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상골분익세(霜?奮翼勢)를 하되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곤을 잡아 높이 들며 말을 타고 나가라.
청룡등약세(靑龍騰躍勢)를 하되 두 손으로 이마를 지나도록 높이 들고
춘강소운세(春江掃雲勢)를 하되 왼편으로 돌아보고 한번 휘둘러 몸을 막고
백호포휴세(白虎?烋勢)를 하되 두 손으로 이마를 지나도록 높이 들고
추산어풍세(秋山御風勢)를 하되 오른 편으로 돌아보고 한번 휘둘러 몸을 막고
벽력휘부세(霹靂揮斧勢)를 하여 왼편을 향하여 한번 치고
인하여 왼편으로 돌아보고 몸을 막고
비전요두세(飛電繞斗勢)를 하여 오른편으로 향하여 한번 치고
인하여 오른편으로 돌아보고 몸을 막고 마쳐라.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마상편곤편이다. 마상편곤이 사실 언제부터 조선에서 쓰였는가는 확실히 전하는 바가 없다. 추정하기로는 원래 서융의 기병이 쓰던 무기로서 명군에 이러한 편곤을 쓰는 이민족의 기병이 편입되어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명군이 들어오면서 이들의 활약을 눈여겨 본 류성룡이 건의해서 선조 26년 이들이 쓰던 편곤을 조선에서도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들 여기고 있을 뿐이다.
“ 단병(短兵)으로 접전할 때에는 궁시(弓矢)를 쓸 수 없을 것이니, 편곤(鞭棍)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하니, 이서가 아뢰기를,
“ 포위를 뚫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데에는 편곤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번에 역적 이괄의 마군(馬軍) 7백 인이 모두 편곤을 썼는데, 이 때문에 당할 수 없었습니다.”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11장 A면
【영인본】 33책 594면
인조 2년 3월 9일의 기사다. 일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괄이 이끌고 있던 반란군 가운데 700의 마군이 모두 편곤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군사들이 상당히 고전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조선군에 있어 마상편곤은 그리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 된다. 임진왜란 당시 도입되었어도 제식화되었다기보다는 제한적으로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쓰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조가 단병과 접전하는데 궁시를 쓸 수 없으니 편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 이 부분이야 말로 마상편곤이 본격적으로 제식화되어 널리 쓰이게 된 계기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단병을 상대하는데 편곤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 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의 건의로 편곤을 조선에서도 들여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하는 것일 게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와는 달리 정작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을 가장 괴롭힌 것은 조총이 아니라 일본도를 들고 달려드는 일본군 병사와의 단병접전이었는데, 야전에 익숙지 못한 병사들에게 있어 이것은 상당한 공황까지 불러일으키는 큰 문제거리였다. 그래서 그 전훈으로 임진왜란이 끝나고 병사 개인에게까지 장검 - 나중에는 병사들의 요구로 호신용 단검으로 바뀐다. - 을 지급하거니와 그러한 일본군의 전술에 맞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체계와 전술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상편곤은 그에 가장 걸맞는 무기였고. 따라서 인조와 이서의 이 대화야 말로 마상편곤이 이후 조선기병의 주력무기로서 자리잡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원래 조선전기 조선기병의 주력무기는 기창이라고 불리우는 마상창이었다. 그런데 이 마상창의 경우 적진을 돌파해 전열을 흩뜨리는데는 위력적이었지만 정작 난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크게 쓸모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기동력을 잃고 적과의 근접전으로 들어가면 기병이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군이 자신하는 근접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체계와 전술이 필요했는데, 그때 조선군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마상편곤이었던 것이다.
마상편곤은 보는 바와 같이 말 그대로 쇠도리깨처럼 생겼다. 길이는 모편 6척 5촌에 자편 1척 6촌으로 1장 - 10척에 이르던 마상창과는 달리 그 길이가 말 위에서 주위를 아래로 내려치기에 좋게 되어 있다. 더구나 자편에는 쇠못이 젖꼭지처럼 우둘두둘하게 박혀 있어 타격력을 극대화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도리깨로 타작하듯 쓰면 되므로 그 사용법까지 쉬웠던 편곤은 인조의 말처럼 단병을 상대하는 데 있어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중요한 무기체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익 역시 저서인 성호사설에서 "총포가 등장하니 궁노가 무용지물이 되었고, 편곤이 등장하니 도검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라고까지 평가했을 정도이니 당시 편곤의 위상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이 마상편곤에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길이였다. 병자호란 당시 왕의 친위군이던 우림위의 기병이 고양대로에서 청의 기병과 맞닥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림위는 편곤으로 무장하고 청의 기병과 싸우다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유인 즉, 역시 청 기병이 쓰던 장창에 비해 우림위가 쓰던 편곤이 짧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 창을 피해 더 안쪽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면 편곤이 더 유리했겠지만 더 긴 창으로 더 먼저 찔러오는데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여튼 어제는 일본에 오늘은 청에, 싸우는 방식이 전혀 다른 두 무리와 번갈아 싸우다 보니 발생한 문제점이다. 아니 그 전에 원래 조선군의 전술이 선진후기라 해서 먼저 진을 짜고 기예로서 적을 격파하는 것인데, 워낙 급한 상황이라 원거리에서 활이나 총포로 충분히 적진을 흩뜨리지 못한 상태로 돌입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약점이 드러났음에도 역시 근접전에서의 마상편곤의 위력은 가히 발군이라 조선후기에 이르면 이전까지 쓰이던 기창과 마상검술을 거의 대체하여 "100보 거리에서 궁시를 쏘고 50보 거리에서 편곤을 들고 돌격한다."고 하는 전술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활로서 적진을 흩뜨리고 편곤으로 근접해서 헤집는다는 것인데, 마상편곤의 특성상 근접전에서의 전술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형태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후로도 마상쌍검이니 기창이니 하는 것들이 존속하고는 있었지만 이후 사실상 조선기병의 주력은 바로 이와 같은 활과 마상편곤이었다.
끝으로 마상편곤은 중국에도 있었는데, 중국의 것은 따로 철련협봉이라고 불리웠다. 중국에서 쓰이던 철련협봉의 경우 모편과 자편 사이에 연결고리가 다섯개 정도 쇠사슬처럼 달려 있는 것과는 달리 조선의 것은 한두개의 고리만으로 말 그대로 도리께처럼 쓰도록 되어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또 보병편곤도 있었는데 이것은 마상편곤보다 조금 커서 모편이 8척 5촌에 자편이 2척 2촌이나 되었다. 다만 이것은 조선군이 보유하고 있던 양이 마상편곤 4천 여 개에 비해 고작 14개 정도인 것으로 보아 그리 널리 쓰이지 않은 것 같다.
흔히 말하기를 조선더러 임진왜란으로 인한 교훈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역시 임진왜란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또한 많은 것을 배웠다. 조총을 도입하고, 기효신서에 따른 새로운 전술을 도입하고, 제독검을 받아들인 것도 바로 이때다. 훈련도감고 설치했고, 새로운 전술에 따라 한창 일어나고 있던 청에 대한 방어전략도 짰었다. 문제는... 이눔 자슥들이 싸우는 방식이 하늘과 땅이라... 보다시피 보병에는 위력적인 마편곤이 기창을 상대로는 무력해지기 일쑤인 거다. 그렇다고 전쟁이라도 잦았다면 새로운 전훈을 받아들여 일신할 기회라도 있었으련만 전쟁이라고 딸랑 임진정유 양란에, 정묘병자 양대 호란이 전부이니 그러기도 힘들고.
어찌되었거나 정말 아쉽다. 정작 마상편곤을 받아들인 것은 알겠는데 그것을 쓴 기록이 거의 없으니. 임진왜란 당시 도입되었다면 조선 기병 가운데서도 편곤으로 일본군을 마음껏 후려갈기며 돌아다니던 이도 있었을 것 아닌가. 사람 머리 터지는 이야기야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머리 터지는 것이야 이보다 더 통쾌할 수 없을 터인데도 기록이 없어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있으니. 그래도 상상이라는 것도 있으니 부족하나마 그걸로 대신해 보련다.
참고로 편곤이 편곤인 이유는, 원래 나무 이외의 재료로 만든 한손으로 쓰는 때리는 무기를 일컬어 편鞭이라 한다. 채찍이 아니다. 그리고 다섯자 넘는 곧은 막대를 두고 곤棍이라 한다. 다섯자 이하는 봉棒.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무로 만든 곤에, 쇠로 못을 박은 편이 더해져서 편곤이다. 실제 쓰이기도 한손으로 후려치는 용도로 쓰이고 말이다. 쇠못이 박히지 않은 놈은 따로 절곤이라고 부른다. 쌍절곤이니 삼절곤이니 하는 게 그것들이다. 그래서 편곤이다. 대충.
첫댓글 흥미로운 무기입니다
마상편곤 이란것을 오늘 알았네요...자세한 설명까지 있으니 이해하기 쉽군요^^
저도 이런 무기류를 이번에 일평님의 글로 알았네요..좋은정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