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업무를 맡은 김승환이 토요테마 프로그램으로 두륜산 등산을 하겠다고 한다.
심교장과 의논하며 일과 중의 행사로 바꾸기로 하고, 거창하게
산이교육공동체 두륜산 등반으로 이름한다.
남에게 보이려고 프랑카드에도 '우리는 해남의 아들 두륜산에서 호연지기 배운다'를 써 준다.
해남의 아들이라는 말도 그렇고, 호연지기라는 말도 아이들에게 설명하려면 길어지겠지만
어렸을 적 들은 말 하나를 오래 기억하는 아이가 하나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점심을 일찍 먹은 아이들이 가방을 매고 통학차 앞으로 모인다.
5학년 몇은 영재교육원에 간다고 가게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가을 날 오후에 영재원으로 가는 아이들과 두륜산으로 가는 아이들 중
누가 호연지기를 더 키울까 잠깐 선생같은 생각을 한다.
담임 몇은 출장이고 또 젊은 교사들은 준비 등으로 차를 따로 가져간다.
차 안에서 목소리를 키워 두륜산 안내와 산행의 주의사항을 두서없이 말한다.
2시가 못 되어 오소재 샘터 위 주차장에 도착하니 문승이 어머님이 도착해 계신다.
김승환에게 체조를 지도케 하고 출발하려는 차에 젊은 교사들이 차에서 내린다.
2시 5분에 출발한다. 호기롭던 아이들은 금방 숨이 차 오른다.
그러다가 몇은 또 달려나가기도 한다.
몇 군데 사진을 찍어주고 싶은 곳도 있는데 내 주변의 아이들만 많아질 것 같아 그냥 오른다.
고재만이 배낭을 매고 스틱 두개를 짚고 앞서 간다.
오심재에서 기다리라 하고 먼저 가라 한다. 은현이와 문승이 철민 등이 고선생을 따라간다.
40분이 다 되어 오심재에 도착하니 고재만이 목소리로 더 올라가겠다고 한다.
그러라 하고 올라오는 아이들을 쉬어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어 몇은 노승봉쪽으로 안내하며 고선생 만나면 같이 내려오라 하고
몇은 북미륵암 길 편하니 얼른 다녀오라고 한다.
문승이 어머니는 노승봉 쪽으로 오르고, 민현미 강유진 송수인은 북미륵암 쪽으로 간다.
여학생들과 붙어있는 김승환을 사진 찍어주다가 몇 아이들이 고계봉과 푸른 하ㄴㄹ을 배경으로
춤을 추어 찍어준다.
박승교 뒤로 김민경이 올라오더니 풀밭에 무릎을 꿇는다.
힘든 줄 알았더니 가슴을 움켜잡고 운다.
숨을 들이키라 하며 풀밭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아라고 한다.
걱정이 된다. 어찌 조치할 줄을 모르겠다.
예진이가 와서 걱정스럽게 위로해 준다.
늦게 온 친구들에게 조망을 보게 해 주고 싶어 흔들바위 앞까지만 다녀오라고 한다.
3시 10분을 지난다. 고재만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20분에 모두 오심재에 모이라 카톡을 보낸다.
아이들 10여명이 보이지 않는다. 기다릴 수 없어 프랑을 펼치고 사진을 찍는다.
학부모가 안 보이니 교육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하다.
4시 전에 하산을 마칠 거라 한지라 김승환 등에게 아이들 수를 세고 데리고 가라 한다.
민경을 돌봐라 하고 모두 내려보낸 다음 넓은 오심재에서 기다린다.
차라리 내가 노승봉에 올라 시간을 맞출 걸 그랬다.
학년별로나 희망능력별로 노승봉팀 북미륵암팀 오심재팀으로 나눌 걸 그랬다.
문승이 어머님이 노승봉쪽에서 내려오신다.
몸 빠른 은현이 문승이도 내려온다.
고재만의 뒤로 아이들이 또 있댄다. 더 기다린다.
마서연이 내려가고 마지막으로 3학년 강윤구가 썩은 나무를 지팡이 삼아 내려온다.
모두 열명의 아이들이 내려왔다.
윤구 뒤를 따라 내려오는데 그의 걸음이 걱정이다.
10살 무렵의 아이들은 다람쥐처럼 산길을 내달려야 한다고 말하는 내가 어리석다.
재웅이가 다리를 절며 내려간다. 우주도 같이 가고 있다.
배낭을 누구에게 맡기고 재웅이나 윤구를 업어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격려하는데 내 속에서 은근히 짜증이 피어난다. 참 어리석은 놈이다.
다리에 힘을 주라는 나의 말은 아이들의 걸음을 빨리하지 못한다.
다리 안아프냐는 말에 꼿꼿이 세우고 앞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윤구는 자꾸 다리가 꼬부라진다. 재웅이는 또 종종걸음으로 달리다가 다리를 전다.
4시 15분이 다 되어서야 주차장에 닿는다.
교사들에게 개인 산행이 아니라 아이들을 인솔하는 책무가 있다고 말한다.
교사들 몇은 승용차로 돌아간다.
통학버스 타는 아이들 몇을 집 앞에 내려주고 학교로 돌아오니 5시가 다 되어간다.
심교장께서 젊은 교사들이랑 하림강에 가 식사하자고 하신다.
용장 밑에 약졸없다는 말을 내가 교사들에게 했는데, 난 용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