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9일(화)
* 시작 기도
(눅 23:8, 12)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주님...
헤롯은 유대의 분봉왕이고 빌라도는 로마가 파견한 유대의 총독입니다.
이들은 서로 견제하는 권력의 소유자들입니다.
하여 애매한 일은 상대에게 넘기고 자신들은 회피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심판하는 일 역시 빌라도에게 왔지만 그는 먼저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헤롯의 관할이므로 그에게 보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보자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그의 소문을 들었고 또한 어떤 기적이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헤롯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지만 그 날은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자기들의 한 가지 목적이 분명하고 같았기 때문입니다.
惡이 善을 대하면 그 악이 발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여 서로 공조하여 선을 대적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그들은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친구 관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없는 관계입니다.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악과 손을 잡고 친구가 되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오늘 이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주님을 대적하는 원수로 서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나를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이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수 15:20-63
제목 :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자파의 남쪽 끝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아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다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32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스물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열네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이니 열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세사니 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5 에그론과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과 가사와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의 경계에까지 이르렀으며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이니 열한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열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8 할훌과 벧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랍바이니 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라가와
62 닙산과 소금 성읍과 엔 게디니 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63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유다 지파가 분배 받은 120여 개의 성읍에 대해서 소개한다.
21-32절은 에돔과 경계한 남방 네게브 지역에서 분배된 36개 성읍이다.
33-47절은 세펠라라 불리는 평지에서 얻은 42개의 성읍이다.
48-60절은 유다 산지에서 얻은 38개의 성읍이다.
61-62절은 유다 광야 지역에서 얻은 여섯 개의 성읍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지파가 쫓아내지 못함으로 그들이 함께 거하였음을 추가로 언급한다.
물론 이렇게 분배된 땅을 유다 지파가 이미 정복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성읍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아직 가나안 족속들이 거주하며 살고 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여 살고 있는 땅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한 구절이 있다.
그것은 63절이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20절에서 62절까지 기록된 수많은 성읍들이 유다 지파에 분배되었다.
그리고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던 곳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 정복되었다.
하지만 예루살렘만은 유다 지파의 경내에 있었음에도 오랜 기간 정복되지 않고 다윗 시대까지 이어졌다.
연대기로 보면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 받은 시점이 주전 약 1,400년 경이었고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시점은 주전 1,003년 경이었다.
따라서 여부스 족속이 유다 지파와 함께 지낸 기간은 대략 400여 년 정도이다.
그렇다면 유다 지파는 왜 여부스 족속을 멸하지 않고 남겨두었을까?
그들의 힘이 모자라서 그들을 남겨두었을까?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이미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주워 먹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쉽게 그리고 허투루 들었던 것 같다.
유다 지파는 단지 여부스 족속이 정령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을 굳이 피를 흘려가면서 정복하지 않더라도 자기들에게 분배된 땅을 완전히 정복한 것과 다름없는 것처럼 여겼을 것이다.
그 많은 성읍 중에서 한 성읍쯤 어떠랴, 하면서 그 하나쯤은 정복하지 않아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그 하나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영토 가운데 가나안 족속이 남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신명기서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 20:16-17)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따라서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 성에 여부스 족속을 남겨 둔 것은 엄청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이처럼 멸절하라고 하신 데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신 20: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주님의 말씀은 다름 아니라 그들이 행하던 우상에 대한 습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주어 이들 역시 하나님께 범죄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신명기서는 이렇게 경고한다.
(신 31: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비록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을 것이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이방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하나님을 저버리는 죄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의 싹을 싹둑 자르라고 하신 것이다.
심지어 히브리서 기자는 죄와 싸우되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하였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사소하며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것들조차 엄청난 사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힘들이지 않고 호미로 할 수 있는 것을 쉽게 생각하여 놓치면 나중에 가래로 막으려 해도 잘 안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인생에서 과연 어떠한가?
죄의 싹을 완전히 자르고 있는가?
영적인 삶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도록 반석 위에 짓고 있는가?
내가 나를 보면 차마 부끄러워 할 말이 없다.
말로는 죄의 싹을 자른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싹을 품에 품고 사는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그 싹을 키워 나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또한 신앙의 기초 또한 마찬가지다.
주님께서는 모래 위에 집을 짓지 말고 반석 위에 지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모래 위에 멋지게 지어놓고 그 집이 무너지지 않게 해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던가?
이것은 내 뜻과 내 의지대로 이루어 달라는 극히 미신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요 목사이며 선교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나는 내 가슴을 커다란 방망이로 내려친다.
나의 나 됨은 거짓과 위선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오늘 말씀 앞에서 티끌까지라도 남김없이 쏟아놓는다.
그리하여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다윗은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과 어머니가 죄 중에 자신을 잉태하였음을 노래하였습니다.
이는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고 주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유하심을 듣고 주님의 의를 노래하였습니다.
나 또한 죄 중에 잉태 되고 죄악 중에 출생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하오나 우리 주님의 사유하시는 은혜의 말씀이 나를 영원한 그 나라로 옮기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의나 행위가 전혀 가입되지 않고 오직 우리 주님의 뜻과 의로만 이루어진 일임을 믿습니다.
죄 사함과 주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 영원한 기업을 주신 그 은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미천한 나를 어디에 쓰시려는지요?
주님이 원하시면 내 머리카락 하나까지라도 드리기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 아들의 피 곧 보혈만 받으시오니 나의 더러운 것들은 다 쏟아내기 원합니다.
나의 정성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우리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자로 삼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