이는, 비 오는 뒷산을 바라다보니 고즈넉한 아침 적막감이 정말 혼자이기를 너무 잘한 것 같고, 아직 오늘이라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이른 아침이라는 현실이 행복감마저 들게 했다.
이제 막 봄이 시작된 듯 움터 오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도 오늘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볼 계획을 세워 본다.
모두가 낯선 것들, 사람들이 낯설고 모든 살림살이들이 낯서니, 조심스럽게 최소한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만 사용하자.
그리고 모두가 몰랐던 사람들이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는 수동적으로 응해서 움직이면 된다.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어느 방문이 열리며 노인 환자 한 분이 의료보조기를 몸에 의지하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수척한 모습으로 보아 수년간 병석에 있는 듯하다.
환자이니 아침식사는 부드러운 반찬으로 준비해서 방으로 갖다 드렸다.
10시가 지나자 이방 저방에서 한 명씩 얼굴을 내민다.
내가 아무 말 않고 있으니 그들도 별말이 없다. 이 사람들은 늦게 일어나는 걸 보니 일요일에는 아점을 먹나보다.
간혹 이 말 저 말 시켜오기도 하지만, 나는 오늘 혼자이기로 했으니 별 감흥이 없이 대답하니 신경 쓰일 것도 없었다,
낯선 곳이니 청소도 빨래도 하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편안하게 쉬자. 그런데 방은 네 개나 되는데 정작 내가 쉴 곳은 어느 곳에도 없다. 비가 오니 사람들이 밖에 나가지도 않는다. 나도 물론 못 나가지만, 이럴 때는 비가 오는 게 오히려 내게 위안이 되는 듯하다.
책꽂이를 뒤져 전에 보았던 책을 다시 한번 뒤적여 보기도 하고, TV도 잠시 보다가 빈방이 생기면 그 방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갈 길을 잃은 나그네 모습으로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수년 전 시어머니가 오랜 병석에 계실 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숨 막혀 이렇게 하루를 살아본 적이 있다.
(***)
그렇게 보낸 그 날 저녁 내 마음 한곳에 조금 여유가 생긴 듯 기분이 신선하였다. 그리고 어디 먼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일주일에 엿새를 출근하고 집에 있는 일요일도 또 다른 가사에 묻힐 수밖에 없던 시간 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
(『김포문학』34호 252쪽,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2017)
[작가소개]
(신금숙,《한국작가 》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김포시지부 사무국장, 부지부장 역임, 김포 공명선거 백일장 최우수상, 제9회 경기문학상 수필 부문, 제15회 경기문학 공로상 수상,)
[시향]
고3때 개천예술제에서 詩로 장원한 이상일은 나중에 독일의 극작가이며 시인 연출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연구하게 된다. 이는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연극 연출에 도입한 인물로 서사극을 서사극답게 하는 기법으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낯설게 보여 줌으로써 고정관념의 사건이나 인물 상황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수법이다. 시 쓰기 방법에도 ‘낯설게 하기’는 빠뜨릴 수 없는 기법이다.
한낱 시계에 지나지 않는 시계가 낯설어지고 이화(異化)되어 달리 보이고 비중이 높아진다. 연필 한 자루를 흔들어 그것이 지휘봉이 될 수 있고, 상대를 찌르는 무기가 될 수 있다.『축제와 마당극』을 출간한 이상일은 한국 브레이트 학회 초대 회장으로, 통섭이론에 매력을 느껴 융복합 이론, 컬래버레이션 작업에 편들며, 한국문화예술계에 천재의 출현을 늘 갈망해 왔다.
본문의 신금숙 수필가는 가족과 수년간 병석에 계신 노모까지 모셔가며 직장생활을 계속하던 어느 휴일, 그 하루에 ‘낯설게 하기’ 기법을 대입시켜 본다. 이로써 힘겨운 현실을 초월하여 혼자만의 마음속 하루를 오롯이 만나는, 먼 여행을 다녀오듯 위안과 활력을 되찾게 된다.
되풀이되어 숨 막히는 일상을 극복해가는 슬기로움을 읽는다. 자신을 구원하는 이는 에돌아서 결국 자기 자신이다. 이와 같이 내가 사는 내 안의 모든 크고 작은 서사는 때때로 예술, 그 이상으로 치열하다.
예술은 “예, 술맛이군요” 라고 읽히기도 하겠지만,
삶은 “사람, 그 이상이군요” 라고 읽히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리라.
글: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