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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되라 |
우리는 단식과 금육을 하고,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통해 사순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평소에는 한 끼 정도 안 먹어도 괜찮았었는데, 재의 수요일만 되면 왜 그렇게 배가 고픈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때만 되면 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가 고픈 후에 먹는 식사는 꿀맛이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합니다. 속을 좀 비워둔 후에 먹는 것은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순시기는 바로 이러한 비움의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에 하느님과 이웃을 채우는 때가 사순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것을 갖다 놓는다고 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 속에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역시 빈 공간이 있어야 채울 수가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 꽉 차 있는 마음 속에는 하느님이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세상 일로 꽉 차 있는 마음 속에는 이웃이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나와 세상이 줄어들 때,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는 더불어 채움의 시기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의 생활이 드러나야 하는 시기이며, 이웃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좋은 것을 알맞게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 역시 그 비워진 공간에 나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채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씩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비움과 채움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바쁘게 달려온 일상의 삶으로 인해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신앙의 삶을 사순시기를 통해 다시금 느껴보게 됩니다. 축구경기나 농구경기를 하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을 이용해서 작전도 짜고,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듯이 우리의 삶도 사순시기라는 시간을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신앙으로 재무장하고 그만큼 소홀히 했던 신앙생활과 선행 등을 다시금 실천할 수 있는 시기가 사순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움과 채움의 과정 속에서 나눌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나 자신을 비우고 그 속에 하느님을 담아서 그 하느님을 이웃에게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나의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하면, 나눌 수가 없습니다. 바로 나의 하느님이 내 속에서 살아 숨쉴 때, 이웃 안에 그 하느님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도 묵상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주님의 고통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소홀히 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묵상하고 다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은총이 넘치는 시기가 사순시기라고 하듯이 그만큼 우리의 신앙과 삶의 모습을 되돌아봄으로써 다시금 주님의 뜻대로 머리를 돌리는 자세를 통해 주님의 자녀로서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양명모 신부 / 의림동 보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