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령산 청암사 일주문 성당 김돈희 書

천왕문

우비천: 소의 코 부분에 해당하는 터로 옛부터 이 샘물을 마시면 부자가 된다고 전하여온다.

무릉동천 암벽에 새겨진 최송설당(1855-1939) 김천중고등학교 설립자 大시주자

대웅전 2009.10.10 ▲ 1996.6.6 ▼


목조석가여래좌상. 1912년 주지 대운당스님이 중국 항주 영은사에서 조성한 불상(1.26m×0.76m).

달리는 법당 지홍스님 동행 청암사 성지순례 회원들

범종각 입구에 놓여져있는 석물

범종각

목어

법고

육화료

극락전

보광전 42수 관음상이 봉안되어있다.

청암사 전경

고봉당 부도와 탑비: 姜고봉당泰秀화상: 고봉태수(高峰泰秀 1901~1967): 1975년 대강백.
탑비 1988무진년立 덕민당(德旻堂) 풍수(豊水) 撰, 황악사문(黃岳沙門) 현산(顯山) 書.
근세 선교를 겸한 강백으로 25세에 백용성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여 금강산 유점사,마하연 등에서 수행. 해인사, 통도사,은혜사 강사 역임.


부도군

사천왕문 주변에 세워진 공덕비

대운대사 비; 대운당(大雲堂)병택조사: 고종 9년(1905) 당시 주지. 대운당 탑비의 높이 138cm , 귀부 높이 65cm.

회당 비: 회암정혜(晦庵定慧 1685~1741)조사 회당대사 탑비(晦堂大師 塔碑 전체의 높이는 173cm.
조현명撰, 서명균書 김상복刻.


사적비: 높이 180cm 로 1914년 건립 예운당(猊雲堂) 혜근(惠勤) 찬 남전당(南廛堂) 진수(珍粹) 書.

청암사 해우소
불령산 청암사(佛靈山 靑巖寺)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8
수도산(1,317m)은 일명 불영산, 선령산이라고도 한다.
청암사(靑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사적에 따르면 조선 인조 25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당대의 강백이었던 벽암각성(碧巖覺性1575-1660)스님이
제자인 허정혜원(虛靜慧遠)에게 재건토록 하여 중건하였다.
그 후 숙종의 정비(正妃)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당시 이곳의 극락전에서 기거하면서 기도 드렸던 인연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로 조선시대말기까지 상궁(尙宮)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고종 9년(1905) 당시 주지 대운당(大雲堂)스님이 잠결에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꾼 후 한양에 가니
어느 노보살님 한 분이 자신이 죽은 후에도 3년 동안 염불해 달라고 부탁하며 대시주를 했다.
1911년에 화재로 또다시 소실되어 이듬해 주지인 대운(大雲)이 복구했다.
대운당스님은 쇠락한 극락전을 다시 중건하고 萬日會를 결성하여 극락전은 염불당으로서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청암사 강원의 효시는 조선시대 대 강백이며 선사이신 회암정혜(晦庵定慧)(1685~1741)스님께서 주석(主席)하실 때이다.
회암스님은 화엄학에 정통한 교학의 대가였고, 승속의 추앙을 받는 분으로 전해지고 있다.
근래 고봉(高峰)스님과 그의 제자 우룡스님, 고산스님으로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에 박한영이 머물며 강론하는 등 불교 강원으로 맥이 이어졌다.
지형(志炯)스님이 1987년 3월 25일 청암사비구니승가대학을 설립하여 14년에 걸쳐 전(全)도량을 보수하고
부속건물을 신축하고, 보광전에 목조사십이수(四十二手)관음보살상을 새로 조성하여 봉안하였으며,
범종각을 신축하는 등 후학양성에 원대한 발원을 불사에 펼쳤다.
경내에는 일주문.천왕문. 범종각. 정법루. 대웅전. 진영각. 중현당. 육화료(身.口.意.戒.見.利). 선열당. 극락전. 보광전.
요사. 다층석탑. 사적비. 회당(晦堂), 대운당(大雲堂) 비 각. 부도군, 공덕비 등이 있다.
대웅전(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9월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대운(大運)이 중건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 1976년에 청기와로 바꾸었으며,
법당내부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으로, 1912년 주지 대운당스님이 중국 항주 영은사에서 조성한 불상(1.26m×0.76m)이라 한다.
★보광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88호)은 법당내부에는 42수관음보살, 벽면에 산신탱, 독성탱, 신장탱 등이 봉안되었다.
☞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년~1701년)는 조선의 왕 숙종의 계비이다.
성은 민(閔), 휘호는 효경숙성장순원화의열정목인현왕후(孝敬淑聖莊純元化懿烈貞穆仁顯王后).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은성부부인 송씨의 딸이다. 인경왕후가 죽은 1년 뒤인 1681년 계비가 되었다.
그녀가 태어날 때 집안에 광채가 났다고 하며 출산직후에 향긋한 향기가 났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녀의 큰아버지는 그녀가 너무 아름답고 착하여 일찍 사망할 것이 염려되었다고 한다.
당시 중전 인경왕후가 죽은 후 1년 후에 대비 김씨와 서인세력들의 추천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성품이 뛰어난 그녀가 궐로 입궐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입궐 후 소생을 잉태하지 못하여 스스로 숙종에게 후궁들을 들이라고 하였으며
후궁들을 자신의 동생처럼 여기고 항상 행복해하였다.
그 후 숙종이 병석에 눕게 되자 대비 김씨가 기도를 올린다고 하였으나 겨울에 몸이 상할까 염려되어
자신만이 기도를 올려도 충분할 것이라고 하였으나 대비 김씨가 이 말을 따르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가 대비는 곧 사망하고 만다.
그 후 소생들이 나타나지 않자 궁인 장옥정을 숙원에 올리고 후에 소의, 희빈에 올리는데도 도움을 주었으나
왕세자를 낳은 희빈은 기고만장해져서 믿음감이 두터웠던 숙종과 그녀를 갈라놓아 자신이 나라의 국모가 되었다.
하지만 국모가 된 지 10년 채 되지 않아 장희빈의 죄가 밝혀져 그녀는 신망을 잃었고,
결국 폐위된 민비가 다시 궐로 들어가 중전이 된다. 그후 장희빈도 희빈으로 강등되었다가 폐서인되어 사약을 받는다.
하지만 몸이 많이 상한 그녀였던 터라 궐에 들어오고 얼마 안 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明陵)이며 숙종, 인원왕후와 함께 묻혀 있다.
★회암정혜(晦庵定慧 1685~1741)조사 회당대사 탑비(晦堂大師 塔碑 전체의 높이는 173cm로
조현명(趙顯命) 撰, 서명균(徐命均) 書 김상복(金相福) 刻.
★대운당(大雲堂)병택조사: 고종 9년(1905) 당시 주지. 대운당 탑비의 높이 138cm , 귀부 높이 65cm.
★姜고봉당泰秀화상: 1975년 대강백. 탑비 1988무진년立 덕민당(德旻堂) 풍수(豊水) 撰, 황악사문(黃岳沙門) 현산(顯山) 書.
고봉태수(高峰泰秀 1901~1967):근세 선교를 겸한 강백으로 25세에 백용성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여
금강산 유점사,마하연 등에서 수행. 해인사, 통도사,은혜사 강사 역임.
★지형(志炯)스님: 1947년생 1967년 법인스님을 은사로 득도. 청안사 승가대학당. 주지. 12대 중앙종회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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