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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해탈 5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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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굿따라 니까야》
20240219
제목: 해탈 경 (A5:26) / 속박에서 벗어난 평온함을 성취하는 5가지 방법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1UDau13US5o?si=VZa1o2tTxbAmq9x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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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비구들이여,
해탈의 다섯 가지 조건이 있나니 거기서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머물 때 아직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게 되고, 아직 다하지 못한 번뇌들은 다하게 되고, 아직 성취하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은(瑜伽安隱) 즉, 속박에서 벗어난 평온함을 성취하게 된다.
무엇이 다섯인가?
(1)
비구들이여, 여기 스승이나 어떤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가 비구에게 법을 설한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첫 번째 조건이다.
(2)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두 번째 조건이다.
(3)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한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세 번째 조건이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본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네 번째 조건이다.
(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어떤 한 가지 삼매의 표상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다섯 번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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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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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모든 수행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내용인데요.
왜냐하면 선정(禪定)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내가 지금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내가 지금 환희 한지 희유한지를 보면 알 수가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랍니다.
불교에서는 이 사바세계의 인간들을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고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일반 중생들의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수행자 단계이고
세 번째 단계는 깨달음 단계이고
네 번째 단계는 증득 단계이고
다섯 번째 단계는 성불의 단계랍니다.
네 번째 단계인 증득을 했다 해도 아직은 조금 부족한 단계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에 대해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시길 부처와 가까워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부족하다 하셨답니다.
이 다섯 가지 단계 중에서 오늘 내용은 두 번째 단계인 수행에 관한 내용이랍니다.
수행자 단계에도 불교에서는
성문사과(聲聞四果) 또는 1지 보살 10지 보살하는 식으로 나누어지기도 하는데요.
오늘 내용이 왜 중요하느냐 하면 오늘 내용 안에 내가 지금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하고 있는지 그 기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점이란 선정(禪定)이고요.
쉽게 말하면 내가 지금 선정에 잘 들어있는지 그렇지 못 한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방법으로 수행을 하시던 선정에 들지 못하면 그것은 수행이라 할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선정에 들지 못하면 그냥 앉아만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졌다 그러는 것이고요.
몇 시간을 앉아 있던 몇 분을 앉아 있던 선정에 들지 못하면 그것은 그냥 앉아 있는 무기공에 빠져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내가 선정에 들었는지 아직 못 들었는지 알아보는 기준점이 필요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오늘 세존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전체 내용이랍니다.
이러한 것을 아시고 오늘 내용을 보시면 좀 더 이해가 빠르실 건데요.
그럼 오늘 내용을 같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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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들이여,
해탈의 다섯 가지 조건이 있나니 거기서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머물 때 아직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게 되고, 아직 다하지 못한 번뇌들은 다하게 되고, 아직 성취하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은(瑜伽安隱) 즉, 속박에서 벗어난 평온함을 성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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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행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제멋대로 수행을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나 스스로를 감독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꾸 제 경우를 예를 들어 뭐 합니다만 제 경우는 매일 새벽 2시 반에서 3시쯤 일어나 30분 정도 운동을 하고 상황에 따라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알람을 맞추어 놓고 선정에 들고 있는데요.
이렇게 까지는 못하더라도 수행을 진짜로 해보고 싶은 분들은 일정한 시간을 내어서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선방에서만 수행을 하고 평시에는 안 하면 백날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생활에 여유가 좀 있으신 분들은 가정을 떠나 방을 하나 잡아서 하면 좋고 그렇지 못하신 분들은 조용한 곳을 찾아 꾸준히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알아차림에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일상생활을 하시면서도 그때그때 알아차림을 하면서 알아차림을 놓칠 때에는 "어? 내가 또 놓쳤네?" 하면서 나 스스로를 감독하고 격려를 해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도 일을 하면서 하다 보면 당연히 놓칠 때가 많이 있답니다.
이럴 때에 제 경우는
"어? 또 놓쳤네?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뭐!"
하면서 제 자신을 다독여주고 격려를 해준답니다.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이지요.
"그래 태현아 괜찮아, 지금까지도 잘 해 왔잖아,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집중을 해 보자."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감독하고 다독여 주고 격려를 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자의 길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외롭고 힘들 수 있는 그런 길이라 내가 나 스스로를 돌보아 주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할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초보자분들은 더욱 그러하고요.
수행자의 길은 나 혼자 갈 수 박에 없는 그런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옆에 도반들이 있더라도 결국 이것은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나 스스로를 감독해 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줄 수 박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아직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게 되고, 아직 다하지 못한 번뇌들은 다하게 되고, 아직 성취하지 못한 위없는 유가안은(瑜伽安隱) 즉, 속박에서 벗어난 평온함을 성취하게 된다."
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열반의 경지에 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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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스승이나 어떤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가 비구에게 법을 설한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첫 번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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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중요한 내용은 [체득(體得)]이랍니다.
체득이란 몸소 체험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제가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불교나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랍니다.
그럼 어떤 체험의 종교냐 하면 불성 체험이랍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성령체험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체득(體得)이라 하는 것이고 증득(證得)이라 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영접(迎接)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체험이란 어떤 체험을 말하느냐 하면?
환희와 희열에서 오는 몸도 엄청 가볍고 마음도 엄청 편안한 삼매에 드는 체험을 말한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희와 희열이란?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기쁨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랍니다.
그리고 체험에 관한 내용은 신약성서에 아주 많이 잘 묘사가 되어있는데요.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바울의 이야기인데요.
그 외에도 신약성서에는 내 주를 찬양하는 내용들이 도배가 되어있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 주]가 내 안에 존재하는 성령(불성) 자리를 뜻하는 것이고요.
제대로 된 알아차림 수행을 하게 되면 찬양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같은 경우는 기존에 유대인들이 절대적인 신인 하나님을 숭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부처님처럼 들어 내놓고 성령(불성)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할 수가 없었답니다.
만약에 그랬다간 당장 모가지가 댕강했을 거니까요.
중동 지방은 지금도 자신들의 신과 뜻이 안 맞으면 돌로 사람을 쳐 죽이는 그런 곳이니까요.
그리고 지금 기독교인들도 이러한 참 진리를 모르고 있답니다.
지금도 기독교는 불교처럼 "부처님" "하나님" 하면서 명호만을 부르짖고 있으니까요.
내주 안(내 안에)에 불성(성령)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 : 불교에서 말하는 환희>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ko.dict.naver.com/#/entry/koko/8729e633f0ad41999918be981eb44a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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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처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란
이렇게 체험하는 자체가 삼매라는 뜻입니다.
(※)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이렇게 체험을 해보신 분들은 제 경우처럼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수행에 빠져들 수 박에 없게 된답니다. (※)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성령 충만인 것이고요.
알아차림을 통해 불성 속으로 삼매에 들게 되면 그 자리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환희와 희열을 느끼게 된답니다.
그래서 찬양도 절로 나오는 것이고요.
그리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지혜와 해탈도 맛보게 되는 것이고요.
그리서 부처님께서도 본문에서
[이것이 해탈의 첫 번째 조건이다.]
라고 말씀하신 거랍니다.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이유도 현재에도 이러한 체험 속에 안주해 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들에게도 강력히 추천을 드리는 것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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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두 번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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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두 번째 단계인 이 내용 또한 아주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여러분들이 배운 이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라는 뜻입니다.
이 내용 또한 예수님 말씀과 너무나 일치하는 가르침이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도에서 불교를 배워서 당신의 태어난 곳에 이 법을 알리셨다는 것인데요.
아무튼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마가복음 1장 1절 ~)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라고요.
이 내용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포살(布薩)이고 방금 전 부처님이 말씀하신 "외우고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한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 성경 내용에도 보면 불교처럼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암호처럼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중동에서는 지금도 하나님을 앞세우지 않으면 모가지가 댕강한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이 내용 또한 불교식으로 말하면 "선지식인을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라는 내용이랍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뜻이지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광야란 아주 척박하고 험난한 길을 말한답니다 이 말속에는 죽음을 각오한 그런 말이랍니다 왜냐하면 중동에서의 광야란 곧 죽음을 뜻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은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죽음을 각오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곧 올 것이니 미리 준비하고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곧게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이 내용을 불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업식(죄)의 해탈(사 함)을 받게 하는 포살(회개)의 해탈(세례/죄 사함)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포살(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해탈(세례)를 받더라"
가 된답니다.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는 먼저 자기 자신의 잘못(죄)을 인정하고 참회하고 회계하는 데에서 모든 수행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을 하거나 마음먹으면 도저히 해탈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살(布薩)이 중요하다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가운데 자신도 더욱 본성의 환희와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본성의 삼매에 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 경우도 이러한 글들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법을 전하는 이유도 이러한 일환(一環)인 것이고요.
참고로 제가 틈만 나면 성경 말씀을 올리는 이유는 이 글은 여러 명의 목사님들과 신부님들도 같이 보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기독교 인원수도 많이 들어서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상담 문의가 자주 올라오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참으로 이분들에게 많은 감사를 드리고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오늘 부처님 말씀대로 이 법을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 얼마나 환희하고 희유(嬉遊) 한 지 모른답니다.
그 어떠한 즐거움 보다 재미있고 보람이 있답니다.
이것이 방금 부처님이 말씀하신 해탈의 두 번째 조건이라는 뜻이고요.)
(제 경우는 솔직히 가죽 두루마리에 적혀 있다는 원본 신약성서를 교황청에서 저에게 보여준다면 통역사와 함게 완벽하게 해석해낼 자신이 있는데요.
그 안에는 분명히 성령을 영접하는 방법도 자세히 수록되어 있을 것이고요.
솔직히 지금 보고 있는 성경 책들은 깨어있는 선지자가 해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자들이 해석해 놓은 것이라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들은 잘못 해석되어 있다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성경 책을 보다 보면 중요한 부분에서 이가 빠져있듯 이음새가 "사랑"이나 "영접"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로 마무리가 되어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 경전처럼 성경 책도 분명히 당시 사람들이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잘 정리를 해 두었을 것인데 일반 사람들은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자기식으로 해석을 했다는 뜻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깨어있지 못한 선지자가 아니라 언어 학자들이 해석하다 보니까 자기들 식으로 해석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두루마리 원본 신약성서를 900 여가지가 넘는 해석본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무난한 해석본을 지금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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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한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세 번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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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도 일반 수행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먼저 방법을 알아야 할 수 있으니까요.
수행에도 상성제와 같은 순서가 있고 방법들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미리 외워서 알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불성 자리가 바로 내 눈앞에 있어도 알아차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이런 수행자들이 많이 있고요.
아무리 수행만 열심히 하면 뭐 하겠습니까?
경허선사 말씀대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들이나 핵심은 모르고 있고 절반 박에 모르고 있는데요?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다음 순서를 모르고 있는데요?
쓸데없는 것들만 잔뜩 외워서 법을 가르지고 있으니 염장(鹽醬)을 얻을 수 없는 것이랍니다.
<참고 : 염장 뜻>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cafe.daum.net/119sh/XASd/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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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오늘날 많은 수행자들의 병패(病敗)라 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방금 말씀하시기를 외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하고 따라 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체득하고 법을 체득해야만 이 이것이 해탈의 세 번째 조건이라고 말씀하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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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본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네 번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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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맞는 말씀이랍니다.
[여기 비구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본다.]
불교 내의 어른들을 포함해서 모든 수행자들은 지속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고찰(考察)이 필요하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찰이란 팔정도(八正道)에서 정사유(正思惟)에 해당하는 뜻이고요.
고찰(考察)이란 어떤 것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함이란 뜻입니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한국 불교에서 가장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가르침이랍니다.
왜냐하면 생각에도 여러 종류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에도 망상(妄想)이 있고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유(正思惟)가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망상은 안됩니다.
그러나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유는 꼭 필요하답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가 지금 망상을 하고 있는지 정사유를 하고 있는지 잘 판단을 하셔야 하고요.
특히 본성 자리를 찾는 데에 있어서는 정사유가 꼭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대념처경(大念處經)의 뜻도 네가 지금 처(處) 해진 것을 크게 생각(大念) 해 보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수많은 중생들 중에서도 유독 인간만이 깨닫고 증득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인간에게는 생각의 기능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곧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기도 하답니다.
제 경우도 처음에는 본성 자리가 잘 구분이 안 가서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깊이 고찰을 많이 했었는데요.
아무리 보아도 그 한자리 박에 안 남아있었기 때문에 "아! 몰라" 하면서 그것을 붙들고 늘어졌는데 결국은 그것이 진짜였답니다.
특히 제 경우는 중국에 있을 때 혼자서 경전을 보면서 배운 경우라 초기에는 엄청 헷갈려 했답니다?
많이 헷갈려 하다 보니 자연히 깊은 고찰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 대신 다행히도 망상이 아닌 정사유를 했던 것이고요.
제 경우는 불교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다 보니까 바로 눈앞에서 본성 자리를 보고 있으면서도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무척 헷갈렸던 경우인데요.
(※) 의식만 한 번 더 깨어서 보면 본성 자리는 바로 눈앞에 있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래서 저처럼 헷갈리지 않으려면 오늘 부처님이 하신 말씀대로 먼저 배우고 익혀서 하면 저처럼 헛수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외우고 배운 대로 지속적으로 고찰(깊이 생각) 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곰곰이 잘 생각함) 해 보면서 수행을 하셔야 이것이 해탈의 네 번째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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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어떤 한 가지 삼매의 표상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그때 그 비구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한다.
그가 그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이것이 해탈의 다섯 번째 조건이다.
,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는 이 내용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알아차림 방법으로 해탈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부처님도 방금 이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던가요?
[여기 비구는 어떤 한 가지 삼매의 표상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라고요.
이 말의 뜻은 여러 가지의 알아차림 방법 중에 어떤 한 가지의 삼매의 표상을 잘 취해서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간화선 같은 경우에는 화두라는 표상을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해 보라는 것이고,
조사선 같은 경우에는 마음의 표상을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해 보라는 것이고,
위파사나 같은 경우에는 조견오온(照見五蘊皆空)에 해당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여러 가지 표상들을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느 수행 방법으로 하시던 잘 되는 쪽으로 하라는 것이고요.
(※) 어느 방법으로 하든 지금 보고 있는 나 쪽으로 의식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조견(照見)이 된답니다.
(※) 이렇게 조견을 하는 가운데 본성 자리를 보고 느낄 수 있답니다.
부처님도 새벽 별을 보다가 이런 식으로 본성 자리를 깨달은 것이고요.
표상만 다를 뿐이랍니다.
그러면 누구나
이 법의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와 희열이 생겨나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곧 삼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해탈의 다섯 번째 조건이라는 것이고요.
ㅡ♡
(보충설명)
수행이란 이렇게 묘한 묘미가 있답니다.
이런 묘미를 아셔야 그래야 미묘한 재미나 흥취를 느낄 수가 있답니다.
이러한 체험이나 묘미를 못 느끼면 아무리 수행을 해도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앉아 있어도 별로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답니다.
오늘 부처님 말씀 중에서 중요한 부분은 어느 수행으로 하시던 마음에 환희와 희열과 이로 인해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 답니다.
수행은 힘들고 어렵다고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수행 방법을 잘못 배워서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식으로 하고 있을 공산이 크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 방향만 잘 맞으면 누구나 부처님 말씀처럼 환희와 희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물통 열쇠가 맞으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듯이 이것도 알아차림 방향만 맞으면 누구나 안 열릴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선정이란 본성과 함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성과 함께하는 자리는 결단코 환희와 희열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수행 방법을 바르게 알고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요.
수행 방법을 바르게 알고 한다면 절대로 그 자리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용에서 내가 지금 수행을 어렵고 힘들게 하고 있다면? 내 마음에 환희와 희열이 없다면?
그분은 지금 수행 방법이 잘못되어 있거나 아니면 방향이 잘못되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남들이 하니까 자기도 그냥 앉아 있는 것일 겁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남들의 좌선을 하고 있으니까 자기도 그냥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분들이 많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수행은 정말이지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랍니다.
선정이나 삼매도 정말이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랍니다.
간화선 같으면 그냥 화두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화두를 바라보다 보면 내 몸에서 여러 가지 반응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데요.
특히 좌선과 함게 하면 다리가 저려오거나 갑갑하거나 답답하거나 잡생각이 많이 일어나거나 하잖아요?
생각도 몸의 기능 중 하나이니까요.
이렇게 잡스러운 것들이 몸에서 일어나면 이것이 마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답니다.
이때 화두와 마음을 같이 비교하면서 관찰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오늘 부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여기 비구는 어떤 한 가지 삼매의 표상(화두)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통찰지(예리한 관찰)로 잘 꿰뚫는다.]
랍니다.
조사선도 마찬가지랍니다.
내 마음을 보다 보면 아주 야릇한 것들이 몸에서 많이 일어나잖아요?
위파사나(조견오온)도 마찬가지이고요.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로 인해 우리 몸은 여러 가지 반응들을 보이잖아요?
싫은 것을 보거나 들으면 심장이나 가슴이 떨린다든지 힘줄이 꿈틀 거린다든지 신경이 예민해진다든지 뒷골이 당긴다든지?
아니면
좋은 것을 보거나 들어도 심장이나 가슴이 떨린다든지 힘줄이 꿈틀 거린다든지 하잖아요?
이렇게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게 되면 마음이 화를 내고 즐거워하는 줄 착각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의 핵심이랍니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마음을 번갈아 가면서 관찰하다 보면 "아? 이것이 본성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 이렇게 해서 먼저 본성 자리를 인지한 후 그 후로는 그 본성 자리를 찾아서 계속 바라보고 관찰하다 보면 어느덧 내 것이 되는 것이고 이것을 세존께서는 [알아차림의 확립]이라 하셨던 것이고 이렇게 계속해서 본성 자리를 관찰하다 보면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오늘 내용처럼 환희와 희열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가장 빠르게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간화선으로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좌선을 하고 화두만 들면 그때부터는 내 몸에서 별의별 현상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두만 이겨 내면 즉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만 이겨내면 그다음부터는 마음도 안정이 되는 것이고요.
마치 카우보이가 성난 말을 길들이는 것과 같답니다.
이것이 간화선의 최고 장점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조사선이나 위파사나 같은 경우는 밋밋하거든요?
물론 제 경우는 조사선으로 이것을 해결했지만 지금 사람들은 간화선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귀띔을 해드리는 것이랍니다.
저희가 아주 머나먼 과거 생에 수행을 할 때에는 마음보기 외에는 없었거든요. (진실)
그러나 모든 수행은 그 원리는 같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꼭 좋은 결과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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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성불하십시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꼭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