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산국
20170925전라도닷컴[한송주 괴나리봇짐]
황국주 한 잔 들고 오상고절 얼 기리세
아침 포행길에 국화가 지천이다. ‘풍상이 섞어친 날에 갓핀 황국화를...’하는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의 시조가 절로 읊어지는데 기자는 그런 연군가(戀君歌)보다는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버리고 낙목한천에 너홀로 피었느냐...’하는 보객정(報客亭) 이정보(李鼎輔)의 절개가(節槪歌)를 더 즐긴다. 하기야 연군을 잘 해야 과거급제 60년을 기리는 회방연(回榜筵)을 누릴 수 있겠지만.
곧 양기가 겹치는 중양절인데 음력 9월9일 이날이면 선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산에 올라(登高) 국화를 감상했다(賞菊). 그리고 산에 핀 작고 노란 감국(甘菊)을 따와 술을 빚어 마셨다. 감국은 이름 그대로 맛이 달고 색깔이 고와 침주(沈酒)하기 적당했다. 국화주는 또한 몸을 가볍게 해주고 중풍을 막아주는 약효가 빼어나 상비식으로 애용됐다.
선비들은 양국(養菊) 상국(賞菊) 음국(飮菊)을 두루하는 국계(菊契)를 만들어 시주풍류를 즐겼는데 그 붐이 얼마나 드셌던지 조선 중기에는 나라에서 모임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광주에도 근세까지 국계가 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가운데 반룡채국계(盤龍採菊契)라는 두레가 이름 떨쳤다.
반룡채국계는 1933년 중구일(重九日)에 전남대학교 뒤편 반룡부락에서 선비 이철종(李哲琮)이 스승 김진현(金珍鉉)의 지도로 도반 300여명과 함께 꾸린 모임이다. 사표가 된 김진현은 전에 강의계(講誼契)를 조직하고 해방 후에는 난심계(蘭心契)를 결성한 바 있는 전문적인 화초계꾼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구구절, 구일날, 궐날이라고도 불렸던 중양절은 추석 못지 않은 큰 명절이었다. 햇곡식으로 조상께 천신(薦新)하고 산국을 따서 국화전을 부치고 국화주를 빚어 시식(時食)했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기수(奇數)를 양수(陽數)로 삼아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길일로 쳤다. 특히 궁극인 9가 겹치는 날을 중양이라 하여 크게 받들었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문집에 보면 당시 조선에 재배되는 국화만도 백여 종을 헤아렸다고 하니 우리 선조들의 화초벽은 참으로 알아줄만 하다. 정조 때 국화재배의 달인으로 숭앙됐던 김노인은 국화를 일찍 피게도 하고 늦게 피게도 하고, 해바라기만한 것이나 손톱만한 것이나 자유자재로 재배해서 만들어서 중국에까지 수출했다.
국화는 정국(庭菊) 분국(盆菊) 야국(野菊)으로 나뉘는데 기자는 길섶에서 늘 만나는 들국화을 더 사랑한다. 들국화 중에도 하얀 꽃보다는 노오란 황국이 더 반갑다.
전남 함평에서 해마다 화사한 국화축제가 열리는데 최근 전래 방식의 국화주 제조법을 복원해 방문객들에게 시음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화향입주법의 대강을 보자면, 좋은 청주 3리터당 그늘에 말린 황국 1그램을 섞되 꽃을 베자루에 넣고 술독 안에 끈으로 매다는데 수면에서 2~3센티미터 떨어지게 한 뒤 술독을 밀봉해 2~3일 둔다. 그러면 국향이 술에 잘 스며 찌꺼기 없는 가향주가 된다. 술을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차게 하여 마시면 더 좋다.
국화를 소재로 한 시문이라면 단연 오류(五柳) 도연명(陶淵明)을 손꼽는데 그의 절창 <음주(飮酒)> 가운데 5련이 애송된다.
동쪽 울 밑 국화 따면서 採菊東籬下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니 悠然見南山
산 기운은 노을 비쳐 고와라 山氣日夕佳
저기 새들도 쌍쌍이 깃드는구나 飛鳥相與還
우리 판소리에도 국화가 자주 등장하는데 춘향전 한 대목이 아주 구성지다.
변사또 수청을 뿌리치면서 춘향이 이렇게 울부짖는다.
구자(九字) 낫을 딱 부치니 구자로 아뢰리다.
구고(九臯)의 학이 되어 구만장공(九萬長空) 높이 날아
구곡간장(九曲肝腸) 맺힌 한을 구중심처(九重深處) 아뢰고저
구월상풍(九月霜風) 요락(搖落)한들 구월황하(九月黃花) 이우리까
아홉 구(九) 자를 반복하여 자신의 절개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 절개의 상징물로 ‘구월황화(九月黃花)’, 국화를 등장시키고 있다.
초사(楚辭)를 쓴 굴원(屈原) 같은 이는 야산의 감국을 그냥 씹어먹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흉내낼 분은 내보시라. 기자는 단골주막에 부탁해 화향입주법으로 만든 황국주를 벗님 두엇 불러 즐길 요량이니까.
그때 ‘황국에 단풍은 어떠한고...’하는 사절가 한 대목을 꾸리고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하며 이정보의 시조를 마무리하리라.
글 한송주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