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조상 덕을 가장 많이 보는 나라다. 이미 허물어졌거나 거의 다 허물어져가는 건축물들을
구경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덕분에 먹고산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자전적 소설「미할리스 대장」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로마에 그대로 적용해도 된다. 로마는 연간 관광수입만 해도 1조 원이 넘는다니, 로마제국 천
년의 영광이 오래도 간다. 직접 가보지 않아서 로마 하면 《로마의 휴일》을 비롯한 여러 편의 영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TV 뉴스, 사진 등을 통해 본 게 전부지만, 우리와 다른 석조건축물의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가 관광객의 발길을 끌만도 하다는 공감이 절로 든다. 게다가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우리
나라와 위도가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를 유지하고 있다니 부럽기도 하다.
로마의 면적은 1285㎢로 서울(605㎢)보다 두 배 이상 넓지만, 인구는 300만 명 정도로 서울 인구(980
만)의 3분의 1이 채 안 된다. 널찍한 땅에 드넓게 흩어져 살다보니 로마인들은 서울사람들보다 훨씬
여유롭고 유머센스가 뛰어난 모양이다. 공식적으로는 기원전 753년에 건설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1년 내내 수량이 풍부한 테베레강을 중심으로 강 양안에 비옥한 충적토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입지
조건을 감안하면 1만년 전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한 초기부터 취락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로마는 내가 기대했던 만큼이나 멋진 곳이었다. 피오리아보다 한 수 위임에는 틀림없었다.’
피오리아라, 책을 읽다가 저자가 부연설명도 전혀 없이 이처럼 저만 아는 생경한 용어를 불쑥 사용하
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반드시 인터넷을 뒤져 뜻을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미국 일리노이州에 있는 피오리아 마을 또는 그 마을이 속해 있는 군 소재지 이름’
아마도 저자 빌 브라이슨의 고향인 모양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는 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하물며 여행기 작가가 타국의 낯선 도시를 자신의 고향과 견주어보는 것
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로마에 도착한 첫날, 빌은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 빌은 저녁식사를 하러 들린 노천카페에서 로마에
산 지 20년 된다는 한 미국인을 만났다. 그는 물가가 비싸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며 합석해 있는 내내
투덜거렸다. 비아 베네토의 술집들은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독일인과 미국인들은 너무 멍청
하고 눈치가 없어 바가지를 쓰는 줄도 모르고 계속 몰려온다고 한심해하기도 했다. 자신과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이 미국인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 빌은 여행기에 그 사람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해놓
았다.
‘화창한 저녁 공기 좋은 노천에 앉아 근사한 식사를 하면서 대체 무슨 불만이 그렇게도 많단 말인가!’
이 친구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 전에 교정도 안 하나? 「발칙한 유럽 산책」이 211페이지까지 이
어지는 동안 내내 불평불만만 쏟아낸 자가 상대방의 불평은 그키나 견디기 어렵단 말인가? 미국인들
역시 제 눈에 박힌 들보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빌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매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시내를 걸어 다녔다. 공원을 거닐고, 유명한 스
페인계단을 오르내리고, 콜로세움과 포룸 옆을 지나 강을 건넌 다음, 트라스테베레의 가파른 언덕을
기다시피 올라갔다. 언덕 위를 배회하면서 감각적인 도시 전경과 젊은 남녀가 비좁은 암반 돌출부에
서 격렬하게 정사를 벌이는 광경을 감상했다. 그러면서 옷도 벗지 않은 채 격렬하게 정사를 벌일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첨단기술’을 부러워했다. 빌은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 뒤엉켜서 섹스를 하
고 있는 커플 가운데 몇 쌍이나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지 관심을 집중하여 살펴보고 있었
지만, 등에 흡반이라도 붙이고들 있는지 불행하게도 추락하는 볼거리를 제공한 커플은 없었다.
빌은 로마의 교통관행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로마인들의 운전행태가 서울사람들보다 심한
것 같아 소개한다. 보행자는 언제라도 차에 치일 각오를 하고 횡단보도에 들어서야 한다. 횡단보도에
신경을 쓰는 운전자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횡단보도가 가까워져도 속도조차 줄이지 않는다. 그들은
경적을 마구 울려대며 오히려 속도를 높인다. 그러다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지나칠 때는 무지막지
한 욕을 퍼붓곤 한다. 운전 중에 앞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빵을 먹거나 사랑을 나누는가 하면, 몸을
돌려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 엉덩이를 때리기도 한다. 운전자가 보행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백
미러를 통해서다. 그때 이미 횡단보도에는 그 차에 치인 보행자가 널브러져 있다. 이후에도 통행 및
주차와 관련된 얘기가 두 페이지나 더 계속된다.
이탈리아 여행기는 이후에도 나폴리, 소렌토, 카프리, 피렌체, 밀라노, 코모 등으로 이어지지만 모두
생략한다.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도시들이지만, 그 도시의 유래나 역사적 사건, 그
도시가 배출한 세계적 인물 등과 관련된 얘기는 단 한 줄도 없다. 요약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무식
하고 무질서하고 예의도 없다. 도시는 지저분하고 모든 종업원들은 불친절하다. 어디를 가든 도둑이
기승을 부려 짐이나 여행자수표 등을 자주 분실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의 연속이다. 게다가 가는 도
시마다 호텔과 식당과 술집 얘기가 주를 이루는데, 모두 너무 비싸거나 맛대가리가 없거나 불쾌한 경
험을 안겨준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일본 해협을 지난 태풍의 영향 탓 인지 무더위가 가신 시원한 바람으로 한결 지내기가 수월했던 어제 일요일 날씨 였습니다. 에어컨을 켜고 집안에 있었던 오전내내 이 시원함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렇듯 불볕더위속 간간히 이런 시원함도 기대하면서 지내다 보면 삼복 무더위도 물러 나리라 여깁니다. 활기찬 한주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