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로써'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대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라는 뜻이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자임을 알게 된다고 증거 한다.
그는 앞에서도 진리에 대하여 자주 말했다. 진리를 행함에 대하여(1:6), 진리가 우리 속에 있음에 대하여(1:8; 2:4), 진리를 앎에 대하여(2:21) 말하였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진리를 가리킨다. 그것이 신약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자임을 스스로 알게 된다. 형제 사랑은 성도가 진리에 속한 증거이다.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할 것이라고 증거 한다. '굳세게 하다'(페이도)는 '확신케 하다, 평안케 하다'는 뜻이다(BDAG).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또 우리 자신의 구원에 관하여 확신케 하고 그 진리와 그 구원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사람은 죄를 지을 때 두려움을 가진다. 첫 사람 아담은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동산 나무에 숨었다.
* 창 3:10 -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 사 48:22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 사 57:21 -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행하면 우리는 두려움 대신에 확신과 평안과 담대함을 가지게 될 것이다.
1)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이로써'가 가리키는 것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 다음절을 가리킨다(Nauck, Brooke).
Ⓑ 앞에 언급된 내용과 뒤에 언급될 내용을 가리킨다(Westcott).
Ⓒ 앞에서 언급된 10-18절까지의 내용을 가리킨다(Barker, Smalley, Stott).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문맥상 타당하다.
2)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굳세게 하리로다'(페이소멘)에 대하여도 세 가지 해석이 있다.
Ⓐ '확신케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려면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데 목적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⑴ 바로 앞 문장인 '우리가 진리에 속함'을 목적어로 보는 견해(Plummer)
⑵ 20절 초두의 '호티'(왜냐하면)가 이끄는 절을 목적어로 보는 견해(Bruce).
그러나 양자 모두 무리한 문법적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 '설득시키다'. 이것은 의미상 본문에 부적절하다.
Ⓒ '안심시키다'. 이 의미로 해석할 경우 '우리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라는 목적어가 생략된 것으로 본다(Westcott).
비록 만족스러운 해석은 되지 못하나 세 가지 중 마지막 의미가 타당성을 지닌다(Stott, Smalley).
본 절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진리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20절과 연결하여 주 앞에서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3:20-22 - ⑳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확신과 평안과 담대함을 얻는 이유가 있다. 우리 마음에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으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과 평안과 담대함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얻었다.
* 히 10:19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러나 죄를 범하면서 담력을 가질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때 담력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은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말했다(잠 28:1).
요한은 순종의 또 하나의 결과로서 기도의 응답에 대해 증거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다(마 7:12).
이것은 우리가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을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의 뜻을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신 것이다. 우리는 죄를 범하면서 그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3:20 -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1)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물며)
본 절에서 두 번 사용된 '호티'(왜냐하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 세 견해가 있다.
Ⓐ 첫 번째 '호티'를 명사절을 이끄는 접속사(that)로 보고, 두 번째 '호티'는 불필요한 반복으로 간주하여 생략한다.
이 해석은 20절 전체를 19절의 '페이소멘'(확신케 하다)이란 동사의 목적어로 본다(Bruce).
Ⓑ 첫 번째 '호티'를 '왜냐하면'으로 해석한다.
이 경우 19절의 동사 '페이소멘'(안심시키다)의 목적어는 생략된 것으로 본다(AV).
Ⓒ 첫 번째 '호티'를 '호'와 '티'로 분리시켜서 관계대명사 중성 명사로 보고, '에안'(...이면)과 합쳐서 '...할 때마다'라는 의미로 본다.
이때 두 번째 '호티'는 종속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왜냐하면'의 뜻이 된다(Stott, Smalley).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요한은 본서에서 서로 대조되는 구문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1:9,10; 2:10,11; 3:8,9) 본 절 역시 21절과 대립되는 구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본문에 대해서는 두 견해가 있다.
Ⓐ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묘사다(Alford, Wohlenberg).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우리 자신도 우리 마음을 보시면 책망할 것이 너무 많을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한 묘사다(Brooke, Luther).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두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우리 마음을 책망할 때마다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문맥상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3:21 -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문장의 형식상 전절과 본 절은 조건문으로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내용상은 본 절이 전절의 결과에 해당한다. 본문은 설사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서 책망할 것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Bruce).
2)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담대함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서 항상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히 10:19).
3:22 -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1)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구하는'(아이토멘)과 '받나니'(람바노멘)은 모두 현재 시상이다. 이는 계속되는 기도와 계속되는 응답의 경험을 암시한다(Stott).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는 사상은 신약 여러 곳에 나타난다.
* 마 7:7,8 - ⑦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⑧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마 18:19 -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 요 11:41,42 -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 요 15:7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응답에 대한 약속에는 선행 조건이 있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한다(Smalley).
2)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리스도인들이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말한 공적이 아니라 신자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 기도 응답의 조건이 되는 것처럼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됨을 드러내는 외면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Law, Stott).
예수께서도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행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아셨다.
* 요 8:28,29 -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