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손길이 닿으면 차종 불문 스포츠카 같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마칸은 일단 달리고자 마음먹으면 포르쉐다운 역동성을 표출하다가도 속도를 늦추어 여유를 가지면 한없이 편해지는 반전매력을 가진 차였다. 크기(4680×1925×1610mm)와 최고출력(252마력)만 보면 아우디 Q5나 BMW X3 정도가 경쟁 모델이다. 기본 가격(7450만원)이 비슷하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단정 짓기엔 이르다. 포르쉐는 상상을 초월하는 옵션 리스트를 제공한다. 이 유혹을 뿌리치고 소위 ‘깡통’으로 출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승차만 하더라도 3430만원을 들여 22개 옵션을 추가한 상태다. 옵션 리스트는 맛만 봤을 뿐인데, 가격이 1억원을 훌쩍 넘었다. 아무래도 포르쉐는 옵션을 고르는 과정부터 크디큰 스릴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과연 값어치는 할까? 일단 생긴 것부터 때깔이 다르긴 하다. 스포츠디자인 패키지를 적용해 전체적인 디자인을 스포티하게 다듬었다. 20인치 마칸 터보 검정 휠로 갈아 신고, 앞뒤 LED램프는 스모키 화장을 해 인상이 한껏 공격적이다. 배기파이프까지 검정으로 바꿔 톤을 맞췄다. 비싼 가격표가 붙은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 옵션으로만 익스테리어를 꾸몄다. 겉옷만 해도 1550만원어치 명품으로 두른 셈이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에 7단 PDK 변속기를 조합했다. 6기통 엔진을 올린 마칸 S(354마력)가 아른거리는 것도 잠시. 최고출력 252마력, 최대토크 37.7kg·m의 힘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도심을 유유자적 다닐 때는 힘이 넘치는 마칸 S보단 오히려 마칸이 딱 알맞다. 노멀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이 예민하지 않아서 운전이 편하다. 게다가 포르쉐가 만든 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승차감이 훌륭하다. 노면 상황에 따라 서스펜션 댐핑을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를 옵션으로 넣은 덕분이다. SUV인 탓에 차체 롤은 조금 있지만, 이마저도 세차게 몰아붙였을 때나 잠시 느낄 수 있다. PASM은 완벽하리만큼 서스펜션의 압축과 반등을 제어한다. 포트홀이나 도로 연결부를 지날 때도 갑작스러운 충격이나 진동이 없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로 두면 성격이 180도 바뀐다. PDK 변속기는 저단으로 재빠르게 바꿔 물고 노면에 토크를 쏟아낼 준비를 마친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어서 산책을 떠나자고 보채는 셰퍼드가 당기는 것처럼 앞으로 성나게 튀어 나가려는 힘이 전해진다. 속도를 높일수록 운전자와 차가 하나로 융화되는 과정은 더없이 만족스럽다. 비록 포르쉐 특유의 걸걸한 배기음은 없어도 온전히 운전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주행 감성 맛집이다.
마칸을 타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균형 잡힌 퍼포먼스다. 포르쉐 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스포츠 성향을 띠지 않는다. 안락성과 역동성 사이에서 만족스럽게 합을 이룬다. 든든한 포르쉐 토크 벡터링 플러스도 기억에 남는다. 빠른 속도로 코너 탈출을 시도해도 언더스티어가 발생하지 않는다. 토크를 영민하게 바깥쪽으로 보내 최대한 중립적인 핸들링을 가질 수 있도록 애쓴다. 과감하게 코너를 공략해도 걱정 없다.
실내에는 옵션을 풍성하게 넣었다. 사실 옵션을 넣지 않은 기본 인테리어 상태는 한 번도 본 적 없다. 하지만 막상 실내를 둘러보면 화려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저 원래 있어야 할 것들이 있는 듯하다. 또 어쩌면 이렇게 옵션을 넣어야 진정한 포르쉐 감성이 완성되는 것일지 모른다. 솔직히 지갑 사정만 넉넉하면 실내를 더 매력적으로 바꿔줄 옵션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옵션 가격 정책이 좀 의아하다. 이온 발생기가 40만원인데, 왜 애플 카플레이가50만원이지? 역시 애플은 무섭다.
시승 전에는 마칸이 포르쉐 배지만 번쩍이는 거품 잔뜩 낀 SUV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스포츠 SUV는 무엇보다 빠르고 재미있어야 하고 마칸은 그런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한 마디로 포르쉐 배지를 달 자격이 충분했다. 편할 때는 한없이 편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문제는 가격. 국산 중형차 한 대 가격만큼 추가한 옵션을 모두 빼더라도 과연 마칸에 만족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