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환상통
김혜순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던 순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는 숨을 곳이 없는데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쓸쓸한 눈빛처럼 공중을 헤매는 새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들어오면 때리겠다고 제발 떠벌리지 마세요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밖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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