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산천(山川)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지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果樹園)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조선일보』, 1959.3.24.)
[어휘풀이] -지까다비 : 일어(日語). 노동자 용의 작업화(作業靴)
[작품해설] 이 시는 신동엽의 초기 시를 대표하는 전 12연의 자유시로, 투철한 역사 의식에 입각하여 6.25로 인한 깊은 상흔(傷痕)을 진달래의 핏빛 이미지 속에서 그려낸다. 신동엽은 민족적 정서 또는 민족적 정기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전설을 자주 원용하는 특징을 보여 주는데, 이 시 역시 후고구려의 전설을 끌어들인다. 1연은 국토의 평화스러운 정경을 ‘이름 모를 나비’라는 평범한 모습으로 제시한다. ‘진달래 몇 뿌리 / 꽃 펴 있고’와 ‘나비 하나 / 머물고 있’는 정적 이미지는 전쟁으로 인한 주검을 보여 주고 있는 2연에 그대로 이어진다. 3연은 주검이 누워 있는 장소의 유래를 밝히는 부분이다. 화자는 특유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곳을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 의형제를 묻던, / 거기가 바로 / 그 바위’라고 제시함으로써 6.25로 인한 죽음과 후고구렷적 장수들의 죽음을 연관시킨다. 4연은 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제시한 부분이며, 5연은 죽은 자가 생전에 그리워하던 고향의 정경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눈먼 식구들이 / 굶고 있’는 모습의 사실적 제시를 통해 시인의 치열한 현실 인식 태도를 드러낸다. 6연은 이 곳에 앞서 과수원에서 보았던 또 다른 주검을 상기시키는 부분으로, 국토 전역에 깔려 있는 상흔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7연은 계속되는 폭탄 세례의 전장(戰場)을 진달래의 핏빛 니미지 속에서 보여 주는 부분이다. 8연부터 12연까지는 앞 연들이 제시한 시상을 약간의 변화만 가미시켜 반복하는 형식으로, 전반부에서 제시한 시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즉 8연은 1연과 2연의 시상을 결합하며, 9연은 7연에서 보여 준 폭탄 세례의 전장을 반복한다. 10연은 4연을, 11연은 3연을, 12연은 6연의 시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반복한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뚫고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일 뿐아니라, 그 실질을 이루고 있는 민중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임을 웅변한다. 발표 당시에는 일단의 맹목적 반공주의자들에게 불온성을 지적받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도 통일 염원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가장 빼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작가소개] 신동엽(申東曄)
1930년 충청남도 부여 출생 단국대학교 사학과 및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어 등단 1967년 장편 서사시 「금강」 발표 1969년 사망 1980년 유고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발간
시집 : 『아사녀(阿斯女)』(1963), 『금강』(1967), 『신동엽전집』(1975),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0), 『꽃같이 그대 쓰러지면』(1989), 『젊은 시인의 사람』(19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