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턱을 들어서는 입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마지막 정염을 불사르는 문경새재의 단풍은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그 색채가 처연하게 고왔다. 청정지역이라 찌든 공해를 접하지 않아 이러한 때깔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보름 전 안동 교우의 초댈 받을 때만해도 여행코스에 문경새재가 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여행 둘째 날 숙소를 나서자마자 도산서원과 예천의 회룡포를 둘러본 후 문경으로 향하게 되었다. 어느 때부터 문경이라고 하면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늘날과 같은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문경은 그동안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다.
문경은 고향 김천에서 가까운 고장이다. 어릴 때의 문경에 대한 기억은 탄광촌이 고작이었고 훗날 직장의 생활연수원이 수안보에 있어서 문경을 오갈 때만 해도 이곳 길가엔 광산에서 캐낸 탄이 더미로 쌓여 풀풀 날리고 하천엔 시커먼 물이 흘렀다. 그랬던 문경이 이제 관광지로서 둘러본 회수가 다른 곳보다 많게 된 것은 그만큼의 가치를 지닌 때문일 것이다. 문학단체나 성당 행사 그리고 직장 은퇴자 모임에서는 봄여름과 가을에 문경을 주로 찾았다. 문경이 이렇게 상전벽해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37년 전 늦가을에 문경새재를 방문한 대통령은 이곳 옛길을 포장하려던 도지사에게 말했다. “새재 안에 버스나 승용차를 출입시키면 옛길을 보존하기 어려울 터이니 관문 밖을 포장하여 그 주변에 정류장을 만들어 주차시키도록 하고 이 일대는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강구하시오” 이에 따라 옛길 포장계획은 중지되었고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모든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그 결과 도립공원과 사적 명승 등 문화유적지로 지정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문경새재의 청정자연과 문화유산도 더 이상의 훼손을 면할 수 있었고 옛길은 잘 보존되어 역사 속에 길이 숨 쉬게 되었던 것이다.
새재 초입에 건립된 선비동상의 선비는 당대 전통사회의 구심점을 이루었던 지성과 인격의 상징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동상을 지나면 바로 타임캡슐광장이 나타난다. 통 크게 경상북도 개도 5백주년에 개봉키로 하고 백년 되던 해인 1996년에 묻었으니 그 4백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곳 기록에 의하면 묻을 당시의 고향 김천 인구가 15만 명인데 부디 혁신도시가 성공하여 승승장구하길 기대해 본다. 오늘과 같이 하늘이 엷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으면 단풍색깔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도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은 인파로 북적였다.
이들은 너도나도 추억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젊은 커플은 일부러 나를 찾아와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하트나 브이 자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더니 재빠르게 응하는 걸프렌드에 반해서 보이프렌드는 양팔을 올려 팔짱을 낀다. "요즘 하트는 엑스 자로 바뀐 모양이지?"라고 했더니 그는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차량이 없는 흙길에 앙증맞은 미니버스가 새로 등장하여 이제 문경새재는 걷지 않고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날아가는 새들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는 눈부신 아름다움과 숱한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예로부터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가 바로 문경새재였으니 그 사연인들 오죽 많을까 싶다. 임진왜란 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은 3개의 관문 중 오늘 우리 일행은 2관문까지만 걷기로 했단다. 한시를 비롯한 문학작품들과 삶의 귀감이 될 만한 명언명구를 천에다 붓글씨로 박아서 길옆에 전시하고 있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대부분인 가로수 사이마다 8점씩 게시해 놓았지만 눈여겨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혼자서만 꼼꼼하게 살피며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업성과를 올리기 위해선지 천장만 덮은 미니버스는 뻔질나게 오가면서 청승맞은 ‘문경새재’ 창을 틀어대어 대도시의 가로를 방불케 했다. 숲길에서 가까운 산속 카페에서도 손님을 불러들이기 위해 새재 분위기와 동떨어진 팝송으로 산을 소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러한 소음공해는 인간들만 짜증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숲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식물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안겨준다고 한다. 문경새재를 흙길로 만들면서 맨발로 걸으면 몸과 마음이 치유될 수 있다고 홍보한 때문인지 초창기엔 이곳 흙길의 맨발걷기 열풍이 거셌다.
발바닥을 자극하여 전신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맨발이 좋을 것인데 오늘 만난 오륙 명 아낙들은 신발만 벗어들고 양말은 벗지 않고 걸으면서 희희낙락거렸다. 가끔씩 외국인 관광객들도 만나게 되는데 우리도 그들처럼 사색하며 산길을 호젓하게 걸을 수는 없는 것일까. 몇 년 전 찾았을 때 둘러보았던 옛길박물관 내부를 오늘은 시간에 쫓겨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만난 괴나리봇짐의 보부상 조형물과 기념사진을 한 컷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길 위에서 벌어졌던 각종 여행기와 풍속화 문화유산 등을 접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첫댓글 오~문경세제 단풍이 이렇게 멋질줄이야~
회장님!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그리고 사람이 단풍인지 단풍이 사람인지~
구분이 안되네요~~너무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