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34]오늘도 ‘문화의 날’ -南原 제대로 알기
나로선 오늘도 어제에 이어 ‘문화의 날’. 연일 해피하다. 南原 廣寒樓를 모르거나 들어보지 않은 분들은 안계시리라. 그곳을, 반창회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3학년때 같은 班 친구 부부 6쌍과 관람을 하고 맛집에서 갈치정식을 먹은 후 <화첩기행>으로 유명한 화가의 ‘시립김병종미술관’에 이어 춘향테마파크내에 있는 ‘국립민속국학원 예원당’에서 기획한 <판>공연을 보았다. 우리 고향 인근인 남원군에 대해서 모르는 史實들을 많이 알게 된 의미있는 날, 문화해설사의 말을 들으니 남원과 광한루 등이 새로 보이는 게 많았다. 일종의 수확이다.
# 오전 10시 30분쯤 만난 해설사는 대뜸 정문의 편액 <淸虛府>의 뜻부터 물었다. 너무 난해한 문제라서 저절로 ‘입틀막’이 됐지만, 설명을 들으니 ‘아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곳은 고래로부터 ‘달의 정원’이다. 오죽하면 烏鵲橋의 이름부터 심상찮다. ‘까치 작’의 변은 ‘저녁 昔’자인데 ‘날 日’이 아니고 ‘달 月’로 쓰여 있는 등(달의 정원을 나타내려 일부러 誤打처럼 쓴 것) '湖南第一樓’라는 광한루가 결코 만만한 유적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4대 누각을 아시는가? 남원의 廣寒樓를 위시하여 밀양의 嶺南樓, 진주의 矗石’ 그리고 평양의 浮碧樓인데, 대체 언제나 부벽루를 가볼 날을 있을는지, 생각만 해도 목이 메인다. 광한루는 남녀 데이트의 명소인지라 서너 번 와본 적은 있지만,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역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맞아 보배라는 말이 맞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 조선 초기 황희 정승이 누각을 짓고 ‘廣通樓’로 지었다한다. 황희는 태종 이방원이 장남인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하는 것을 극구 반대해 유배중이었다. 세종이 등극하여 자기를 반대한 ‘정적’ 황희를 영의정으로 임명, 우의정-좌의정 포함해 정승을 28년동안 역임한 청백리 명정승이었다.
아무튼, 그 이후 정인지가 ‘광한루’라고 개명해 오늘날까지 내려온 게 ‘廣寒樓苑’ . 이른바 남한지역에서 유일한 인위적인 ‘달의 정원’이다. 그저 남원 광한루, 오작교 하니까 <춘향전>의 이몽룡-성춘향 러브스토리의 무대로만 알기 쉬운데 천만의 말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남원의 내력을 들어보니 ‘전라도’ 命名(고려 현종때) 전부터, 그 지명이 1300년이 됐다고 한다(통일신라 ‘9주 5소경’을 아시리라. 그때부터 ‘南原京’이었으니(그 전 땅이름은 龍城이었다). 광한루라는 2층 누각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렇게 많은 줄을 해설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누가 알겠는가. 구한말 고종이 ‘호남제일루’를 확장하라고 하여 翼樓와 月廊를 만들었다던가. 일제강점기 1층 돌기둥 사이에 각각의 문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꿈꾸는 사상가들의 감옥이 됐다던가. 누각 앞의 연못에 황금잉어들만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금실의 상징인 鴛鴦들이 판을 치고 있어 찰칵했다. 오늘날의 광한루원의 절반이 남원 장터였다고 한다. 1931년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 춘향사당을 짓고 춘향제를 지낸 게 올해 95회를 기록, 전국에서 최고 오래된 축제로 자리매김된 지 오래이다.
이색적인 게 또 하나 생겼다. 저수지에 팔뚝만한 황금잉어와 함께 노느는 '원앙'들의 행진이다. 대표적인 금실의 조류 원앙이 언제부터인가 저수지를 점령하여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고 한다. 보기에 참 좋았다. 먹이를 주는 사람들의 손바닥까지 쪼아댄다고 하니 야생의 조류가 이제는 아닌가보다.
‘미스 춘향 진선미’들을 기억하시는가. 소리꾼 오정해가 미스 춘향 진이었던가. 김대중 선생이 주례를 섰다 하고 영화 <서편제>의 주역이었다. 주목을 해야 할 정자는 춘향제 주무대인 <玩月亭>. 달을 갖고 노닌다는 뜻인가. <춘향관>의 여러 자료들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누각에 오르니, 조선조 유명 문인들의 獻詩가 줄줄이 천장에 걸려 있다. 송강 정철과 다산 정약용의 한시가 있는가하면, 방랑시인 김병연, 기생 두 명의 시도 걸려 있다. 현대에 이르러선 청랑 장택상의 작품도 걸려 있다. ‘영남루’와 ‘촉석루’에 눈곱만큼도 꿀릴 것같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호남제일루’는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다. ‘호남제일문’이 전주의 ‘豐南門’이고, ‘호남제일정’이 정읍의 ‘披香亭’인지는 아시는가. 전라도관찰사 이서구가 裨補차원으로 세우라한 한 ‘虎石’도 있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을 春香의 초상논란은 여지껏 요란하다. 친일화가 이당 김은호가 그린 1930년대 초상을 파기한 것은 좋다 할 수 있겠지만, 공모를 통해 현재의 초상이 예쁘지도 않고 나이가 많게 보인다는 등 말이 많다.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에는 이몽룡과 성춘향이 16살 동갑이다. 판소리가 먼저 생기고 소설은 그 다음이라는 게 定說이라고 한다. 해설사는 남원의 자랑인 <만인의총>을 꼭 보시라고 당부한다.
# 점심 후 <김병종 미술관>을 찾았다. 이번 전시회 주제는 <페이퍼+잼>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병종(1953- ) 화백하면 무조건 <화첩기행>의 작가로, 어쩌면 그림보다 더 유려한 글쓰기로 알려져 있다 고향인 남원에 1천점도 넘는 작품을 기증해 철마다 주제그림을 바꾸고 있다. 생명의 노래을 그린 ‘화홍산수’와 ‘카페 장미의 숲’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런 미술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남원시민의 복일 듯하다. 전망대에서 커피 한 잔을 한 뒤 민속국악원으로 향했다.
# 국립민속국악원에서 3-4월 매주 토요일 기획한 공연의 제목은 <판>.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펼쳐지는 프로그램은 ‘꽃의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민속연희 ‘비나리’ ▲呈才 ‘연화대무’ ▲판소리 ‘흥보가’ ▲ ‘대금산조’ ▲ ‘남도민요’▲민속무용 ‘설장구춤’ . 모두모두 멋지고 흥겨웠다 우리의 눈과 귀를 흥건히 적시는 문화향연, 이 아니 좋을 손가.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됐다.
소중하고 귀한 모임. 이런 모임이 어디 흔하던가. 유사인 서예가친구 부부에게 찬사를 보낸 후 찢어지려는데, 지하주차장 친구의 차가 방전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점프선을 갖고 다닌 친구 덕분에 쉽게 해결. 좋은 일 하는데 어디 흉한 일이 있으랴.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쌍으로(나야 솔로신세를 면치 못하지만) 찢어지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단지, 오직 그 '나쁜 소식'만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윤석열 서울구치소 석방장면이다. 지가 무슨 개선장군이나 되는양, 차에서 내려 썩소를 짓고 주먹을 불끈 쥐며, 제 깐에는 공손히 인사를 하는 등). 내내 행복했을 것을. 머리에 쥐가 나고 있다. 눈을 붙여야겠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