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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작경탄(牛嚼鯨呑)
소는 되새김질하고, 고래는 한꺼번에 삼킨다는 뜻으로, 정독할 책은 정독하고, 다독할 책은 다독하라는 독서법 두 가지를 말한다.
牛 : 소 우(牛/0)
嚼 : 씹을 작(口/17)
鯨 : 고래 경(魚/8)
呑 : 삼킬 탄(口/4)
정독(精讀)과 다독(多讀) 중 어느 것이 독서의 바른 태도일까? 정독할 책은 정독하고, 다독할 책은 다독하면 된다.
정독해야 할 책을 대충 읽어 넘어가면 읽으나 마나다. 그저 쉽게 읽어도 괜찮을 소설책을 심각하게 밑줄 그으며 읽는 것도 곤란하다.
꼼꼼히 읽어야 할 책은 새겨서 되풀이해 읽고, 견문을 넓히기에 좋은 책은 스치듯 읽어 치워도 문제될 게 없다.
한편 다독도 다독 나름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는 다독은 이 책 저 책 많이 읽는 다독이 아니라, 한 번 읽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다독이었다. 논어, 맹자 같은 기본 경전은 몇 백번 몇 천번씩 숫자를 세어가며 읽었다.
김득신 같은 사람은 '백이열전'을 1억 1만 2000번이나 읽어, 당호를 아예 억만재(億萬齋)라고 지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다독은 정독의 다른 말이 된다.
소는 여물을 대충 씹어 삼킨 뒤, 여러 차례 되새김질을 해서 완전히 소화시킨다. 우작(牛嚼), 즉 소가 되새김질 하듯 읽는 독서법은 한번 읽어 전체 얼개를 파악한 후, 다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는 정독이다.
처음엔 잘 몰라도 반복해 읽는 과정에서 의미가 선명해진다. 인내심이 요구되나 보람은 크다.
고래는 바닷속에서 그 큰 입을 쩍 벌려서 물고기와 새우를 바닷물과 함께 삼켜버린다. 입을 닫으면 바닷물은 이빨 사이로 빠져나가고 물고기와 새우는 체에 걸러져 뱃속으로 꿀꺽 들어간다.
소화를 시키고 말고 할 게 없다. 씹지도 않은 채 그대로 뱃속으로 직행한다. 그것도 부지런히 해야 그 큰 위장을 간신히 채운다.
경탄(鯨呑), 즉 고래의 삼키는 독서법은 강렬한 탐구욕에 불타는 젊은이의 독서법이다.
그들은 고래가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어치우듯 폭넓은 지식을 갈구한다. 자칫 욕심만 사나운 수박 겉핥기가 되는 것이 문제다.
씹지 않고 삼키기만 계속 하면 결국 소화불량에 걸린다. 되새김질만 하고 있으면 편협해지기 쉽다. 소의 되새김질과 고래의 한입에 삼키기는 서로 보완의 관계다.
책 읽기만 그렇겠는가? 주식 투자도 다를 게 없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마냥 궁리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 없이 덮어놓고 저지르기만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정독과 다독, 궁리와 결단의 줄타기가 바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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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교육의 근본
一日不讀書, 口中生荊刺.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이것은 지난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旅順監獄)에서 순국한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다.
피 끓는 청춘을 조국 독립을 위해 바치신 안중근 의사는 순국하시기 전까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많은 글을 써 줬는데 자기 나라의 일인자를 사살한 테러리스트 정도로만 알았던 일본인들은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과 높은 학문을 흠모하며 스승으로 모셨고 오늘날도 일본에서는 안중근 선생 숭모회까지 있다고 한다.
이처럼 민족독립투쟁의 표상이 돼 있는 안중근 의사가 우리 동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묵도 ‘독서하는 국민이 되라’는 것이었으니 책을 읽지 않고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독서 없이는 조국의 독립도, 미래도 있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배움을 멀리한다는 것이요, 반대로 독서를 즐긴다는 것은 항상 배움에 힘쓴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발전은 배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비의 나라로 불려 왔다. 선비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고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선비정신은 사라지고 탐욕과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나라가 돼 버렸다. 양심은 마비되고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져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차마 입에도 올리기 부끄러운 말이 돼 버렸다.
우리 한국인의 독서량은 연간 2권에도 못 미치며 지성의 거리인 대학가마저 술집과 음식점만 문전성시를 이룰 뿐 서점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렵게 돼 버렸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고 책을 읽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현대는 고독한 군중들이 서로 대화를 잃고 메마르게 살아간다. 저마다 소외감을 느끼며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인터넷에는 위장된 언어가 넘치고 거짓말이 범람한다.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영혼을 정결하고 풍성하게 하는 맑은 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한없이 겸손하게 내려놓고 옛 성현이나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독서를 생활화해야 한다. 이러한 독서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격물치지(格物致知) 독서법이다. 이 독서법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말한 독서법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란 중국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편에 나오는 말로써 실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해 지식을 완전케 하는 것이다.
이 독서법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학습형 독서법이라 할 수 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세밀하게 읽고 읽은 내용들을 잘 기록한다. 읽기만 해서는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듯이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그 근원이 어디 있는지 파악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독법(情讀法)을 말한다.
또 하나는 우작경탄(牛嚼鯨呑) 독서법이다. 소는 풀이나 여물이 눈앞에 있으면 빨리 많이 먹어 배를 채운 뒤 여유가 있을 때 보관한 음식을 게워내 여러 번 되새김질을 통해서 완전히 소화시킨다.
우작(牛嚼)은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읽는 독서법으로 한 번 읽어 전체의 얼개를 파악한 후 다시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는 정독을 말한다.
경탄(鯨呑)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 물고기를 비롯한 온갖 것들을 통째로 삼킨다는 뜻이다. 물은 이빨 사이로 빠져나가고, 물고기들은 고래 뱃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고래의 큰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경탄도 부지런히 반복해야 한다. 경탄 독서법은 다독(多讀)을 말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길주(洪吉周)는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고 했다. 똑똑한 머리보다 근면한 독서가 낫고, 깨우치며 읽는 것이 최고로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한 것이다.
독서는 새로운 지식을 알게 하고 옛 성현들의 고고한 정신을 배우며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교만하기 쉽고 지식을 얻기 힘들며 고고한 인격을 기를 수 없다.
그런데도 자녀에게는 책 읽기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책을 읽지 않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자녀에게 억지로 책읽기를 강요하지 않아도 부모가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자녀도 스스로 닮아가게 돼 있는 것이다.
누가 무슨 책을 애독하는지 알면 그 사람의 성품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실용적 가치를 담은 격물치지 독서법을 비롯해 많은 책을 읽고 되새김질함으로써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가져오는 우작경탄 독서법은 우리 국민들의 품격을 드높임은 물론 나라의 미래를 더 없이 밝게 할 것이다.
독서는 교육의 근본이요, 개인과 국가의 정신을 튼튼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초석이며 이러한 정신적 바탕 위에 내일을 향한 희망찬 비전이 있는 것이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
▶️ 嚼(씹을 작)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爵(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嚼(작)은 ①씹다 ②맛보다 ③술을 강권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씹을 저(咀), 씹을 담(啖)이다. 용례로는 부럼을 깨묾을 작절(嚼癤), 음식물을 씹음을 저작(咀嚼), 음식물을 충분히 잘 씹음을 난작(爛嚼), 아래 위턱이 단단하여 식물을 씹어 먹기에 알맞은 메뚜기나 잠자리 등의 입 따위를 저작구(咀嚼口), 안면근의 하나로 음식을 씹는 작용을 맡은 근육을 저작근(詛嚼筋), 푸줏간 문 앞을 지나가면서 크게 씹는 흉내를 낸다는 뜻으로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것처럼 상상하며 스스로 위로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을 도문대작(屠門大嚼) 등에 쓰인다.
▶️ 鯨(고래 경)은 형성문자로 䲔(경)과 동자(同字), 鲸(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물고기 어(魚; 물고기)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크다의 뜻을 가진 京(경)으로 이루어졌다. 큰 물고기는 고래의 뜻이다. 그래서 鯨(경)은 ①고래(고래목의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②고래의 수컷 ③들다 ④쳐들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고래의 뼈를 경골(鯨骨), 고래의 머리나 지육의 기름을 냉각 압착하여 그 기름기를 제거한 결정성 물질을 경랍(鯨蠟), 고래잡이를 경렵(鯨獵), 포경선을 경선(鯨船), 고래 작살을 경섬(鯨銛), 고래 수염을 경수(鯨鬚), 고래의 수컷과 암컷을 경예(鯨鯢), 고래를 경어(鯨魚), 고래의 기름을 경유(鯨油), 고래의 고기를 경육(鯨肉), 고래가 물을 들이키듯이 술을 몹시 많이 마심을 경음(鯨飮), 고래자리를 경좌(鯨座), 고래회를 경회(鯨膾), 큰 파도를 경랑(鯨浪), 이마에 새기는 문신 또는 그런 형벌을 경수(鯨首), 고래 같은 파도라는 뜻으로 큰 물결이나 파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경도(鯨濤), 고래가 작은 물고기를 통째로 삼킨다는 뜻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병합하여 자기 마음대로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경탄(鯨呑), 고래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경음마식(鯨飮馬食), 고래 싸움에 새우가 죽는다는 경전하사(鯨戰蝦死) 등에 쓰인다.
▶️ 呑(삼킬 탄)은 형성문자로 吞(탄)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千(천, 탄)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呑(탄)은 성(姓)의 하나로 ①삼키다 ②싸다 ③감추다 ④경시(輕視)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토할 토(吐)이다. 용례로는 입을 다물고 잠자코 있음을 탄묵(呑默), 하늘을 삼킨다는 뜻으로 파도가 매우 심함을 이르는 말을 탄천(呑天), 알약이나 가루약 따위를 삼켜서 넘김을 탄하(呑下), 삼키는 일과 뱉는 일을 탄토(呑吐), 남의 재물이나 영토를 강제로 빼앗음(強呑), 아울러 삼킨다는 뜻으로 남의 재물이나 영토 등을 강제로 한데 아울러서 제 것으로 삼음을 병탄(竝呑), 고래가 작은 물고기를 통째로 삼킨다는 뜻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병합하여 자기 마음대로 함을 경탄(鯨呑), 소를 삼킬 만한 장대한 기상을 일컫는 말을 탄우지기(呑牛之氣), 배를 삼킬 만한 큰 고기라는 뜻으로 장대한 기상이나 인물을 일컫는 말을 탄주지어(呑舟之魚), 칼을 삼켜 창자를 도려낸다는 뜻으로 사악한 마음을 없애고 새로운 사람이 됨을 이르는 말을 탄도괄장(呑刀刮腸),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 눈물을 감춤을 일컫는 말을 탄성엄읍(呑聲掩泣), 개 약과 먹듯이 맛도 모르고 먹음을 이르는 말을 구탄약과(狗呑藥果), 똑똑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함을 이르는 말을 조탄골돌(棗呑鶻突), 맑은 것과 탁한 것을 함께 삼킨다는 뜻으로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이르는 말을 청탁병탄(淸濁倂呑), 남의 시가나 문장 등을 그대로 흉내내어 조금도 독창적인 점이 없다는 말을 활박생탄(活剝生呑)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