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말씀입니다.
어제는 농촌교회에서 평생을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신 목사님 부부께서, 한우소고기를 푸짐하게 사오셨어, 우리집에서 집밥으로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은퇴하신지가 칠팔년이 지났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이 전혀 식지를 않으셨음을 봤습니다. 지금도 기도하는 동역자들과 동대구역 광장이나 다른 번화가에서, 노방설교와 함께 노방전도를 하시기도 하신다하셨습니다. 말씀에 붙잡혀 사시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들도 오늘은 시편 팔십 구편, 26절 말씀에 붙잡혀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어봅시다.
26절 :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아멘
'나의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봅니다.
채수아 네임트리 대표의 '내 아버지' 라는 수필에 "누군가 나에게 삶의 멘토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 라고 답을 한다. 항상 큰 일을 앞두고 아버지를 떠올랐다." 라는 글이있었습니다.
채수아 대표의 이런 글은 내게는 좀 생소한 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아버지라 불러볼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손녀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엄마와 아빠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말을 처음 배울 때, 아빠라는 말을 했섰을까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아빠라는 말을 듣기만했지 내가 아빠하고 불러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나는 아버지하고 하루에 몇 번인지 모르지만 자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자주 부르는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내가 처음 은혜를 받고 기뻣던 것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아버지하고 부를수가 있게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전에는 한번도 불러보지 못했던 호칭이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도 계시고 아버지라는 호칭도 알지만 말을 할수 없는 농아자가 어느날 입이 열리게되었을 때, 아버지하고 부를수 있게 되었다면 그 기쁨과 그 감격을 말로다할수가 없을 것입니다. 나역시 아버지라는 호칭을 몰라서 불러보지못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하고 불러볼 아버지가 없다가, 하나님 아버지가 생겼으므로, 하나님을 아버지하고 부를수 있었을때의 그 기쁨과 그 감격을 아는자만 알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기쁨과 그 감격으로 하나님을 부를때, 하나님하고 부르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꼭 하나님 아버지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한번도 불러보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제는 부를수가 있다는 생각에서 '하나님 아버지' 하고 늘 부릅니다. 혼자 기도할때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렇게만 부르고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수 있도록 해주신 은혜가 감사하고 기쁘고 좋아서 잠시 동안 숨을 멈출때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하고 불러볼때마다, 나는 한없이 아주 작아짐을 느낌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고 자애로우신 나의 아버지로 다가오십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주는 나를 불러주신 나의 아버지이시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수 있는 것은 택한 자녀들만이 할수 있는 유일한 특권입니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는다함은 당당하게 거침없이 떳떳하게 주저함 없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하고 힘차게 부른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때에 너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무리 불러도 꾸짖지 않으시고, 구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자애로우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 부를수 있도록 우리를 양자삼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늘부르면서 살게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