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
전래 동화 가운데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이 있습니다.
익히 알듯이 시합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주이지만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시합 중에 토끼가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억울한 토끼가 재 시합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낮잠을 자다가 거북이와의 경주 시합에서 진 토끼가 거북이에게
재 시합을 요청합니다. 느림보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부터 체력을 기르고 무작정 달리기 연습을 한다고 해서 토끼를 이길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요즘 토끼는 영리해서 낮잠도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북이는 달리기 시합을 하면 언제나 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거북이는 망했다며 포기해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거북이는 먼저 승리한 뒤에 싸워야만 합니다.
즉 거북이는 토끼에게 육상 시합 대신에 수영 시합을 하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바로 전략적 사고입니다.
만약 주도권을 쥐고 있는 토끼가 수영 시합을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북이는 다시 이렇게 제안해야 합니다.
“그래 좋아 달리기를 하자.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어. 경로는 내가 정할께!”
자만한 토끼는 어차피 승자는 자신이니까 네 마음대로 하라고
경로 선택을 넘깁니다.
거북이는 육상 달리기 경로에 큰 강 하나를 끼워 넣습니다.
즉 내가 남보다 잘 하는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현대 전략 분야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포터 교수는 말합니다.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것”>
(북올림, 부를 쉽게 쌓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 4가지 영상 일부 인용>
이렇듯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들은 여러가지 조건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 최대한 유리하게 하는 방식을 위한 것이 바로 전략적 사고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사고의 대표적 예를 들라면 삼국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내용중에서 몇몇 인상 깊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 예를 들면 유비 군을 추격하던 조조 군을 장판교 다리위에서 홀로 막아선 장비의 배짱과 지략, 주군의 아들을 등에 업고서 적군의 포위망을 뚫었던 조자룡의 용맹함 등 수많은 인상적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전략적 선택을 예로 든다면 남만을 정복하며 제갈량이 보여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입니다.
<촉의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이 2대 유선을 보필하면서 위를 공격하려고 도모했다. 그 전에 내실을 다지기 위해 남쪽 지방의 분란을 수습하기로 했다. 계책으로 남쪽 지방을 정리하고 남은 장수가 맹획이었다. 맹획은 굽힐 줄 모르는 강직한 성격으로 남쪽 지방 백성들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었다.
제갈량은 한번 승리로는 안정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마음으로 승복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맹획을 계속 사로잡았다가 풀어주고 하기를 계속해 7번째만에 맹획이 저항을 포기하고 촉에 충성하기로 맹세했다. 이후 제갈량은 위나라 공략에 전념할 수 있었다.>(백과사전 참조)
권력이나 물질의 능력이 있다고 힘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려는 사고 방식은 많은 후유증을 유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점에서 칠종칠금은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는 이들이 가져야 할 지략과 포용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고사라 하겠습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와 열정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교회 분위기와 오늘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게 됩니다.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교회임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과 믿음의 온도 차이가 사람에게서 풍겨지는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시대적 변화가 그렇다고 해서 소명자는 탓을 해서는 안 되는 이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환경이나 여건, 시대적 변화를 요인으로 꼽으면 그만이겠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했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소명자는 자신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시대속에서 새로운 눈과 안(案)을 찾아내는 영적 깊이를 길러야 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속에서 요셉과 다니엘의 모습에서 그 방법을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창세기 41:38)일 때 일어남을 학습했습니다.
오늘의 농촌과 농촌교회는 갈수록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피부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어려운 것은 우리들이지 하나님께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께서는 어려움과 고통, 환난이라는 연단을 이겨낸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경륜을 펼치심이 성경이야기입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지혜와 지성 그리고 비전으로 새로움을 경험하는 교회 공동체를 꿈꾸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다니엘1:17)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정말 끝이 없는 길을 가는 우리들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 가운데
우리들의 지혜와 힘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은혜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