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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07
1. # 경의 집 앞 (밤)
장소는 다르지만 전 편과 같은 자세로 마주 선 복수와 경. 역시 전 편과 같은 자세로 악수를 하듯 손을 마주잡고 섰다.
서로의 손만 바라본다. 그리고 옅은 미소. 아쉽게 풀어지는 둘의 손 CU.
2. # 경의 정류장 (밤)
하드를 빨며 깡충깡충 뛰어오는 복수. 복수의 얼굴엔 미소가 어린다.
복수 : (미소가 가시지 않은채) 어뜩하지, 어뜩하지?
복수, 벤취에 앉아 열심히 하드를 먹어댄다. 입안 가득 우물대며 일어났다 앉았다 안절부절 못한다.
그리곤 벤취 앞에서 좌우로 왔다갔다 정신을 못차린다.
복수 : (여전히 싱글대며) 아, 왜 버스가 안 와아? (개구진 미소) 버스야. 빨랑 좀 와.
벌어진 입이 닫히질 않는다.
3. # 경의 방 (밤)
작은 스탠드 하나가 켜진 경의 방이 오늘따라 아늑하다.
침대에 이불을 덮고 모처럼 평화로운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경.
이 때, 살그머니 경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옥.
인옥 : (경의 눈치를 살피며 다정히) 경아. ...엄마랑... 얘기 좀 하자.
경 : 엄마.
인옥 : 응?
경 : (미소) 말 시키마, 오늘은... 응? (정답게 인옥의 손을 잡는다.) ...나...지금 ...마음이 좋아. ...(부드러운 눈길로 인옥을 본다.)
인옥 : ...
인옥의 손을 잡은채, 허공을 바라보는 경의 눈에 평화가 있다.
경의 손에 아주 꼬옥 잡힌채 경을 바라보는 인옥.
4. # 복수의 집 골목길 (밤)
미소지으며 뛰어가는 복수.
5. # 복수집 앞 (밤)
복수 : (귀여운 미소로 대문을 두드린다.) 아빠, 문 열어.
중섭 : (곧바로 문을 연다.)
복수 : (중섭의 볼을 양손으로 쓰다듬으며) 대문 앞에서 나 기다리구 있었지? 그지? 다 알어. (그리곤 부랴부랴 들어간다.)
중섭, 어이없는 표정.
6. # 마당 (밤)
수돗가에서 물안개를 피워가며 후둘후둘 입술소리까지 내면서 세수를 해대는 복수.
중섭이 툇마루에 앉아서 멍하니 복수만 바라본다. 쟤, 왜 저러나 싶다.
복수 :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중섭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아빠.
중섭 : (눈살) 왜 그래, 징글맞게?
복수 : 나, 잘 생겼지?
중섭 : (식겁을 한다.) 임마, 날 닮았는데, 어뜩케 잘 생기냐?
복수 : (눈을 흘긴다. 그리곤 대뜸) 나 좀 만져봐. (중섭의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문지른다.) 피부는 좋지?
중섭 : ...(진지하게) 피부는 고와.
복수 : 하하하하. (깔깔대며 웃는다. 그러다 표정이 굳는다.) 다리가 좀 짧은가?
중섭 : ...(버럭 화를 낸다.) 한국놈 다리가 그 정도면 되지 뭐가 짧어? 어떤 놈이 너한테 짜리몽땅하대?
복수 : 아니. ...내가 좋대. (히죽)
중섭 : (어이없다) 어떤 놈이?
복수 : (갑자기 생각해낸 게 있나보다. 후다닥 중섭의 방으로 들어간다.)
중섭 : 저 녀석이 약을 하나?
7. # 중섭의 방 (밤)
서랍장을 뒤져댄다. 클라리넷을 꺼낸다. 그러더니 후다닥 방을 나간다.
8. # 툇마루 (밤)
쿵쾅대며 툇마루로 뛰어나와 공부방으로 달려 들어간다.
중섭, 입만 벌리고 복수의 하는 양을 본다.
그러더니 클라리넷 교본을 들고 나와 중섭 옆 툇마루에 나란히 걸터 앉는다. 교본을 무릎에 펴 놓고 클라리넷을 입에 댄다.
중섭 : 악보 볼 줄 알어?
복수 : 아니. (그리곤 있는 힘껏 불어댄다. 악보는 폼이다. 바람소리만 난다.) 에유, 힘들어.
중섭 : (클라리넷을 빼앗더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불곤 복수에게 건내준다.)
복수 : (놀라서) 어? 언제 배웠어?
중섭 : (겸연쩍은 미소) 그 책 보구 배웠지.
복수 : 뭐? 남의 책을 훔쳐 봐? (눈을 흘긴다.) 능구렁이. (악기를 주며) 또 해봐. 천천이.
중섭 : (한 음계 한 음계를 분다.)
복수 : (기본음계를 들으면서도 눈을 감고 음미하듯 듣는다.) 좋다. 아빠...음악은... ...참, 그래. 그지?
중섭 : (퉁명) 뭐가 그래?
복수 : (히죽) 아, 몰라아. 내가 어뜩케 알어.
중섭 : ...(옅은 미소. 다정하게) 뭐가 그렇게 신났니, 복수야?
복수 : ...(부끄럽게) 어떤 아가씨를 만났는데... ...내가 좋대. ...이뻐.
중섭 : ...(복수를 물끄러미 본다.)
복수 : 히.
중섭 : (대뜸) 너, 원래 애인 있었잖어.
복수 : (놀라서) 응?
중섭 : 없었어?
복수 : ...왜?
중섭 : ...아니였냐? ...너,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가끔 여자 향수냄새가 나드라. 이 놈 애인 있구나 했지, 아빤.
...(웃음) 늙은이 눈치발이 빗나갔네. (일어선다.) 그만 나대구 자. 난 잔다. (들어간다.)
복수, 핸드폰을 들어 한참을 바라본다.
복수 : (눈빛이 우울하다. 나직이) ...미래야. ...나, 어뜩해?
...(갑자기 고개를 마구 가로 젓는다. 어지러울 정도로...) 아, 몰라, 몰라. ...아구, 어지러라.
그리곤 일어서서 쥐떼 몰고 다니는 피리소년처럼,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삑사리 나는 클라리넷 연주를 해댄다.
9. # 중섭의 방 (밤)
불꺼진 방 이부자리 안에 모로 누워 눈을 깜빡이는 중섭.
살짝 열어 놓은 방문틈으로 마당을 오락가락하는 복수의 모습을 바라본다. 저절로 미소가 감돈다.
중섭 : (혼잣말) 녀석. 다 컸네. 연애두 하구... (미소지으며 눈을 감는다.)
문틈으로 보이는 조그만 복수의 모습과 그 너머의 달빛과 별빛.
멈춰서서 별을 보는 복수. 알퐁스 도데 <별>안의 양치기 같은 복수의 뒷모습.
10. # 경의 버스 정류장 (아침)
가벼운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경. 문득, 멈춰선다.
복수가 정류장 앞에서 서성인다.
경, 뛰어가 복수 앞에 선다.
경 : ...(놀란 눈으로 복수를 본다.)
복수 : ...(머리를 긁적인다.) 왜 뛰어 다니구 그래요? 숨차게...
경 : ...여기서 뭐해요?
복수 : ...
경 : ...
복수 : 아침, 먹었어요?
복수의 뒷짐진 손에 봉투가 달랭댄다.
11. # 버스 안 (아침)
뒷 좌석에 나란히 앉아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는 둘.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
복수 : (진지하게) 경이씨.
경 : ...네.
복수 : 내 얘기 잘 들어요.
경 : ...?
복수 : 아침 꼭 먹어요. 아침 거르면, 빨리 늙어요.
경 : ...(미소) 네.
둘, 진지한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먹는다.
12. # 연습실 앞 버스정류장 (아침)
정류장에서 내리는 복수와 경.
경 : (자꾸 주변을 두리번 댄다. 불안한듯) 얼른 가요. 뭐하러 내려요?
복수 : ...그래두... 섭섭해서...
경 : (복수와 자꾸 떨어져서) ...언니한테 들켜요. (저만치 미래가 보인다. 놀란다. 등 돌린다. 속삭인다.) 얼른 가요.
복수 : (자신도 등돌린다.) 아유. 괜히 내렸나?
경 : (울상) 내리지 말라니까... 아으 참... 빨랑 숨어야겠다. ...일 잘해요, 복수씨. (미소를 남긴다.)
복수 : (속삭인다.) ...점심두 거르지 마요.
경, 미래를 피해 부랴부랴 도망간다.
복수, 등 돌린채 서 있다가 슬쩍 고개를 돌린다. 미래가 서 있다.
미래 : 뭐하냐?
복수 : ...(놀란다.)
미래 : 노력은 가상하다. 아침부터 찾아와서... (미소를 지으며 복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한테 까분 거 미안하지?
(계속 머리를 만지더니 짜증.) 머리 좀 깍아아. 넌 머리길면, 꼬불꼬불해서 아줌마 같애.
...스트레이트 할래? 이따가 미용실 가자.
복수 : 싫어.
미래 : (어린아이를 다루듯) 아유, 또 말 안 듣네. ...스턴튼 때려쳤지?
복수 : (버스가 온다.) 아니. 할거야. (그리곤 버스에 올라탄다.)
미래 : (버스에 탄 복수를 차창밖에서 보며 소리친다.) 너, 그 말 할라구 온거야? 아침부터?
...(어이없는 표정으로) 저 새끼가 나 약 올리네?
차창안의 복수는 되도록 미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미래에게 뒷통수만 보여준다.
미래는 복수의 뒷통수만 볼 수 있다.
13. # 버스 안 (아침)
버스가 떠나고 고개를 미래의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던 복수가 고개를 살짝 돌려 멀어진 미래를 본다.
그러다 떠나는 버스가 지나치는 한 두 건물 옆쪽에 숨어있는 경을 본다.
복수를 향해 살짜기 손을 흔드는 경의 미소.
복수, 미소지으며 창문을 열어 보지만,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
손톱만큼 작아진 차창가의 경을 감싸듯 창문에 손바닥을 펴 화답한다.
한참동안 복수의 손은 창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14. # 액션스쿨 - 플로어 (밤)
탕소리를 내며 거칠게 바닥을 구르는 복수의 의연한 얼굴CU.
복수와 꼬붕이 한 켠에서 낙법연습을 한다. 뒷 쪽엔 스턴트맨들이 각각의 훈련을 하고 있다.
(이 곳엔 항상 몇 명씩 무리지어 각각의 영화콘티로 연습을 하는 스턴트맨들이 있다.)
복수는 지치지도 않는지 반복적으로 구르고 일어서고 구르고 일어선다.
복수와 보조를 맞추던 꼬붕은 끝내 포기하고 바닥에 앉는다.
꼬붕 : (지친 듯) 그만해에... 갑자기 왜 그래? 미쳤어?
복수 : (들은 척도 않고 계속 구른다.)
꼬붕 : (인상을 쓰며 삐진 듯 팩 소리지른다.) 형 꼭 미친놈 같애.
복수 : (구르려고 달려오며) 나, 미쳤어. (그리곤 떼굴 구르며 무사같은 자세를 취한다! 양동근의 이상한 미소.!) 신나 죽겠다.
(그러더니 다리가 풀린다.) 에구, 또 어지러. (바닥에 앉아 머리를 흔든다.)
꼬붕 : (복수에게 바짝 다가 앉으며) 일루와, 안어지럽게 해주께. (복수의 머리에 박치기를 한다.)
복수 : 아야. (꼬붕을 한 번 보곤 장난스레) 나한테 병 옮구 싶어, 너?
꼬붕 : 무슨 병?
복수 : 머리에 무좀 있다?
꼬붕 : 에이, 드러. (제 이마를 털어낸다.) 머리에두 무좀이 생기나?
양찬석 : (멀찍이서) 전과자.
복수 : (뛰어간다.) 네. 감독님.
꼬붕 : 아주 이름이 됐네. 헤헤. 이름이 과자야. 난, 그럼 빵 해야겠다. (복수에게 소리친다) 형, 난 빵이야.
플로어 한 켠. 양찬석이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있고, 모형 창을 복수에게 준다. 맞은 편에 스턴트맨 하나가 서 있다.
양찬석 : 지가 빵이랜다, 야.
복수 : 쟤, 바보예요, 바보. 감독님. 전과자가 좋아요, 바보가 좋아요?
양찬석 : (짜증) 아, 다 싫어어. (복수에게) 자, 얘 옆구리 쪽을, 실감나게 찔러 봐. 비디오 찍어주께.
복수, 헤죽 웃곤 저 혼자 알아서 슬로우 모션으로 스턴트맨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양찬석 : 에? 얘, 뭐하는 거야, 지금? (짜증스레) 누가 느린화면으로 하래? 그냥 하라구. ...자, 해봐.
복수 : 그냥 하면 아프잖아요.
양찬석 : (창을 보며) 이거 가짜야아. 자. (비디오를 들이댄다.)
복수, 무사같은 눈빛으로 스턴트맨을 째린다. 상대 스턴트맨도 대적할 자세로 멋진 표정을 짓는다.
복수, 빠르고 힘차게 스턴트맨의 배를 푹 찔러버린다. 스턴트맨, 배를 움켜 잡으며 눈알이 나온다.
복수, 살기어린 미소로 창을 뽑아 돌리며 마무리.
스턴트맨 : (바닥으로 넘어지며 헥헥댄다.) 윽, 감독님. ...감독님. 아퍼.
양찬석 : (복수에게) 야, 그걸 진짜루 찌르면 되니? 배에다? 그 딱딱한 걸?
복수 : 찌르랬잖아요.
양찬석 : (짜증스레) 옆구리 스쳐서 겨드랑이에 끼워 넣야지, 바보야아. 아으, 참.
(비디오를 보며 돌아서 간다.) 실감은 난다. 배가 푹 들어가네. (다른 스턴트맨을 보며) 쟤, 연기된다?
바닥에 엎드려 배를 잡고 있는 스턴트맨.
복수 : (스턴트맨의 등을 두드리며) 형. 나, 연기 된대. (헤죽)
스턴트맨 : 잉. (울상으로 복수의 손을 뿌리친다.)
양찬석 : (현관을 보고 놀란 듯) 찬석아.
복수가 현관을 보면 우찬석이 역광을 받으며 서 있다. 복수를 보고 미소 짓는 우찬석.
복수도 화답하듯 미소 짓는다.
15. # 밥집 (밤)
분식집 안으로 들어가는 밴드와 경. 이미 치어리더들이 점심을 마치고 일어서서 나오려 한다.
미래와 눈이 마주친 경이 목례를 한다. 정국과 기홍은 탁자에 앉는다.
미래 : (내뱉듯) 저녁이니?
경 : 네.
미래 : 뭐 먹을건데?
경 : ...글쎄, 아직...
미래 : (5만원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주며) 아줌마, 얘네들 이 돈으로 밥 맥여요.
경 : 아니, 괜찮아요, 언니.
미래 : 사줄 때 먹어. 요즘 돈이 넘친다, 내가.. (경의 볼을 톡톡 두드린다.)
정국 : 그럼 우리 닭도리탕 먹자.
경 : (정국을 본다.)
미래 : (정국을 보며 비아냥) 아주 빈티를 내라.
기홍 : (정국에게 소곤대다.) 형. 큰 걸루 시켜.
미래가 나가려는데, 별리가 들어온다. 둘, 똑같이 입술이 비뚤어진다.
나가려는 미래와 들어오려는 별리가 자꾸만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서 서로의 길을 막는다.
별리 : 이씨. 난 왼쪽, 넌 오른쪽. 됐지?
미래 : 멍충아. 니 왼쪽이 내 오른쪽인데, 뭐가 되냐? 같이 왼쪽을 해야지. 으이그. (별리를 옆으로 툭 밀치고 나간다.)
별리 : (뒷통수를 보며 눈을 부라린다.) 어딜 건드려?
경도 별리를 살짝 밀치며 미래를 쫓아나간다.
별리 : (명랑) 넌 건드려두 돼. (밴드 앞으로 가며) 뭐 시켰냐?
16. # 밥집 앞 (밤)
경이 미래의 뒤로 달려가 미래를 세운다.
경 : 언니.
미래 : 왜?
경 : (가방 안에서 손바닥 크기의 케이스를 내민다.)
미래 : ...뭐야?
경 : ...광고곡 하나 만들었는데, ...돈이 좀 생겨서요. ...싸구련데. (미래의 손에 건낸다.) ...모조품이라서, 좀 그렇지만...
(인사를 꾸벅하곤 돌아서는데)
미래 : (의아한 듯) 선물이야?
경 : 네.
미래 : 왜?
경 : ...미안해서요.
미래 : 뭐가?
경 : 언니꺼 나한테 주셨잖아요.
미래 : 뭘?
경 : (자기 손목의 시계를 들어보인다.)
미래 : ...(호감가는 미소를 보낸다.)
경 : ...밥 잘 먹을께요.
뛰어가는 경.
미래가 케이스를 열어본다. 경의 시계와 같은 시계다.
미래 : (미소) 기집애.
F.O. ***여기서 배경음악 깔리면 시간수정이 효과적일 듯.
17. # 액션 스쿨 - 장비실 옆 단상 (낮)
장비가방을 챙기는 우찬석. 양찬석이 장비를 챙겨준다.
복수가 뭐 도울 일이 없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속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근데, 복수에겐 눈길도 안 주고 둘이 알아서 잘 한다.
양찬석 : 등 다 까졌다며? 지금 어뜩케 스턴틀 하니?
우찬석 : 배우 액션만 봐 줄거야.
양찬석 : (복수에게) 전과자, 니가 운전 좀 해줘, 찬석이.
복수 : (놀라며 자신없는 말투로) 네? 제가요?
우찬석 : 찬석이 형. (손을 내젓는다.) 장비두 별루 없는데, 뭐. ...택시타구 갈래.
양찬석 : (복수에게) 그럼 가방이라두 들어.
복수 : (가방을 들고 우찬석의 뒤를 따른다.)
꼬붕 : (부리나케 복수에게 달려가 뒤를 따른다.)
양찬석 : (꼬붕에게) 너, 어디가?
꼬붕 : 형따라 가는데요?
양찬석 : 넌 일루와.
꼬붕 : (복수의 손을 잡는다.) 형. 나만 두고 가면 어떡해?
복수 : (뭔가 불안하다.) 너두 임마. ...독립해야지.
양찬석 : 어이그. 생이별을 해라. ...얼른 와.
꼬붕이 남겨지고 복수와 우찬석이 현관쪽으로 걸어간다.
양찬석 : (꼬붕에게) 찬석이 쟨, 10일만에 스턴트맨 됐어. 배워, 좀. ...그리구 쟨 의사였다?
꼬붕 : (조롱하듯) 에에. 장의사?
양찬석 : (꿀밤을 먹이곤 플로어 쪽으로 간다.)
꼬붕 : (따지듯) 의사가 미쳤어요? 이런 후진걸하게?
현관 앞의 복수와 우찬석.
복수 : (놀라며) 10일만에 스턴틀 했어요? 야아. 찬석이들은 타구 났구나, 스턴트. 나두 이름을 찬석이라구 바꿀까?
우찬석 : (의아한듯) ...근데, 이름이 전과자예요?
복수, 갑자기 인상을 쓰더니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어이없는 우찬석의 표정.
18. # 밴드 연습실 (낮)
데모CD 다섯개를 챙겨드는 경. 기홍과 별리는 남고, 정국과 경이 일어선다.
정국 : 가자, 경.
경 : (별리에게) 언니두 같이 가지?
별리 : 됐다. 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기홍 : 나두 갈래.
별리 : (획까닥 고개를 돌리며) 어딜 가? 나 혼자 심심하게. (경에게) 갔다와라. 참 너 요즘 그 기자 안 만나냐?
경 : 응?
별리 : 너랑 연락이 안된다구 땡깡 부리다 갔다? 어젯밤에 여기서?
19. # 문화부 기자실 (낮)
컴퓨터 모니터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있다.
동진 : (자신의 노트북 카메라를 향해 히스테릭하게) 왜 연락을 안하구, 안 받는거야, 왜?
(그러더니 얼른 카메라 각도를 맞추며 자신의 화면을 본다.)
주변 기자들이 동진을 본다.
동진 : (비장한 표정) 전 경. 니 과거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갑자기 비굴한 표정) 아니야. 내가 치사했어. ...너 못 만나니까 죽을 거 같애. 보고 싶어서 일두 못하겠다.
동료기자 : (동진에게 다가와 노트북을 보며) 뭐하는 거야, 한 기자?
동진 : (카메라에 들이댄 얼굴을 밀어내며) 아, 니 일이나 해. (그리곤 다시 카메라를 본다.) 외로워.
주변 기자들이 징징대는 동진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20. # 택시안 (낮)
뒷 좌석에 나란히 앉은 복수와 우찬석. 별로 할 말이 없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앞만 보고 있다.
우찬석 : ...(그러다 대뜸 인상을 쓴다.) 아주 죽기루 작정을 했구만.
복수 : ...(우찬석을 본다) 네?
우찬석 : (소리친다) 치료를 받아야지, 이 사람아.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복수 : ...(차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돈부터 벌구요.
21. # 양수리 촬영장 입구 - 2차선 도로 (낮)
갓길로 나란히 걸어가는 둘.
우찬석 : ...수술비 없어요? 가족두 없어? 돈 꿀 데두 없어요?
복수 : (꼬나본다.) 날 뭘루 보구 진짜, 사람이... ...돈 빌릴 사람, 널렸어요. ...거저 주겠다는 사람두 있는데, 뭐.
(퉁명스레) ...근데, 그랬다가 수술 잘못되서, 빌린 돈 못 갚으면 어뜩해요?
우찬석 : ...어쩔수 없지, 뭐.
복수 : (인상을 쓰며) 인간이 무책임하긴... (씩씩하게) 일부터 배우구, 돈 벌구, 신세진 사람들 좀 돕구, 다 깨끗이 해놓구,
그리구 수술받을래요. 맘 편하게...
우찬석 : (바락) 수술이 먼저지. (인상쓴다.)
복수 : ...(짜증) 나, 수술부위가 머리통 전첸데, ...수술 받으면 정확히 산다는 보장 있어요? 좋아진다는 보장 있어요?
우찬석 : (퉁명스레) 없죠.
복수 : (진지하게) 나한테 더 급한 건, 제대로 한번 살아보는 겁니다. ...제대로 살려구 하는데,
설마 당장 오라 그럴까? 저기서? (하늘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킨다.) ...내 인생, 새루 한 번 살아보겠다는데...
(하늘쪽으로 턱짓을 하며) 저 쪽에서두, 지가 알아서 도와줘야지, 뭐. (그리곤 다시 걷는다.)
우찬석 : (미심쩍게) 안 도와주면 어뜩해?
복수 : 아님 말구.
우찬석 : ...몇 살이예요?
복수 : 그 쪽은요?
우찬석 : 서른 하나.
복수 : (눈을 굴린다.) 뭐, 나두 그 쯤?
우찬석 : 정확히 몇 살인데?
복수 : 그 쯔음.
우찬석 : 말 트자, 그럼.
복수 : 그래.
대뜸 어깨동무를 하며 촬영장 안으로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
22. # 홍대 클럽 앞 (낮)
정국과 클럽 앞 거리를 걷던 경. 핸드폰이 울린다.
경 : (메뉴창을 보곤 미소. 걸음을 멈춘다. 미소를 띠며 핸드폰을 받는다.) ...네. ...일하러 가는 중인데요.
23. # 야외 촬영장 - 양수리 강가 도로 (낮)
복수가 핸드폰을 하며 왔다갔다 서성인다.
복수 : 예에... 아니, 그냥...뭐. ...점심은 먹었어요? 라면이요? ...(걱정스레) 아유. 그런 거만 먹구...
고기같은 것두 좀 먹구 그래야 되는데... 젊은 사람이... 네? ...먹었어요? 닭도리탕이요?
...닭 좋아하는구나아. 우리엄마두 닭도리탕 잘 하는데...
24. # 클럽앞 (낮)
경도 복수와 같은 자세로 왔다갔다 서성인다.
정국이 의아한 표정으로 경을 본다.
경 : 닭도리탕두 잘 하시는구나아. ...닭으로 만드는 건, 다 잘 하시나봐요?
우찬석 : (E 먼소리로) 전과자.
경 : (우뚝 멈춰 서며 놀란다.)
25. # 야외 촬영장 - 양수리 강가 도로 (낮)
복수도 우뚝 멈춰서서 저만치서 손짓하는 우찬석을 본다.
우찬석 : 일 좀 도와주지?
복수 : 알았어. (핸드폰) 저... 쫌 있다 다시 전화해두 되죠?
26. # 클럽앞 (낮)
경 : 네. (폴더를 닫는다.)
정국 : (경을 빤히 본다.)
경 : 왜?
정국 : (의심의 눈초리) 얼굴이 빨개.
경 : 덥잖아. 오빤 안 더워?
정국 : 기자야?
경 : 아니.
정국 :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곤 클럽 안으로 들어가며) 양다리 걸치지 마라. 생활이 복잡해진다.
경, 빨개진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문지른다.
27. # 촬영장 - 양수리 강가 도로 (낮)
복수가 난감해 하며 서 있다.
우찬석 : 배우가 면허가 없대. 그냥 하래두 겁난대. (손가락으로 차도를 가리키며) 한 200미터? 150미터나 되나?
요기서 조기까지만 몰면 되니까, 대역 좀 해줘. 내가 해야 되는데, 아직 등이 아파서 그래. 시속 120키로루.
복수 : 저기이...
우찬석 : (저쪽으로 뛰어간다.) 분장팀에서 옷이랑 가발 줄거야.
복수 : (혼잣말) 나두 면허 없는데...
28. # 또다른 클럽 앞 (낮)
현관에서 나오는 정국과 경.
경 : 데모CD 네 군데나 돌렸으니까, 뭐. ...어뜩케 되겠지.
정국 : 에구. 공연 좀 정기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경 : ...공연이 잡혀두 걱정이다... 별리 언니, 어쩌냐?
29. # 밴드 연습실 (낮)
별리가 턱을 괴고 소파에 앉아있다.
기홍이 베이스를 맨 채, 혼자서 연습을 한다. 별리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별리 : (슬쩍 기홍을 본다.) 야. 왜 눈친 보구 그러냐?
기홍 : ...
별리 : 내가 무서워?
기홍 : 응.
별리 : ...(한숨) 휴. 나두 내가 무섭다. ...어쩌냐? ...(또 한숨) 에휴. 무대에서 노래두 못하는 보컬이, 보컬이냐? ...내가 무섭다.
...(힘없이) 그냥 니가 할래, 보컬?
기홍 : ...(엉거주춤 걸어와 별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방법이 있겠지, 별리씨.
별리 : (구미호처럼 획까닥 옆으로 쏘아본다.)
기홍 : 누나.
자신의 어깨에 올린 기홍의 손을 거만하게 손끝으로 톡 쳐 내린다.
30. # 트럭 안 (낮)
촬영 스탠바이.
복수가 배우와 같은 옷과 가발을 쓰고 분장한 상태다. 트럭 운전석에 바짝 쫄아서 앉아있다.
감독 : (E) 액션.
복수 : (울상) 에이, 몰라.
시동을 밟고 후진 기어를 넣는다. 트럭이 뒤로 쏜살같이 간다.
31. # 트럭 밖 (낮)
우찬석 : (팔짱을 끼고 있다가 놀라서 푼다.) 어? 앞으로 가야지.
감독 : (놀라서) 컷. (벌떡 일어선다.) 왜 저래, 쟤?
아직도 뒤로 달리는 복수의 차. 한참을 쏜살같이 달리다가 도로옆 난간에 강하게 부딪친다.
놀라는 스텝들.
32. # 트럭안 (낮)
복수가 졸도했다.
복수의 뒷주머니에서 불이 반짝인다. 진동상태의 핸드폰 신호표시등이다.
33. # 사진 스튜디오 (낮)
치어리더 복장(짧고 넓은 스커트로 입혀주세요. 반바지 말구요.)의 미래가 핸드폰을 들고 있다. 인상을 구긴다.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1번을 누른다.
미래 : (음성 메시질 남긴다.) 복수, 너. 자꾸 개길래? 까불래? 연락 안 하지, 너? 두구 봐, 어뜩케 되나?
사진사 : 송 미래씨, 시작합시다.
미래 : (이쁘게) 네. (핸드폰) 그리구, 너 머리깎어어? (*표를 누르고 번호를 누르고 폴더를 닫는다.
그리곤 이내 웃으면서 꽃술을 들고 팔랑 팔랑 사진사 앞으로 뛰어간다.)
34. # 밴드 연습실 (해질녘)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대는 경.
드럼 앞에 앉아 심벌을 닦고 있는 정국이 경을 힐끔댄다.
정국 : 너 왜 안가?
경 : ...가. (일어선다.)
정국 : 전화 기다려?
경 : 아니, 뭐. ...집에 가기 싫어.
정국 : 왜?
경 : 무서워.
정국 : 아빠?
경 : 아니, 엄마.
35. # 촬영장 - 승용차 안 (해질녘)
뒷 좌석에 눕혀져 있던 복수가 불현 듯 눈을 뜬다. 차창 밖 강가로 붉은 저녁놀이다. 벌떡 일어난다.
복수 : (두리번댄다) 나, 살았나? 죽었나?
우찬석 : 죽었다, 왜? (조수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복수 : ...(우찬석을 본다. 그리곤 씩 웃는다.) 에이, 장난을 치구 그래. ...사람 목숨갖구...
우찬석 : (한심하듯) 운전두 못해?
복수 : ...글쎄, 뭐. ...운전을... 할 일이 없었지? 배울 일두 없구?
우찬석 : (소리친다.) 도대체 그럼 뭘 하구 살았어, 그 나이 먹도록?
복수 : 왜, 화는 내구 그래? 배우면 되지이. 나참. (문을 열고 나가며) 촬영하러 가자.
우찬석 : 지가 무슨 촬영을 해?
36. # 사진 스튜디오 (밤)
블루 스크린 앞에 선 미래가 울상이 되어 있다.
사진사에게 욕을 먹고 있는 미래. 미래는 인상이 구겨져 있다.
사진사 : (짜증) 억지루 웃지 말라니까? 야구장에서 춤출 때 안 웃어요?
미래 : 웃어요.
사진사 : 그렇게 웃으라구. ...자, 다시.
미래 : (꽃술을 든 한 쪽 팔은 위로 번쩍 올리고, 한 손은 허리를 집고 어깨넓이로 다리를 벌렸다.)
사진사 : 오케이...
이 때, 촬영장 입구에서 강과 양복이 들어와 사진사 뒤에 선다.
사진사 : (카메라만 보며) 미소.
미래 : (미스코리아 웃음. 눈은 바보같고 이만 보인다.)
사진사 : (카메라에서 몸을 떼며) 에이, 진짜... 그게 웃는 거야? 겁주는 거지.
미래 : (인상을 구긴다. 자신없이) 나, 원래 이렇게 웃어요.
사진사 : 야구장에서 그랬다간, 관중들이 기절을 하겠네. 구미혼가?
강 : (양복에게) 야, 사진사 바꿔.
사진사 : (뒤돌아본다.) 어? 사장님? 언제 오셨어요?
강 : (미래에게) 나와.
미래 : (당황한 표정으로 그대로 서 있다.)
강 : (사진사에게) 니가 뭔데, 내 모델한테 소릴 지르냐? (미래에게) 가자.
강이 나가고 미래가 눈치를 봐가며 옷가방을 들고 따라 나간다.
37. # 강의 승용차 (밤)
양복이 운전을 하고 뒷 좌석에 나란히 강과 미래가 앉아있다.
미래 : (도도하게) 사진사까지 바꾸고 그러면, 내가 미안하죠, 사장님. ...표정두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강 : 행여? ...애가 하두 양아치 같애서, 쫄일은 없겠다 싶었구만. ...야, 준 돈이 아까워서 쓴다, 너.
미래 : (팩) 아, 그럼 돈 도루 가져가라?
강 : 싫어.
미래 : 왜?
강 : 내 맘이다. ...집이나 알려줘. 저 사람한테...
미래 : (대뜸) 아저씨, 아저씨. 요기서 좌회전. (운전수가 급히 핸들을 꺾느라 강 쪽으로 픽 쏠린다.
벌떡 제 자리를 잡곤 강의 몸이 닿았던 곳을 털어댄다. 양복에게) 운전 초보야, 뭐야아?
(계속 털며 강에게) 으이, 찝찝해. 내 팔에 아저씨 비듬 묻었잖아.
강 : (진짠가 싶어 자신의 머리칼을 털어본다.)
미래 : (짜증) 아, 비듬 날려어.
38. # 촬영장 일각 (밤)
복수가 우찬석의 가방을 매고 멀찍이서 서성이고, 우찬석은 스탭들에게 인사를 하고 온다.
우찬석 : 가자.
복수 : ...(걸어가며) 운전 배워야지. 또 뭐뭐 배워야 돼? 왜 이렇게 배울게 많어? 골 아프게...
우찬석 : 자. (20만원을 내민다.)
복수 : (멈춰선다.) 뭐야?
우찬석 : 내일 대신 해줬으니까, 돈 받어. ...잘했으면 더 줄라 그랬는데, 너무 못 했어. 사고나 내구.
복수 : ...아. (감격에 겹다.)
우찬석 : 으응? 받어.
복수 : (돈을 받아든다. 감격. 입만 벌리고 섰다.) ...
우찬석 : ...
복수 : ...(넋이 나갔다.) 나, 첨이다? ...이렇게 돈 받는 거?
우찬석 : ?
복수 : (감격) 내가 알아서 집어간 적은 많은데... ...이렇게 돈 받는 건 첨이다? (눈물이 글썽. 희극적으로...)
우찬석 : (황당하다) 너 울어?
복수 : (눈물이 고였다.) 찬석아. ...사람들이 이렇게 돈을 버는구나아. 몰랐어.
(그리곤 신나서 도로를 뛰어간다. 소리친다.) 얘들아. 다, 덤벼어.
우찬석, 복수의 하는 꼴이 볼만하다.
39. # 경의 집앞 (밤)
대문 앞에 우두커니 고개를 숙이고 선 경.
40. # 경의 회상 - 안방
전화를 하는 인옥의 뒷모습.
인옥 : 무영씨. ...내 옆에서, 그 애가 얼마나 잘 컸는지,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하지두 않아? ...왜 묻지를 않아?
...누구겠어? ...우리 애. ...당신 자식.
경 : (E) 엄마.
돌아보는 인옥. 놀라는 경의 얼굴.
다급히 끊겨지는 전화기 소리에 오버랩되어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41. # 경의 집 앞 (밤)
초인종을 누르는 경.
42. # 경의 집 - 정원 (밤)
대문을 열면 인옥이 경 앞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경 : (인옥을 본다.) 왜 나와 있어?
인옥 : 알잖아. 왜 나와 있는지...
경 : ...(씁쓸한 미소) 모르겠는데? (그리곤 걸어간다.)
인옥 : (경을 잡아챈다.)
경 : (담담하게) ...걱정 돼? 내가 엇나갈까봐? ...사춘기 소년가, 뭐? ...이상하게 별루야. 그냥 그런가부다 해.
...내가 언젠 아빠 딸이었나? (미소) 엄마 딸이었지. ...들어가자. (걸어간다. 무심히) 그래서, 내 진짜 아빤 뭐하고 살어?
인옥 : (담담히) 너 아니야.
경 : ...(돌아본다.)
인옥 : 너 아니야.
경 : 나 아니면?
인옥 : 있어.
경 : ...(어이없는 표정)
인옥 : ...(고개를 돌린다.) 너 아닌 것만 알아둬. ...그거면 되잖아.
경 : ...(나직이) 오빠 말구, 나 말구, ...또 누가 있어?
인옥 : ...
경 : ...(입을 벌리고 인옥을 본다.) 엄마, ...자식이 셋이야?
인옥 : ...(경을 바라본다.) 너 아닌 것만 알아 두라구. ...다른 건 상관마. ...다른 건 너랑 관계없어. 엄마 사생활이야.
경 : (눈가가 젖어온다.) 뭐가 사생활이야? 엄마 자식이 둘인지, 셋인지, 넷, 다섯인지, ...몇 명까지 가두, 그게 엄마 사생활이야?
아빠가 내 아빤지, 오빠 아빤지, 우리 둘다 아닌지, 긴지, 그거 알 필요 없어? 엄마 사생활이라서?
인옥 : 알 사람만 알면 돼. ...몰라두 될 사람은 몰라두 돼. ...넌... 몰라두 돼.
경 : 엄마, 돌았어?
인옥 : ...
경 : ...(목이 맨다.) 돌았어?
인옥 : ...옛날에 돌았었어.
경 : ...
인옥 : 그 사람 만났을 때. ...니 아빠 만나기 전부터 좋아했던 사람이야. 결혼하구두 몇 년 동안 만났어. 그리고... 아직도 좋아해.
경 : ...아빠 좋아하기 전부터, 좋아했다구?
인옥 : 니 아빠 좋아한 적 없어, ...한 번두.
경 : ...뭐? ...한번두 안 좋아했다구? 그럼 왜 아빠랑 결혼했어?
인옥 : 경아. ...이제 그만해. 넌, 너한테 아무 일도 없다는 것만 알면 돼. 복잡한 건 엄마꺼니까, 넌 빠져.
경 : (눈물 흘리며 소리친다.) 무슨 말이야아? 무슨 말인지 하나두 모르겠어. 그럼 왜 아빠랑 살어? 어?
인옥 : ...(눈물 흘린다.) 그 사람이... 나랑 안 살아줘서.
경 : ...(입만 벌린채 인옥을 본다.)
인옥 : ...
경 : (나직이) 아빤... 그럼 뭐야?
인옥 : ...(어금니를 물고 서 있다.) 그냥, ...남편이야.
경 : ...
인옥 : ...
경 : ...(흐르는 눈물) 엄마, 엄청난 여자다. 아빠보다 더 무섭다. ...참 못됐다.
인옥 : ...
경 : ...(목이 매여 나직하게) 왜 그렇게 살어? 응? 엄마. 왜 그렇게 살어?
인옥 : ...
경 : ...
이때, 대문 열리는 소리. 강이 들어온다.
경, 돌아서서 대문밖으로 나간다.
강 : 어디가냐, 다 늦게?
강, 의아한 표정으로 인옥을 본다. 인옥, 멍하니 허공만 바라본다.
43. # 집 앞 주택가 (밤)
울면서 걸어가는 경. 핸드폰이 울린다.
경 : (전화를 받는다.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울음을 애써 감춘 목소리로) 네. ...쫌 있다 전화한다구 하구서... 왜 이제 해요?
44. # 경의 정류장 앞 (밤)
헤죽대며 전화를 하는 복수.
복수 : ...나 돈 벌었는데... (손에 쥐어쥔 돈을 보며) 이거, ...보여주구 싶은데... 같이 볼래요?
45. # 주택가 (밤)
경 : (눈물진 얼굴. 목이 맨다.) ...네.
경, 전화를 끊고 담벼락에 기대앉아 눈물을 훔친다. 잠시 그렇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기대 서 있다.
46. # 경의 버스 정류장 (밤)
정류장 벤취에 앉아있는 복수. 15만원 돈을 한 장 한 장 만지작댄다.
경 : (E, 담담히) 좋아요?
복수 : (벌떡 일어선다. 경을 보고 미소 짓는다.)
경 : (복수의 옆에서 미소짓고 서 있다.)
복수 : 어? 내가 계속 그 쪽으루 오나 안 오나 봤는데?
경 : (벤취에 앉으며) 안 보든데요? 돈만 보든데요?
복수 : ...(따라 앉으며 미소.)...
경 :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수줍게) 힘들게 일해서 적게 돈 받으니까, ...돈 참 좋네.
경 : ...난 아니든데...
복수 : 그걸 알면 전 경씨가 쓰레기게요? ...만져 볼래요?
경 : ...(돈을 톡 건드린다.) 돈이네요. ...(미소) 이거 적은 돈 아니예요.
복수 : 그죠? (헤죽. 그러다가 경을 빤히 본다.) 왜 울었어요?
경 : ...네?
복수 : ...(유심히 경을 바라본다.) 아빠구나. 내가 한 판 해줄까요, 또?
경 : ...(고개 숙인다.) 이번엔... 엄마예요. (다시 입술이 씰룩이더니 눈가에 눈물이 내린다.)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경 : ...
복수 : ...(귀찮다는 듯) 거참. 부모님들이 골고루 속을 썩이네.
경 : (풋하고 웃음이 나온다.)
47. # 빌딩 동상앞 혹은 조명있는 분수대앞 (밤)
복수와 경이 동상 받침목(혹은 분수대 난간) 위에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먹는다.
복수 : (인상을 쓴다.) 맛있는 거 사주구 싶은데...
경 : (고개숙인채) 아껴써요, 돈. ...소매치기 안 당하게 조심하구...
복수 : ...(곁눈질한다.) 에이, 너무한다아.
경 : ...(옅은 미소. 그러나 어둡다. 그러다 다시 눈물이 난다.)
복수 : 어어? 왜 그러지? 어머니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경 : ...(눈물을 닦는다. 그리곤 담담하게) 우리 엄만, 밥두 안하구, 빨래두 안 하구, 돈두 안 벌어요.
...아빠 돈을 받아서, 옷사구, 신발사구, 문화센터 다니구. ...근데... 아빠 사랑 받으면서, 다른 남자 사랑 해요.
...근데, 우리 아빤 엄말, ...너무 너무 아껴요.. ...근데, 엄만, 아빨 한 번두 좋아한 적이 없대요.
어뜩케 한 번두 안 좋아하죠? 같이 살면서? 웃기죠? ...아빠 대신, 내가 억울해요. ...얄밉죠, 우리 엄마?
복수 : ...청소는요?
경 : 청소두 안해요. 우리 올케 언니가 해요. ...엄만, 아무것두 안해요.
복수 : ...그건 아니다. 아무것두 안할 수는 없다.
경 : ...
복수 : 경이씨 키워 주셨잖아요. 젖두 물렸을꺼구...
경 : ...
복수 : 경이씨 좋아해 주잖아요.
경 : ...
복수 : 우리 엄마랑 완전 반대네? 우리 엄만 그 두 개 빼구 다 하는데...
...세상에 아무것두 안하는 사람은 없어요. 특기가 다른 거지.
경 : ...
복수 : 그리구... 그렇게 하나씩만 잘 하면 되지, 뭐. ...어뜩케 다 잘해요? 힘들게... (경의 눈치를 본다.) 아닌가?
경 : ...(물끄러미 복수를 본다.)
복수 : (경을 보며) 아빠 좋아하는구나, 경이씨?
경 : 아니요.
복수 : 근데, 왜 그래요? ...아빠 쌤통이네, 뭐.
경 : ...(허걱이다. 어이가 없다. 입을 벌리고 복수를 보다가 허겁지겁 가방에서 담배를 꺼낸다.)
복수 : (경의 담배갑을 슬며시 빼앗는다.) ...저기요. 내가 다른 건 뭐 시건방지게 상관하진 않을 거 같은데요.
...내가 건강에 대해선 좀 알거든요? 이건 술 보다 더 나쁜거거든요?
...작곡두 하구 그러는데, 머리두 나빠지잖아요. 이거... 머리에 직빵이거든요?
경 : ...
복수 : 그래서 말인데요.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내준다.) 일당 받은 걸루 산건데... 아, 뭐, 좀 어줍짢은데... 그냥, 뭐.
경 : (선물을 푼다. 담배길이 정도의 곧고 반짝이는 상아색 파이프다. 복수를 본다.)
복수 : 담배피고 싶을 때마다, 그거 입에 물어요. ...뭐어. 해보구 안되면 말구요. 너무 또... 억지루 그러면, 정신병 걸리니까...
경 : ...(파이프를 입에 문다.)
복수 : ...폼난다. 나두 하나 사서 물구 다닐까?
경 : 복수씨.
복수 : ...네?
경 :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인다.) 이렇게 계속... 나 담배 못피게... 말려 줄래요?
복수 : ...
경 : ...
복수 : ...네. 그럴께요.
경 : (바라본다.) 내가 못 참겠어서 다시 담배펴두, ...될 때까지 옆에서 말려 줘요.
복수 : (화사한 미소) 네. 그럴께요.
경 : ...그럼 나두, 복수씨가 벌어 온 돈, ...같이 봐 줄께요.
복수 : ...네. (화사한 미소)
경 : ...
복수 : 그리구... 또 하나 해요.
경 : ...
복수 : 오늘 울어서 밥맛 없겠지만... 내일 아침두 꼭 챙겨 먹어요.
경 : ...네. 그럴께요.
고개를 숙이며 파이프를 무는 경. 경의 담배갑과 라이터를 휴지통에 버리는 복수.
애틋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앉아있는 둘.
경이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도 경을 바라본다. 미소. F.O.
48. # 경의 집 INS (아침)
49. # 경의 집 (아침)
아침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경. 낙관과 인옥이 번갈아가며 경을 바라본다.
강은 여전히 신문을 보며 아침을 먹고 미선은 강의 수저 위에 반찬을 올린다.
낙관 : 아침부터 널 보니까 불안하다.
경 : ...
낙관 : 나한테 무슨 할 말 있냐?
경 : (맹하게) 없는데요.
낙관 : ...
인옥 : 일찍... 나갈 일이 있나부죠.
낙관 : 일찍 일어나두, 아침상 끼는 애 아니잖아, 얘.
미선 : 돈 떨어졌나부다, 아가씨.
강/인옥 : (동시에 미선을 보며) 야./얘.
미선 : (찌그러진다.)
낙관 : 나두 의심하는 바야.
경 : ...난 그냥... 아침 먹는건데요, 아빠? ...돈은 있어요. 오빠회사 로고송 만들어 받은 돈두 있구, 다른 아르바이트...
강 : (경에게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든다. 미묘한 느낌 정도로 표현)
낙관 : (강을 본다.) 무슨 소리냐? 로고송? 그런 것두 하냐, 요즘?
강 : 경쟁이 심하니까, 좀 텨 봐야죠.
낙관 : 너, 일부러 경이 쟤 도와주려는 거 아니지?
인옥 : 좀 도와주면 어때요?
낙관 : 도움 주지마. 그래야 정신 차리구 집안에 둥지 틀어. 건달처럼 밖에서 오락가락 못하게 하려는 거야.
강 : 제가 필요해서 시켰어요. 몇 푼 안돼요.
경 : ...(일어선다.) 잘 먹었습니다.
낙관 : (비아냥) 인제 끼니는 집에서 떼우기루 했냐? 먹는 돈 줄이기루 했어, 너? 하, 약았네.
인옥 : (히스테릭컬하게 고함을 친다.) 그만 좀 해요.
갑작스런 인옥의 고성에 모두 놀라서 인옥을 바라본다.
인옥 : (벌떡 일어서서 낙관을 본다.) 소잡는 백정이예요? 애 못잡아 먹어서 환장했어요, 당신?
(눈가가 젖어온다.) ...밥이라두 제대루 먹여야 될 거 아니예요. ...봐두 봐두 정 떨어지게 굴어.
경 : 엄마.
인옥 : ...그렇게 이죽거리구 싶어요? 그럼 당신 자식 따루 하나 만들어서, 걔한테 실컷 해대요. 우리 경이한테 그러지 말구...
...듣는 내내, 사람 눈 돌아가게, 신경 뒤틀리게 만들구... ...무식하면 말수라두 줄이든가...
경 : (주먹을 쥐고 소리친다.) 엄마.
인옥 : ...(경을 본다.)
경 : ...(미간을 찌푸린다. 눈자위가 붉어진다.) ...아빠한테 그러지 마.
인옥 : ...
경 : (냉정하게) 아빠한테 안 그랬음 좋겠어. ...난, ...아빠 좋아. (주방을 나간다.)
인옥, 아직도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경의 뒷모습을 쫓고, 낙관은 혼란스런 눈빛으로 눈만 껌벅인다.
강과 미선, 둘을 번갈아 본다.
50. # 강의 방 (아침)
화난 강이 들어오고 쭈뼛대며 미선이 따라 들어온다.
강 : 너, 한 번만 또 아버지 앞에서 주책떨면, 교회구 친정이구 짤 없다.
미선 : (주눅든다.) 난, 그냥 아가씨한테 농담삼아아... 아버님 웃으시라구...
강 : 니 말에 아버지 웃은 적 있어? ...경이 놓구, 아버지랑 죽 맞쳐서 농할 생각을 해?
...오늘 아침상 개판된 거, ...너부터 시작이야. ...반성해. (나간다.)
미선 : ...(한숨을 쉬며 침대맡에 앉는다.) 아후, 별루 말두 많이 안했는데...
51. # 경의 집앞 (아침)
부랴부랴 집을 나서는 경.
이때, 경의 팔목을 잡아끄는 동진. 동진답지 않게 진지하다.
경 : (힘없이)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동진 : 연락이 너무 안되네?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훑어 내린다.) 전 경.
경 : ...네.
동진 : 우리 아직 제대루 연애 시작두 못 했다. 근데, 벌써 날 피하면 어뜩하냐?
경 : ...
동진 : 내가 너무 설쳤나?
경 : ...한기자님.
동진 : 응?
경 : 우리 안 맞아요.
동진 : ...그럼, 누구랑 맞는데?
경 : ...
동진 : 너, 그 엑스트라랑 맞어?
경 : ...
동진 : (한숨) 아, 짜증나. ...참, 별 놈하구 다 경쟁을 하게 되네. ...잘 들어라, 전 경. ...내가... 보채지 않구 기다리구 있을게.
...언제까지 기다릴진 모르지만, ...아직 시작도 못해 보구, 너랑 끝내구 싶어 하진 않을거다, 내가.
...근데, ...현실적으루... 너 좀 그렇다.
경 : ...
동진 : 다른 건, 다 그렇다 쳐. 가난, 뭐, 외모, 뭐....다아... 근데...내가 보기엔 걔, 대학두 안 나왔을 거 같다. ...대화가 돼?
경 : 대화 돼요.
동진 : 말 말구, 대화. ...지금말구, 좀 지나서. ...니가 음악얘기라두 하면, 같이 맞장구 쳐 줄 음악가 하날 아니, 걔가?
...영어 단어 하나, 쉽게 주고 받으면서 얘기할 수 있겠어? 데캉당스이니 멜랑꼬리니, 쉬운 불어표현, 맘대루 할 수 있겠어?
넌 그런 말 자유롭게 쓰잖아. 걘 못하잖아. ...결론적으루 넌 고급이구, 걘 저급이야. ...그렇게 애인할 수 있다구?
경 : ...나, 저급해요. 영어 잘 안 써요.
동진 : 너 현실감각 꽝인거, 그거 참 매력있다. ...근데, 그건 매력으로 끝나야 돼. 그게 니 인생을 헷갈리게 만들면 안돼.
...잔말마. 걔랑 쫌 놀다가, 막힌다 싶으면 곧장 달려와. ...니 그런 기분, 금방 쫑나, 내가 보기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돈 없는 건 참아두, 무식한 건 못 참는다. 갈게.
경 : 나, 잘 참아요, 무식한 거... 태어나면서부터 보구 익힌게, 무식한 사람이예요.
경, 동진을 남겨두고 제 갈길을 걸어 내려간다.
경을 바라보는 동진.
동진 : (소리친다.) 하여간, 기다린다. ...(외로운 눈빛으로 혼잣말) 짜증나지만.... 기다려 줄께.
52. # 미래의 집 (아침)
복수가 미래의 집 앞에 서 있다.
출근을 하는 듯 대문을 열고 나오는 미래와 현지.
미래, 복수를 본다.
현지 : 오랜만이다? 요즘 뜸하네? 바람났냐?
미래 : (현지에게) 얼른 학교나 가, 기집애야.
현지 : (콧방귀) 흥. (간다.)
미래 : ...(복수를 본다.) 또 약 올리라구 왔냐?
복수 : 그게 아니라... 할 말두 있구... 아, 참. 이거. (케이스를 내민다.) 나, 돈 받았거든.
미래 : ...기어이 돈까지 받았냐?
복수 : (인상을 쓰며) 그래서 얘긴데... 니가 자꾸 못하게 하면 나, 너 안 만나.
미래 : (순순히) 해에. ...하겠다는데, 그럼 뭐, 어뜩하냐? 하고 싶은 거 해야지. ...(미소) 대신 잘해에... 이름 날리게... 응?
복수 : (갑작스런 반응에 놀라며 이마를 짚는다. 혼잣말 궁시렁) 아, 이럼 안되는데? 작전이 빗나가는데?
미래 : 뭐?
복수 : (당황한다.) 아니, 왜 안 말려? 하면 죽인다 그랬잖아.
미래 : 그럼 죽이냐? 다 큰 걸? 으이유. (선물을 연다.) 어? 시계네.
복수 : ...(풀이 죽는다.) 시계 사준다 그랬잖아, 내가.
미래 : (손목을 내민다. 시계다.)
복수 : (미간을 찌푸린다.) 경이씨꺼 도루 뺏었어?
미래 : 내가 깡패냐? 준걸 뺏게? (미소) 주드라, 걔가. ...새루 사서... 애, 괜찮드라. ...좀 답답해서 그렇지.
복수 : ...
미래 : (복수의 시계를 보며) 이건 우리 현지 줘야겠다.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며) 난 이게 더 이쁘거든?
복수 : (물끄러미 미래를 본다.) 경이씨가... 너 좋아하나부다.
미래 : ...여자가 좋아하면 뭐 하냐? 니가 말을 잘 들어야지.
(팔짱을 끼며) 가자. (팔짱을 끼며 걸어가다가 멈칫) 어어? 이름까지 아네?
복수 : ...응?
미래 : 내가 얘기해 줬나, 걔 이름?
복수 : ...응.
미래 : ...언제 얘기해 줬지? (웃으며) 걔네 집 애들, 이름 웃겨. 걘 전 경이잖아, 걔 오빤 전 강이야. 정강이.
복수 : 정강이가 뭐야?
미래 : (복수의 종아리 뼈를 발루 툭 차며) 여기가 정강이잖아, 바보야.
복수 : (인상) 아이씨. 아퍼어... 그래. 난 맞아두 싸.
미래 : 뭐?
53. # 밴드 연습실 (아침)
터덜터덜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경. 문 앞에 생식박스가 있다.
경, 의아한 눈으로 박스를 본다. 박스를 열어본다. 그 안에 편지.
복수 : (E) 혹시 집에서 밥 먹기 힘들 땐, 연습실 와서라두 몸 챙겨요.
...우리 아직, 할 일도 많은데... 허약해서 지치면 안되잖아요. ...할 일두 많은데...
복수의 편지를 보는 경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옅은 미소가 감돈다.
54. # 액션스쿨 - 플로어 (낮)
텅빈 플로어. 매트리스에 누워있는 복수. 복수의 팔베게를 하고 그 옆에 꼬붕도 누워있다.
복수 : 아, 찔려서 미치겠네.
꼬붕 : (쌔근 쌔근 잠이 들었다.)
복수 : 어뜩하냐? 미래한테 그러면 안되는데... 왜 자꾸 죄가 느냐?
꼬붕 : ...
복수 : ...(그러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좋아만 하는건데, 뭐.
(다시 죄책감) 그래두, 그러면 안되는데... 미래한테 그러면 안되는데...
꼬붕 : ...
복수 : (벌떡 일어난다.)
꼬붕 : (매트리스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래도 잘 잔다.)
복수 : (꼬붕을 보며) 복두 많다. 어쩌면 그렇게 잘 자냐? ...(짜증) 스턴트맨 계속하면 나랑 끝이라구 지 입으로 그랬잖아.
...(다시 포기) 그게 말이 그런거지, 마음이 그런 애가 아니지. ...어쩌다 경이씨를 만나서...내 팔자가 이렇게 꼬이냐?
(이때 전화 화색이 돈다.) 어? 경이씨. 네. 다 촬영 나가서 여긴 나 혼자 있어요.
꼬붕 : (등돌려 눈을 감은채) 나두 있잖아.
복수 : (꼬붕의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오며) 네? 닭이요?
꼬붕 : (벌떡 일어난다.) 꼬꼬닭 먹으러 가? 나두 가.
복수 : (핸드폰을 가리며) 야, 야. 자.
꼬붕, 잔다.
55. # 보라매 공원 (밤)
공원을 들어서는 미래. 손엔 도시락이 들려져 있다.
미래 : 물 좋으네, 여기? 자주 놀러 와야겠다.
액션 스쿨 건물 앞에 선다. 창가로 가 서면 아직까지 플로어에서 자고 있는 꼬붕이 보인다.
미래 : 어이그, 한심한 새끼. 직업을 바꾼게 아니라, 잠자릴 바꿨네. 어이그. (들어가며) 야. 복수 나오라 그래.
56. # 닭집 앞 거리 (밤)
복수와 걷고 있는 경.
경 : (당황한다.) 뭐하러 그랬어요?
복수 : 아니, 뭐. ...그냥 생닭 많이 있으니까, 내친김에 닭도리탕 한 냄비만 해달라 그랬죠, 뭐. ...닭도리탕 좋아하는 거 같애서...
경 : ...난 접때, 닭 시켜놓구 그냥 가서... 미안해서 같이 가자, 그런건데? 한 마리 팔아드릴려구...
복수 : ...에이, 안 팔아줘두 돼요. ...내가, 우리 엄마한테 할 만큼 다 해줘서, 그 거 한 마리 팔아줘두, 양에두 안차요, 우리 엄마.
경 : 그래두, 치킨집에서, 닭도리탕 달라 그러기 미안한대?
복수 : 괜찮다니까요? 엄마가 선뜻 그런다 그랬다니까? 웬일루?
경 : ...(미소) 복수씨.
복수 : 네?
경 : ...낮에 우리 엄마 생각하다가, 복수씨 엄마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랑 다른 특기 가진, 복수씨 엄만 어떤 사람일까, ...그랬어요.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그리곤 입을 삐죽인다.) 아우씨. 실망할텐데...
57. # 꼬꼬닭 치킨 (밤)
한 테이블 앞에 버티고 서서 남자손님과 싸움을 하는 유순. 남자는 유순보다 다소 젊어뵌다.
성호가 유순의 뒷편에서 겁이 들었다.
유순 : 술 안판다 그랬지? 나가. 돈두 안 받어. 나가. 혼자 왔으면 조용히 닭이나 쳐먹구 갈 일이지, 어디서 헤롱대?
손님 : ...못 나가.
유순 : 술병으로 얻어 터지기 전에 가.
손님 : 헤. ...술집여자한테 술 한잔 하라구 하는 게 뭐가 어때서? ...화장은 야사시하게 떡칠을 해놓구,
남자가 후린다구 싫어하는게 말이되나? 보니까, 막 굴러먹구 살았겠구만...
유순 : 뭐? (성호를 보며) 성호야, 넌 들어가. 얼른.
성호 : (걱정스런 표정으로 별실 문 앞에 서서 차마 들어가지 못한다.)
손님 : 에이그, 할머니한테, 남자가 술 한잔 주면, 영광으로 생각해야 된다. (성호를 보며 헤죽) 야. 니네 할머니 왜 그러냐?
유순 : (닭이 올려진 접시를 남자의 얼굴에 거세게 뭉갠다.)
손님 : (놀라서 유순을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유순의 머리채를 잡는다.) 그래, 힘으로 하자.
유순 : (머리채가 잡힌채 남자의 팔을 꼬집어댄다.)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복수.
남자는 유순을 문 앞으로 밀쳐 버린다. 복수의 발밑으로 나뭇잎처럼 나가 떨어지는 유순.
복수, 눈에 불난다. 입을 굳게 다물고 남자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남자의 멱살을 잡고 되는대로 주먹질을 한다.
남자가 억하고 쓰러지려하면 쓰러질 새 없이 세워서 남자를 때린다. 쓰러지는 꼴을 못본다. 세워서 치고, 세워서 친다.
성호는 별실 앞에서 소리없이 눈물 흘리고, 유순은 넋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남자가 쓰러진다. 복수,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바닥에 앉아있는 유순 옆에 쪼그려 앉아 유순의 엉클어진 머리를 만져주는 경.
유순이 경을 바라본다.
유순 : (넋이 나간채로) 누구니?
58. # 꼬꼬닭치킨 주택가 (밤)
약도를 들고 도시락을 들고 헤매는 미래.
미래 : 아이씨, 헷갈려. 어느 전봇대로 돌아가라는 거야? 꼬붕이 새끼, 약도를 이따위로 그려주냐?
...아우, 도시락 되게 무겁네.
59. # 약국 (밤)
복수가 성호와 나란히 서서 약을 사고 있다.
복수 : (아직도 인상이 편치 않다.) 청심환하구 파스 주세요.
성호 :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복수 : (성호를 바라본다.)
성호 : (증말 소리가 없다. 울기만 한다.)
복수 : ...형처럼 주먹질 하지마, 넌.
성호 : (갑자기 서럽게 운다.) 나쁜 놈이... 엄마한테 술집 여자라구...
나쁜 놈이... 엄마한테 할머니라구... 나쁜 놈이... (목놓아 운다.)
복수 : 욕두 하지마. ...그냥 울어. 그럴땐 아무것두 하지말구... 그냥 울어. 오늘처럼, 형이 알아서 달려올게.
...니가 울면 언제든 형아가 달려올께... (성호의 머리를 쓸어내린다.)
60. # 꼬꼬닭치킨 (밤)
컵에 얼음을 타는 경. 테이블에 망연히 앉아있는 유순 앞에 얼음물을 내민다. 그리곤 물수건을 내민다.
유순 : ...(벌컥 벌컥 물을 마시고 빈 컵을 내려 놓는다.)
경 : ...한 잔... 더 드릴까요?
유순 : ...(경을 본다.)
경 : ...
유순 : (넋이 나간채) 닭도리탕 먹고 싶다 그랬다며?
경 : ...
유순 : (얼굴을 돌린다.) 담에 와. ...오늘은... 간 못 맞쳐.
경 : 네.
유순 : (다시 경을 본다.) 에미 웃기게 산다구, ...우리 복수 우습게 보지 마.
경 : ...(유순을 본다.)
유순 : (눈물이 고인다.) 우리 복수, 울렸다간... ...너 절단 나, 나한테. ...나 땜에 ...울 만큼 운 애야.
...나는 걔 울렸지만, 남이 울리는 건 못 봐.
경 : ...네.
유순 : (허공을 바라본다.) 복수... ...착한 애야.
경 : ...알아요, 어머니.
허공을 바라보는 유순. 고개숙인 경.
61. # 치킨집 앞 (밤)
치킨집 앞 창가에 기대 선 경.
성호와 복수가 나온다.
복수 : 들어가, 성호야. 파스 붙일 때, 엄마 목 뒤 쪽으루, 넓게 붙여드려, 응?
성호 : 네. (경을 보며) 안녕히 가세요.
경 : (꾸벅 인사를 하며) 잘 있어요.
성호가 들어간다.
복수, 경 옆에 힘없이 나란히 기대 선다. 아직도 어둡다.
경, 가방에서 파이프를 꺼내 복수에게 건낸다.
복수, 경을 본다. 그리곤 파이프를 받아 입에 가져간다. 한동안 말이 없이, 파이프만 물고 있다.
복수 : ...(힘없이) 닭도리탕 먹으러 가요, 우리. 다른 데루.
경 : ...담에 와서... 어머니가 해주신 거 먹을래요.
복수 : ...(경을 본다.)
경 : 어머니가... 담에 오라 그랬어요. 진짜예요.
복수 : ...(어둡게) 또 오고 싶어요? 또 이럴지두 모르는데?
경 : 네. ...오구 싶어요.
물끄러미 경을 바라보던 복수가 경의 손을 잡는다.
복수 : ...고마워요. ...오늘... 우리 엄마 친구 돼 줘서...
경, 복수를 바라본다. 둘, 서로 미소짓는다.
이때, 복수의 눈에 멀찍이 두리번 대며 걸어오는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복수, 놀라서 경의 손을 잡고 도망간다.
62. # 옆 건물 전봇대 뒤 (밤)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몇 발짝 옆의 건물 전봇대 뒤로 경의 손을 잡은 채 숨죽인 복수.
복수와 경은 가슴을 곧추 세운채, 숨도 못 쉬고 나란히 몸을 숨겼다.
떨리는 마음에 복수의 손을 더욱 굳세게 잡는 경.
한참을 숨도 쉬지 못하고 어깨를 움추린 채 서 있던 복수. 전봇대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바로 옆에 미래가 서 있다. 진지한 눈빛으로...
놀라는 복수.
미래, 천천이 전봇대 앞으로 걸어와 손을 잡고 선 경과 복수를 바라본다.
한참동안 어이없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선 미래.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을 본다.
미래 : 니네, 뭐 하냐?
복수 : ...
경 : ...
미래 : (실없는 미소) 하, 참. 어이가 없다.
미래, 얼굴을 돌린채 그렇게 실없는 미소만 남기더니, 꿀떡 꿀떡 울음이 새어 나온다.
경과 복수, 얼어붙은 듯 미래만 바라본다.
미래, 울음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새어 나오더니 마침내 울음보가 터져 버린다.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서럽게 서럽게 엉엉 울어댄다. 당찬 미래는, 어쩌면 지금 너무나 겁이 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주 선 세 사람은 한 발짝도 꼼짝하지 못한다.
미래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도시락통.
미래의 서러운 울음소리만 거리에 남는다.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