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서 읽거나 얻어 읽거나
전병식 목사 배화여자대학 교목실장
비록 잡독파이어서 눈에 띄는 대로 책을 집어 들고 읽는 편이지만, 인생의 전환기마다 강한 충격과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 있어 이나마 삶을 꾸려왔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 대개는 우연히 얻었거나, 빌려 읽은 책이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기껏해야, ‘어린이 신문’ 아니면 다달이 나오던 ‘어깨동무’나 ‘소년중앙’ 등으로나 독서열을 식히던 초등학생 시절에, 병원 집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얻어 읽은 ‘한국전래 동화전집’과 ‘세계 아동 문학 전집’은 저의 ‘이야기하기’의 기본을 갖추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봄에 이삿짐을 나르고 온 우리 집 삼륜차 짐칸에서 발견한 어린이용으로 개작된 단테의 ‘신곡’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한 어린아이의 ‘생각과 상상의 틀을 넓혀놓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학교 도서관에서 전집으로 된 소설 ‘대원군’을 빌려 읽고 어슴푸레 역사, 인생, 정치, 권력 -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등에 대한 생각을 마음에 새겨두게 됩니다.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고등학교 2학년, 친구 집에서 빌려온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읽고는 사랑, 애증, 가족사 등에 대한 사춘기적 감상이 깊어졌습니다. 소위 ‘감수성’을 자라게 했던 것이지요. 그때 외워두었던 히스클리프의 고백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마법의 끈으로 소녀는 나를 여지없이 묶고 마는구나, 소녀의 마법반지에 얽매여 나의 생명은 소녀의 것, 이 얼마나 커다란 변화이리요. 아, 사랑이여, 사랑이여!”
재수생 시절에 종로서적에서 ‘시문학’인가 하는 월간 비평지를 사서 나오다가 현관 앞에 떨어져 있는 책을 한권 줍게 됩니다. 당시로서는 금서(禁書)였던 조태일 시인의 국토(國土)를 줍게 된 것인데, 이리하여 당시 시문학 월간지의 주제였던 윤동주와 조태일 시인에게 빠지게 됩니다. 지금도 어쭙잖게 그적거리는 시작(詩作)은 그때의 영향이 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들은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청준, 최인훈,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입니다. 이청준 씨의 책은 거의 수집광이 될 정도로 구해서 읽었는데 언젠가 이사하는 도중에 이청준 씨의 책만 모아서 묶어 담은 박스 전체를 잃어버려서 지금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최인훈 선생의 ‘가면고’는 ‘최인훈의 가면고(假面考)의 그리스도교적 구원에 대한 고찰 - 사랑을 통한 구원’ 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써서 낼 정도로 저의 사고와 신학적 사유의 틀에 하나의 기초를 세워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 인생에 강한 충격과 영향을 준 소설은, 신학교 기숙사에서 오명동 선배 - 당시 선배들 중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고, 또 많이 가지고 있기로 유명했던 선배입니다. - 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였습니다. 오명동 선배(현덕중앙교회 담임 목사)는 친절하게도 자기가 읽은 모든 책들의 내용 중간 중간마다 의미심장하고 멋있는 말에 밑줄 - 그것도 자를 대어 반듯하게, 색깔별로 - 을 긋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책의 내용과 함께, 그렇게 책을 읽는 선배의 독서법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 어떤 벽이 있어 그 벽을 뛰어넘고자 하는 열망, 누군가를 유쾌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 이런 것들이 저에게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희랍인 조르바’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아니 오명동 선배를 통해 빌려 읽은 책, 바로 그 책에 의한 것입니다.
유학시절에 신영복 선생의 ‘엽서’를 만난 후 지금도 선생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서 읽게 됩니다. 그 분의 글은 늘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면서 동시에 실천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신영복, ‘처음처럼’에서)
이즈음에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은 한문 고전들입니다. 10여 년 전, 오세종 목사님(예수원 교회 담임)께 한문을 배우기 시작해서부터는 글을 읽고 보는데 있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귀는 들으라고 있고, 눈은 보기위해 뜨고 있으며, 입은 바르고 통(通)하는 말을 하기위해 열게 되는데, 귀와 눈 그리고 입 모두를 동원하여 책을 읽는 동양학의 공부법, 체득(體得)하고 체험(體驗)해서 체현(體現)하게 하는, “그것에 나아가(就), 이르고(至), 또 그에 머물러(舍)” 행(行)에 이르는 독서를 하려고 애쓰게 된 것입니다. 비록 쉽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한문 고전은 번역본들만 읽어서는 않됩니다. 원문인 한자(漢子)를 한 자 한 자 해독해가며 읽어야 뜻도 깊이 알게 되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동안은 독선생을 모셔놓고 ‘맹자’를 한번, 그저 훑었습니다. 재미가나서 요즘에는 ‘대학(大學)’을 독선생을 모시고 읽고 있고,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와 성대중 선생의 청성잡기, 그리고 매천야록 등을 원문과 번역본 여럿을 대조해 가며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감히 단언하자면, 성경다음으로, 우리 한국인의 세계, 인간 삶의 모든 이야기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동양고전과 우리의 한문고전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맹자’는 비록 일반적으로 ‘논어’의 다음 반열로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문․어법의 통일성이나 일관성, 문체의 유려함과 논리의 명쾌함, 그리고 풍자가 담겨있으면서도 직설적인 어투 들은 “성인의 도를 배우려는 자는 반드시 맹자부터 시작하라”는 한유(韓愈)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알게 해줍니다. 특히 위정자나 지도자의 길을 밝히면서, 늘 임금(王)보다 백성(民)을 귀하게 여기라는 그의 용기 있는 충고는 과연 맹자가 패도(覇道) 시대의 유학자인가하는 의심마저 갖게 합니다. {“여백성동락(與百姓同樂) 즉왕의(則王矣)”;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해야 진정한 왕이 될 것입니다.}
빌려 읽거나, 얻어 읽거나 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여유가 좀 생겨 책을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든 읽은 만한 것이다 싶으면 온․오프라인의 서점들에서 대강 살펴본 후에 언젠가는 읽을 작정으로 구입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책을 사서 볼 여력이 없던 시절의 한을 이제는 책을 사서 쌓아두는 이른바 소장벽(所藏癖)으로 풀게 된 모양입니다. 아뿔사! 그래서 집안과 연구실 구석구석에서 책에 치이게 되었습니다. 미처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옆으로 밀쳐두는 책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가끔 제 연구실에 와서 묻습니다. “여기 이 책들 다 읽으신 거예요?” 그때마다 저는 대답합니다. “읽어야 할 부분은 읽었지.” 이럴 때 마다 고향 선배이신 예일 교회의 박상철 목사님의 말씀이 무척 위안이 됩니다. “
책 한 권을 사서 그 책의 내용 중에서 단 한 줄의 글이라도 설교를 위해 사용되어지고, 몇 십 권짜리 전집을 사서 단 한 문장이라도 누구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읽혀지고 사용되어졌다면, 돈이 얼마인들 아까우랴!”
그런데 실상 옆에 항상 가까이 두고 있는 책은 늘 그 책들입니다. 빌려 읽거나 얻어 읽었던 책들. 빌렸기 때문에, 얻었기 때문에 밑줄도 치지 못하고 행간에 감상도 적지 못하고 돌려주어야 했던 책들, 그래서 어떻게든 나중에 내 책으로 만들어서 결국은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던 그 책들 말입니다. 빌려 읽었어도 늘 생각나는 책, 그리고 늘 자신의 가까이에 두고 있는 책들, 그 책들이 한 사람의 생각과 인생의 중심을 알려주게 됩니다. ‘왼손에는 사기, 오른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는 책이 번역되었습니다. 중국 사람인 저자는, “사람이 되려면” 사기를 읽어야 하고, “일을 잘 도모하려면”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 자신의 인생을 위해 가운데에는 성경을 놓고, 좌우에는 어떤 책을 들고 있어야 할지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