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마트에서 울다 [3]
손과 얼굴은 QVC 홈쇼핑 채널에서 산 노화 방지 크림 때문에 살짝 끈적일 테고, 내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사지 말라 했던 하이톱 운동화를 신었을 것이다. "미셀, 요즘 한국에서는 연예인들이 다 이걸 신고 다닌단다." 엄마는 내 코트에 생긴 보풀을 뜯어내면서 잔소리를 해대겠지만-- 어깨가 굽었다는 둥, 신발 좀 새로 사라는 둥,자기가 사준 아르간 오일 트리트먼트를 대채 왜 안 쓰느냐는 둥 -- 어쨌든 우리는 함께 있을 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부아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내가 생판 알지도 못하는 이 한국 노인에게 짜증이 난다. 이 여인은 이렇게 멀쩡정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단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마치 생면부지의 이 여인이 살아 남는 것이 내가 엄마를 잃은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 엄마 나이에도 자기 엄마를 곁에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골이 난다.
저 노인은 여기서 이렇게 매운 짬뽕을 후루룩거리며 먹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은거지?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인생은 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이따금씩, 출입문도 없는 방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단단하기만한 한 벽면에 쿵쿵 머리를 찧으면서, 앞으로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하리라는 절대 불변의 현실만 자꾸자꾸 떠올리는 것이다.
보통 도시 외각에 자리잡은 H마트는 주변에 가지각색의 아시아 상점과 식당이 생겨나, 아시아인들에게 일종의 부도심 역할을 한다. 상점이든 식당이든 하나같이 도심에 있는 것들보다 훌륭하다. 반찬 가짓수는 테이블 하나를 꽉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랄 정도여서, 멸치볶음이며 오이소박이며 온갖 절임류 반찬을 담은 열두 접시에 일행이 달려들어 테트리스를 해야 하는 그런 한국 식당 말이다.
이 식당들은, 비빔밥에,피망을 올려 내놓거나 숙주나물처럼 한 접시 더 달라 하면 대번에 싫은 기색을 보이는 알량한 회사 지정 아시아 퓨전 식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게 진짜 한국 식당이다. 표지판을 보면 지금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느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길을 제대로 들어서서 쭉 가다보면 점포 차양에 쓰인 글자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걸 읽은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터, 이때가 바로 초등학교 수준의 내 한글 실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다.달리는 차 안에서 얼마나 재빨리 그 모음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6년 넘게 금요일마다 한글학교에 다닌 실력을 보여줄 때는 이때뿐이다. 나는 교회, 안과, 은행 표지판 읽은다.그렇게 몇 블록을더 가면 드디어 심장부에 와 있다 갑자기 딴나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