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1914∼1998)
1914년 멕시코에서 출생하여 전형적인 지식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931년 동료들과 난간을 창간, 이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 쓰기를 시작했다. 1937년 네루다의 추천으로 스페인에서 열렸던 ‘반파시스트 세계지식인대회’에 참석하면서 당대의 시인, 지식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좌·우의 이념 투쟁이 세계를 휩쓸던 1943년 네루다와 ‘순수-참여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청년 파스는 당시 문단을 지배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진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 조국의 문단을 등진 채 국외로 떠났다. 이때 파스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시의 본질적 물음에 깊이 천착하게 된다. 1945년 외교관이 되어 프랑스, 일본, 인도 등지에 근무하면서 근대성의 모순을 직접 체험하고 그 대안을 모색, 시와 평론으로 제시했다. 1968년 학생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사건에 항의, 대사직을 사임하고 미국과 영국의 여러 대학에서 교환 교수로 문학 강의를 하는 한편, 멕시코인의 전통을 풍부히 길어올리면서 깊은 명상을 낳는 시와 정치·문화·예술 비평 등을 발표했다. 이후 파스는 중남미뿐 아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사상가로 자리잡았으며, 199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98년 4월 19일, 멕시코 시 자택에서 별세.
1993년 첫 시집 야생의 달 이후 돌과 꽃 사이에서, 언어하의 자유, 태양의 돌, 불도마뱀, 커다란 바람‘ 백지, 등 여러 권의 시집, 그리고 고독의 미로, 활과 리라, 십자로, 결합과 해체 등의 시론서, 문화비평서 등이 있다.
활과 리라, 「시와 시편」 중 일부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시는 격리시키면서 결합시킨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시는 격리시키면서 결합시킨다. 시는 여행에의 초대이자 귀향이다. 시는 들숨과 날숨이며 근육운동이다. 시는 空공을 향한 기원이며 無의 대화이다. 시의 양식은 권태와 고뇌의 절망이다. 시는 기도이며 탄원歎願이고 현현顯現이며 현존現存이다. 시는 악마를 쫓는 주문이고 맹세이며 마법이다. 시는 무의식의 승화이자 보상이고 응집이다. 시는 계급과 국가, 인종의 역사적 표현이면서 역사를 부정한다. 시 속에서 모든 객관적 갈등들이 해소되고 인간은 마침내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것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을 얻게 된다. 시는 경험이며 느낌이고 감정이며 직관이고 방향성이 없는 사유이다. 시는 우연의 소산이자 계산된 결과물이다. 시는 세련된 형식을 사용하여 말하는 기술이자 원시적 언어이다, 시는 규칙에 복종하며 동시에 다른 규칙들을 창조한다. 시는 先代선대를 흉내 내는 것이며 실제의 모방이고 이데아의 모방에 대한 모방이다. 시는 광기이며 황홀경이고 로고스이다. 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며 성교이고 낙원과 지옥 그리고 연옥에 대한 향수이다. 시는 놀이이고 노동이며 금욕적 행위이다. 시는 고백이다. 시는 본래적 경험이다. 시는 비전이고 음악이며 상징이다. 시는 아날로지이다. 시편은 세상의 음악이 울리는 소라고둥이고, 시편의 운율과 각운은 전체적인 조화의 상응correspondencias이자 울림ecos이다. 시는 교육자이자 도덕이고 계시이며 춤이고 대화이며 독백이다. 시는 민중의 목소리이자 選民선민의 언어이고 고독한 자의 말이다. 시는 순수하면서도 순수하지 않고, 신성하면서도 저주받았고, 다수의 목소리이면서 소수의 목소리이고, 집단적이면서 개인적이고, 벌거벗고 치장하고, 말하여지고, 색칠되고 씌어져서 천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결국 시편은 빔vacio(-인간의 모든 作爲작위의 헛된 위대함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을 숨기고 있는 가면일 뿐이다.
태양(太陽)의 돌 / 옥타비오 파스
반복되는 거울들의 회랑
목마른 자의 눈동자, 항상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회랑,
이제 너는 무작정 내 손을 잡아끌고
저 끝이 가물가물한 통로로
원의 중심부를 향해 데려가서 버티고 서 있다
횃불 속에서 얼어붙은 하나의 광휘처럼,
껍질을 벗기는, 매혹적인 빛처럼
사악한 자를 위한 교수대처럼,
채찍처럼 탄력 있고 달과 짝을 이룬
하나의 무기처럼 화사하게,
이제 날을 세운 네 단어들이 내 가슴을
파내고 나를 황폐하게 하고 텅 비게 한다,
하나씩 하나씩 너는 내게서 기억들을 뽑아낸다,
나는 내 이름을 잊었다, 내 친구들은
돼지들 사이에서 꿀꿀대거나 벼랑에 걸친
태양에 잡아먹혀 썩어간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길다란 상처 하나뿐,
이미 아무도 거닐지 않는 동굴 하나,
창문들 없는 현재, 사고가
돌아와, 되풀이되고, 반사된다
이제 그 동일한 투명 속에서 사라진다,
눈 하나에 의해 옮겨진 의식
밝음으로 넘쳐 흐를 때까지 돌아봄을
서로 마주보는 의식:
나는 네 지독한 비늘을 보았다.
멜루시나, 동틀 녘에 녹색으로 빛나는,
너는 시트 사이에 동그라미가 되어 잠들어 있었다
이제 너는 깨어나 한 마리 새처럼 부르짖었다
이제 끝없이, 부숴진 창백한 모습으로 쓰러졌다,
아무것도 네게는 남지 않았다 네 외침만이,
이제 세기들의 말에 나는 발견한다
기침을 해대며 흐릿한 시선으로, 오래 묵은
사진들을 뒤섞으며:
아무도 없다, 너는 아무도 아니다,
잿더미 하나와 빗자루 하나,
이 빠진 나이프 하나와 깃털 하나,
몇몇 뼈다귀들이 매달린 가죽 하나,
이미 말라 버린 꽃송이 하나, 시꺼먼 구멍 하나
이제 구멍 바닥에는 천년 전에 질식해 버린
한 여자아이의 두 눈이 있다,
한 우물에 묻혀 있는 시선들,
태초부터 우리를 보는 시선들,
늙은 어머니의 어린 시선
덩치 큰 아들에게서 보는 한 젊은 아버지,
고만한 여자아이의 어머니 시선
몸집 큰 아버지에게서 보는 한 어린 아들,
삶의 바닥으로부터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이제 죽음의 함정들이다
(중략)
우리는 하나의 삶의 기념비
우리 것이 아닌 우리가 살지 않는 남의 삶.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인 일이 있는가?
언제 우리는 정말 우리인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되어 본 일이 없다.
우리 혼자는 현기증이나 공허밖에는
거울에 비친 찌그러진 얼굴이나 공포와 구토밖에는
인생은 우리의 것이어 본 일이 없다, 그건 남의 것.
삶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이고 — 남을 위해 태양으로 빚은 빵,
우리 모두 남인 우리라는 존재 —,
내가 존재할 때 나는 남이다. 나의 행동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내게서 떠나와 남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남들이란 결국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
그 남들이 내게 나의 존재를 충만시켜 준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삶은 항상 다른 것, 항상 거기 있는 것, 멀리 멀리 있는 것,
너를 떠나 나를 떠나 항상 지평선으로 남아 있는 것.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남으로 남겨놓은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존재하고 싶은 허기증, 오 죽음이여, 우리 모두의 빵이여.
(※ 「태양의 돌」 부분 )
확실한 것 / 옥타비오 빠스
지금 이 램프가 실제 있는 것이고
이 하얀 불빛이 실제 있는 것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손이 실제 있다면, 이 쓴 것을
바라보는 눈은 진짜 있는 것인가?
말과 말 사이
내가 하는 말을 사라진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뿐
두 괄호 사이에서
상호보조/ 옥타비오 빠스
나의 몸에서 너는 산을 찾는다
숲 속에 묻힌 산의 태양
너의 몸에서 나는 배를 찾는다,
갈 곳을 잃은 밤의 한가운데서!
시인의 숙명 / 옥타비오 빠스
말? 그렇다, 그건 공기다,
대기 속에 사라지니까.
이 말들 속에 나 또한 사라지게 하라,
그러다가 어느 입술에 감도는 대기이게 하라,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
떠돌며 바람을 흩뜨리는 바람
빛도 스스로의 빛 속에 사라지나니,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 옥타비오 빠스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
무심하게도, 무심하지 않게도 아닌,
가벼운 발걸음 소리, 이슬비 내리는 소리,
물이면서 바람, 바람이면서 세월,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밤은 아직 오지 않았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안개의 무늬짐,
이 쉼표의 후미진 골목에 머무는
세월의 무늬짐,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
내 말을 듣지 말고, 내가 안으로 눈을 뜨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모든 감각을 일깨운 채 잠든
빗소리, 가벼운 발걸음, 음절들의 수런대는 소리,
바람과 물, 무게 없는 말소리:
우리의 과거, 우리의 현재,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 이 순간,
무게 없는 세월, 큼직한 두께,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
젖은 아스팔트가 반짝이고,
김이 일어나고 걸어가고,
밤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게 너, 김으로 일어선 너의 몸매,
그게 너, 밤으로 다가선 너의 얼굴,
너와 너의 머리칼, 그 느린 번갯불,
너는 거리를 건넌다, 나의 이마에 들어온다,
나의 눈동자 위에 물의 발걸음 소리,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
아스팔트는 반짝인다, 너는 거리를 건너간다,
그것은 밤에 방황하는 안개,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너의 침대에 잠든 밤,
너의 숨소리 물결소리,
너의 물의 손가락들이 나의 이마를 적신다,
너의 불길의 손가락들이 나의 눈을 태운다,
너의 바람의 손가락들이 세월의 동공을 연다,
도깨비들이 흘러나오고 다시 태어나고,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
세월은 가고, 순간들이 돌아온다,
가까운 방에 들리는 너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가?
여기가 아닌, 거기가 아닌 곳에서: 너는 듣는다,
시간의 발걸음 소리를 너는 듣는다
무게도 장소도 없는 현실들을 만들어가는 시간,
마당으로 흘러가는 빗소리를 들으라,
밤은 숲 속에서 이미 더욱 깊은 밤,
이파리들의 사이 번갯불이 머문다,
표류하는 희미한 정원
들어오라, 너의 그림자가 이 백지를 채우게 하라.
한 例예 / 옥타비오 빠스
나비가 자동차 사이에서 날고 있었다.
마리 호세가 내게 말했다: 저 나비가
장자인가봐, 뉴욕으로 산보 나온,
그러나 나비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한 마리 나비인 줄을
장자인 것을 꿈꾸고 있는 나비,
아니면 장자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장자.
아무 의심 없이
나비는 날고 있을 뿐.
바쇼오암芭蕉庵 / 옥타비오 빠스
세상은 17/ 음절에 들어간다:/ 이 초가집에.//
지푸라기와 기둥: 이 틈 사이로/ 벌레와 부처.//
솔과 바위들/ 사이, 바람 속에서 / 시가 솟는다.//
모음과 자음/ 얽히고설켜, 이내/ 세상 집되다.//
세월의 뼈들, / 고통은 이제 돌산: / 무게가 없다.//
내가 한 말은/ 채 석 줄이 못된다: 이 소리의 집
< 옥타비오 빠스가 쓴 하이쿠 >
여명
모래 위에
새들의 글씨:
바람의 일기장.
별과 귀뚜라미
하늘은 커서
위에서는 세상을 심는다
그 많은 밤을
꿈쩍 않고 뚫고 있는
송곳, 귀뚜라미.
귤
작은 태양
식탁 위에 조용히
머문 한낮
무언가 부족하다:
밤
<2018.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