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데, 카운터에 앉아 있던 주인 남자가 영어로 말했다. 때가 지나선지 식당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내가 창가 자리로 가서 앉자 주인 남자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종업원을 무척 부려 먹게 생긴, 끝이 둥글게 꼬부라진 콧수염을 한 풍채 좋은 남자였다. 그는 테이블에 앉은 파리 한 마리를 메뉴판으로 후려쳐서 아득한 뇌사 상태에 빠뜨린 뒤,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 펼쳐놓았다. 식당은 손바닥만한데, 메뉴에는 북인도 음식이든 남인도 음식이든 없는 게 없었다. 몇 년 동안 인도 대륙을 헤매 다닌 끝에 모처럼 제대로 된 싸구려 식당을 발견한 것이다. 뭘 먹을까 입맛을 다시며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주인 남자가 또 말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식욕을 잃는 법!”
그리고 나서 그는 말했다.
“사람이 메뉴를 먹을 순 없는 일이오. 아무리 메뉴를 들여다본다 해도 배가 부릴 리 없소. 세상의 책이 다 그런 것처럼.”
맞는 말이었다. 메뉴가 아무리 다양해도 그것으로 허기를 채울 순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배가 고파 허리가 꼬부라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우선 버터 난(납작하게 해서 진흙 화덕에 구운 밀가루 빵) 2인분과 그것을 찍어먹을 달(녹두를 갈아서 만든 일종의 수프) 한 접시,
그리고 알루 본다(감자로 속을 채운 고로케) 네 개를 주문했다.
양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으면 싸갖고 가서 저녁 때 먹으면 될 일이었다.
나는 또 갈증을 식힐 겸 시원한 망고라시(물로 희석시킨 저지방 요구르트에 망고를 갈아넣은 것)
한 잔을 먼저 부탁했다.
내가 어렵사리 주문을 마쳤는데도 식당 주인은 받아적을 생각은 하지 않고
콧수염만 잡아당기며 서 있었다. 그러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이 전부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오. 어떤 건 그림의 떡이란 걸 알아야만 하오.”
내가 영문을 몰라 쳐다보자, 그는 설명했다.
“이 메뉴판에 적힌 것들도 마찬가지오. 보다시피 오늘은 종업원들이 결혼식에 갔기 때문에 식당엔 나밖에 없소. 무슨 수로 그 많은 걸 나 혼자서 만들겠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작에 설명할 일이지, 메뉴판까지 갖다주고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무 허기가 져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힘없이 물었다.
“그럼 어떤 게 그림의 떡이고, 어떤 게 진짜 떡이죠?”
그가 말했다.
“그걸 구분하는 것이 바로 삶의 지혜 아니겠소? 어리석은 사람들은 대개 그림의 떡인 줄 모르고 달려들다가 인생을 망치곤 하거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심 한 끼 먹으러 왔다가, 잘난 체 하는 식당 주인의 설교로 허기를 채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카운터 위의 벽에는 코끼리 신상과 함께 그의 영적 스승으로 보이는 성자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내가 허무한 표정으로 앉아 있자, 남자는 주방으로 들어가 뚝딱거리며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식당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독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명상하는 셈치고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이상한 주인에게서 희멀건 라시 한 잔을 얻어 마셨고, 그 다음엔 전날 만든 게 틀림없는 사모사(인도 만두) 몇 개로 허기를 채운 뒤, 별 볼 일 없는 음식을 하나 더 얻어 먹었다. 한 가지가 나오면 다른 음식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 금방 배가 고팠다.
싸갖고 가서 나중에 먹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말끝마다 명언을 늘어놓기를 좋아하는 그 식당 주인은 내가 음식값 계산을 하고 있자, 또 한 마디 했다.
“돈 계산을 하기보다는, 더 많은 노래를 부를 것!”
그는 마치 머리에 두른 터번 속 어딘가에
힌두 성자가 쓴 두툼한 명언 사전을 숨겨 갖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식당 문을 나서며 “또 봅시다” 하고 인사를 하자, 그가 얼른 되받아쳤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신이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이지 않소? 우리가 내일 보게 될지 다음 생에 보게 될지, 어떻게 알겠소?”
별로 먹은 것도 없이 명언으로 헛배가 부른 하루였다. 이튿날 아침, 다음 생에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식당 주인의 지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 식당으로 다시 갔다. 어제와 달리 식당이 활기에 차 있었다. 종업원들도 분주히 오가고 , 외국인 여행자 몇몇이 둘러앉아 자기들이 여행한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여성은 티벳에도 가고, 네팔과 스리랑카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네팔에 일주일밖에 있지 않았는데도 벌써 네팔 전문가가 다 되어 있었다.
쉬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여행자들 사이로, 어제의 그 식당 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나는 아침부터 눈 앞에서 잔인한 살생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얼른 테이블에 앉은 파리들을 쫓아냈다. 그가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건너편에 앉은 여행자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인도에서는 인도만 생각하고, 네팔에선 네팔만 생각할 것!”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행자들은 서로 만나면 자신이 여행한 다른 장소를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인도에선 네팔 이야기를하고, 네팔에선 인도 이야기를,
뭄바이에선 캘커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살면서도 언제나 어제와 내일을 이야기한다. 명언을 좋아하는 식당 주인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그가 말했다.
“진리는 단순한 것이오. 마살라 도사(속에 야채를 다져 넣은 인도식 팬케이크)를
먹을 때는 마살라 도사만 생각하고, 탄두리 치킨을 생각하지 말 것!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할 것이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침으로 마살라 도사 한 접시를 주문했고,
마살라 도사를 먹으면서 오로지 마살라 도사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식당 주인 라자 고팔란 씨와 함께 그날 오전 나는 장을 보러 갔다.
함께 갔다기보다 그가 시장 바구니를 들고 나서길래 나도 엉겁결에 따라간 것뿐이었다. 신선한 생강, 검은 후추, 감자, 갖가지 향신료 등을 사갖고 돌아오는데,
한 신사가 서류가방으로 우리를 밀치며 지나갔다.
고팔란 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는 허둥대며 걸어가는 신사 양반의 뒤꼭지에 대고 직격탄을 날렸다.
“할 일을 다 마치면 죽을 것이라는 점성술사의 예언 때문에 끝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 저기 가고 있군!”
그의 명언은 어느덧 한 편의 우화를 읽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달리기를 멈추면 죽을 것이라는 점쟁이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쉬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장을 보고 돌아오니 벌써 점심 때였다.
나는 또다시 치밀하게 메뉴판을 검색하며 라자 고팔란 씨의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메뉴판 한쪽에 베지터블 브리아니아와 베지터블 플라오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둘 다 밥에 야채를 섞은 음식이라고 영어로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내가 라자 고팔란 씨에게 물었다.
“베지터블 브리아니는 뭐고, 베지터블 플라오는 뭐죠?”
손바닥을 뒤집으며 라자 고팔란 씨가 말했다.
“약간은 같고 약간은 다르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내가 재차 물었다.
“그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죠?”
그러자 고팔란 씨가 메뉴판을 회수하며 말했다.
“둘 다 먹어 보시오. 그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될 테니까.
지식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런 다음 그는 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주방을 향해 외쳤다.
“여기 베지터블 브리아니와 베지터블 플라오 1인분씩!”
결국 나는 본의 아니게 점심을 두 그릇씩이나 먹어야 했다. 직접 먹어보니 두 음식의 미묘한 차이를 알 수가 있었다. 베지터블 브리아니는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밥에 야채와 말린 야자, 해바라기씨, 땅콩과 아몬드 등을 넣은 일종의 볶음밥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베지터블 플라오는 그것과 약간은 같고, 약간 달랐다. 그 맛의 정확한 차이를 알고싶은 사람은 인도에 가서 직접 먹어볼 일이다.
라자 고팔란 씨의 예리한 지적대로, 삶의 중요한 것들은 직접 경험해야만 자신의 것이 되는 법이니까.
어제 내가 앉았던 창가 자리에서는 한 서양인 친구가 양고기 요리를 시켜 먹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자기가 설명을 들은 것과는 맛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계산대 쪽에서 칠리 소스와도 같은 명언이 배달되었다.
“음식과 메뉴판이 서로 다를 때는 메뉴판을 믿지 말고 음식을 믿을 것!”
과연 그다운 지적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이 기대한 것과 실제의 것이 다르다고 불평을 하는가. 하지만 그 서양인은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해서 불만에 찬 얼굴이었다.
자극적인 인도 향료가 쉽게 입맛에 맞을 리 없었다.
짜고 맵고 쓰디쓴 삶의 여러 양념들처럼.
그날 오후, 나는 근처의 티벳 하우스를 방문한 뒤 어김없이 라자 고팔란 씨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인도 음식이 가진 매력도 매력이지만,
한 접시에 명언을 대여섯 개쯤 얹어내오는 독특한 식당 주인이 자꾸만 보고싶어졌다. 내가 선택한 저녁 메뉴는 소박한 인도 음식과 탈리였다. 탈리는 값이 싸고 맛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스테인레스로 만든 둥근 식판에 제공되는데, 밥과 수프, 반찬 등이 칸칸이 담겨 있다. 라자 고팔란 씨의 주방에서 내오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탈리’는 그의 지혜로운 명언들 못지않게 신선하고 맛이 있었다. 다만 수프에 소금이 너무 들어가 약간 짠 것이 흠이었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기다렸다는 듯 라자 고팔란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오.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
그의 명언은 오래 씹을수록 향이 나는 소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는 인도 음식을 먹고 나면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풀씨처럼 생긴 작은 열매로,
그것을 씹으면 음식냄새가 제거되고 입 안에 향기가 더해진다.
라자 고팔란 씨의 명언이 바로 그 소프와 같았다. 책이 아니라 삶에서 얻은 지혜를 그는 적절히 영혼의 양식에 버무릴 줄 알았다.
온갖 향신료를 빻아 음식의 향을 내듯, 그는 몇 개의 톡 쏘는 명언으로 영혼을 향기롭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인도 음식이 다른 나라 음식보다 향이 강한 것처럼,
라자 고팔란 씨 역시 인도의 식당 주인답게 독특하고 특별한 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나는 인도의 모든 식당 주인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네. 긴 글 하나 잡고 늘어지는 중입니다. 오리무중~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 1장을 쓰는데 일년을 보냈다죠. 습작을 한편 해보긴 했지만 처음이나 다름없어서 바닥을 기고 있지만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죠. 자주 안 보이더라도 이해해주세요. 6월까지는 이러고 살 생각예요.
며칠 안 보이셔서 걱정했는데 글이 보이셔서 반갑다는 뜻이었는데^^.. 지금 읽어 보니 제가 좀 이상하게 쓴 것 같아서 미안해요.. 며칠 안 보이셔서 걱정하다가 만나 너무 반갑다는 뜻 확실히 하고 싶어서 씁니다.. 클로리스님.. 이제 제대로 전달 되었나 모르겠네요.. 꼭 알아주시길...
첫댓글 클로리스 님 어디 계시다 이제 오셨나요..
네. 긴 글 하나 잡고 늘어지는 중입니다. 오리무중~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 1장을 쓰는데 일년을 보냈다죠. 습작을 한편 해보긴 했지만 처음이나 다름없어서 바닥을 기고 있지만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죠. 자주 안 보이더라도 이해해주세요. 6월까지는 이러고 살 생각예요.
아, 그러셨군요..좋은 작품 탄생되길 기다릴게요^^
잘 읽었습니다.. 클로리스님 저도 반갑습니다~` 며칠 안 보이셔서...
며칠이라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ㅎ
며칠 안 보이셔서 걱정했는데 글이 보이셔서 반갑다는 뜻이었는데^^.. 지금 읽어 보니 제가 좀 이상하게 쓴 것 같아서 미안해요.. 며칠 안 보이셔서 걱정하다가 만나 너무 반갑다는 뜻 확실히 하고 싶어서 씁니다.. 클로리스님.. 이제 제대로 전달 되었나 모르겠네요.. 꼭 알아주시길...
인도 얘기를 읽으며 네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인도에서는 인도만 생각하고, 네팔에선 네팔만 생각할 것!” 에서 쿡 웃고 만다 그들의 동네에선 개조차도 여유자적 이여서 뛰는 놈은 커녕 걷는 놈도 보기 힘들게 배깔고 늘어지게 누워 뒹굴던 놈들만 있어 웃게 만들었던 ㅋㅋㅋㅋ
개조차도 여유자적~ 재밋는 표현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늦은 댓글이지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