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김미성
불쑥. 사무쳤다. 울컥. 눈물겹다. 그것들이 청보랏빛 이마를 내밀고 나를 흔들 때면 슬그머니 한편으로 밀쳐버리고 아무것도 아니란 듯 애써 무심함을 올려두었다. 뭉텅. 가슴이 떨어져 나가는 거 같아도 짐짓 모르는 척 잡동사니를 또 그 위에 올려두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꺼내 본 그것들. 세상에나. 납작하게 찌부러져 있다. 픽! 난 웃어 버렸다. 심각하던 일들도 죽을 것 같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별 것이 아니게 됨을. 결국은 납작해질 그것들. 그래서 다시 힘내서 살아가게 하는 이치. 세월이 주는 깨달음이다.
나이 들었다. 이렇게 써두고 보면 어쩐지 서글퍼진다. 그건 아마도 단순하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오래되었다. 이렇게 써두고 보면 여유롭고 너그러워진다. 그건 아마도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연륜의 축적이고 지혜로운 성숙이고 시간의 발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깊어지고 가치로워졌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라는 자각. 서사가 단편의 모음이고 역사도 순간들의 연결이라면 결국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할 확실하고 거창한 이유가 되었다.
내 나이가 손주를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에 이르고 보니 나의 어머님은 어느새 94세의 어르신이 되셨다. 걷지를 못하고 몇 년째 침대에 누워 지내시는 어머님이시지만 여전히 정갈하고 여전히 사리 분별 명확하고 여전히 다정다감하시다.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서 무릎 통증 줄이는 주사를 맞혀 드리고 무등산 드라이브를 하는데 소녀처럼 좋아하신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충장사라고 김덕령 장군 사당이 있어.”
아. 어머님의 놀라운 기억력에 남편과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드렸다.
무등산 초록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드시고 모내기를 마친 초록 논을 보시며 “좋다. 좋다. 참 좋다.” 어머님의 감탄사가 종달새 노래 소리처럼 경쾌하고 높다.
94세의 연세에 걷기 힘드신 것 말고는 건강하셨던 어머님이 일 년 전쯤부터 자꾸 기억을 놓치시고 예전 기억들이 뒤섞였다. 한동안은 삼십 년 전에 팔아버린, 당신이 젊어서 지은 집을 그리도 애타게 그리워하시더니 또 며칠 전에는 수십 년 전 아버님께서 사다 주셨다는 재봉틀을 찾아와야 한다고 애태우셨다.
이십여 년 전 그 재봉틀로 어머님과 시고모님은 며칠 동안 당신들의 수의를 직접 만드셨었다. 일흔이 넘은 시누이와 올케가 오순도순 이마를 맞대고 당신들이 입고 가실 수의를 만드시더니 십여 년 전에 시고모님은 그 옷을 입고 떠나셨고 어머님의 수의는 연분홍 보자기에 싸여 장롱 서랍 깊숙이 들어있다. 가끔 어머님께서 그 보자기를 꺼낼 때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뜨곤 했다. 연세가 많으셔도 어머님이 그 옷을 입는 일은 상상하기도 싫어서였다. 그 재봉틀을 이사하면서 당신이 직접 없앤 지가 언제인데 갑자기 재봉틀을 잃어버렸다고 찾으러 가자고 며칠을 애통해하시는 어머님께 아무리 설명해 드려도 십수 년의 기억을 지워 버리신 어머님은 옛 기억에만 머물러 계셨다.
“아비야. 이전 살던 집에다 나무들을 다 놔두고 왔다. 오늘 다 찾아오자.”
동네에서 예쁜 꽃들이 많기로 소문났던 당신 정원의 나무며 꽃나무들이 생각나셨나 보다. 그때가 수십 년 전인데 엊그제 이사 오신 걸로 여기시고 아들에게 꽃나무들을 모두 찾아오라고 성화이시다.
정성 들여 가꾸시던 작은 정원과 재봉틀이 어머님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리고 남편의 봉급을 모으고 모아 생전 처음 직접 지으신 그 집이 어머님의 삶에 어떤 가치였을지 알고도 남기에 어머님의 마음 언저리에 내 안타까움도 포개어 두고 어머님 곁에 누워 옛날 사진들을 보여 드리면서 관심을 돌려 드리려 애를 썼다.
어머님은 사진들을 보시다가도 다시 “꽃나무를 가지러 가자. 내가 얼마나 정성 들여 키운 나무들인데.”라고 말씀하신다.
“너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지?” 또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뭐야?”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단순한 질문 앞에서 나는 짐짓 심각해졌다.
이 질문은 “너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가 어머님의 연세쯤에 이르면 나는 무엇을 애타게 찾고 싶어 할까?
올해도 아파트 화단에 봉숭아 꽃이 곱게 피었다. 해마다 그랬듯이 소중하게 봉숭아 꽃잎과 잎사귀를 한 줌 따왔다. 봉숭아 꽃과 잎에 백반을 넣고 나무 공이로 곱게 찧어 어머님의 손톱에 얹고 비닐로 싸매고 실로 묶어 드렸다. “어머니. 봉숭아 물들 때까진 한참 걸리니 한숨 주무세요.” 열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 얹으신 어머니는 아기처럼 금세 잠이 드셨다.
해마다 여름이면 어머님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드린 지 이십여 년. 아흔이 훌쩍 넘으신 어머님에게도 소녀의 감성은 여전히 남아 붉게 꽃물 든 손톱을 흐뭇하게 들여다보곤 하셨다. 어머님의 손톱에 꽃물이 들어가는 시간. 어머님은 연분홍 치마를 봄바람에 휘날리며 꽃길을 걷고 계시는지 주무시다 말고 벙긋벙긋 웃으신다.
어머님 낮잠 주무시는 창밖으로 키 큰 나무들이 땅바닥에 제 그림자를 탁본하고 있다.
나무가 햇살을 등지고 제 몸 구석구석 먹방망이를 문질러 탁본을 뜨는 일이란 새삼스레 제 몸을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꽃도 잎도 다 떨구고 맨몸 구석구석 먹방망이를 문질러 탁본을 뜨는 일은 새삼스레 제 몸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먹물 듬뿍 솜방망이 툭툭 두드리고 꾹꾹 눌러 탁본을 뜨는 일이란 새삼스레 이름 자 새겨놓고 소리 내어 제 이름 불러보는 것이다.
벽이든 땅바닥이든 물웅덩이든 제 모습 뚝 떼내어 걸어두고 저만치 제 모습 바라보는 일이란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음을 겸손히 확인하는 것이다.
어머님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이 드는 시간에 나는 내 몸에 먹물을 묻혀서 탁본을 하고 있었다. 연분홍 치마는 바람에 휘날리고 야속한 세월은 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