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을 작은아버지라 부른다. 그러면 이모를 작은어머니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 줄곧 따라다녔던 의문이다. 어쨌든 삼촌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든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삼촌’하고 부르면 정감도 느껴진다. 그러나 삼촌이라고 다 긍정적일 수는 없다. 조선역사에 가장 비극적인 주인공인 단종은 삼촌인 수양대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개하며 그 반대의 삼촌도 있음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남편보다 세 살 위인 시아주버님은 40대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버리셨다.
스무살도 되기 전에 결혼하여 고만고만한 6남매를 남겨둔 채 서둘러 이승을 하직했다.
손위 동서도 몇 년 후에 간암으로 남편을 따라갔다. 조카 둘과 질녀 넷은 부모 없이도 반듯하게 자라 가정을 이뤄 잘 살고 있다.
지난해에 외가의 가족력인 간암으로 큰조카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작은조카까지 간암 진단을 받아 그 충격으로 정신줄을 놓을 뻔 했다.
작은조카가 색전시술을 받고 입원한 혜화동 서울대병원 입원실에 삼촌인 남편은 한여름 더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드나들며 고통을 함께했다.
불운이 불운을 부르는지 지난해 11월 큰조카는 끝내 부모님 곁으로 가버렸다.
남편의 비통해 하는 모습이 도를 넘었다.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더 무섭고 심각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작은조카는 색전술이 효과가 없자 재시술을 받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간이식수술이라는 말에 국내에서는 간 제공자가 없어 중국으로 갔다.
간이식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대기자로 등록하고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받았는데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왔다.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어 이식수술불가 진단을 받은 것이다.
도대체 최고를 자랑하는 서울대병원에서 두 번의 색전술을 하면서도 전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검사를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과 울분을 금치 못했다.
반년 넘게 병원을 믿고 따랐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밀려드는 환자에 주치의와의 상담은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께름칙했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차분하게 환자를 살펴봐야 마땅하다.
보조의사가 모니터에 올려놓은 자료를 몇 초 만에 보고 판단하는 건 무리 중의 무리다.
오진이 왜 안 나오겠는가?
지금은 신뢰가 무너진 그 병원을 떠나 분당병원으로 옮겨 치료받고 있다.
5년 생존율이 30%란 주치의 말에 절망하면서도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단단히 다잡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방사선 치료받고 고향에 내려갔다 다시 월요일에 상경하는 힘든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
시골에서 올라오는 시간에 맞춰 남편은 마중 나가는 일부터 병원에 가서 검사와 치료받는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림자처럼 조카와 함께 하고 있다.
“부모복도 없이 자란 불쌍한 녀석인데 하나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할 텐데...”
큰조카를 잃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닥친 불행에 남편은 제정신이 아니다.
내일 모레면 80이 되는 삼촌이 50대 젊은 조카에게 쏟는 정성은 눈물겹다.
정성이 조카 치료에 도움이 되리란 남편의 믿음은 신앙에 가깝다.
우리 집에서 매일 통원치료 받는 동안 남편이 운전하며 다닌다.
오전에 치료 끝나면 맛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집에 온다.
매일 메뉴를 바꿔가며 조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다닌다.
항암 치료약 부작용으로 식욕이 떨어진 조카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삼촌의 정성은 하늘도 감동할 것이다.
평소에는 군말 없이 차려준 밥상을 받던 남편이 조카가 오면‘맛있는 것’을 연호하며 부엌까지 따라와 챙기려든다. 과일도 토마토의 귀족인 짭짤이를 올리브기름으로 살짝 볶아서 준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껏 삼촌이 조카에게 이렇게 정성을 바치는 걸 본 일이 없다.
아무리 중요한 약속이라도 조카 일이 최우선 순위다.
“이건 잘하는 것도 아냐, 길러주고 공부까지 시키는 삼촌도 있는 걸.”
남편은 오히려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카의 성품이 밝아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환하게 잘 웃어서 환자라는 생각을 잊을 때가 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치료 잘 받고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고 삼촌의 살뜰한 사랑이 하늘을 움직일 수 있기를 숙모인 나는 빌고 또 빈다.
2016.4.2
첫댓글 대단하신 삼촌 사랑입니다.
삼촌의 정성이 좋은 약이 될거예요.
항상 느끼지만, 요즘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사시는 분 같아요. 부모도 그렇게 지극 정서이기는 힘들텐데, 삼촌이 조카에게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경우는 잘 보질 못했어요. 곁에서 보고계시는 선배님도 대단한 분이십니다.
삼촌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기적이 나타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의 또 다른 면을 보고 있습니다.
제경우에는 시삼촌께서 우리가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올때 시어머니께서 우리는 잘모른다고
시삼촌께 다 맡겨서 나중에 알고보니
부동산업자와 짜고 우리를 속인일이
있었읍니다 .. 너무도 기억하기 싫은 일이지요
그런 삼촌도 있는데 조카를 낫게 할려고
그렇게 애를 쓰시니 그조카분 반드시 병이
나으시리라 믿습니다 ~~
세상에나! 우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금은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불행이 겹친 조카의 처지에 마음이 짠하네요.
조카에게 쏟는 삼촌의 정성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정성으로 조카의 병이 호전될 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은 그림자처럼, 저는 기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