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성사
죽교동 317번지 에 위치한 달성사는 해남 대흥사의 수말사로 양산 통도사 출신인 노대련선사가 1915년 4월 8일에 세웠다. 달성사는 건물 6동(대웅전,요사체2,칠성각,명부전, 종각) 건평 71평, 대지 126평으로 경치가 아름답고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절에는 신묘한 효과음을 내는 범종이 있는데 1915년 대흥사에서 노대련선사가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범종의 주조년대는 정조 10년(1786년)이며 이종소리가 매우 청아하게 들려서 목포 팔경시중 달사만종이란 시귀에도 나타난다.
▣ 뒷개
오늘날 북항이라 불리운 곳이다. 항동쪽이 앞선창(앞개)이라 불리웠고 현재 북항을 뒷개라 불리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불리었던 순수 우리말이다.
▣ 마파지
대성동에서 옛 형무소로 돌아가는 길목을 마파지라 했다. 옛날에 말구루마(수레)가 겨울에 미끄러져서 부서진 일이 있었는데,그때 이일을 계기로 '말 마'자, '부술 파'자를 써서 그 근방을 마파지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이 근처는 대성동(신창동, 번창동)이 확장되면서 민가가 뛰엄뛰엄 들어서기 시작되었다. 또한, 이곳은 겨울에 서,북풍이 마주치는 곳이기에 목포에서는 추운 곳중에 하나이고 바람이 마주친다는 뜻의 매서운 바람을 맞받아 치는 곳, 맞바람 부는 곳 등의 뜻으로도 마파지라 불렸다 한다.
▣ 만인계터
목포극장에서 만복동고개로 가는 언덕의 오른쪽을 말하는데 개항당시 지금의 복권과 같은 추첨권을 팔아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추첨을 하였다 하여 만인계터라 불리었다.
▣ 목포진
목포진은 목포시 만호동 4통 3반 1-56번지 일대에 소재하고 있는 유적으로 목포영이라고 불리우며 만호가 지휘 통솔했다 하여 만호진, 만호영, 만호청이라고도 불리었다. 만호진이 설치된 정확한 연대는 세종 21년(1439년 4월 15일) 의정부가 무안 현의 목포는 왜적침입의 요해처이므로 만호를 파견하고 병선을 주둔토록 건의하여 세종의 재가를 받아 냈다. 이것이 목포만호진의 역사적인 출발점이다. 현재의 목포진 자리에 목포진성이 처음으로 구축된 것은 연산군 8년 어간임이 밝혀지며 당시 중지 건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호남읍지"에는 성석축의 둘레를 215보, 높이를 7철, 여첩의 둘레를 140보, 높이를 2척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성의 동쪽에 둘레가 35보인 못이 하나 있으며 성문으로는 남문과 서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목포진은 근대적 행정.군사제도의 개편 요구에 따라 목포 개항 2년 전인 1895년(고종 32년)7월 15일 칙령 제 141호로 폐진되었다.현재는 목포만호비와 만호동 일대 일부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 등이 만호진의 흔적을 알려주고 있다.
▣ 미륵불
달성사에서 유선각쪽으로 가는 길목, 하늘에 닿을 듯 드높은 절벽 하단에 거대한 미륵불이 있다. 높이 13미터의 이 미륵불은 달성사 주지였던 노대련선사가 조성하였다고 구전될 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삼학도 전설의 주인공인 선비가 이곳에서 세 처녀가 타고 있는배를 향해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부동명왕상
부동명왕은 대일여래가 모두 악마와 번뇌를 항복시키기 위하여 분노한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으로 오대명왕의 하나이다. 1920년대 말 일인들이 일본 불교의 부흥을 꾀하기 위하여 일등바위 아래 암벽에 조각했다. 철퇴를 들고 있는 부동명왕상 옆에 '부동명왕'이라 새겨져있으며 현재도 주민들이 찾아와 불공을 드리고 있다.
▣ 불종대거리
현재 신안군청이 있는 곳에서 북교동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예전에는 불이 나는 곳을 살피고 종을 치는 철탑이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주변에 장이 섰었다. 이곳이〈쌩기장터, 쌍교장터〉 라 불리었다.
첫댓글 윤영아 덕분에 잘 읽었어! 재미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