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y Pellatt and Louis Severance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마 6:19)
오늘은 Henry Pellatt 와 Louis Severance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관광지가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될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이 Casa Loma(언덕위의 집)입니다. 북아메리카에 하나뿐인 대규모 성으로 토론토에 있는 최고의 역사 유물입니다. 필자도 오래 전에 토론토에 갔을 때, 이곳을 가 보았습니다. 참 거대한 성이었는데, 개인 주택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안 되고 중세의 한 성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1911년 캐나다 태생의 Henry M. Pellatt(1859-1939)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발전으로 큰돈을 번 재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짓기 위해 유명한 건축가 E.J.Lenox의 설계로 토론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방이 98개나 되는 거대한 저택을 건축했습니다. 20만 평방피트의 이 성은 3층 건물로 약 3년에 걸쳐 300명의 일꾼들이 동원되었고, 그 비용만 당시 미화 약 350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5 에이커 면적의 대지 위에 지은 캐나다에서 가장 큰 개인 주택입니다.
이 집이 완성된 후, Pellate 가족은 행복에 겨운 삶을 살았지만, 그 기간은 겨우 10년, 그리고 그의 재정 파탄으로 이 대 저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을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자자손손 이 거대한 저택에서 행복과 평화를 누리고 살고 싶었겠지만 어디 인생이 자기 계획대로 되던가요? 이 세상살이는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죽음에 임박해서 또는 그 이전에 깨닫는 사람들도 많지요. 따라서 보다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일찍이 깨닫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시에 Louis Henry Severance (1838-1913) 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난 ‘세브란스병원’이 바로 Severance 씨 이름입니다.
한국 최초 의료 선교사로 나온 Horace Allen,M.D.가 1884년 12월에 일어난 갑신정변 때 명성왕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해 완쾌 시킨 후, 고종 황제의 윤허를 받고 4,000년 조선 역사 처음으로 광혜원(廣惠院)이란 서양 의사가 경영하는 진료소를 세웠습니다. ‘널리 시혜를 베풀라.’는 뜻이었지요. 1885년 4월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 많은 ‘민중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제중원(濟衆院)이라 개명하고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제중원은 처음 갑신정변 때 맞아 죽은 홍영식의 집을 개조해서 진료소를 쓰다, 집이 너무 좁아 을지로 1가 쪽으로 옮겨가서 진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곳 역시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더 넓은 곳을 물색했으나 자금이 없어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당시 병원장이던 O.Avison이 1900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 선교사대회에서 조선 선교 현황에 대한 연설을 하면서 의료 선교 후원에 대해 역설 했습니다. 이 때 Cleveland 장로교회 장로였던 Severance가 그 연설을 듣고 에이비슨 원장을 만나 자기가 병원 건축을 위해 15,000불을 후원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뜻 밖에 얻게 된 이 자금으로 현재 서울 역 전에 대지를 사서 1902년 건축을 시작하여 1904년 현대식 지상 2층, 지하 1층의 병원 건물을 완성한 후 낙성식을 할 때, 이 병원 이름을 ‘세브란스병원’이라 명명(命名)했습니다. 이 세브란스 병원은 국왕으로부터 백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료를 무료로 해 주는 자선병원이 되었습니다.
세브란스 씨는 자기 주치의 어빙 러들로 씨를 세브란스병원에 파송하였는데, 그는 26년을 외과 전문의로 진료 하면서 한국 의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러들로 씨가 한국에 나온 이듬해 Severance 장로는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한 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러들로 의사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Severance 장로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런지 모르는 일이었지요.
Severance 씨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주머니 속에서 낡은 수첩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 수첩에 후원할 곳이 적혀 있었는데, 필리핀 세부병원, 중국 지푸병원, 항주 유니온여학교, 태국 칭앙마이 여학교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곳들을 후원할 자금도 마련해 두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 명의의 집은 단 한 채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본 받은 만한 위인이요 신앙인이었지요.
생전에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받는 당신보다 주는 내가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 세브란스 병원은 1957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었던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 병원이 합병하면서 연희의 ‘연’자와 세브란스의 ‘세’자를 각각 한 자씩 모아 오늘의 ‘연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신촌에 2만평의 부지에 당시 공사비 60만원을 들여 1954년 착공하여 1962년 완공함으로 한국 제일의 병원으로 새 출발하였습니다.
Severance씨는 미국의 저명한 석유회사 Standard Oil Company가 창설 될 때, 유명한 미국 석유 왕 John Rockfellow와 더불어 창립 멤버요 이 회사의 재무이사로 일하면서 많은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그의 부모 두 분 다 의사로 생전에 빈민과 고아를 돌보는 후생 사업을 많이 지원했는데, 그 부모의 본을 받은 그는 은퇴한 후, 모아 놓은 돈을 오하이오 교육국에 많은 자금을 후원하여 2세 교육에 힘썼고, YMCA, 그리고 미국 장로교회 해외 선교에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1904년에는 장로로 미국 장로교회 총회 부총회장으로 섬겼으며, 클리브랜드 시내 여러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할 때 막대한 자금을 희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를 위한 선교회와 선교지에 대학과 병원을 짓는데 적극 후원했습니다. 세브란스 씨는 여러 교회 지원에 매년 당시 미화 10만 불 이상을 Donation 했습니다.
장인인 세브란스 씨의 전기를 쓴 사위는 “세브란스 씨의 전 생애는 기독교 교회 건설에 있었다.”고 기록 했습니다. 세브란스는 L.H.Severance Scholarship Foundation을 만들어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링컨대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1912년에는 L.H.Severance 체육관을 지어 우스터칼리지에 헌납했으며, 1909년 이 대학이 전소 되자 재건 사업에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Severance Library를 지었고, Oberlin대학에 기부를 했으며 기타 여러 교회, 학교, 도서관, 체육관을 지어 일반에게 공여했는데, 이런 그 가문의 기부 문화는 그가 죽은 후 자손들에게까지도 계속 되었습니다.
세브란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Pellatt와 Severance의 삶은 좋은 대비가 됩니다. 세브란스가 1만 5천 달러로 당시 한국 최대의 서양식 병원을 건축한 일을 생각하면, Casa Loma를 건축 할 때 든 비용 350만 달라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 세브란스 병원 같은 병원 건물 약 250개를 건축할 수 있는 자금이었습니다.
그러나 Pellatt는 그 거금을 자기 한 가족이 살 집을 지은 후, 단 10년도 살지 못하고 파산을 했습니다. 그때 그가 적당한 집에 살면서 전 세계 선교지에 250개의 병원을 세웠다면 ‘Henry Pellatt 기념 병원’이 전 세계 선교지에 남아, 그 이름이 아름답게 후세에 남아 있을 것이고, 세계 선교 역사에 그의 빛나는 이름이 영구히 기록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나 교육 사업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오직 자기 가족을 위해 거금을 들여 지어 놓은 집에서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파산하여 알거지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비아냥을 받는 어리석은 자의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재산을 갖고 겨우 자기 가족을 위해서만 쓰고 인류 복지를 위해서는 조금도 쓰지 않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산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세브란스의 전통이 어느 나라에서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Pellatt는 돈의 노예였고, Severance는 돈의 주인이었습니다!
세브란스 가문에 영광 있으라......
오늘 우리는 얼마나 기부할 수 있는지,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書.
출처 : 知人이 보내온 글 사진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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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칸에 다달은 언덕위의 집을 작년 토론토 방문때 못가봤네요.
언덕위에 자신만을 위한 집지은자와,세브란스 병원을 지은 사람은
삶의 기준이 달랐습니다.
세브란스병원 내력,대충은 듣고 알았는데,상보형 덕으로 소상히 알게되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쇠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