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를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
내 또래(팔순) 나이가 되면 햄버거나 피자를 함께 즐길만한 친구들이 거의 없다. 자라나면서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 모르지만 밀가루 음식에 기름에 튀기거나 육류나 버터 치즈 등을 곁들인 분식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김치 깍두기나 된장 고추장에 입술 벌겋게 얼큰하게 땀 흘려 가며 챙겨 든 신토불이를 유독 좋아했다.
태반의 친구들이 그러했지만 드문 경우지만 미국에 자주 출장 가거나 주재 직원으로 일해 본 친구 중에는 뜻밖에도 값싼 햄버거나 피자 등속에 입맛 든 친구가 간혹 있었다.
대기업 회장으로 있던 친구는 점심때만 되면 햄버거를 함께 할 친구로 나를 찾았고 나와 시간이 어긋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점심을 굶어야 했던 그 친구는 이미 10년 전에 지구 산책을 끝내고 먼저 소천한 후로는 햄버거를 함께 할 친구가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다행히도 피자를 함께 할 친구는 풍진 세상의 탁한 공기를 마시면서 아직도 나를 찾고 있다.
아마도 햄버거나 피자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친구 인지도 모른다. 작년에 매주 한 번씩 그 친구가 운영하던 과천시내의 일요 농장에서 중국집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거나 사발면 끓여 먹으며 농장에서 장기판 두들기며 소일하던 친구가 농막 정리하다가 땅벌 습격을 받아 넘어져 허리를 다쳐 밖앝 나들이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내 생애 마지막일는지 모를 햄버거나 피자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허리를 다쳐 두문불출이니 별 수 없이 팔다리 성한 내가 그 친구 집으로 행차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해대니 피할 수도 없다. 중고대를 다니며 70년을 하루같이
어울리던 죽마고우이기도 하지만 얼마 후면 팔순 고개도 훌쩍 넘어야 하는 이 나이에 서로 성질부려가며 장기판 두들길만한 친구도 거의 없다.
점심때가 되면 언제나 마음 쓰이는 것이 점심식사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솔직히 말해서 입맛도 없는 데다 소화도 시원찮고 보니 차라리 점심을 건너뛰고 싶은 생각뿐이다. 막상 다 먹지 못하는 값비싼 배달음식을 주문하기도 마땅치 않은 판국에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매일 사 들고 간다는 것도 남사스럽고~ 그래서 점심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다.
팔순 막바지에 든 그 친구의 부인이 식사 준비를 해 주는 것도 부담스러워 아예 굶는 것이 훨씬 전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연옥 속을 헤매는 듯한 친구와의 만남이다.
오늘 주거지가 대전인 그 친구의 딸이 서울 나들이로 친정에 둘렀다. 현관에 들어 서자 대뜸 하는 말이 "아저씨! 피자 어떠세요?" 친구랑 장기 두다가 왼손 버쩍 들고 "OK"사인을 보냈다. 고령 자들이 선뜩 좋아하지 않을 피자를 친구 딸은 서슴없이 피자를 권한다.
배달되어 온 피자의 이상 야릇한 서양 냄새~ 강렬한 치-즈의 고소함 때문인지 절로 미소가 번진다. 친구의 표정에서는 딸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다.
모처럼 대해 보는 피자의 온화함(?)에다 피자에 덮인 쏘-스의 향내음에 오늘의 점심메뉴가 황홀하고 평소 반에 반도 먹지 못하던 친구도 내 식성에 못지않게 많이 취식한다.
아직도 패스트푸드 햄버거나 피자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찬구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살아 있는 이유인 것 같아 오늘이 즐겁기도 하지만 오늘 밤 중계방송된 내가 좋아하는 기아 타이거스의 가을야구 프레이 오프 확정에다 왕녕의 한국시리즈 굿바이 홈런 타자 나지완 선수의 은퇴 이벤트로 섭섭하지만 즐거웠든 하루임이 무척 커 보인다.
- 글 / 쏠 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