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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도사를 조사해보도록하자.
류도사에 들어서자 캐스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자주 여기서 생각에 잠겨있곤 했지……뭐, 생각할 거라도 있는 걸까.
「……전에 성배전쟁에 대해서 물었을 때는 매몰차게 거절당했지만……」
……혹시 지금이라면
진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진실을 묻는다고……?
무슨 바보 같은 소리.
캐스터에게 물어볼 건 다 물어봤다.
이 이상 마녀에게 캐묻는다는 것은 사건의 진상에 접근한다는 소리다.
너무 무모하다. 아무리 평화로운 생활에 적응했다고 해도 저것은 순수한 마녀.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는 자는 가차없이 배제한다.
눈 앞에 있는 먼지를 털 듯이 주저 않고.
「……………………」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생존 자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자”와 함께 하는 생활이라면 “습격하기 좋은 틈”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죄이다.
「……그래. 저 녀석은 배신의 마녀 메디아.
인간의 적으로서 받들어진 반영웅」
그 일화를 생각해낸다.
대 마녀의 가르침을 받은 마도의 왕녀.
신들이 다스리던 오랜 옛날, 수많은 나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모의 마녀라는 이름을….
왕녀 메디아.
그리스 세계에서 동쪽 끝으로 여겨지던 흑해동안국의 왕, 아
이에테스의 딸.
마술의 여신 헤카테의 가르침을 받은 무녀이며 왕의 딸로서 금이야, 옥이야 귀여움을 받던 공주.
바깥 세계를 모른 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난 공주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녀는 자유를 가져다 줄 날개를 원한 것도 아니고 광대한 세계에 동경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태어나 자란 나라를 사랑하고 산 속에서 한 평생을 마치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광을 갈망하는 영웅의 도래로 소녀의 바람은 무산되었다. 바깥 세계에서 온 아르고호의 캡틴.
콜키스의 보물, 황금의 양모피를 찾아 나타난 영웅 이아손 때문에 메디아는 나라를 배신하게 된다.
메디아는 이아손을 지지하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저주로 맹신적으로 이아손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디아는 부왕을 배신해 황금의 양모피를 이아손에게 건네주고 남편이 된 이아손과 함께 콜키스를 탈출한다.
콜키스 왕은 딸을 되찾고자 아르고호을 뒤쫓지만 저주에 걸린 메디아는 동행하던 동생을 갈갈이 찢어 바다에 뿌려버린다.
콜키스왕은 탄식하며 죽은 아들의 유해를 모았고 그 틈을 타 이아손과 메디아는 흑해동안을 뒤로 했다.
외적은 이렇게 뿌리쳤다.
하지만 아르고호에 떠돌던 불온한 공기는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자국의 보물을 남자에게 바친 공주.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동생에게까지 손을 댄 여자.
아르고호에 모인 영웅들은 입을 모아 콜키스의 왕녀였던 계집을 비난하고 중상했다.
무섭고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영웅들은 소녀를 격리했다.
다행히도여신의 저주에 걸린 메디아에게 남자들이 보내는 비난의 시선 따위 바닷바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이아손의 따뜻한 말 한 마디면 됐던 것이다.
“미안하다. 하지만 잘했어, 메디아”
그래.
사랑하는 남자의 말 한 마디면 영웅들의 멸시도 소녀는 견딜 수 있었다.
나라를 버린 후회도, 아버지를 배신한 죄악도, 동생에게 손을 댄 벌도 견딜 수 있었을 텐데.
남편은 한 번도 그런 따뜻한 말을 건네주지 않았다.
돌아가는 항해는 이렇다 할 파란도 없이 끝났다.
이아손은 이국의 공주를 아내로 삼고, 맹약의 증거인 황금의 양모피를 손에 들고서 자국 이올코스에 개선했다.
하지만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건 부모님의 죽음과 약속의 파기였다.
『황금의 양모피를 가져오면 네 왕위를 인정해주지』
그렇게 이아손에게 약속했던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는 비열하게도 약속을 그저 말장난이었다며 웃어넘긴 것이다.
분노한 이아손은 데리고 온 아내에게 명령한다.비열한 찬탈자, 왕 펠리아스를 살해하라고.
아무리 이아손에게 흠뻑 빠져있다 해도 메디아는 아직 소녀였다.
동생에게 손을 댄 일로 폐인상태에 있던 메디아에게 이아손은 집요하게 되풀이했다.
죽여라.
죽여라.
약속을 어긴 펠리아스 왕을 죽여라.
왕의 혈족도 죽여라.
그래, 왕만으론 성이 안 차.
그 눈에 거슬리는 후계자 세 명의 왕녀도 죽여버려라
암살의 준비는 이아손에 의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이아손의 집에 왕과 딸들을 초대한다.
중앙에는 마녀의 커다란 솥.
소녀가 대마녀 헤카테에게서 받은 신비의 기본이며, 비의 결정.
“잘 오셨습니다, 나의 왕이시여.”
문득 정신이 들자 이미 끝은 시작돼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신의 저주를 거부하지 못하고, 메디아는 스로 마술을 왕의 살해에 사용한다.
“펠리아스 왕이시여, 제 아내의 비술을 한 번 보십시오.”
사랑했던 남자가 자랑스러운 듯 얘기한다.
소녀는 울다 지친 눈으로 커다란 솥을 계속해서 젓는다.
“이것이 젊음을 되찾는 비술.
제 아내가 자랑하는 마술입니다.”
그렇다, 어느 샌가 사랑하게 되어버린 남자가 얘기한다.
소녀는 거스르지도 못하고 마술을 계속한다.
커다란 솥을 젓는 손은 너무나 지쳐서 납덩이같다. …생각해보면 조국을 떠난 뒤, 충분히 쉰 적이 있었던가?
몸, 마음, 모든 것이 소모되어 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지쳐있으면 잊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슬픈 감정도 옅어져 버리고 만다.
…아, 자신은 이런 것을 위해서 마술을 배웠던가…?
늙은 양을 잘게 다져 커다란 솥 안으로….
지글지글 부글부글 녹아서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늙은 양은 메디아의 손에 의해 재생된다.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눈도 반짝인다.
늙은 양은 새끼 양으로 다시 태어난다.
왕은 감탄하면서 자기도 다시 젊어지고 싶다고 청했다. 소녀는 얘기한다.
사랑하는 남자가 가르쳐준 대로
“그러기 위해선 일단 몸을 잘게 다져야만 합니다. 이 비술은 일단 한 번 죽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왕은 두려워 않고 그 역할을 사랑해 마지않는 세 딸에게 맡겼다.
세 딸은 부왕을 잘게 다져서
커다란 솥에 뿌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다지다니 이런 잔인무도한 딸들을 보았나!”
부왕은 살아나지 않았다.
세 왕녀는 울며 소리쳤다.
사랑하는 남자는 여자들을 묶은 후,
“신은 절대 아버지를 죽인 죄를 용서치 않으리!
펠리아스 왕의 딸들이여, 너희들의 미천한 목숨으로 사죄하라”
세 딸은 울며 소리쳤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신이 아니라 자신들이 죽인 아버지에게 용서해달라고 울며 소리쳤다.
이아손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남자는 여자들을 단 한 명도 용서치 않았다.
여신의 저주는 그때 사라졌다.
흐렸던 마음은 그제서야 맑아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라를 배반하고 동생을 죽였다. 간계로써 왕을 죽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세 공주가 죽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이 날,소녀는 틀림없는 마녀가 되었다.
왕좌를 차지한 이아손의 번영은 한 순간이었다.
왕의 살해를 백성들이 알게 되어 이아손과 이국의 마녀는 이올코스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이아손은 마녀를 데리고 그리스를 떠돌며 방랑 끝에 코린트에 당도하게 되었다.
코린트 왕은 이아손을 환영하며 이윽고 딸인 글라우케와의 혼인을 제안한다.
글라우케와 혼인하여 코린트의 왕좌를 움켜쥘 것인가.
마녀를 아내로 둔 채로 왕의 비호를 계속해서 받을 것인가.
이아손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마녀와의 사이에서 두 자식을 얻었지만 이아손을 말릴
연줄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아손은 마녀를 버리고 글라우케에게 가버렸다.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당신을 위해 나라도 버렸는데”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는데”
“이 아이와 저를 불쌍히 여긴다면 부디”
그렇게 울며 달라붙는 마녀에게 남자는 말한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내가 나라를 잃은 것은 너 때문이지 않은가.
두려운 이국의 마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아아, 아….”
…정신을 차리니 돌아갈 조국은 멀고,
아무 소원도 없는 채로그녀는 이국의 땅을 밟고 있었다.
…그렇게,
긴 방랑의 끝에 단 하나 소원이 생겼다.
하지만 어찌 이루리요.
이제 모든 것이 도원향의 꿈.
소녀는 추한 마녀로 변모해 돌아가봤자 그 누구도 어렸던 공주라 믿지 않으리.
…자신은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어린 시절을 보낸 성은 지금도 변함없이 초록으로 뒤 덮여있는데.
이아손이라는 남자가 혼인하는 날,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멸망했다.
신부는 화염에 휩싸였고 새 왕이 될 예정이었던 영웅은 다시 방랑의 몸으로 돌아갔다.
그 뒷얘기는 더 이상 전설에 남을만한 얘기가 아니다.
영웅들을 거느렸으며 아르고호의 수장이었던 청년은 옛날 선박의 잔해를 추억하다 쓰러진 선주에 깔려 숨을 거두고
그녀가 데려온 소녀는 마녀가 되어 그리스 땅을 한없이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회색의 해안에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본다.거듭쌓아온 수많은 죄와놔두고 온 수많은 꿈.
그것이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 해도
마치 속죄인 냥, 그녀는 영원히 추억하겠지.
눈이 부셨다.
꿈의 파편을 보고 있었던 듯하다.
「……아, 맞다. 이야기를 들으러 왔었지.」
괜찮다. 조심하면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으로 호랑이 굴에
뛰어드는 꼴이지만 이번만은 저 마녀도 기분이 상당히 좋다.
거슬리는 질문도 한적함을 달래는 셈치고 넘겨줄 것이다.
「또 왔나요?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용감하네요.제가 혼자 있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을 텐데요?」
본인이 말한 대로 캐스터는 혼자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마술을 쓸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남의 눈이 없으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라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다.
캐스터가 한 번 폭주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제 3자가 있으면 냉정한 마녀로서 처신할 수 있지만 혼자가 되면 감정이 폭주하고 마는 것이다.
……저기, 뭐냐…
사람은 다들 정서불안정과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다지 않은가.
「아니, 좀 궁금한 게 있어서. 지금 기분이 좋아 보이길래 이 기회에 물어두려고.」
희미하게 공기가 죄어든다. 내 상황을 살펴서 뭘 물을 것인가 살핀 것이겠지.
「뭔가요? 그렇게 좋은 얘기는 아닐 거 같은데.」
「그냥 질문. 오래 있는 것도 무섭고 하니 바로 묻겠는데 말이야.
네가 이 상황을 해결할 맘이 없다는 건 알고 있어. 그것에 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맘도 없어.
그냥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어.
너 정도의 마술사라면 이 4일간의 일 따위는 금방 조사가 끝났을 거야.
그럼 솔직한 이야기로 너는 진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걸요.
제가 모든 구조를 알고 있다는 소리인가요?」
빙긋 웃는다.
방금 전의 미소와는 정반대로 죽음을 연상시키는 미소다.
「후후, 안 됐지만 틀렸어요, 아가.
확실히 처음엔 온갖 수를 다써서, 아슬아슬하게 하늘을 파악할 뻔했죠.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 한 걸음을 놔두고 멈춰서 있어요.
유희는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끝나잖아요? 그래서 해명하기 직전에 관뒀죠.」
「…………흠, 관뒀다고…?
그게 그거잖아. 결국은 안다는 소리 아냐.」
「그래요. 하지만 아직 누구한테도 알려준 적은 없어요.
범인을 맞추면 사건은 끝나버리는걸요. 이 범인은 아무 짓도 못할뿐더러 억지로 붙잡을 이유도 없으니까요.」
「그렇군. 희생자가 안 나오니 관전하겠다는 건가.
……그러고 보니 너는 보기보다 수동적이었었지. 그럼 이번에도 방관해 주겠지?」
「……제가 먼저 손을 댈 생각은 없다고 했잖아요.
최후의 때까지 그런 소릴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끝난다고 한다면 저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아요.
……아뇨, 제가 아니라 제 마스터가, 겠지만.」
그것도 같은 의미네요, 라며 한숨을 쉰다.
배신의 마녀 어쩌고 하는 말을 듣지만 캐스터는 마스터인 쿠즈키 소이치로에게 절대복종이다.
……뭐, 흠뻑 빠진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본인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쿠즈키와 캐스터 외에는 다 아는 사실이다.
쿠즈키 소이치로가 캐스터에게 『도와줘라』라고 하면 캐스터는 무슨 일이든 따를 것이다.
「………….너는
계속 내버려두고 싶지만 쿠즈키 선생님이 해결해, 라고 하면 도와주겠다는 거야?」
「그래요. 범인을 방해할 생각도 없지만 협력도 안 할 거에요.
아뇨, 못 해요. 끝내고, 끝내지 않고는 저로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거슬린다는 거죠.
계속하고 싶다면 질릴 때까지 내버려두면 될 것을 자신이 나서서 방해하려고 드니까요.
정말, 당신을 몇 번이나 죽이려고 했는지.」
「……윽. 혹시나 물어보는 건데 지금 거 농담 아니지?」
「어머, 제가 농담을 입에 담는 여잔지 아닌지는, 당신이 제일 잘 알지 않나요?」
「………………」
등줄기로 2단계로 얼어붙었다.
역시 여기에 오래 있는 건 좋지 않다.
「……후. 네가 뼛속까지 방관자라는 사실은 잘 알았어.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고 싶은데
……저기, 근데 왜 안 죽였어? 한 번 정도는 상관없잖아?」 아니, 상관있지만.
캐스터니까 한 번 쯤은 푸욱 찔러서 죽일 법도 한데.
「어째서냐뇨, 당연히 마스터가 한 번도 그걸 원하지 않았으니까죠.」
딱 잘라 말한다. 그 간결함에 눈을 가늘게 뜬다.
「그래. 그렇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을게.
만약 쿠즈키 소이치로가 이 이상한 상황을 눈치챈다면 어떻게 할 거 같아? 해결하려 할까, 아니면 이대로 놔두려 할까?
그러니까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너희는 어떤 입장이야?」
한 순간, 완전히 공기가 동결한다. 3초 사이에 4번은 죽을 수 있었다.
캐스터는 말 그대로 시선만으로 나를 죽일 만한 마력을 끌어 모아서
「해결할 거에요.
소이치로의 선악은 아가와 다르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은 바로잡고 마는 사람이니까요.」
살짝 비애가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너의 마스터는 나를 닮았군.」
허파에 고여있던 우울을 내뱉으며 경이를 담아 독백했다.
「아니에요, 당신이 소이치로를 닮은 거죠.」
되돌아오는 목소리에 자랑스러운 듯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 그럼 나는 이만.
재미없는 얘기를 꺼내서 미안했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중립을 지켜 줘.」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렇네요. 혼자서 발버둥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모든 것을 끝낼 때가 오면 배웅 정도는 해드리죠.」
「」 망연자실.
너무 의아한 말에 벌려진 입이 닫히지 않는다.
「뭔가요, 그 얼굴은. 제가 하는 말을 못알아 들었나요? 전 최후의 때가 오면….」
「알아 들었어. 도와준다고 말하는 거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기대할게.
당신들이 도와준다면 그게 혹시 가장 큰 격려가 될지 모르니까.」
캐스터의 뜰을 뒤로 한다.
로브를 다시 쓰고 배웅한다. 기분나쁜 이야기다.
이렇게나 마음이 상쾌한데.
한 순간 그녀의 모습이 불길한 과거로 보이다니.
『그러니까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너희는 어떤 입장이야?』
그렇게 말한 소년은 이미 오래 전에 여기를 떠났다.
마녀는 흑의로 몸을 가린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다.
누군가를 닮은 누군가.
누군가와 닮은 누군가.
『그래, 너의 마스터는 나를』
현실을 닮은 현 상황. 현실과 닮은 환상. 『아니에요, 당신이 저의 마스터를』
초점을 잃어버린 사고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녹아간다.
지글지글 부글부글
이미 다른 사람의 기억이 되어버린 현세의 영상.
아직 인간으로서 살았던 무렵의 추억과
바로 얼마 전에 봐버린 나쁜 꿈.
늙은 양을 뿌린 커다란 솥처럼 죽은 것과 산 것이 한 데 뒤섞인다.
「솔직한 이야기라고?」
그녀는 불쾌한 듯이 입술을 깨문다.
소나기인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나무를 때리는 빗소리는 만남의 날을 환기시킨다.
……이렇게 초조함에 몸을 맡겨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
그날,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어리석은 마녀의 손을 꽉 잡아준 바싹 마른 남자의 손을.
『비, 비가 내리고 있어』
문득 내려다 본 손은 피투성이였다.
귀를 기울이자 숨도 거칠다.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고 머리는 무서워 질 정도로 새하얬다.
『비……? 비, 비구나.』 사라질 듯한 몸, 무너질 듯한 이성.
우러러본 하늘은 높고 도움을 청해도 도와주는 손길은 없으며, 그녀는 흩어져가는 체온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아아하지만 이 밤은 달라.』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행할 수 있는 마술은 아주 적고 꺼지려 하는 생명을 붙잡아둘 마술은 없다.
아니, 애당초
『차가운 비가 내렸던 건 더 따뜻하고 빛으로 가득 찬 밤이었기에』
그녀는 거의 즉사였다.
한 남자의 얘기를 해보자.
대충 25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살아온 세월과 거의 같은 세월을 들여 완성된 한 『흉기』의 이야기를.
그 집단이 어떤 것이었는지 마지막까지 그는 알지 못했다.
인가와 떨어진 산 속. 수행자들처럼 모여서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속에 그는 발생했다.
부모형제도 없이 아무런 연고 없는 갓난아기로 태어난 것이다. 탄생이라기 보다 발생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갓난아기는 그 집단 속에서 자라났다.
무구하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곳이 아무리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해도
그것이 아무리 사람이 살아갈 방법이 아니라 해도바깥 세계를 모르는 그는 그 집단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년.
그는 그에게 주어진 10미터 사방의 숲을 나가지 않고 그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술을 끊임없이 단련했다.
그 집단이 공장이라는 것을 그가 10살 때 배웠다.
공장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생활용품을 양산하는 곳이라 한다.
그는 도구를 만든 경험이 없으니 자신이 어느쪽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생활용품이라는 것에 저항은 없었고 오히려 안심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하루 종일 오로지 한 동작만을 반복한다.
다양성은 필요없다. 그저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라고 **들은 말했다. 그것은 도구와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는 도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은 더욱
더 자신들의 『용도』를 갈고 닦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마음을 다쳐서 일과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도구들의 기억에서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간다.
그가 자신의 『용도』를 짐작한 것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언젠가 올 때를 위해서 여분의 학습을 우겨넣는다.
그들은 인간을 위한 생활용품이긴 하지만 그 용도를 발휘하기 위해서 인간과 유사해져야만 한다.
인간으로서 기능하는 데 필요한 지식.
여분이긴 했지만 그 지식 없이 그들이 『발휘』되는 일은 드물다.
**들도 여분의 기능을 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모양이
지만 이것은 피해선 나아갈수 없는 길.
그들에게도 **들에게도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리라.
지금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지식.
알면 이치가 맞지않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일반상식 같은 건 스피드를 떨어뜨리는 필요없는 중량과 다를 바 없다.
단지 그 지식 덕분에 그들은 자신의『용도』의 명칭을 알 수 있었다.
암살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상대에게 들키지 않게 숨통을 끊는 것이 그들에게 요구된 『용도』였던 것이다.
배우는 게 빨랐던 그는 10미터 사방의 숲을 떠나 **들의 묘를 받드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꼴의 비율이다.
그는 거기서 완성을 위해 든 비용과 자신을 부리는 **들의 모습을 알았다.
묘는 온통 청결한 공간이었다.
귀신이 살기는 커녕, 아비규환의 지옥이라고 소문이 난 건물은, 한 점의 얼룩도 없는 하얀 세계였다.
**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산 채로 해체된 폐기품도 **에게 창피를 주었다고
뇌만을 동물에게 이식했다는 벌의 흔적도 **를 위로하기 위해 모았다는 어린애들의 살코기를 집어넣은 수조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일은 확실히 있었던 일이지만 여기와는 다른 곳의 이야기.
**는 이 청결한 공간에서한 점의 죄의식도 없이심심풀이도 되지 않을 심심풀이로서
그저 한 입 먹을 오늘 밤의 식사 메뉴를 늘린다는 이유만으로아무 상관도 없는 일반인의 인생을 돈으로 바꾼다.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요, 놓아주세요, 라는 애원을 더럽다고 비웃으며 먹어치운다.
그렇게 **들은 의식조차 하지 않지만 착취당하는 자들은 마지막에 깨닫는 것이다.
이 인간과 자신들은 애초에 언어부터가 틀리다. 같은 생물이지만 마음의 생김새가 다르다.
식탁에 놓아진 요리의 목소리 따위 인간에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에게는 자신들 이외의 인간의 목소리가 평생 닿지 않는다고.
그것은 묘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그를 관리하는 자는 말했다.
저것이 도구들을 부리는 몇 안 되는 특권자고이 세상은 인간 아닌 인간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너의 『용도』는 그들을 위해 인간 한 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신면에서 그는 이미 완성돼 있다.
도덕관념은 **들에게 맞춰서 키워졌다. 그에게 살인은 악이 아니다.
악이 있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 뿐이다.
도구로서의 이치.
존재로서의 이치.
극단적으로 말하면 말을 지어내는 붓이 그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악이며,
인간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상을 놓아주는 것이 부정인 것이다.
그 이론으로 말하자면 **에겐 아무것도 틀린 것이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 기호성과 특권성을 부여 받은 생물이다.
그들이 노예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런 가르침을 받은 그는 **들의 무도함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들을 혐오하지도 않았다.
……나쁜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 하나.
자기의 용도를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에겐 정당한 것일 텐데 왜일까 생각한 것이다.
혹시 자신에게 지금과 다른 『용도』가 부여되었다면
그때는 대체 어떤 도구로 키워졌을까 라는 악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생각을.
용도를 위해서 그의 일과는 계속되었다.
그에게 주어진 기술은 “뱀”이라 불리는 팔의 사용방법이었지만 그 기술은 이미 몇 년 전에 완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의 일과는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단지 “뱀”으로서 만들어진 도구다.
아무리 용량이 남아도 다른 기능을 추가할 의미 같은 건 없다.
그리고 또 다시 10년이 경과 후 20년째.
도구로서 소비기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그는 겨우 그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너의 양육에 2천만의 돈과 시간을 들였다.”
그 집단이 다른 조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하나가 달랐다.
그들은 어떠한 도구, 어떤 기능도 일인일살을 엄수시킨다.
번뜩이는 재능에게도 널리고 널린 졸작에게도 같은 결말을 걷게 한다.
“2천만을 들여 키운 도구는 2천만의 일을 해주면 돼.”
수지타산은 맞다. 두 번 쓸 필요는 없다. 할 일을 다 했으면 모조리 자해하라 그것이 그들의 절대 룰이었다.
이 인간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상식을 초월한 수련,
몇 십 년에 걸쳐 겨우 완성한 기술을 단 한 번 보여주고 스스로 숨통을 끊는다.
그 이념에 그는 따랐다.
목표는 몇 겹의 방어진을 쳤다고 한다. 자신이 접촉할 수 있는 사회적 입장은 **들이 준비해 준다.
남은 건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가면 된다.
무기를 쓰지 않는 적수공권은 전적으로 목표에게 다가가기 쉽게 하기 위한 것.
그들이 숲을 나올 때, 죽음은 약속된 것이다.
성패를 묻지 않고 목숨이 사라지는 여로.
기쁨은솔직히 말해서 아주 작지만 있었을 것이다.
20년의 정산,
자신의 용도가 어느 정도의 것인가.
설사 결말이 죽음이라 할 지라도 그것은 기대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일은 허무하게 끝났다.
상정되었던 호위도 난관도 없다.
실전을 위한 물밑조사로 건물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 일을 끝내버렸다.
「」
그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의 가슴에 날아박힌 것은 “無”였다.즐겁지도, 슬프지도 않다.시시하지도, 기쁘지도 않다.무엇이 있는가.
자신의 용도에 무슨 감정이든 따라올 줄 알았는데 그의 마음은 아무런 파문도일지 않았다.
만약,
만약 그때, 무슨 감정이 일었다면 그는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기뻤다면 자해를슬펐다면 순수한 살인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감정 따위20년에 걸쳐 완성한 기술의 성과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을 죽였을 때의 감촉은 불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그저목각인형 같은 표적의 목뼈를 꺾었을 때의 감촉이 손바닥에 남았을 뿐이다.
돌아오는 건 없다.
보상도 없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그 충격이 어디에도 없다.
『용도』 그 자체도 우스웠다.
쓸모없다.
필요없다.
이 표적의 살해에는 아무런 기술도 필요 없었다.
사고 같은 살인
단련 같은 건 필요도 없는 난이도, 저기 돌아다니는 어린애조차 할 수 있는 암살.
모든 것이 불필요하다.
20년의 단련 따위 대체 어디에 필요하단 말인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의 용도.
처음부터 아무 의미없는 그 편력.
의문이 생긴 것은 아니다.
분명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것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름 밖에 모르는 시체를 앞에 두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감동한 자신을 깨달았다.
「, 메말라 있군.」
그는 자기에게 결론을 내리고 그럼 이번엔 여태까지의 자신을 청산하기로 했다.
그는 자결하지 않고 집단에서 나와 혼자가 되었다. 지하에 숨어들어 몸을 숨긴다는 선택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주하여 용도를 위해 주어진 사회적 입장을 이용했다.
준비된 퍼스널리티는 교직이었지만 임무를 수행할 지식과 기능은 일단 익히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활, 역할을 수행하기에 지장은없었다.
그저 한 가지 사소한 망설임이 있었다.
가슴 한 귀퉁이를 찌르는 가시 같은 이물.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반년도 못 버티리라 여겼던 생활도 5년간이나 이어지게 된다.
그를 찾는 자는 없었고 그 자신도 추적자를 의식하지 않고 생활하자고 맘먹고 있었다.
평범한 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술만을 갈고 닦았다.
그 결과가 그런 것이었다면 남겨진 건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는 판단한 것이다.
말을 하자면인생의 기쁨을 발견할 기회를 그는 잃었다.
인간은 성인이 되기까지 저축해둔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남은 인생에 쓴다.
이루고 안 이루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본래 고통일 뿐인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마취제인 것이다.
그것이 전혀 없는 자신은 의미도 없이 흘러갈 뿐이다.
이상도 환상도 없다.
자신의 육체가 스러질 때까지 자신이라는 도구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살아있다”라는 책무를 완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냉철한 기계 같지만 그는 주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단지 『감동하는 마음』이 죽어있을 뿐.
죽은 것은 살아나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이 잠들어 있고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다운 생활을 얻으려 해도 그가 감동을 얻는 일은 평생 없다.
그것을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주위 사람도 그를 강한 사람이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 인식에 잘못된 것은 없다.
…그저 노력은 했다.
이대로 무의미하게 으스러지더라도 죽은 마음을 감싸안은 채로 가시투성이 산을 걷듯이 사람들 속을 살아가려고 애썼다.
그리고 하얀 여자를 만났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산문으로 향하는 도중 숲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다.
절에서 생활하던 그는 당연한 책무로서 상황을 살피러 갔고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발견했다.
검은 외투로 몸을 감싼 여자는 당장이라도 사라질 듯 쇠약해져 있었다.
죽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가냘픈 모습이었다.
후에 마녀는 생각한다.
그 만남은 기적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설사 착각이라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
몇 십 년간 박동을 유지하던 심장이 일순간 멈췄다가 돌아온다.
정지의 반동은 미했지만 고동을 흩트리고 죽었을 터인 어떤 것이 꿈틀거리듯 전율했다.
「거기서 뭘 하고 있지?」
부름에 대답하는 일 없이 여자는 쓰러졌다.
밤의 산 속. 비. 쇠약해진 몸. 확실하게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다.
피로 젖은 외투 따위 사소한 것이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
일선에서 몸을 뺐다고는 하나 그 역시 정상에서 벗어난 자. 동종의 냄새를 맡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여자를 간호했다.
같은 자, 같은 살인자로서 느끼는 공감 때문에 구한 것이 아니다.
눈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니까 구했다.
그가 여자를 구한 이유는 그것 뿐이었다.
1시간 만에 여자는 눈을 떴다.
「일어났군.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여자는 망연히 그를 바라본다. 곤혹도 환희도 없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에서 오는 절망이 눈물이 되어 흐르기 직전의 얼굴이다.
「이야기하기 싫다면 돌아가도 좋다. 잊으라고 한다면 잊지.」
그의 말을 여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용해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호의에 기대려고 마음을 놓았을까.
여자는 스로의 내력을 밝혔고 그는 상식 밖이라 할 수 있는 여자의 정체를 너무나도 간단히 받아들였다.
여자를 안고 성배전쟁이라는 죽고 죽이는 싸움에 참가하는 것도 승낙했다.
그토록 대단한 마녀도 놀랐을 테지.
그녀의 상태는 아주 조금이지만 회복됐던 것이다.
거절당한 순간, 마술로 마음을 조종하려 미소 짓고 있었는데단 한 마디에 자신의 천한 계략이 지워져 버렸으니까.
그가 승낙한 이유는 마녀가 두려워서도 성배에 관심을 가져서도 아니다.
여자에게 협력한 것은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살인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남자다. 마스터가 되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단지 그 과거를 멀리하려 한 노력은 사실이다.
…엇갈림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 순간.
지금까지의 노력을 포기하고 여자의 손을 들어준 이유를 그는 깨닫지 못했다.
「될 수 있으면 지금의 생활을 흩트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그것이 그의 방침이었다.
그에게 소원은 없다. 그가 구한 여자가 성배라는 것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싸운다면 그것은 성배 때문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서,
자신을 구하고 협력하기로 약속했으니 여자에게 힘을 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성배전쟁은 이상현상이긴 하지만 악행은 아니다.
자신이 정한 『용도』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그에겐 악이니까.
그렇게 그는 캐스터의 마스터가 되었다.
영주가 없는 마스터였지만 여자는 그의 말에 따랐다.
애초에 마술 따위 알지도 못하는 남자다. 여자는 그를 현계를 위해 이용하고 꼭두각시로 대할 생각이었다.
그도 스로 성배전쟁에 참가하지는 않고 싸움은 여자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가 여자를 베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여자가 성배전쟁을 부정했을 때 뿐이다.
그와 여자의 관계는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자로서는 이상적일 정도로 잘 맞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으로서는 잘 안 맞았다.
여자의 마음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그가 마스터를 포기할 이유는 강해져서
여자의 무의식에 자꾸만 닿는 그는 점 도구로서의 자신을 망가뜨렸다.
…그 망향의 염원은
처음부터 돌아갈 곳이 없는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거늘.
싸움은 신속하게 끝났다.
나타난 적 서번트에 의해 산문은 뚫리고, 이에 맞선 마스터도 검무에 의해 패배했다.
배는 무참하게 찢어지고
20년에 걸쳐 완성한 양손은 팔꿈치 밑부터 사라졌다.
「마스터, 마스터!!!」
경내에 여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산문의 서번트와 마스터를 처리하고 적은 떠난 것 같다.
남겨진 여자는 이성을 잃고 계약자의 유해에 매달린다.
초점이 흐려져 윤곽마저 흐릿한 눈으로 그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 우는 얼굴을 보며 그는 미안한 일을 저질렀다며 탄식했다.
죽음에 임박한 의식이 보여준 환상이 아니라
無일 터인 마음이 죽음의 수렁에서 피를 흘렸다.
여자는 돌아가고 싶다고 바랐다.
돌아가고 싶은 장소를 그는 몰랐다. 되풀이되는 망향의 염원.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고, 애초에 감상조차 떠오르지 않는 도원향의 꿈.
그것을그는 어떻게 느껴야 할지 마지막 순간이 되어도 알지 못했다.
「여기서 떠나라, 캐스터. 네 기척을 느끼면 아까 그 서번트가 돌아온다.」
담담하게 말했다.
육체의 남은 수명이 어쨌건 정신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오래도록 단련한 나날의 성과겠지.
뇌가 정지하는 순간까지 그의 의식은 선명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반드시 살리겠어요. 당신을 죽게 하지 않겠어요, 마스터…!」
여자는 떠나지 않았다.
아주 조금 이치가 틀어졌다.
기댈 곳을 잃는 것은 큰 충격이겠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그녀는 한 번 마스터를 잃었다.
또 다시 올 그 서번트의 습격에 대비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 장소를 떠나 다음 마스터를 찾아야 한다.
「얕보지 말아요, 전 마녀예요…! 죽어가는 인간 한 둘쯤은 간단하게 고칠 수 있어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류도우 사에 비축해둔 마력은 적 서번트가 파괴했고 보구에 당한 상처는 불치의 저주가 걸려있다.
「…간단해요. 이까짓 거 몇 번이고 해온 일인걸요
…실패따윈 하지 않아, 실패따윈 하지 않아, 실패따윈 하지 않아…!
이런 간단한 치료에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울면서 사죄하듯이 여자는 마술을 읊는다.
하지만 효과는 없고 입에 담은 신언도 평소의 힘을 잃었다.
여자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슬픔이 더해간다.
「흐…아, 아, 아, 안돼, 살려줘요, 누구 없어요, 부탁이에요, 부탁이에요…!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이런 건 거짓말이야, 지금까지, 지금까지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상처의 치료도, 육체의 재생도 이미 늦었다.
무엇 하나 구할 수 없다.
마녀의 역할은 인간을 멸시하는 것 뿐.
사람을 고쳐 죽은 자는 움직일 수 있어도 순수하게 사람을 구하는 것만은 불가능한 것이다.
…분명 지금까지 진심으로 누군가를 구하려 한 적이 없었기에
그 룰을 그녀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아, 아아아……!」
마술은 작용하지 않는다.
도움을 청해도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다.
우러본 하늘은 높고 그녀는 흩어져가는 체온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안돼 죽지, 말아요…죽지 말아요, 죽지 말아요, 죽지 말아요, 소이치로……!!」
통곡을 듣는다.
우는 얼굴을 보면 두통이 인다.
그는 그것이 “슬프다”라는 감정인 것을 알고 겨우 자신은 도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려 했다.
사람을 죽인 후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그렇게 남은 인생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고 달관했다.
이 얼마나 피 같은 새빨간 거짓말인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사실 분했다.
아무 의미도 없었던 20년의 세월과 이름도 모른 채 죽여버리고 만 상대가 쭉 마음에 걸렸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죽인 것을 항상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목적에서 생겨난 살인이 아니고
…자신은 자기의 의지로 만들어진 어른이 아니다.
……그 잘못을 어떻게 속죄해야 했을까……?
즐거웠다.
오로지 한 가지 기술을 단련했던 일, 사고를 포기하고 도구로서 있는 생활은 편했다.
그 일에 매달려 아무 생각도 없이 두 인생을 소거했다.
이 이상의 악이 어디 있는가.
죄의 일단이 그를 길러낸 자들에게 있다 해도
그가 아무것도 몰랐다 해도타인을 죽인 것은 부정할 것도 없이 자기 손이었다.
평범한 생활을 한 것은 어떻게 속죄해야 할 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유일한 의식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의 수련을 멈추고 담담하게 일상에 매진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얻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생각해낸 최고의 속죄였다.
…그 삶의 방식이 무너진 것은 이 여자와 만났기 때문이다.
차가운 빗속, 방황하던 하얀 여자. 여자는 단순히 아름다웠다.
그가 보아온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이유는 그것 뿐.
그 아름다운 여자에게 그는 손을 내밀었다.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쌓아온 속죄를 버리고 그녀의 힘이 된 것은 분명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여자의 목소리는 울음소리로 변해있었다.
비라고 생각한 것은 그의 생각보다 따뜻했다.
여자는 떠나지 않는다.
그 밤과 마찬가지로 피로 물든 양손으로 그의 가슴에 매달린다.
그 얼굴을이제 볼 수 없는 것이 정말로 슬프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가. 겨우 알았어.」
너무 늦었지만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다.
…그는 항상 무언가에게 사죄하고 싶었다.
자신이 후회한다는 것
용서를 빌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품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순수하게 동경했다.
「캐스터.」
여자는 떨어지 않는다.
죽음의 발소리가 바로 코앞까지 와 있을지도 모르는데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자신을 향해서 사죄하는 것 같다. …충분하다.
그는 이제 사죄할 수 없지만 대신 이 여자가 해주었다.
남은 미련은 한 가지 뿐.
이 아름다운 새를 원래 살던 곳에 놓아주어야 하는데
「캐스터.」
여자는 결코 그에게서 떨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 모든 것을 용서하려는 그 틈새.
「…됐으니까 이제 그만 가. 넌 이런 곳에 있어선 안 돼.」
지금까지 중 가장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해에 매달리는 여자에게 고했다.
…남겨진 여자가 어디로 날아갔는지는 이미 먼 이야기다.
여자는 그가 생각했던 것 같은 여자가 아니고
결말은 그가 바란 것이 아니었다.
으스러져간 살인귀와 마녀의 얘기는 이걸로 끝이다.
…한 가지 구원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이 만난 후, 아주 조금의 시간.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생활은 지금까지의 몇 배나 인간다운 평온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이 부셨다.
꿈의 파편을 본 듯하다.
「」 흑의 마녀가 소나기에서 해방된다.
가벼운 현기증에 눈을 적시며 어슴푸레한 밤하늘을 우러른다.
「이룰 수 없는 일을 말해봤자.
날개 같은 건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남자에겐 마지막까지 그렇게 보였겠지. 땅에 떨어져 있다 해도 날개는 가볍게.
언젠가 진흙을 떨쳐내며 하늘로 돌아갈 것이라고.
「…정말 고지식한 남자. 잠시 들른 장소가 맘에 들어, 하늘을 잊어버린 철새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쉬운 것을 생각조차 못하다니.」
혼잣말을 하고 살짝 미소 짓는다. 마녀가 천히 잠을 자듯 눈을 감는다.
백일몽에 매몰되듯이언젠가 깰 이 순간을 아쉬운 듯 곱씹었다.
이것도 또 하나의 파편. 스쳐 지나가는 파편은 속에 아주 잠시 머물렀다, 아무 저항 없이 흘러간다.
마음만은 이곳에 있지 못하고
육체만으로는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듯이.
찾아오지 않았던 봄은, 최소한 이 도원향에서, 지금도 남몰래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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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십니다.
독자를 위해서는 다소의희생이 필요한법이죠^^
수고요!
네^^
기구한 운명의 캐스터. 자꾸 눈물이 나오려 한다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