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속의 여성 '아니마' 여성 속의 남성 '아니무스'
누가 보나 강직하고 남자답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있다.
그 리더십, 결단력과 추진력, 동료간의 우애, 개인적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공정무사한 자세로 하여 그는 주변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그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그는 잔소리꾼이고 변덕쟁이라고 한다.
사사건건 작은 일을 가지고 짜증내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가족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여기저기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하고 공정무사는커녕 어린애 같고 자기 중심적이며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맞추어 주기 어렵다.
그래서 식구들은 아버지가 퇴근해서 돌아올 무렵이면 슬며시 제 방으로 숨어 들어가,
접촉을 피하려 하고 이것이 또한 그의 불만이다.
이 남자를 생각해 보자. 누가 보아도 남자다운 남자,
사회에서 말하는 남자 이미지(남성의 페르조나)에 일치된 행동을 하는 남자가
집에서 보이는 약하고 변덕스런 성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무대에서 보인 이 남자의 인격 속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인격 - '여자 중에서도,
유치하고 미숙하고 열등한 여자'라고 사회가 말할만한 성격이다.
그것은 평소에는 무의식에서 잠자고 있다가
그가 사회적 의무와 요청에서 해방되는 순간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그 남자의 아니마, 남자 속의 여자이다.
또한 누가 보아도 여자답다고 할 만한 사람이 있다.
섬세하고 아름답고 조용하며 항상 남의 그늘에서 나서지 않고
겸손하며 매사를 거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씨 고운 여자 - 그녀가 어느 날
사소한 일로 흥분하여 자기 아이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것을 본 사람이 그녀를 "딴 사람 같았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이때 그녀의 여성 페르조나 밑에 미숙하고
열등하며 원시적인 상태로 남아 있던 남성성 - 여자 속의 남자, 아니무스를 본 것이다.
아니마(Anima-Seele-심령 : 心靈) .
아니무스(Animus-Geist-심혼 : 心魂)는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이 무의식에 대한 오랜 탐구 끝에 발견한 개념이며 남성과 여성의 페르조나 - 외적 인격에 대한 내적 인격을 말한다.
남자는 남자일 뿐 아니라 그 마음속에 여성적 요소를,
여자는 그 마음속에 남성적 요소를 가지고 태어나고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인격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가설의 골자이다.
남자는 남자다움을 배우는 동시에 이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말고
내면의 여성적 감성(感性)을 키워 나가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움을 배우더라도 마음속의 남성성 - 로고스(Logos),
곧 판단하는 힘과 지혜를 발전시켜야 한다.
남성의 아니마는 '기분'으로 표현되고 여성의 아니무스는 '생각' 또는 '의견'으로 표현되는데 아니마가 미숙한 상태에 있으면 앞에 예를 든 남자처럼 '짜증'과 '변덕스런' 경향을 나타낸다.
여성의 미숙한 아니무스는 폭발적인 공격성과 따지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런 때 여성은 경직된 의견과 논리로 남성을 공격하며,
남성의 미숙한 아니마는 이런 여성의 따지는 말버릇을 가장 싫어하고 이에 상처를 입는다.
아니무스는 '다수의 의견'이라고도 한다.
그 의견은 보편 타당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숙한 아니마는 감상적인 분위기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여성의 아니무스는 그런 흐리멍덩한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미숙한 아니마의 소유자에게 여성의 아니무스가 논쟁을 시작하면 남성은 기겁을 해서 도망가거나 조금 대응을 해보다가 궁지에 몰리면 화를 버럭 낸다.
부부싸움을 반복하는 사람들,
우리는 성격이 안 맞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무의식의 미숙한 아니마와 미숙한 아니무스가 서로 자극하고
서로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과거 생활사를 보면 서로 상대방에게 둘도 없는
이상적 남성상과 여성상을 보고 결혼한 경우이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모습에서 본 그 이상적인 남성과 여성상은
또한 바로 그들 자신의 아니무스, 아니마의 인격상의 일면이었던 것이다.
아니마나 아니무스는 그 용어의 뜻이 말하는 것처럼 매우 깊고
다양한 의미를 갖는 원초적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이 간단한 계몽서로는 부족하다.
아니마는 창녀에서 성녀에 이르는 여러 측면을,
아니무스는 타잔과 같은 육체적 영웅에서 간디와 같은
지혜로운 자에 이르는 여러 발전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아니마는 인류가 여성에 대하여 체험한 모든 것의 침전이고
새와 사슴, 해와 달과 같은 자연의 상징으로도 표현된다.
아니마, 아니무스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그림자를 살리는 것보다,
더 어렵고 엄청난 창조적 작업이다.
남성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에만 맞추지 말고
정서적인 취미를 익히고 작고 섬세한 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여성이 여성다움에 머무르지 말고 공부하며 일함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기를 때,
남성은 보다 깊은 공감능력과 안정된 정서를 지닌 존재로,
여성은 따지는 여자에서 지혜로운 여성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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