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로되
1]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와 두 달란트를 맡은 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보고하였다. 주인은 그들에게 잘 하였다고 칭찬하면서, 그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들에게 '내가 네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상급이다. 주인이 그들에게 맡길 '많은 것'은 천국 기업의 한 부분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이 관할할 사람들의 수나 통치 영역의 범위를 가리킬지도 모른다.
'주인의 즐거움'은 미래의 영광의 천국에서 누릴 즐거움일 것이다. 그것은 영생의 복락이다. 그 즐거움은 다함이 없는 즐거움이고, 즐거워한 후에 허전하고 허탈한 세상적 즐거움이 아니다.
23. 주인의 즐거움
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셈어의 특징인 반복 기법을 사용하여 20, 21절의 내용과 거의 흡사한 칭찬과 약속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동일 내용의 보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심판주의 회계 기준은 은사와 능력의 크기에 있지 않고 그 맡은 바에 대한 성실성과 충성도에 있다는 점이다.
한편 주인은 두 종에게 모두 '많은 것'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두 종이 똑같은 양의 '많은 것'을 맡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천국은 획일적인 평등주의(equalitarian)의 실현장(實現場)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과 충성이 모두 인정되는 곳이다.
24. 한 달란트
1]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인이 주관하는 회계의 현장에는 충성된 자이든 불충분한 자이든 모두가 나아와 주인의 판결에 응해야 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 호토 엔 탄란톤 에이레포스)의 시재가 완료능동태 분사로서 아직 그에게 '한 달란트'만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 고후 5:10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2]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굳은'(*, 스크레로스 σκληρός)라는 말은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칠다'는 뜻으로 공동번역과 새번역에서는 '무서운 분'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같은 평행 비유 눅 19:21에서 나오는 '엄한 사람'(*, 아우스테로스)이라는 단어보다 더 강경한 뜻으로 쓰인다.
* 눅 19:21 -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 요 6:60 -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 행 26:14 -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약 3:4 -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 유 1:15 -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종은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세워 결국 자신의 불성실과 직무 유기(遺棄)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찾으려 한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엄하고 까다로운 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인의 인격을 매도하는 더 큰 죄를 주인 앞에서 범하였다.
3]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주인을 매우 질이 나쁜 구두쇠나 돈만 모으는 광적이면서 투자하는 데는 인색하며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불로 소득을 얻는 파렴치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아마도 이 비난 속에는 자신이 다른 두 종들보다 훨씬 적은 양을 받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은근한 화를 분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Derrett).
4]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호덴 우디에스코르피사스)
이는 추수한 곡식을 마당에 늘어놓고 말린 후 키질을 하여 겨를 헤쳐서 곡식을 모으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즉 주인을 키질하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알곡(재산)을 모으려고 하는 불로 소득자로 비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좋은 주인을, '굳은 사람', '심지도 않고 거두는 사람', '헤치지 않고 모으는 사람' 등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 비난이 한 달란트를 받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인 앞에 나온 게으른 종 자신에 대한 묘사이다.
이 본문은 자기변명을 통하여 자기 모습을 묘사하는 우화적(寓話的)인 문학적 표현 방법이다. 그러므로 종의 주인에 대한 비난은 모두 종 자신의 게으르고 완악한 심성의 고백적 표현으로 보면 된다(26절).
* 눅 19:22 -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5] 내가 알았으므로(*, 에그논 세)
이는 제 2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으로 경험을 통해 익히 알아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로 그는 자신의 왜곡된 판단을 근거로 주인의 품격을 극도로 모독하고 있었던 것이다.
25. 감추어 두었나이다.
1] 두려워하여 나가서
이 두려움은 주인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너무 엄격한 주인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이 장사를 하다가 실패하여 본전도 돌려주지 못할 때 엄격한 주인에게 당할 벌이 무서웠다. 이 종은 소심하고 진취적이지 못한 용기 없는 사람인 동시에 자기 생명과 안녕에 대해 강한 집착을 지녔던 자이다.
2]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종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돈을 보관한 것이다(18절). 평행 본문인 눅 19:20에서는 수건에 싸두었다고 말한다. 공통점은 두 표현 모두 맡겨진 돈을 아무 일에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여기서 게으른 종이 무엇을 하든 모험을 감행할 의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 눅 19:20 -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3]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표면적으로는 자기가 주인의 원금(元金)에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고 잘 보존해왔다는 뜻이다.
실상은 '내 할 바를 다했으니 당신은 내게 아무런 꾸중도 할 수 없습니다.'는 뜻의 무례하고도 원망 섞인 불평이었다. 주인이 자기에게 맡겨준 것을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그는 주인이 보관을 위해 달란트를 맡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여 이윤을 남기라고 맡겼음을 알지 못했다. 소유를 맡겼을 때는 그 소유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 자기의 것이나 다름없이 성실하게 달란트를 맡아야 했었다.
26. 악하고 게으른
1]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포네레 둘레 카이오크네레)
여기서 '악하고'(*, 포노스)는 '성가시게 굴음', '무가치한', '악독한'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게으른'(*, 오크네오)은 '지체하다', '둔하다', '머뭇거리다'의 뜻을 가졌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주인의 의도에는 전혀 무신경하고 자기 안일에만 심취하여 결국 주인에게 해가 된 무익하고 무가치한 종에 대한 묘사이다.
2]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구절은 앞서 종이 주인에게 변명한 내용에 대한 반문이다(24절). 이 반문의 의도는 주인인 자기 자신이 절대로 종이 말하는 바와 같은 그런 악질적인 구두쇠나 부도덕한 사람이 아님을 밝히는데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게으른 종에게 그렇게 반문함으로써 도리어 그 내용이 종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이 문장을 끊지 않고 계속 연장시켜 본다면, '그렇게 악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평행 구절인 눅 19:22은 이와 같은 의미를 분명하게 해준다. 즉 누가복음에는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라는 문장이 삽입되어 종의 변명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심판 선언임을 밝히고 있다.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