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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주민 고산족의 역사와 문화
목차
1. 원주민족의 개념
2. 대만 원주민족의 명칭의 변화
3. 원주민족에 대한 정책
4. 원주민족의 문화
1. 원주민족의 개념
타이완 원주민족은 주로 고산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총칭하는 말이다. 한대 문헌에 타이완과 중국 본토 복건성 산지족을 산이(山夷)로 기술한 바 있고,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통치할 떄 타이완 섬이 자국의 다키아코 지역과 흡사하다 하여 고산족을 고사(高砂)족으로 불렀다. 그 이후 1945년 중국이 타이완을 다시 찾으면서 이들 소수민족을 통칭하여 고산족 내지 고산 9족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1994년 이후 고산족이라는 명칭 대신 원주민으로 바꿔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원주민족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자면
① 태아족(泰雅族)
남두현 일대에서 북쪽으로 이주하여 현재는 대북현 오래향, 도원현 부흥향, 신죽현 참석향, 의란현 태평향· 남오향 등 대만의 가장 북부지역에 약 9만 정도가 살고 있다. 고산족 가운데 분포면적이 가장 광범위한 부족이다.
② 새하족(賽夏族)
신죽현과 묘율현의 촌락에 살고 있으며, 고산족 가운데 인구가 비교적 적은 부족이라 할 수 있다.
③ 포농족(布農族)
분포지역이 광범위하면서 자주 이동하는 부족으로 현재는 남투현 인애향·신의향, 고웅현 삼민향, 화련현 만영향, 대동현 연평향 등지에 약 4만 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④ 추족(鄒族)
거주지역에 따라 다시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지는데 북부는 아리산을 중심으로 지금의 남투현 신의향과 가의현 아리산향에 분포되어 있으며 남부는 배농계·남재선계의 상류를 중심으로 고응현 도원향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⑤ 노개족(魯凱族)
병동현 삼지·무태향, 고웅현 무림향 등 남부 산간지대에 약 20개의 촌락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부족의 인구는 1만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⑥ 배만족(湃灣族)
북으로는 대무산에서 남으로는 병동에 이르기까지 남부 산악지역에 160여 개의 촌락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분포지는 병동현 목단향, 대동현 금봉향·태마리향 등지이다. 이상 중앙산지에 분포된 6부족 외에 중앙산맥 동부의 협곡지대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고산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⑦ 아미족(阿美族)
북으로는 화련현의 신성향에서 남으로 대동현 태마리향에 이르기까지 대략 북위 24도 이남 22도 이북의 동부해안과 협곡에 약 14만 이상이 분포된 원주민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부족이다. 이 부족은 문화, 사회구조, 종교신앙 등에 의거 고산족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대부분이 평지에 생활하고 있으며 극히 일부만이 산지의 계곡에 거주하고 있다. 아미족은 지역적, 방언적 차이에 따라 다시 항춘·비남의 두 무리를 남부아미, 수고만·해안을 중부아미, 남세아미를 북부아미로 세분한다.
⑧ 비남족(卑南族)
동부의 남단인 대동현 비남향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1만 정도이다.
⑨ 아미족(雅美族)
대만 본도에서 약간 떨어진 난서라는 섬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 약 4000만 정도의 소수부족으로 필리핀 최북단의 바탐 군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양자간에 생활과 언어가 비슷한 면이 있다.
2. 대만 원주민족의 명칭의 변화
점차적으로 증가하였다고 보인다. 이러한 것이 기초가 되어 명대에 대만 토착민의 문화적 특징이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명대에는 동번이(東番夷)라 불렀으며 정성공이 대만으로 건너간 뒤에는 토번(土番), 토민(土民), 번이(番夷)라고 불렀다. 한편, 고산족의 명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명칭에 관한 유래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고산족의 명칭 유래와 관련하여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일본군의 조선침략시기인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간다. 1593년 일본의 풍신수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고산국초유문서를 대만으로 보냈다는 것을 통해 고산국이라는 명칭이 오늘날 대만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고산족을 고산국인 대만의 원주민으로 해석하였다.
한편, 청조에는 타이완 원주민족 모두를 번족(番族)이라 통칭하여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숙번(熟番)과 생번(生番)으로 그리고 양자 사이에 화번(化番)을 두어 구분하였다. 일본이 타이완을 통치한 1895년 이후에는 번(番)대신 족(族)으로 고칠 뿐, 원주민족에 대한 용어는 바뀌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주로 일본학자들이 타이완의 원주민족을 연구했는데 지역분포와 민족의 특성에 따라 원주민족의 분류체계를 작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민족의 언어문화, 전통 풍속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등 언어, 문화차이, 사회제도 등을 중요시 여기면서 원주민족을 분류하고 있었다. 이러한 원주민족의 분류체계를 기초로 삼아 총 9개의 고산족으로 분류하여 인정하였고 광복이후 학계 및 정부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대만 원주민족의 명칭이 확연히 드러난 명대부터 원주민족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타이완을 접수한 국민당 정부 시절에 한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동화정책 및 한인들과의 통혼으로 인하여 평야지대의 원주민들은 거의 한인들에 동화되고 말았다. 학자들로부터 원주민적 정체성이 사라진 것으로 분류된 평포족을 분리시켜 고유의 원주민족을 고산족(高山族), 산포(山胞), 산지동포(山地同胞등으로 불렀다. 또 1954년 국민당 정부는 ‘부민4자호 11197호령에서 산지동포의 범위를 제정하였다. 원적이 산지행정구역내에 있고, 본인 또는 부계 직계 친속이어야 하며, 광복 전 일제시대 호적부에 고사족 혹은 고산족으로 기재된 자는 산지동포라 칭하였다. 이 산지동포를 아미족, 태아족, 포농족, 추족, 노개족, 배만족, 비남족, 달오족, 새하족 등 총 9개 민족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다가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그동안 국민당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원주민들은 민족 정체성 회복의 일환으로 ‘타이완 원주민족 운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고산족이라는 명칭 대신 원주민족으로 쓰였다. 이 명칭은 타이완에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족을 제외한 모든 소수민족을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타이완 내 원주민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2001년 원주민신분법을 제정하여 시행하면서 원주민의 신분을 새롭게 적용하고 있다. 이 법을 시행한 후 4개의 원주민족인 소족, 갈마란족, 태로각족, 살기래아족이 추가되었다. 2005년에는 원주민족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타이완 원주민에게 자치권이 부여되었다.
3. 원주민족에 대한 정책
타이완에 살고 있는 원주민족은 오래전부터 섬의 각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7~18세기 이후 중국 본토에서 한족들이 이주하기 시작되면서 원주민족의 정책이 구체적으로 변천하게 된다. 청조 시대 청 정부는 중국 본토에서처럼 토사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지방관을 타이완 원주민족의 부락에 파견하여 통치하는 번사제도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번사 내 행정, 한족과의 분쟁 조정 등을 처리하기 위해 지방관이 원주민을 선발하여 지방관을 보좌하는 토목과 토목을 보좌하는 통사를 지방관이 직접 임명하여 관할 하에 두었다. 18세기 중엽 이후 원주민족의 토지에 대한 한족의 개간 및 한족 통사들이 직권을 이용한 원주민들의 토지 획득으로 점차 토지가 상실될 뿐만 아니라 고유한 전통문화가 상실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점차 타이완에는 원주민족보다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와서는 타이완 총독부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산지를 보류지로 만들고 각 부락에 일본인 경찰관을 주재시키는 형태로 원주민족을 통지하였다. 그리고 농업지도, 보건의료의 보급, 일본어 교육 등을 강요하고 강제로 부락을 이주시켰으며 일부 원주민족의 관습이나 제사문화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타이완 총독부의 통치 정책에 반대하여 1930년대 무장 항일 운동이 발생하는데, 무사 사건이 이에 해당된다. 이 사건으로 일본정부는 타이완 총독을 포함하여 총무장관, 경무국장, 대중주지사를 모두 면직시켰고 원주민족의 정책을 다시 검토해 원주민족의 언어와 고유한 전통 문화를 현존케 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 들어선 국민당 정부의 계엄령과 함께 산지평지화(山地平地化) 정책으로 인해 원주민족은 한족의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다가 1987년 계엄령의 해제 이후 원주민들의 요구를 수립하기 위해 1996년 타이완 정부는 행정원원주민위원회를 설립하고 이어 1997년 제 4차 개정 헌법 제 10조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1998년 원주민족교육법을 제정하였다.
2000년 3월 18일,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천수이볜 후보가 당선되면서 1999년 원주민족과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결과로 2001년 원주민신분법이 제정되었고, 이어 2005년 원주민족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법률을 기초로 삼아 원주민족의 정책이 변화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원주민족을 위한 교육정책이다. 2004년 8월에 전면 개정된 원주민족교육법에는 원주민족교육의 활성화를 위하여 원주민족 지역에 공립 유치원을 설립해 원주민족의 자녀에게 우선 입학권을 주고, 기타 지역에서 원주민족의 자녀가 유치원에 입학할 경우 학비보조금 지원해줄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원주민족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지원 조치 외에 교육과정, 교사, 사회교육 등에 있어서의 지원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방침규정을 통해 다문화교육의 이념을 제공하였다. 또한 국민대회대표 6인 및 입법원 입법위원 8인을 원주민족을 위한 특별의석으로 규정할 정도로 정치적인 면으로도 권리를 부여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4. 원주민족의 문화
1) 언어
타이완 원주민 족군에서 사용되는 원주민 언어가 있다. 오스트로네시안 어족에 속하는 이들 원주민 언어 내부에는 아타얄, 파이완, 쩌우 세 개의 어군이 존재한다. 원주민 족군 간에는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아미스어 , 야미어, 푸유마어, 쩌우어, 파이완어, 아타얄어, 부눈어, 루카이어, 사오어, 사이시앗어, 세딕어, 트루쿠어, 카바란어 등 20여 개의 언어가 있으며 각 종족 내의 언어도 지역 별로 다른 방언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아메이족이 사용하는 아미스어 내에도 여섯 개의 방언이 존재한다.
2) 문화
아미족은 여러 가지의 복잡한 춤과 노래를 개발했다. 춤과 노래는 의식이라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훈련과 결속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의 춤 단계는 주로 토지, 여성들, 농업, 어업, 사냥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춤 뿐 만 아니라 예술적으로 슬래브 목각 양식이 뛰어나다. 또 의식과 실제적인 기능이 결합된 특이한 형태의 도자기, 우아하며 반짝거리는 전통적인 옷,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크로스 스티치 자수가 있다 일반적인 특징은 아미족의 전통적인 예술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공유된다는 것이다. 부남족도 원주민 예술가의 나무 조각이나 돌 조각, 도자기 및 그림 전시 등 많은 것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원주민 노래와 춤 공연, 커피 숍, 원주민 레스토랑, 전통 공예 공방 등 다양한 것을 만들어냈다. 그 외의 다른 고산족들도 아미족과 비슷하게 도자기를 만들어내고 독자적인 춤과 노래를 통해 문화를 전수하고자 하였다.
3) 사회 조직
각 부족마다 상이한 관계로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비슷한 형태의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아미족(阿美族)과 비남족은 모계씨족사회로 재산이나 가게의 계승이 모녀상속이라 할 수 있다. 아미족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친족단체는 한 집에 사는 가족으로 공동 경작하고 한솥의 밥을 먹으며 집안의 재산을 공유한다. 매 가정마다 통상 가장 연장의 여성이 가장의 역할을 맡는데 매우 강력하다. 모계사회인 관계로 아미족의 혼인은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와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통상 이들의 지위는 가족 가운데 비교적 낮은 측면에 속한다.
한편, 태아족은 쌍계친족조직사회로 친족조직은 비교적 느슨한 편이나 그 대신 공동으로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제단, 공렵단, 공생단과 같은 독특한 의식단체가 존재하였다. 새하족과 포농족, 추족의 세 부족은 부계씨족사회로 부락 내에는 완전한 씨족 조직계통이 존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만족과 노개족은 구체적인 형성과정은 알 수 없으나 계급사회(두목, 귀족, 용사, 평민으로 구성)로서 고산족 9개 부족 가운데 비교적 특수한 사회형태를 이루고 있다. 모든 토지는 두목과 귀족의 소유이며 토지의 경작, 어로, 수렵은 모두 소작인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두목 지위의 승계에 있어서 배만족은 남녀에 관계없이 첫째 자식에 의한 상속을 원칙으로 하지만 노개족은 남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아미족(雅美族) 사회는 씨족조직 및 계급조직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조직이 경제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어단 조직에 불과하다.
4) 종교 신앙
고산족의 종교적인 신앙으로는 신령관념과 생명의례, 세시제의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신령관념은 대체적으로 정령숭배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영혼에 대한 개념은 각 부족마다 달랐는데, 태아족·새하족·아미족(雅美族)에게는 영혼의 관념만 있으며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추족과 포농족은 온갖 사물과 현상마다 각기 그것을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믿어 창조신과 영혼의 관념을 혼합하였다. 그렇지만 아직 신령을 인격화시키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배만족·비남족·아미족(阿美族)은 모두 다신적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미 신령을 계통화, 인격화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다음으로 생명의례로 포농제의 타이제나 비남족의 후제와 같은 성년식처럼 중시의 정도나 절차의 간결하고 번잡한 차이는 있겠지만 생명의 탄생이나 성장, 결혼, 장례 등 과정을 중요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세시제의로 제의의 목적은 신령에게 수렵, 어로, 농경의 풍성한 수확을 하기 위한 활동이다. 고산족의 세시제의 가운데 아미족의 비어제, 새하족의 왜령제, 아미족의 풍년제, 엽수제, 파종제, 수확제 그리고 배만족의 오년제를 들 수 있다.
※ 참고문헌
- 단행본 -
김영신,『대만의 역사』, 지영사, 2001
공봉진,『대만 원주민족의 正名運動』,『중국학』Vol.28 , 대한중국학회, 2007.
- 논문 -
김정호,「타이완의 다문화교육과 사회과교육 : 초등사회과 교과서 분석을 중심으 로」『社會科敎育』Vol.49-no.2,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2010.
민정기,「청말 점석재화보(點石齋畵報)가 보여주는 동아시아 세력 관계 재편 속 대 만 원주민 형상」,『아시아문화』제 26호, 2010.
손영기,「글로컬 다문화시대의 타이완 원주민족 현황과 정책에 대한 고찰」,『민족 연구』Vol.49, 한국 민족 연구원, 2012.
이인택,「타이완 원주민 신화의 유형별 분석 - 태아족, 포농족, 아미족 신화를 중심 으로」,『동북아문화연구』제 28집, 2011.鄭池秀 崔圭鉢, 「타이완의 다언어현상과 언어정책」『中國學論叢』Vol.36, 고려대
학교 중국학연구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