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스페인전 (광주) 경기 후 머니투데이 기자가 쓴 글.
김대중 대통령이 모처럼 광주에 얼굴을 보였는데 이럴 수 있을까.
경기장에 모인 국민들은 VIP석의 그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따금 기자들의 시선만 한두차례 왔다 간다.
그 시선도 불순하기 짝이 없다.
"셋째에 이어 둘째아들까지 구속돼 대국민 사과를 한 게 바로 어제인데,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볼 수 있을까" 또는
"이희호 여사가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일까"하는
의혹과 정탐이 가득하다.
홍명보의 깔끔한 마무리로 4강이 확정되자 대통령의 눈물이
TV 화면에 잡혔다.
이어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대통령 바로 뒤에 환한 표정의
정몽준 의원이 보인다.
순간 나는 묘한 부조화를 느꼈다.
정몽준 의원이 누군가.
10년전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 고배를 마신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 아닌가.
그 아들은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또 월드컵을 유치하고 한국축구를
키워낸 축구인으로 떳떳한데, 현직 대통령의 아들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붉은 함성을 보고 있을까.
그 때 그라운드에서는 한국인의 영웅 거스 히딩크가 열광하는 군중에
화답하기 위해 관중석으로 축구공을 차 올리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윙크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듯이 히딩크 역시 지도자다.
광주뿐만이 아니다.
서울에도 부산, 대구, 대전에도 붉은 물결은 넘실댄다.
그것은 마치 한반도 전체를 붉게 물들여, 잠든 땅을 일깨워서
하나가 된 뒤, 꿈틀꿈틀 날아오르는 듯 보였는데
TV의 한 개그맨은 "쑥과 마늘먹고 처음 아니냐"는 조크를 던지기도 했다.
5000년을 인내한 겨레의 염원이 이제 막 첫 발을 띤 것인데,
이는 잠룡(潛龍)의 비상(飛上)이다.
거리의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다"고 외쳤다.
순간 나는 희망을 보았는데, 지금 20대초반이라면 5년전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를 사춘기로 겪어낸 세대가 아닌가.
아버지의 돌발 실직에 절망하고, 형과 누나의 취업전쟁을 피부로
느꼈던, 그리고 심지어 나라를 등지고 유학길에 오른 숱한 친구들에게
손흔들던 그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이 삼삼오오 뜨거운 가슴으로 달려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열정을 담아낼 그릇을 준비하는 지도자는 지금 있을까.
그것까지 히딩크에게 넘길 것인가.
슬슬 걱정이 커져간다.
월드컵이 채 일주일도 안 남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때 마다 온 국민은 열광했고 세계는 놀랐다.
그런데 이번 주말이면 전적과 무관하게 한국팀도 집으로 가야 한다.
길거리의 붉은 물결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으로 복귀할까.
나는 그것이 걱정이다.
ⓒ 머니투데이 경제신문ㆍ㈜머니투데이 2002
카페 게시글
DKChemeng95
김대중과 히딩크 -----(펌)
붉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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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6.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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