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아이비리그” 韓美 양국서 컨설팅 열풍
| 2009-10-07 02:57 | | 2009-10-07 02:58 |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 유학 온 K 군은 올 여름방학 때 서울에서 특별 컨설팅을 받았다.
미국 최고 학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공립학교 10학년(한국의 고교 1학년)에 다니는 K 군은 당초 방학 때 메릴랜드 주에 있는 존스홉킨스대에서 운영하는 과학캠프 참가를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할 때는 전문가가 짜준 대입 준비 전략이 필요하다"며 서울 강남 유학원에서 컨설팅을 받게 했다.
아이비리그(미국 동부 8개 명문대) 출신이라는 컨설턴트는 앞으로 수강할 AP(선행학습)과목, 액티버티(봉사·특기 등 과외활동) 목록을 짜줬다. 개인마다 원하는 학교에 따라 계획표를 만들어주는 맞춤형이었다.
해마다 방학이 되면 한국의 초중고교생은 미국으로 영어연수를 오고,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 강남 등지의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학원 등에서 단기 집중과외를 받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미 양국에서 입시전략 컨설팅 특수까지 불고 있다. "높은 성적이라도 평범한 경력만으로는 합격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부는 현상이다.
아이비리그와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 명문대의 입학문은 베이비 부머(제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60년대 중반 사이 신생아 출산이 급증한 시기에 태어난 세대)의 자녀들이 대학 진학 연령기를 맞은 데다 한국 중국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명문대보다 미국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급증하면서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보스턴 뉴욕 등 대도시에 늘어나는 입학전략 컨설팅업체 가운데는 한국 학생을 상대로 한 곳이 많다. 부산의 중학교에 다니는 L 군은 여름방학 때 8000달러(항공료 제외)를 내고 뉴욕의 한 컨설팅업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업체가 소개해준 서머캠프들에 참여하면서 간간이 컨설팅을 받는 두 달간의 프로그램이었다.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업체는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짜줄 뿐 아니라 방학 때면 한국에서 컨설팅 대상 학생을 '뽑아' 온다. 아무나 돈만 낸다고 컨설팅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비리그 진학 잠재력이 보이는 학생들만을 받는다. 이 업체는 대학 석사과정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 2명과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미국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업체도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고 있다. 보통 9학년(중3)부터 시작해 연간 2만~4만 달러를 받는다.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집중 인터뷰를 한뒤 성적표, 그동안 읽은 책의 목록, 구독 잡지, 자원봉사 경력 등의 종합정보를 토대로 50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든다. 그러고는 장단기 계획을 짜서 과목 선정부터 단어장 작성법 등 세세한 항목까지 코치해준다.
일부 업체는 에세이 작성까지 도와준다. 다트머스대 입학사정관 출신인 미셸 에르난데스 씨는 공영라디오방송(NPR)에 출연해 "요즘은 SAT 만점과 완벽한 내신점수도 합격을 보장해줄 수 없지만 나는 지난해 29명의 고교생을 컨설팅해 그 가운데 25명을 아이비리그에 합격시켰다"며 "2008학년도 다트머스대 입시에서 입학사정관들이 가장 우수하다고 꼽은 에세이는 내가 도와준 것"이라고 고백해 충격을 줬다. 그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학생이 글의 소재와 논지 전개 방향을 잡는걸 도와주고 나중에 다듬어준다. 입학사정관들로부터 의심받지 않기 위해 항상 학생의 목소리를 유지하려 한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시카고대의 테드 오닐 입학담당 부학장은 "부정행위"라고 비판하며 "학부모는 학생의 대입준비 전체 과정을 통제하려하지 말고 '동정적 구경꾼'(sympathetic bystanders)이 되어야한다"고 당부했다.
고액 컨설팅이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또한 입학사정관들이 정말 중시하는 것은 세련되게 다듬어진 에세이나 SAT 만점, 잘 꾸며진 '액티버티' 경력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열정(passion)을 갖고 오랜 기간 일관되게 노력했는가(persistency)라는 지적도 많다.
동아일보/워싱턴=이기홍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