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마꽃.
문화일보는 7월 27일자에 고구마꽃 사진을 올려놓고
‘10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만큼 진귀한 행운의 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해마다 고구마농사를 지으면서도 꽃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요즘 강서구 내발산동에 있는 명덕외국어고등학교 기숙사 담벼락 바깥쪽 텃밭에는
그 귀하다는 고구마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행운이 필요한 사람은 와서 보고 가도록.

오스트리아는 중부유럽의 알프스산맥에 있는 내륙국가로 면적은 남한보다 작은 8만 3855㎢, 인구는
약 860만 명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5천 달러로 매우 안정된 경제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OECD
창설멤버 중 한 나라다. 영화 《The Sound of Music》에서 보았듯이 온 나라가 마카 다 절경이라 연
중무휴로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 오스트리아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일차대전에
서 패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 최강국이었다. 일차대전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가 세르
비아 청년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와는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로 인해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국민들이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호주)를 구분하지 못해 프란체스카 여사를 호주댁이라
고 부르기도 했다. 프란체스카는 34세 때인 1934년, 온 가족과 친지들의 반대를 무릅에도 불구하
고 초로(59세)의 가난한 식민지 독립운동가 이승만과 미국에서 결혼하여 헌신적으로 보필했다. 해방
후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영부인 자격으로 경무대에 들어갔지만, 나라도 대통령도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이라 프란체스카 여사는 손수 구멍 난 스타킹을 꿰매 신으며 역대 대통령 영부인 가운
데 가장 검소한 생활을 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영어로는 빈)는 ‘세계 음악의 수도’라고도 불리고 있다. 수많은 음악인들
이 태어나고 활동한 도시라는 찬사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음악가로는 하이든‧모차르트‧슈
베르트‧브루크너‧리스트‧요한 스트라우스 1세‧요한 스트라우스 2세 등이 있으며, 독일 태생인 베토벤
과 브람스도 대부분 비엔나에서 음악 활동을 했다. 카라얀‧카를 뵘‧구스타프 말러‧카를로스 클라이버
등 세계적인 지휘자도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1842년에 창설된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교향악
단의 원조로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882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28년)와 함께 세
계 3대 교향악단으로 꼽히고 있다.
비엔나는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대제국의 수도답게 상굿도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도시다. 비엔나의
중심지역인 링슈트라세에는 자연사박물관‧미술사박물관‧오페라하우스‧부르크극장‧대법원 건물‧국회
의사당‧호프부르크 왕궁 등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장엄한 건물들이 늘어
서 있는데, 이 책의 저자 빌 브라이슨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살아생전 꼭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이
다. 이 건물들은 유럽의 최고급 화강암과 사암만 구입해다 지었으며, 건물 안팎은 최고의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비엔나를 유럽의 수도라고 부르는 이유다.

빌은 인스부르크역 광장을 걸으면서 18년 전에 왔을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고 무척 반가
웠다. 호텔에 여장을 푼 뒤 기울어가는 저녁 햇살이 시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유적지나 기념관만 찾는 것보다 시내를 걸으며 그 도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
는 것도 좋은 관광이 될 듯. 인스부르크는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아름답고 이
상적인’ 소도시다. 길이 끝나는 곳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험준하면서도 잘생긴 산이 머
리에 흰 눈을 인 채 높이 솟아 있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잘츠부르크는 어딜 가나 관광객들뿐이고 상품도 관광객들에게 파는 조악한 것들
뿐이었다.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마지르판, 모차르트 흉상, 모차르트 카드, 모차르트 재떨이, 모
차르트 모자, 모차르트 맥주…게다가 곳곳에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시내는 온통 먼지투성이였
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에는 상점마다 크래커 모양의 간판을 걸어놓고 있었다. 주
요 광장인 모차르트 플라츠도 놀라우리만치 흉하다. 멋대가리 없는 아스팔트 벌판에 때가 잔뜩 낀 동
상 하나와 벤치 몇 개가 놓여 있는 게 전부다.

비엔나에서 300여㎞ 떨어져 있는 잘츠부르크까지 가는 데 하루 종일 걸렸다. 유럽의 열차는 좁은 좌
석에 낯선 사람 세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가야하기 때문에 주머니에 들어 있는 물건 하나 편하게
꺼낼 수 없다. ‘심지어 마음 놓고 웃을 수도 없고 생각마저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이후 호
텔을 잡고 성당과 미술관을 둘러보고 제과점에서 과자를 사 먹는 데도 험담과 불평 일색이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고 대못까지 쾅 박고 있으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
면 빌이 갔던 곳은 절대로 가지 않을 듯.

빌이 알베르티나미술관을 둘러본 소감은 오스트리아 여행기의 백미다.
‘이곳은 입장료가 지나치게 비싸서 45실링이나 한다. 이 정도 돈이면 관람이 끝난 뒤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씩은 가지고 나올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실링은 오스트리아가 유로화를 사용하기 전인 1999년까지 통용되던 화폐단위다. 45실링을 현재의 원
화 가치로 환산하면 4500원쯤 된다. 빌이 비엔나를 방문한 게 1990년대 중반인데, 알베르티나미술관
이 소장하고 있는 모네나 피카소의 그림 한 점 값이 설마 그 정도로 싸구려였을까? 빌은 불평불만을
쏟아내느라 정작 어느 화가의 무슨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본인도 비싼(실은 별로 비싼 편도 아니지만) 입장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소장품들을 제대로 감상
하지 못했을 듯.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문닫아 걸고 에어컨을 켜고 잠을 청하는 것이어서 잠들면 아침까지 그대로 인데 이른아침 문을 여니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살맛 났습니다. 낮동안이야 폭염 그대로 이겠지만 휴가 떠난 한산한 거리를 보는 고요? 도 또다른 기분 입니다. 아침의 이 시원한 바람이 불때까지, 김홍조님이 있던 빈을 다녀온 오랜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