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문자보다 본질적이다
소리야말로 문자의 혼이다. 소리야말로 자연의 혼이다. 소리가 없는 자연을 생각할 수
없다. 소리는 바로 존재이다. 음성언어는 존재와 존재자의 사이에 있다. 음성언어는 그래서 이중적이다. 소리도 역으로 문자를 닮아 계급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소리의 본능은 계급과 차별이 없이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문자야말로 차이를 계급과 차별로 만든 주인공이다.
문자는 결국
자연에 대한 배반이다. 세계의 감각은 가장 원시적인 촉각에서 시작하였고, 그 촉각을 시공간에서 비약하게 한 것이 청각이다. 그래서 귀는
보배이다. 문자는 시각의 영역에 속한다. 문자는 청각의 팽창을 다시 종이(바탕)에 집약하는 조직적인 기호체계이다. 문자는 바로 그러한 수축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집약하고 역사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문자보다는 소리(발음)가 더 본질적인 것이다. 그래서 소리에 충실한
문자가 최고의 문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한글은 최고의 문자이다. 세종대왕은 최고의 문자를 만들려고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백성이
제대로 소리를 내게 하려고 하다가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세종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그 근원적인 마음에서 세계에서 최고의 글, 한글을 만드는
행운이 찾아든 것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것은 서로 통하게 마련이다.
한자와 한글은 아주 먼 옛날, 한 문화권의 두 언어였는지
모른다. 이것이 문자언어체계로 발전하면서 문자(글)는 우선 한자로 발전하였는데 한자를 사용하는 한자문화권 안에서 발음(소리)은 중국과 한국이
점차 달라졌다. 이에 그 발음의 달라짐이 심해지고 나라 안에서도 서로 통하기 어렵게 되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그 발음을 통일하고자
했다.
최근 홍산(紅山)문화, 요하를 중심한 고대문화의 발견은 홍산문화의 주인공과 동이족을 연결시키게 하고, 홍산문화의 주인공들이
남하하여 중국의 상고의 하은주(夏殷周) 문화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한자의 고형인 갑골문이나 금문, 그리고 과두문자 등도
동이족과 연결시키게 하고 있다. 상고시대 동북아시아의 문명이 동이(東夷)에서 서이(西夷)로 중심이동 했음을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고 한글 또한 조선족이 만들었으니 동이족은 우리 민족의 먼 조상이요, 조선족은 더 가까운 조상이니
결국 동방의 문자는 모두 우리 민족이 만든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은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를 모두 만들어낸 문자를 만들어내는 데에
달인인 ‘문자달인(文字達人)의 민족’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한자를 읽는 발음의 기호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사료되는데 한자나
한글이 ‘반절’ 또는 ‘초성-중성-종성’의 체계로 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특히 한자가 모두 단음절인 것은 의도적으로 어떤
음성언어체계 또는 발음(소리)에서 단음을 취했음을 나타내고 한글은 바로 이 음성언어체계 또는 발음(소리)체계에서 발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음성언어체계 또는 발음체계를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고 자음과 모음을 만들어 한글이라는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체계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고래로 전해온 음성언어체계와 그간에도 소리의 통일을 위해 있었을 수도 있는 발음기호체계가
표음문자체계로 발전했던 것이다. 한자와 한글의 같은 음성언어체계설은 어순체계에서도 그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글을 순순(純順)으로 보면
영어는 역순(逆順)이다. 그러나 한자는 얼핏 보면 영어식 같으나 실은 한글식의 순순과 영어식의 역순이 합해진 지그재그식이다.
다시
말하면 한자는 한글과 같은 ‘목적어+동사’의 순순체계에서 ‘동사+목적어’의 역순체계로 바뀌었는데 그 옛날 순순체계의 습관을 버릴 수가 없어 이를
소화하기 위해서 순순을 인정하는 지(之)자를 번번히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以)자와 소(所)자는 역순을 쉽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以)자와 소(所)자가 나오면 영어식으로 읽어 나가면 되고 지(之)자가 나오면 한글식으로 읽어 가면 된다.
전반적으로
보면 한자에서도 한글과 같은 순순체계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문의 이(以)자와 소(所)자는 긴 문장을 몇 개의 단위로 묶어
주면서 진행케 하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지그재그 식으로 읽어 나가지만 특히 문장이 명사로 끝날 때 그 명사는 주동사의 바로 옆에 있는 영어와
달리 문장의 제일 마지막에 있다.
마찬가지 이치로 ‘동사+목적어’의 체계를 ‘주어+동사’체계로 해석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를 영어의 가주어와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영어의 가주어는 언제나 주동사의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하면 한문은 순순(順順)체계의 어순을 짐짓 이(以)자와 소(所)자를 씀으로써 역순(逆順)체계인 양 바꾸지만 실은 여전히 순순체계의 인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대 문헌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이 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여기에 더해서 어순을 바꾸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도 바로 순순체계의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문은 종래 한글과 같은 순순 음성언어체계의 목적어와 동사를 동사와 목적어의
순으로 바꿈에 따른 어순체계의 혼란을 이(以)자와 소(所)자로 커버하지만 여전히 그 옛날 순순 음성언어체계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