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윤석열 검찰은 왜 ‘조국 재판 판사’들을 사찰했나?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11-25 12:11:28
정경심 교수 재판이 송인권 부장판사 때문에 자신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검찰이 재판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임정엽 재판장을 비롯한 새로 교체되는 재판부에 대해 사찰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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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를 명령한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윤 총장이 퇴근하고 있다. 2020.11.24/뉴스1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배제를 명령했다. 추 장관이 제시한 징계청구 8개 혐의 중 ‘조국 사건 등 주요사건 재판부 판사들에 대한 사찰’ 은 특히 국민들을 경악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윤 총장 측이 이에 대해 전면 부인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인터넷 정보를 수집한 것”(SBS)라거나 “공소유지를 위한 참고자료를 모은 것”(JTBC)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수집할 수 없는 판사들의 개인정보 및 성향 자료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등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혐의 내용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윤 총장 측이 내세우고 있는 “인터넷 정보 수집”이나 “공소유지 참고자료”라는 반박은 ‘주요 정치적인 사건 판결내용,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가족관계, 세평, 개인 취미,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이 결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공소유지를 위해 이러한 정보를 수집해 참고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부당한 행위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는 임시방편 성격의 변명에 불과하다.
특히 ‘물의 야기 법관’이란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한 ‘판사 사찰 자료’를 의미한다. 설사 윤석열 측의 변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불법 사찰’로서, 만약 윤 측의 말대로 그것이 일상적이고 상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윤석열 뿐만 아니라 검찰 전체가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2020년 2월은 조 전 장관 관련 재판부 교체 시기
윤석열 검찰은 왜 ‘조국 재판 판사들’을 사찰했을까? 윤석열이 판사들에 대한 사찰을 감행한 2020년 2월은 정경심 교수의 재판부가 교체되고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공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시기였다.
조국 전 장관과 동생 조 씨에 대한 재판을 맡은 김미리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근무 2년차로 전출이 가능했다. 김 판사는 정경심 교수 재판장이었던 송인권 판사의 인사이동이 결정된 이후에도 전출 여부가 결정되지 않다가 중앙지법에 유임됐다.
김미리 판사는 조 전 장관 재판이 김 판사에게 배당되자마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며 심한 공격에 시달렸다. 보수언론들은 김 판사가 지난해 10월 무고 혐의와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봉주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사실까지 들어가며 “김 판사의 성향이 편향적”이라며 재단하기도 했다.
검찰의 반발이 극에 달했던 정경심 교수 재판장
그러나 당시 조 전 장관 관련 재판은 시작도 하기 전이었고 정경심 교수에 대한 재판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던 상태였다. 검찰은 정경심 교수 재판장이던 송인권 판사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었다.
송인권 판사는 2019년 12월 정경심 교수 재판의 준비기일 공판 과정을 통해 검찰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한 공소장 변경 신청을 "죄명과 적용법조, 표창장 문안 내용은 동일성이 인정되지만 이 사건 공범과 범행일시, 장소, 범행방법, 행사목적 모두 동일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 다섯가지 중 어느 하나 정도만 동일하면 동일성이 충분히 인정되지만, 모두 중대 변경돼 동일성 인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재판정에서 공판에 참여한 모든 검사들이 돌아가며 일어나 고성을 지르며 재판장을 공개적으로 성토하기도 했다.
송인권 판사는 또한 공주대 생명공학부 인턴과 관련된 공문서 위조 혐의에 대해 “우리 헌법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이 자율권을 가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사회의 기본질서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라면 거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헌법의 기본 원칙”이라며 이에 대한 공주대 윤리심판원의 “문제 없다”는 결정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법원에서는 그 결정을 존중하고 따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송 판사는 증거 능력 인정 여부에 대해서도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 “공소 제기 이후 강제수사를 통해 얻은 증거는 효력이 없다”는 원칙을 반복해 강조하고, “형사소송법상 공판준비기일에 제출하지 않은 증거목록을 공판기일에 기습적으로 제출하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불허한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정경심 교수 재판 국면 전환 위한 사찰
송인권 판사는 공판에서 펀드 사건 관련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투자냐 대여냐’에 대해서도 "민사 재판에서는 투자나 대여냐를 다툴 때 원금이 보장되고 일정 수익이 지급되면 대여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를 뒤집을 확실한 증거를 내달라"며 말 그대로 검찰을 곤혹스럽게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사모펀드가 주된 혐의인 정 교수에 대한 추가 기소 내용을 감안해 이 사건을 경제 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 25부에 배당했었다. 정 교수와 조범동과의 거래 관계를 ‘투자’로 규정하고, 정 교수가 관련 업체들에 대한 경영권까지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검찰보다 송인권 재판부가 훨씬 더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송인권 판사에 대한 인사 이동을 앞두고 “송 판사가 유임되면 재판부 기피 신청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법원은 2020년 2월 송인권 판사의 인사 이동 이후 정경심 교수 재판부를 전원 교체하고 3명을 모두 부장판사로 구성했다.
따라서 정경심 교수 재판이 송인권 부장판사 때문에 자신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검찰이 재판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임정엽 재판장을 비롯한 새로 교체되는 재판부에 대해 사찰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3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재판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언론으로부터 '좌편향 판사'로 공격받고 있던 김미리 부장판사에 대한 사찰도 함께 벌였을 것으로 보인다.
김미리 판사는 조 전 장관 동생 재판에서 교사 채용과 관련된 업무방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판결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