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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09
1. # 경의 버스 정류장 (밤)
버스에서 내리는 경이 허겁지겁 주위를 둘러본다. 복수를 찾는 듯... 경답지 않게 동작이 날래다.
그리곤 고개 숙인다. 그것도 잠시 다가오는 버스에 재빨리 오르는 경.
경의 버스가 출발하면 뒤이어 서는 버스에서 내리는 복수.
복수, 주위를 둘러본다. 경을 찾는 듯... 그리곤 벤취에 앉는다.
2. # 주택가 (밤)
유순의 동네를 달리는 경.
불안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경의 모습. 울 듯 말 듯 그러나 울 수가 없다.
상기된 표정만으로 경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3. # 경의 버스정류장 (밤)
핸드폰을 꺼내드는 복수. 전 경의 번호를 찍곤 폴더를 덮는다. 덮었던 핸드폰 폴더를 열어 전원을 끈다.
벤취에서 앞 뒤로 상체를 흔들며 생각에 잠긴다.
4. # 꼬꼬닭 치킨 (밤)
치킨 집 문 앞에서 발돋음을 하며 유리창 너머로 복수를 찾는 경.
유순이 서빙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유순 너머 열려진 별실문을 유심히 본다.
별실문에서 나오던 성호가 경을 본다.
경, 손으로 성호를 부른다. 유순에게 다가서려던 성호에게 유순에게 말하지 말란 듯 집게 손가락을 입에 댄다.
성호가 유순 몰래 밖으로 나온다.
경 : 아직 안잤어요?
성호 : 지금 잘 건대요?
경 : 일찍 자야죠... 형은 자요?
성호 : 형, 여기서 안 자요. 형네 집에서 자요.
경 : 형네 집이요? 거기가 어딘데요?
성호 : (고개를 가로젓는다.)
경 : (허한 눈빛) ...(그러다 이내) 엄마한테 나 왔단 말 하지 마요.
성호 : (고개를 끄덕인다.)
경 : (나직하게) 잘자요. (돌아선다.)
성호 : 누나.
경 : (돌아본다.)
성호 : 엄마가... 누나 이쁘대요. (인사를 꾸벅하곤 들어간다.)
경, 창 너머 성호를 별실로 들여보내는 유순의 뒷모습을 본다.
5. # 경의 버스정류장 건너편 (밤)
버스에서 내리는 경. 건너편 버스 정류장 벤취를 바라본다. 역시 복수는 없다.
경, 망설이듯 핸드폰을 꺼내 복수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전원이 꺼져있다.
6. # 횡단보도 (밤)
길을 건너는 경의 허한 눈빛.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향하는 경의 무거운 발걸음.
경, 다시 한 번 정류장을 바라본다. 유리벽 뒤에 숨은 복수를 본다.
복수를 향해 뛰어가는 경.
복수, 유리벽 뒤에 몸을 숨겼다가 경을 보고 도망을 간다.
경, 복수를 향해 뛰고 복수는 경을 피해 도망간다.
한참을 달리던 둘. 우뚝 멈춰서는 복수. 경도 멈춰선다.
복수 : (돌아서서 소리친다.) 그냥 가요.
경 : (똥그란 눈으로 복수를 본다.)
복수 : 제발... 그냥 가요. ...나, 후져요. ...그냥 가요.
멈춰서서 다가서지 못하는 경.
복수, 성난 표정으로 경에게서 등돌리며 걷는다. 멀어지는 둘.
경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힘차게 걸어가는 복수.
복수 : (눈물이 흐른다. 혼잣말.) 머리 잘랐네. 이쁘다.
멀어지는 둘. LS
7. # 경의 방 (밤)
옷을 입은채 엎드려 있는 경. 침대 위엔 새우깡이 있다.
넋을 잃은 표정으로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엎드려 누워 새우깡을 하나씩 집어 먹는다. 천천이 사각, 사각, 사각...
어둠속에 들리는 과자 부서지는 소리.
8. # 경의 집 앞 (밤)
대문 앞에 고개숙인 복수.
복수 : (눈물을 머금은 채 혼잣말) 그냥 가면 어뜩해요? ...잡아야지.
F.O.
9. # 영화 촬영장 - 도심 옥상 (낮)
긴장된 표정으로 어둡게 옥상 난간에 선 복수의 모습. 땀방울. 긴장된 복수의 숨소리.
주먹을 불끈 쥐고 옥상에서 뛰어 내린다. 복수의 떨어지는 시점으로 보이는 건물 안의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보인다.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리는 복수.
감독 : (E) 컷. (일어서며) 오케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던 복수가 살짜기 미소짓는다.
눈을 뜨고 일어서는 복수. 복수를 받치고 있는 바닥엔 커다란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여기는 공포영화 촬영장이다. 얼굴에 피 분장을 한 너댓명의 배우들이 왔다갔다 한다.
양찬석 : (복수에게) 전과자. 가서 머리에 피 묻히구 와.
복수 : (신나서) 네. 감독님. (연신 미소를 지으며 양찬석에게 다가간다.) 감독님. ...나, 잘했죠?
양찬석 : (무심하게 걸어가며) 응.
복수 : 히. (양찬석의 손을 가져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럼, 칭찬해줘요오.
양찬석 : (낄낄댄다.) 히히. 갈수록 앙증이 느냐, 넌? 전과자 주제에? (간다.)
복수 : (쫓아가며) 자꾸 그러면 감독님 지갑턴다아?
10. # 공연장 (낮)
스탠딩 공연장이다.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경이 걱정스레 관중을 보고 있고 있다.
맥주 하나씩을 손에 쥐고 흐느적대며 고개를 흔들어 대고 있는 관중 틈에 끼여서 별리가 노래를 불러댄다. 울면서 립씽크로...
공연장 무대 위엔 여자 객원 보컬이 미완성 밴드와 합류하여 노래를 부르며 공연중이다.
징징대며 맥주 마시며 춤까지 추며 이젠 큰 소리로 노래부르는 별리.
경에게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11. # 촬영장 (낮)
맨 바닥에 눈을 감고 엎어져 얼굴 옆면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복수.
복수의 머리를 중심으로 검붉은 피가 아메바처럼 바닥으로 흥건히 흘러나온다.
감독 : (E) 컷. 오케이.
복수가 눈을 뜨고 일어난다. 볼에 묻은 흥건한 피를 수건으로 닦는다.
복수 : (손가락에 묻은 피를 혀로 살짝 핥으며) 아으, 달어.
우찬석 : (피분장을 했다. 복수를 안됐다는 본다.) 넌 하필이면 머리 터지는 역이냐? 찝찝하게...
복수 : 이 영화 언제 극장에 붙어?
우찬석 : 9월 달.
복수 : (수줍은 미소) 멋있게 나와야 되는데...
우찬석 : 시체가 멋있게 나오면 영화 망하지. 공포영환데...
12. # 거리 (해질녘)
각각의 악기 하나씩을 들고 매고 거리를 걷는 밴드들. 그 안에 객원보컬도 있다.
정국 : 현아, 소주나 한 잔 하구 가라. 삼겹살 먹을래?
현아 : 아무거나...
별리 :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난 삼겹살 싫어. 쭈꾸미 먹자.
정국 : 넌 한 것두 없는데 뭘 먹냐? 가, 넌.
별리 : 나 갈래. (삐져서 저만큼 걸어간다.)
경 : 언니. (별리를 쫓아 뛰어간다.)
기홍 : (팩 소리친다.) 아, 왜 그래에? 불쌍하게...
정국 : 쟨 쿠사리 좀 먹어야 돼. 그래야 발전이 있지.
...(기막히다는 듯) 아까 지 노래 현아가 부르는데, 좋다구 춤까지 추드라. 제 정신이냐?
13. # 미래의 집 - 옥상 (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수박을 자르면서 인상을 쓰는 미래.
복수와 현지는 빨래를 걷고 있다.
미래 : 냅두고 얼른 와서 수박 먹어어.
복수 : 그래. 먹자. (걷은 빨래를 바구니에 담고 추적대며 돗자리로 온다.)
현지 : (복수의 손을 잡으며 같이 와서 앉는다. 그리곤 수박 한 조각을 복수에게 건낸다.) 형부. 씨 빼주까?
(손톱 끝으로 씨까지 빼준다.)
복수 : (겁먹은 표정으로 수박을 받아든다.) 현지야.
현지 : 응?
복수 : 손톱에 때 꼈다. 수박에두 묻었겠다, 그거?
현지 : 그럼 그거 내가 먹을게. 형분 이거 먹어. (수박을 바꾼다.)
복수 : (여전히 겁먹은 표정으로) 현지야.
현지 : 응?
복수 : 하던대로 하지?
현지 : ...그래두 돼?
복수 : 아우, 너 그러니까... 그냥, 막 소름이.... 아으. (수박을 배어물며) 공포스럽다, 야.
현지 : 뭐, 니가 정 원한다면 어쩌겠냐? (수박을 먹으며) 아, 맛 되지게 없네. 맹탕을 사갖구 오냐, 넌?
미래 : 하여간 오바가 전문이야.
복수 : (씩 웃으며) 현지는 오버 소녀.
미래 : (복수에게 인상을 쓴다. 퉁명스레) 야. 촬영한 날 뭐하러 와, 여긴? (수박을 가리키며) 이 무거운 걸 들구... 안 피곤해?
복수 : 피곤하지이. ...근데, 오늘 오빠가 처음 스턴틀 했잖아. 그러니까 왔지.
미래 : 뭐가 그래서 와? 너, 3일 내내 왔어. 괜히 와서 빨래 걷어주구, 청소해주구...
(인상을 쓰며 수박을 먹는다.) 그러지 마라, 응?
현지 : (미래에게 버럭 화를 내며 일어선다.) 아, 잘해준다는데, 또 뭐가 불만이냐? 복에 겨워 환장을 했구만.
(그리곤 현관으로 들어간다.)
미래 : (어이가 없다.) 쟤 오늘 왜 저러냐?
복수 : (덩달아) 아, 잘해준다는데, 뭐가 불만이냐?
미래 : ...(복수를 바라보다가 수박을 자른다. 나직하게) 잘해주지마. 매일 매일 오지두 말구...
복수 : (쭈뼛대며) 왜?
미래 : (여전히 눈을 내리깐채) 너... 맘 잡을라구, 바둥대는 꼴... 너무 잘 보인다, 복수야.
복수 : ...
미래 : 그럴 때마다, 너 뭉개버리구 싶은데... 존심 땜에 내가 참아.
복수 : ...
미래 : 노력은... 나 모르게 해라. 내 앞에서 바둥대지 말구...
복수 : ...(미래를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다.) 미래야.
미래 : ...
복수 : (허공을 보며) 이렇게라두 해야 돼. ...그냥 니가 봐 줘. ...미안하다.
미래, 눈을 내리깐 채 붉은 수박의 씨만 손가락으로 뜯어낸다.
14. # 삼겹살 집 앞 문턱 (밤)
나란히 쪼그려 앉은 별리와 경.
엉엉 울어대는 별리를 다독이는 경.
별리 : (술이 꼴았다.) 나, 멋진 보컬이 돼서, 정국이 저 놈이랑, 저 보컬 같지두 않은 보컬 기집애랑 다 밟아 버릴거다?
경 : ...(별리를 뚫어지게 보며) 그럴 날이 있을까, 증말?
별리 : (불쌍한 표정으로) 그냐? 없냐?...에유, 씨. (그러더니 경의 무릎으로 꼴까닥 쓰러지며 고개를 파묻고 잔다.)
경 : (미소지으며 별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두 난, 언니 보이스가 훨씬 좋다. 특히 언니가 이거 부르면 뿅가.
(미소 지으며 “꿈꾸는 나비”를 부른다.)
점차 허한 눈동자가 되어 노래를 흥얼댄다.
15. # 버스 안 (밤)
복수가 “꿈꾸는 나비”를 흥얼댄다. 경의 목소리와 오버랩 되어서...
경이 준 플레이어로 “꿈꾸는 나비”를 듣고 있는 복수. 어둡다. 어둡게 흥얼댄다.
16. # 도로를 달리는 복수의 버스 INS (밤)
창문가에 앉은 복수의 모습.
도시의 야경 속에서 플레이어의 음악과 복수의 목소리와 경의 목소리가 동시에 이 노래를 부른다.
17. # 도로를 달리는 경의 버스 INS (밤)
창문가의 경의 모습. 위와 동일한 구도로 여전히 셋의 음성이 겹쳐진다.
18. # 경의 정류장 (밤)
출입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멈춘다.
버스에서 내리는 경.
정류장에 선 경이 마치 습관처럼 주변을 두리번 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슬쩍 슬쩍 둘러본다.
허한 눈으로 서 있다가 벤취에 앉는다.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어보는 경. 그러다 이내 파이프를 툭 바닥으로 힘없이 집어 던진다.
경 : 다시 담배나 펴야겠다.
가만히 파이프를 내려보던 경이 파이프를 주워 다시 옷에 닦는다.
일어서는 경. 놀란다.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복수가 서 있다.
도로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경. 그러다 이내 뒤로 물러서서 슬픈 듯 복수를 바라본다.
건너편 복수도 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애틋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둘. 그러나 둘은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 속에서 둘은 그렇게 서 있다.
복수 : (혼잣말) 나, 오늘 스턴트맨 됐어요.
건너편 경이 가방 안에서 손수건 상자를 꺼낸다. 그러다 이내 도로 넣는다.
경 : (혼잣말) 손수건 샀는데...
건너편 복수.
복수 : (혼잣말) 그거...알려주구 싶었어요.
건너편 경.
경 : (혼잣말) 손수건 샀는데...
그들을 막아서기라도 하듯, 달리는 차들.
그렇게 멀리서 다가서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둘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인다. F.O.
19. # 도심 버스 정류장 (아침)
부지런히 뛰어가는 경. 힘차게 거리를 달린다.
20. # 음반사 건물 앞 (아침)
뛰어온 경이 걸음을 멈춘다. 시계를 본다.
경이 한 쪽 구석으로 가서 크게 호흡을 한다. 그러더니 라마즈 호흡처럼 후하후하 숨을 내쉰다.
21. # 음반사 사장실 (아침)
소파에 앉아 사장을 기다리는 경. 시계를 본다.
경 : 후. 되게 떨리네.
이 때, 굵은 금목걸이에 쫄티를 입은 음반 매니져가 들어온다. 경을 아래위로 훑는다.
경이 소파 손잡이 쪽으로 바짝 붙어 앉으며 몸을 옴추린다.
매니져는 소파에 앉지도 않고 사장실을 왔다갔다 한다.
매니져 : 사장님 기다리지요?
경 : ...네.
매니져 : 우리 아버지야, 사장이...
경 : 네에.
매니져 : 나더러 알아서 하래, 거기.
경 : 네? ...절, 뭘 어뜩케 하실려구...
매니져 : 밴드라며? ...내가 거기네 데모 들었잖아. 우리 아빤 음악 몰라. ...내가 다 알아서 해.
나한테만 잘 보이면 돼. 나, 여기 기획 실장이잖아.
경 : 네에...
매니져 : (테이블 위에 쌓인 CD들을 뒤적이며 경을 외면하다.) 많이 기다렸나부다, 거기?
경 : (미소) 네.
매니져 : (경을 보며 마뜩찮은 듯 다시 되묻는다.) 많이 기다렸어요?
경 : (미소) 네.
매니져 : 으응? (시계를 보며 못 마땅한듯) 30분 밖에 안 늦었는데?
경 : (여전히 미소) 네. 늦으셨네요.
매니져 : ...(마뜩찮은 듯) 음반 내기 싫어, 거기?
경 : (그제사 상황판단을 한다.) 네?
매니져 : ...(경은 보지도 않고 CD를 뒤적이며 비아냥.) 30분 늦어서 미안하네?
경 : ...(당황하며 뒤늦게) 아... 별루 많이 안 기다렸어요. ...(불안한 듯) 제가 뭐라 그랬나요, 아드님?
매니져 : 아, 씨. (소리친다.) 실장님.
22. # 액션스쿨 (아침)
중앙에 와이어가 매어져 있고 양찬석의 지시대로 세 명의 스턴트맨이 액션동작을 취한다.
와이어는 마치 지붕을 가상한 듯, 세명의 스턴트맨들이 무사들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며 검술을 한다.
그 중에 우찬석도 있다.
복수와 꼬붕과 그 외 두명의 후배 스턴트맨이 무사 우찬석의 당김줄을 잡고 있다.
우찬석이 하나, 둘, 셋을 외치면 당김줄을 잡아 당기며 우찬석이 중앙 와이어로 오르게 한다.
두 세차례 반복을 한다. 다시 하나, 둘, 셋을 외치면 복수쪽 당김팀이 힘을 주어 당김줄을 당긴다.
이때, 칼을 휘두르며 멋진 액션을 선보이던 우찬석이 복수를 본다.
복수의 코에서 코피가 흐른다.
우찬석 : (복수를 보며 놀라서) 전과자, 코피나.
복수 : (당김줄을 놓으며) 어디?
꼬붕 : (복수의 얼굴을 보며 동시에 당김줄을 놓는다.) 어디?
우찬석 : 악.
바닥으로 거꾸로 곤두박질하는 우찬석. 고개를 들면, 우찬석의 코에서도 코피가 흐른다.
복수 : (코피를 닦으며 우찬석을 향해 씩 웃는다.) 에유, 별걸 다 따라하네. 내가 그렇게 좋아?
23. # 음반사 - 사장실 (아침)
소파 건너편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매니져.
매니져 : 기본은 됐드라.
경 : (미소) 고맙습니다.
매니져 : 근데... 왜 대중성이 없어요?
경 : 네?
매니져 : 음반내면 우리두 돈 좀 벌어야 되는데? 아니, 뭐... 기자 부탁이라구 잘 해주라드라, 아부지가..
근데... 똔똔만 되면... 할 수두 있지. ...근데, 그것도 안될 거 같네? 대중성 있게 편곡을 하든가...
경 : ...
매니져 : (비아냥) 듣기 싫겠다? 예술하는 사람들... 대중성 싫어한잖아.
경 : 그게 아니라... 뭐 대단한 예술한다구 그러는게 아니라...
매니져 : ...
경 : 사실... 우린 대중적인게 뭔지 잘 몰라서요. ...어떤게 대중적인 건지 잘 몰라서... (포기한 듯) 몰라서 못해요.
매니져 : 뭘 몰라아? 티브이에 나오는 거... 락밴드두 많이 나오는데, 티브이에?... 애들이 오빠, 언니 소리치구 불러대는거어...
경 : (고개 숙이며) 네에. ...근데, 그런 거 재미 없는데, 우린...
매니져 : 맛들이면 괜찮아. ...그딴 걸루 바꿔, 길을... 거기 비쥬얼두 되는데, 칙칙하게 이런 걸 하냐아?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경.
24. # 건물 계단 (낮)
미래 : (인상을 긁으며 내려온다.) 아, 씨. 또 왜 보자는 거야, 귀찮게...
25. # 건물 앞 (낮)
헬로우 올드카 로고송이 들린다.
미래, 눈이 똥그래져서 강의 승용차를 바라본다.
승용차 문에 헬로우 올드카란 로고와 함께, 전화번호, 핸드폰번호가 적혀있고
옆쪽에 치어리더복을 입고 꽃술은 든 미래의 사진이 새겨져 있다.
강은 운전석에 무뚝뚝하게 앉아있다.
미래가 신기한 듯 미소 지으며 다가간다.
미래 : (웃으며) 좀 못생기게 나왔다?
강 : (퉁명스레) 너, 원래 이렇게 생겼어.
미래 : (연신 웃으며) 고작 요기다 달구 다니는 거야? 트럭에두 붙이구 다닐 거라며...
강 : 그럴거야.
미래 : 차에다 이러구 다니는 거 불법 아닌가?
강 : 난 법 몰라. 밥 먹으러 가자.
미래 : 나만 보면 왜 그렇게 밥 타령을 하냐아? ...냉면이나 먹지, 뭐. (그리곤 뒤 좌석 문을 열고 탄다.)
26. # 강의 승용차 안 (낮)
강 : 야, 옆에 타.
미래 : 싫어. 사장님, 느끼해.
강 : 아, 씨. 꼭 얘 운전수 같네. (출발)
이때, 멀찍이서 경이 힘없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미래, 망설이다가 이내.
미래 : 사장님 동생두 같이 가자.
강 : 그냥, 둘이 먹지?
미래 : 같이 먹어. 왜 자꾸 둘이 먹재?
강 : (혼잣말로 불만스레) 아, 나 경이랑 별루 안 친해.
미래 : 그럴 거 같애. 나두 쟤랑 안 친해. 그렇게 모여서 먹어보자. 어뜩케 되나.
강 : (인상을 쓰며 궁시렁) 그냥 둘이 먹지. (경 앞에 차를 세운다.)
27. # 건물 앞 거리 (낮)
경, 승용차가 와 서는 바람에 정신을 차린다.
강 : 경아.
경 : 어? 오빠. 웬일루?
강 : 밥 먹자.
경 : 생각없는데...
강 : (뒷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생각 없대잖아.
미래 : (유리문을 내리며) 밥두 생각하구 먹냐? 때 되면 먹는 거지. 타.
경 : ...(망설인다. 그러다가 차 문에 박힌 미래의 홍보물을 본다. 그리곤 마지못해 조수석 문을 연다.)
미래 : 야, 뒤루 타. ...나 혼자 심심하다.
경 : (마지못해 뒷 자리로 가서 앉는다.)
강의 차가 출발한다.
28. # 강의 승용차 안 (낮)
나란히 앉은 미래와 경. 서로 아무 말이 없다.
경, 불편하다.
경 : (어색한 듯 미래에게) ...사진발... 잘 받네요, 언니.
미래 : (냉정하게) 아부 떨지 마.
경, 무섭다. 창밖만 본다.
29. # 냉면집 (낮)
아무 말도 않고 냉면만 먹는 경과 미래.
강 : (미래에게) 야, 얘기 좀 해. 돼지처럼 먹지만 말구...
미래 : 아저씨 동생하구 놀아. 왜 나한테 그래?
강 : 얜 원래 말수 적어.
미래 : (경을 보며) 장하다.
경 : ...
강 : (핸드폰이 울린다.) 네. ...응. ...몇 대나 필요한데? (일어서서 나간다.) 아니, 내 승용차 안에 장부 있어. 기다려 봐.
경 : ...(고개를 숙인채 냉면만 먹는다.)
미래 : (냉면을 먹는다.)
꽤 긴 침묵이 흐른다.
경 : (한숨을 한 번 쉬곤) 언니...
미래 : (고개를 들어 경을 본다.)
경 : ...(헛기침을 한다. 그리곤 냉수를 먹는다.) 저기... 그 때, 언니가 본게 다예요.
미래 : ...
경 : (횡설수설) 그 때, 손 한 번 잡구... 그리구서. 음... 지금은... 안 만나는데...
(정리가 된 듯) 근데... 복수씨가... 저랑 만나기 싫대요. ...그렇게... 제대루 됐어요.
미래 : (냉면을 먹으며) 머리 잘랐니?
경 : 네.
미래 : 복수두 머리 잘랐다?
경 : 네에.
미래 : 니네 통하나 부다, 야.
경 : ...
미래 : ...
경 : ...
미래 : (어둡게) 근데, 지금 제대루냐? 우리?
경 : ...
미래 : (젓가락을 내려 놓으며 경을 본다.) 복수는 제대루 나한테 왔는데... 걔 마음은 비었드라.
경 : ...
미래 : 어뜩케 돌려줄래? 걔 맘?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갑자기 시계를 풀어 경에게 준다.) 이거 도루 주면, ...복수 줄래?
(그리곤 슬픈 듯 경을 본다.)
경 : (고개 숙인채 말이 없다.)
미래 : 응?
경 : (어렵게 입을 뗀다.) ...모르겠어요.
미래 : ...(힘없이 경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난... 니네 둘, ...모르겠단 말이... 제일 무섭다.
30. # 보라매 공원 (밤)
복수 : 아, 몰라아.
걸어가는 복수와 뒤를 따르는 우찬석.
우찬석 : 병원 가라니까...
복수 : 몰라.
우찬석 : 병원 가.
복수 : 몰라.
우찬석 : 모르긴 뭘 몰라. 요즘 들어서 자꾸 아프다며? 아픈 걸 참아서 되냐? 코피까지 흘리구...
복수 : (팩 소리친다.) 너두 흘렸잖아. ...아, 수술해두 가망 없다잖아.
우찬석 : 뭐든 시도를 해야지 도망만 다니냐? 이 비겁자야. 너 인생 그렇게 비겁하게 살래?
복수 : 아, 몰라. 아무것두 몰라. 몰라, 몰라. 넌 너 언제 죽는지 알어? 너두 모르잖아. 나두 몰라. 우리 다 몰라. 난 몰라.
걸어가는 복수와 따라가는 우찬석.
31. # 동진의 거실 (밤)
어지럽혀진 동진의 거실. 마루바닥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다.
동진 : 사장님. 째째하다아. ...그런 음악은 음반사 이미지루 미는 거지. 그걸루 무슨 돈 벌 생각을 하냐아? ...어으, 돈타령은...
알았어요. (핸드폰을 끊는다.)
그리곤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동진 : 잘 되면 뽀다구 좀 잡을라 그랬는데... 불쌍한 경이.
(한참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본다. 어지러운 거실.) 니가 더 불쌍하다.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가지를 치운다. 그러다 힘없이 소파에 앉는다.
앉아서 거실 창을 바라보는 동진.
동진 : (쓸쓸이) 전경, 멍청해. 전경, 멍청해. ...전경... 멍충아. ...(한숨) 이제 놀 만큼 놀지 않았나, 걔랑?
창가에 비친 동진의 쓸쓸한 모습.
32. # 미래의 집앞 (밤)
복수 : (중얼댄다.) 사는게 다 비겁한 거지, 뭐. 비겁하지 않은 놈이 누가 있어. ...있다. 우리 아빠. ...그리구 미래.
(대문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구... 전 경.
미래 : (E) 뭐?
복수 : (당황) ...들었어?
미래 : (E) 응.
복수 : 뭘?
미래 : (E) 전 경.
복수 : 아우, 씨.
33. # 미래의 집 - 거실 (밤)
인터폰을 들고 있는 미래.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현지.
미래 : 가, 새끼야. ...입 씻구 내일 와. (인터폰을 툭 끊는다. 어금니를 문다. 그리곤 고개를 흔든다.)
안돼, 안돼. 슬퍼하구 그러면 안돼. (만화같은 표정으로 눈에 힘을 준다. 그리곤 현지를 본다) 현지야.
현지 : 응?
미래 : 인젠 명랑하구, 적극적으루, 복수 맘을 돌려야 돼. (픽 웃는다.) 그래야 내 매력이 살어. 히. 안 그러냐?
현지 : (얼띤 표정으로) 언니는 자꾸 자길 매력적이라 그러는데... 난 언니 매력적이라구 생각하진 않거든?
언니가 매력적이라구 생각하는 바가 뭐야?
미래 : ...이거다. (쿠션으로 현지의 머리통을 때린다.)
현지 : (인상을 쓰며) 매력이 그거냐? 에유, 채일만 했다.
미래, 도망가는 현지에게 쿠션을 날린다.
34. # 미래의 집 앞 골목길 (밤)
골목길을 내려가는 복수.
복수 : (미소) 아우, 기집애. 칼이다.
미소 지으며 내려오던 복수가 경의 플레이어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복수 : (혼잣말) 지금 뭐하구 있을까?
35. # 경의 정류장 (밤)
경이 정류장 벽에 편지를 붙인다. <미완성의 MP3플레이어 돌려주세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쓴 편지를 보고 있는 경. 그렇게 멍청히 서 있다.
36. # 까페 (저녁)
창가를 보며 탁자보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인옥.
흔들리는 손으로 물컵을 들다가 물컵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냅킨으로 닦는다. 그러다 옷자락에 물을 쏟는다.
인옥 : 엄마야.
벌떡 일어서서 냅킨으로 부지런히 물을 닦아대는 인옥.
이 때, 무영이 와 선다. 머리가 부시시하고 헐렁한 마 섬유 자켓과 면 바지를 입은 무영의 모습.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오히려 서글서글해 보이고, 지적이다.
인옥, 놀란 듯 무영의 모습만 바라본다.
무영도 인옥의 젖은 옷섶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인옥의 얼굴만 넋을 잃고 본다.
무영 : (부끄러운 미소) 증말... 똑같다, 옛날이랑...
그렇게 마주선 둘.
인옥, 벌써 눈가가 젖어온다. 인옥의 스커트 밑단에서 바닥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37. # 경의 집 - 거실 (밤)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경.
불꺼진 거실엔 스탠드만 켜져 있다.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낙관.
경, 잠자는 낙관을 바라본다.
미선이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온다.
미선 : 하우. 어? 아가씨 왔어요?
경 : (낙관을 가리키며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붙인다.)
미선 : (의아한 표정으로 낙관을 본다.)
경 : (소곤댄다.) 엄마는요?
미선 : (소곤댄다.) 아직 안 들어 오셨나?
경과 미선이 안방으로 간다.
38. # 경의 집 - 안방 (밤)
인옥이 없다. 걱정스레 서 있는 경.
미선 : 웬일이냐? 12시가 다 됐는데?
경 : ...몇 시에 나가셨어요?
미선 : 낮에 나가셨어요. 문화센터 간다구 나가셨는데...
경 : 그래요?
미선 : (생각없이) 바람이 나셨나?
경 : (인상을 찌푸린다.) 언니.
미선 : 히. 농담, 농담, 아가씨. ...(인상을 쓰며 대뜸) 아가씨 땜에 그래.
경 : 네?
미선 : 아가씨가 어머니한테 소리 질렀잖아요. 아가씨 땜에 그래. (그리고 나가려는데)
경 : (짜증났다.) 언니, 내가 그렇게 만만해요?
미선 : (착한 표정으로) 아가씨 말구 만만한 사람 없잖아요, 나. ...아가씨하구, 하나님 없으면, ...나 화병으로 죽어요. (나간다.)
경 : 어뜩케 보면 귀엽구... 어뜩케 보면 얄밉구... (침대맡의 이불을 본다.)
39. # 경의 집 - 거실 (밤)
살금살금 이불을 들고 나와 낙관에게 덮어주는 경.
낙관 : (눈을 감은 채 이불을 걷어낸다.) 됐어. 더워.
경 : (인사를 꾸벅 하며) 안녕히 주무세요. (가려는데)
낙관 :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나직하게) 넌 어뜩케... 내가 그렇게 구박을 하는데두... 대들질 않냐?
경 : ...
낙관 : (살짜기 눈을 뜬다.) 말은 되지게 안 듣는 거 같은데... 반항을 안해, 왜? 강이두 어려선, 나한테 꽤나 대들었는데...
경 : ...(엉거주춤 서서 고개 숙인다.) 아빠 모르게 해요, 반항.
낙관 : 어뜩케?
경 : ...(망설이듯) 아빠네 호텔 자주 드나 들었어요.
낙관 : (벌떡 일어난다.) 뭐?
경 : 친구들 술 먹구, 갈데 없으면, 무조건 아빠 호텔에 재웠어요. 여관비 없어서 그런 적두 있구,
있어두 일부러, ...아빠 호텔에 실어다 날랐어요. ...그런 거라두, 아빠 덕 좀 봐야겠다. 오기루요.
...스릴두 있구... 아빠한테 걸리면 어뜩케 될까. (그렇게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안녕히 주무세요. (제 방으로 향한다.)
낙관 : 너두 거기서 잤어?
경 : 전 거기서 잔 적 없어요. ...아빠껀데... 불편하잖아요. ...주무세요.
계단을 오르는 경.
낙관 : (애틋한 음색으로) 경아.
경 : (돌아본다.)
낙관 : (부드러운 음색이다.) 어깨 좀 피구 다녀. 약해 뵈. ...(이불을 들고 일어서며 안방을 향한다.)
난 약한 놈들만 보면, 신경질 나. ...약한 건... 니 엄마 하나루두 벅차. (안방으로 들어간다.)
낙관을 바라보는 경.
40. # 경의 방 (밤)
창가에 선 경. 창문너머로 승용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인옥의 모습이 보인다.
문을 닫은 채 승용차 문에 기대 선 인옥이 멍하니 하늘만 본다.
41. # 안방 (밤)
경과 같은 자세로 창가에 서서 인옥을 바라보는 낙관의 어두운 얼굴. F.O.
42. # 복수의 집 - 툇마루 (아침)
금붕어 밥을 들고 어항으로 가는 복수. 미래가 없다.
복수 : 아빠.
중섭 : (출근복을 입고 나와서 신을 신는다.)
복수 : 미래 어딨어?
중섭 : 죽었어. (화를 내며 나간다.) 내가 뭐래? ...그딴 거 금방 죽는댔잖아. ...고기는 사다가 괜히 죽여?
(대문을 나선다.) 밥두 제대루 안 주구...
복수 : (멀쭝히 중섭을 보며) 아, 왜 화를 내구 그러냐? (어항을 보곤 우울하게) ...경이, 친구 없어서 어뜩하냐?
우울한 눈으로 화단을 바라보다 햇빛에 반짝 빛을 받은 쇠붙이에 눈길이 머문다.
구석 화단에 쇠붙이로 만든 조그만 십자가 목걸이가 세워져 있다.
복수, 마당으로 가서 십자가를 본다. 주먹만한 무덤 위에 십자가 목걸이가 꽂혀있다.
복수 :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우울하게) 아빠 혼자서 장례식 치렀구나. 혼자서 그르냐, 아빤? 슬프게?
(한참을 우울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 사실은 얘 미래 아니야. 그 기자야. 싸가지 없는 그 기자.
43. # 연습실 건물 앞 (낮)
경의 손을 이끌고 가는 동진.
경 : (인상을 쓴다.) 싫어요, 한 기자님.
동진 : 아, 될 때까지 뚫어 봐야지. ...가자.
경 : (동진의 손을 풀며) 한 기자님.
동진 : 응.
경 : 저... 이 정도루두... 한 기자님한테 고마워요.
동진 : 된게 없잖아.
경 : 안됐어두 고마워요. ...기자정신 다 버리구... 여기저기 음반사 소개하겠다구... 얼마나 고마운데요.
동진 : (퉁명스레) 나, 기자 정신 없어.
경 : (웃는다.) 예전엔 있었잖아요.
동진 : (귀엽게) 너 땜에 버렸어.
경 : (깔깔댄다.)
44. # 치어 연습실 (낮)
미래가 창가에서 경과 동진을 본다.
미래 : 조고 그새 딴 남자랑 시시덕대네? (피식 웃는다.) 그를 줄 알았어. 아, 씨. 사진을 찍어놔야 되는데...
(한참을 보더니) 복수보다 잘 생겼네?
45. # 스파게티 전문점 (낮)
경 : (식사를 한다.) 근데... 오늘 한가하세요?
동진 : 오늘 노는 날이야. ...(불쌍하게) 자기가 같이 놀아주지.
경 : (미소) 난 바빠요. 딴 사람 만들어서 노세요.
동진 : (갑자기 짜증) 아, 언제 돌아올 거야아?
경 : 안 돌아가요.
동진 : 아, 짜증나. ...그 놈이 니 운명적 사랑이야?
경 : (또다시 깔깔댄다.) 그걸 내가 어뜩케 알아요? 내가 내 운명을 모르는데?
46. # 거리 (낮)
나란히 길을 걷는 경과 동진.
동진 : 확신두 없으면서...엑스트랑 연애를 하냐? 응?
경 : ...난 확신... 잘 몰라요.
동진 : 그게 뭐야아?
경 : ...예전에... 대학 선배 오빠를 좋아했는데... 그 사람이 내 운명의 남잔 줄 알았어요.
..난 나름대루 죽을 만큼 연애했는데... 그 오빠랑 헤어지구, 2주 지났더니... 아무렇지두 않았어요.
동진 : ...
경 : 만날 때 마다, 그렇게 가슴 설랬는데두... 그리구... 지금... 두 번째 남자를 만났어요. 가슴이 설래요.
...그리구 못 본지 3주가 지났어요. ...근데, 이번엔... ...마음이... 아파요. 목이... 따가워요. 머리가... 없어졌어요. ...
...내가 아는 건, 그거 뿐이예요.
동진 : 걔가 안 만나 줘?
경 : ...네.
동진 : 웃기는 짜장이네? 너 고작 엑스트라한테 채인거야? 아, 자존심 상해.
경 : 모르겠어요. ...근데... 아직... 끝난 거 같지 않아요. ...그래서, 울지두 않구, 참고 있어요.
동진 : ...너 참. 무모하다. 그리구...
경 : ...
동진 : 이쁘다.
경 : ...
동진 : ...(경에게 눈길을 돌리며 외롭게) 왜 날 자꾸 꼬시냐, 전경? ...알면 알수록 이쁘네.
경 : ...
동진 : (외면한채) 부러워 죽겠네, 그 못생긴 놈. ...짜증나.
외로운 눈길로 경을 외면한 동진.
살짝 동진을 바라보던 경이 고개 숙인다.
47. # 액션스쿨 - 플로어 (낮)
복수가 플로어를 누비고 다닌다. 각 팀들의 장비 심부름을 빠릿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잠시도 쉬지 않고 선배 스턴트들의 액션을 따라하고... 끼여들고 한다. 꼬붕에게 시키는 심부름도 자신이 쪼르르 달려가서 한다.
꼬붕은 한 켠에서 와이어 정리를 하며 복수를 본다.
한켠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양찬석. 그 옆에 우찬석이 복수를 유심히 본다.
양찬석 : 쟤 왜 저렇게 나대냐? 잠시도 쉬질 않네? 일이 힘들어서 돌았나?
우찬석 : (물끄러미 복수를 바라본다.)
스턴트 선배 뒤에서 액션을 흉내내던 복수가 또 끼여든다.
복수 : 나두 할께요, 형. 네?
스턴트 선배 : (귀찮은 듯) 아, 절루가. 합 맞추느라 바뻐 죽겠는데...
복수 : 에이... 치사하게...
우찬석, 못 참겠다는 듯 복수에게 다가와 복수의 손을 끌고 사무실로 향한다.
복수 : 아, 왜 그래에?
48. # 액션 스쿨 - 사무실 (낮)
우찬석, 다짜고짜 복수를 소파에 앉힌다.
복수 : (의아한 듯) 왜에?
우찬석 : 앉어 있어.
복수 : (소리가 높아진다.) 왜에?
우찬석 : 아, 그냥 앉아있어. 아니면 눕든가... (그리곤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복수 : (소리 더 높인다.) 왜에?
우찬석 : (소리친다.) 아, 시끄러. (그리곤 촬영 스케줄을 정리한다.)
복수 : (물끄러미 앉아서 우찬석을 본다. 슬픈 눈으로...)
우찬석 : (슬쩍 복수를 본다. 퉁명스레) 왜에?
복수 : 찬석아. 은장도 파는 데 어디냐?
우찬석 : (의아한 듯) 왜에?
복수 : 이러구 가만 있으니까... 자꾸 눈 앞에 여자 하나가 아른댄다. ...과도라두 줘 봐. 허벅지 찔러가면서 참게...
우찬석 : 누군데?
복수 :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이러구 있으면 안된단 말야. ...날 가만히 놔두면 안되는데...
이럴 줄 알았어. ...날 못살게 굴어야 되는데... 이럴 줄 알았어. (어둡다. 그러다 소리친다.) 왜 생각나게 만들어어? 씨.
사무실을 나가는 복수.
49. # 연습실 건물 앞 (밤)
비 내리는 밤 거리.
건물 건너편 전봇대에 우산을 쓰고 숨어있는 복수. 복수의 몸은 보이지 않지만 우산은 보인다.
건물 현관으로 경이 올라온다.
경, 내리는 비를 보며 잠시 서 있다. 머리에 가방을 얹고 달려나가는 경.
복수, 경을 따라 가려고 전봇대에서 몸을 드러낸다.
이 때, 현관으로 내려오는 미래. 복수와 눈이 마주친다.
미래, 복수를 보고 미소짓는다.
복수, 경을 쫓으려던 몸을 돌려 미래에게 우산을 들고 다가간다.
미래 : (미소) ...누나 비 맞을까 봐 우산 갖구 왔어?
복수 : 응.
미래 : (머리를 쓰다듬는다.) 착하네에. (우산에 쏙 들어가며) 집에 가서 김치부침개 해주께. 비두 오는데...
복수 : 아, 좋지. (망설이듯 우물쭈물) 근데, 미래야. 나, 지금 촬영가야 되거든?
미래 : 촬영? 비오는데?
복수 : 촬영은 비 와두 해에. 비하구 아무 상관없어. 진짜야.
미래 : 누가 가짜래? 근데, 왜 왔어?
복수 : (찔린 듯) 우산 줄라구.
미래 : (감동) 진짜?
복수 : 글쎄, 뭐. 진짠지... (부담) 아, 감동 먹지마. 무서워. (바삐) 갈게, 미래야.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 복수.
미래 : (울먹인다.) 지 잘못은 알아가지구... 불쌍하게 애쓰구...
(소리친다.) 복수야. 감기 조심하구, 비 너무 많이 맞지마. 산성비라 머리빠져. 응?
열심히 뛰어가는 복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미래의 눈길이 따스하다.
50. # 건물 앞 버스 정류장 (밤)
비를 맞으며 정류장을 두리번 대던 복수가 아쉬운 눈길로 서 있다. 그러다가 129번 버스가 오자 타려한다.
그러다가 다시 내려, 갑자기 뛰어간다.
아주 멀리 코너를 돌아 뛰어가는 경의 뒷모습이 보였다.
51. # 레코드 점 (밤)
복수와 경이 음반을 고르던 레코드 점이다.
머리가 젖은 경이 매장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음반은 고르지 않고 창가에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이 때, 창가로 쏜살같이 달려오는 복수의 모습.
복수는 바보같이 바로 창 앞에 서 있는 경은 보지도 못하고, 멀찍이 음반을 고르는 사람들만 살핀다.
뒤늦게야 창 앞의 경을 바라보는 복수. 화들짝 놀란다.
똥그란 눈으로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선 둘.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복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복수 :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또박또박 어줍잖은 멘트) 아니. 이럴수가? 여기서 이렇게 우연히 마주칠 줄이야...
경 : ...
복수 : ...
경 : ...
복수 : (자책하듯 부끄럽게 중얼댄다.) 아, 톤이 너무 높았어.
...(경을 보며 수줍게) ...아, 안 만날려 그랬는데... 여기서 마주친 걸 어뜩해요? 그렇지 않나?
경 : (수줍게) ...그러게요.
복수 : 아, 참. 안 만날라 그랬는데...
경 : (퉁명스레 대뜸) ...보구 싶어 죽는 줄 알았네.
복수 : (부끄럽게 고개를 숙인다.) ...나두요.
둘, 바보같이 고개를 숙이고 어쩡쩡하게 서 있다.
현관 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에 밀려 중심을 잃고 한 발짝씩 옆걸음으로 물러서는 둘.
물러선 자리에서도 다시 자리를 잡고 바보같이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52. # 거리 (밤)
경이 산 복수의 손수건을 앙증맞게 머리에 하나씩 두드고 빗 속을 천천이 걷는 둘.
복수 : 손수건 산 걸 계속 가방에 넣구 다녔어요?
경 : ...
복수 : 뭐하러 넣구 다녀요, 무겁게?
경 : ...(웃는다.) 손수건이 무겁긴 뭐가 무거워요?
복수 : ...(궁시렁) 아, 나 계속 되두 않는 말만 하네.
비를 피하느라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혹은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둘은 비를 맞으면서도 아주 천천이 걷는다.
53. # 떡볶이 포장마차 (밤)
서서 먹는 떡볶이 포장마차. 말도 없이 떡볶이를 먹는 둘.
이쑤시개에 찍힌 떡볶이 국물이 경의 앞 섶에 한 방울 떨어진다. 옆에 놓인 냅킨으로 떡볶이 국물을 닦아내는 경.
복수 :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비 맞으면 씻겨 내릴텐데요, 뭐. 신경쓰지 마요.
경 :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떡볶이를 집어드는데 다시 국물이 옷섶에 떨어진다.)
복수 : 아, 진짜 왜 이렇게 흘리냐? 드럽게?
경 : (눈치를 보며 이쑤시개를 내려 놓곤 냅킨으로 열심히 닦는다.)
복수 : (가방 속에서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경의 목에 삼각으로 턱받이를 해준다.) 헤. 애기 같다. (그리곤 떡볶이를 먹는다.)
경 : (민망한 듯 목에 두른 손수건을 살짝 풀어내리는데...)
복수 : (풀어져 내리는 손수건을 보곤) 어? 풀어졌네? (그리곤 다시 손수건을 묶어준다. 이번엔 매듭을 세게 맨다.)
경 : (큰소리로) 아, 목 졸려요. (사람들이 쳐다본다. 울상이 되서 눈을 피한다.)
복수 : 아우, 승질있네. 소리두 지르구...
경 : (문득 밖을 보며) 어? 비 그쳤다.
복수 : 그르네? 떡볶이 국물, 여기서 닦구 가야겠다.
54. # 경의 정류장 (밤)
버스에서 내리는 둘.
경 : (고춧물이 든 앞섶을 계속 만지작 댄다.)
복수 : 아, 옷에 구멍 나겠다.
경 : 좀 드럽죠?
복수 : (씩 미소짓는다.) 귀여워요.
경 : (퉁명스레) 이게 뭐가 귀여워요?
복수 : 어차피 집이 요긴데요, 뭐?
경 : ...(진지하게) 아니요. 나 원래 그렇게 음식 안 흘려요. ...복수씨가 오해할까봐 얘기하는건데...
나, 그렇게 지저분하게 뭐 묻히구 다니는 사람 아니예요.
복수 : ...네. 알았어요.
경 : (중얼댄다.) 아우. 오늘따라 지저분하게... 나 원래 그렇게 지저분하게 뭐 묻히구...
복수 : (소리를 높인다.) 아, 알았어요.
경 : ...(수줍게) 알았어요?
복수 : (장난스런 미소) 에이, 되게 이쁘게 보일라 그러네.
경 : (귀여운 미소로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알면 됐어요.
복수, 문득 유리벽에 붙은 편지를 본다.
빗물에 흘러내려 앞 글자는 보이지 않고 “주세요”라는 부분만 빗물을 타고 흘러내려 작은 흔적이 남아있다.
복수 : 벽이 아주 게시판이 됐네. 경이씨가 쓴 거예요?
경 : (퉁명스레) 아니요.
복수 : 뭘 줘요?
경 : (쭈뼛대며) 복수씨가 그거 보면... 연락할 줄 알구...
복수 : 경이씨가 쓴거예요?
경 : 아니요.
복수 : (웃으며) 뭘 줘요?
경 : (웃는다) 복수씨가 그거 보면 연락할 줄 알고... (집 쪽으로 향한다.)
멀어지는 두 사람. 깔깔대면서 대화를 반복한다.
복수 : (낄낄) 경이씨가 쓴거예요?
경 : (깔깔) 아니요.
복수 : 뭘 줘요?
경 : (깔깔) 복수씨가 연락할 줄 알구...
복수 : (헤죽) 경이씨가 쓴 거예요?
경 : (깔깔) 아니요.
복수 : 헤헤. 뭘 줘요?
경 : 깔깔...
멀어져 가는 둘.
55. # 경의 집 앞 (밤)
집 앞에 선 둘.
복수 : 들어가요.
경 : 네. (돌아서려다가 문득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 저기...
복수 : 네.
경 : ...(불안한 듯) 오늘 한 번 보구 또 못 보나요?
복수 : ...
경 : ...
복수 :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우연히 만나면 되잖아요. 좀 비열하지만...
경 : (미소) 살았다. ...잘 가요.
복수 : 저기...
경 : 네?
복수 : 악수하구 들어가요.
경이 손을 내민다. 복수가 살며시 악수를 한다.
굳게 복수의 손을 잡는 경. 마치 확고한 약속이라도 한듯...
56. # 경의 집 - 거실 (밤)
미소를 머금고 들어오는 경. 경 앞에 인옥이 서 있다.
경 : (굳은 표정.) 다녀왔습니다.
인옥 : ...(다정하게) 누구니, 걔? 남자친구야?
경 : ...
인옥 : 창가루 보이드라.
경 : ...내 사생활이야. 몰라두 돼. (방으로 향한다.)
인옥 : (당황) 경아.
경 : 엄마 사생활 말해주면... 나두 말할게. ...지금... 준비 됐어?
인옥 : ...(냉정히) 아니.
경 : 그래, 그럼.
경, 계단을 오른다.
남겨진 인옥의 쓸쓸한 표정.
57. # 복수의 집 (밤)
세수를 하고 있는 복수.
무심히 어항을 보고 있는 중섭.
중섭 : 혼자 쓸쓸해 뵈네.
복수 : 뭐가 쓸쓸해? 경이한텐 내가 있는데...
중섭 : 너루 안 돼, 임마. 수놈 하나 사다 넣어. ...친구 죽고 나서 심심해 보인다.
복수 : 함부루, 억지루, 짝 지워줬다간 불행해져.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중섭 : (피식 웃으며) 짝이 있어야 재밌지?
복수 : (짖궂게 웃는다.) 아빤 재미없었잖아. 엄마하구...
중섭 : (얼굴이 굳는다.)
복수 : 아빠가 너무 착해서 그래. 그지?
중섭 : ...
복수 : 왜 말을 못 해에? ...어려서 허구헌 날 엄마 악다구니... 아직도 기억나네, 아빠 못 살게 군거... 소리소리 질러가면서...
중섭 : (어둡게) ...그것만 기억나냐?
복수 : (미소) 아니. 다 기억나아. 머리 좋잖아, 나.
중섭 : (복수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내가... 날마다 술 먹구 주정한 거는?
복수 : (씩 웃는다.) 아빠, 술 참 잘 드셨어. 나한테 뽀뽀해 줄 때 마다 술냄새 팍 퍼지구... 으, 냄새나.
(중섭의 팔을 툭 치며) 그랬지, 아빠? 챙피하지?
중섭 : 니 엄마 때린 건?
복수 : (굳는다.)
중섭 : (고개 숙인채) 술만 먹으면 때렸는데... ...기억 나? (가만히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중섭을 바라본다.)
중섭 : ...(고개를 돌린다.)
복수 : ...(얼굴을 돌린다.) 아니. ...기억 안나. 그런 적 없어.
중섭 : ...다행이다. 그것만 잊어서...
눈을 돌린 복수와 중섭.
중섭, 일어서서 대문 밖으로 나간다.
얼어붙은 복수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문밖으로 뛰쳐 나간다.
58. # 복수집 골목길 (밤)
중섭이 담배를 피우며 천천이 걸어간다.
복수, 부리나케 달려와 중섭의 어깨를 돌려 세운다.
복수 : (화가 난 눈엔 이슬이 맺혔다.) 왜 그랬어? 응? 엄마, 왜 때렸는데?
중섭 : ...할 말 없어. (다시 추적추적 걷는다.)
복수 : (다시 중섭을 붙잡으며 소리친다.) 말해. 왜 팼어?
중섭 : (소리친다.) 나두 몰라. ...(눈가가 젖어온다. 낮게 울먹인다.) 나두 몰라. 왜 그랬나. 철이 없었나. ...팰 데두 없는 살을,
어뜩케 때렸는지... 나두 몰라. 그냥... 답답했어, 사는게... 니 엄마랑 사는게, 답답했어. (웅크리고 앉는다.)
복수 : ...(망연히 중섭을 바라본다.) 엄마 찾아줄까? ...그래서 엄마한테 잘못했다구 빌래?
중섭 : (다시 담배를 피워 문다.) 아니. 싫다.
복수 : (소리친다.) 뭘 잘했다구 싫어?
중섭 : ...나랑 산 10년동안, 내가 만든 멍자국이, 니 엄마 평생을 가져 갔을 텐데... 같잖은 사과가 말이 되냐?
...그냥, 이대루, 내가 한 짓 되씹으면서... 내가 알아서 죄인되서... 내 가슴 죄 할켜대구 있을 뿐이다.
...(긴 한숨) 그 땐... 왜 이럴 줄 몰랐을까? (눈물이 흐른다.)
복수 : ...(중섭을 바라보는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다 기억나, 나두... 에이씨, 모른 척 할라 그랬는데...
뭐하러 그 얘긴 꺼내냐, 아빠? 응? ...진짜 웃기는 아빠야. 못 말려.
복수, 눈물 흘리며 돌아서 집 쪽으로 걸어간다.
중섭은 멍하니 담배만 피워물며 훌쩍인다.
중섭 : ...미안하네, 복수 엄마. ...미안하다, 복수야.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중섭. 들썩이는 중섭의 어깨. 약하게 새어나오는 울음소리.
59. # 경의 방 (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옥.
경은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다.
인옥 : (경의 손을 잡는다.) 경아. ...엄만... 답답해. ...사는게 답답해. (눈물을 흘리며 침대맡에 얼굴을 파 묻는다.)
경 : (살짜기 눈을 떠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인옥의 머리를 어루만진다.) ...그런거 같애.
고개를 들어 경을 보고 울어대는 인옥.
60. # 복수의 집 - 툇마루 (밤)
안주도 없이 맥주 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는 중섭.
담배 한 모금씩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중섭의 모습.
61. # 중섭의 방 (밤)
어두운 방안에서 벽에 기대 앉은 복수의 눈에 툇마루에 앉아있는 중섭의 그림자가 어린다.
복수 : (아련한 모습으로 중섭의 그림자를 보며 혼잣말) 예전에 아빠, 술 그렇게 마셨어. ...기억나.
F.O.
62. # 한강변 레스토랑 (낮)
스테이크를 먹는 복수와 유순.
유순 : 난 다 먹었어. 얼른 일어나.
복수 : 아 좀. 우아하게 좀. ...경치두 좋구, 응? 멋진 남자하구 칼질두 하구... 왜 자꾸 가야지, 가야지 해?
유순 : (달래듯) 성호, 집에 올 시간 됐어. 1시간 안에 미술학원 끝나아.
복수 : 1시간 안에 보내주면 되지. ...아 좀 나하구두 놀아줘. 맨날 성호만 좋아하냐?
유순 : (흘겨본다.) 얼른 먹어. 분위기 되게 축축하네.
복수 : (웃으며) 그럼 정마담. 우리 강변을 거닐까?
유순 : 그래, 그래. 얼른 일어나. (일어선다.)
63. # 한강변 (낮)
한강을 걷는 둘. 복수가 웃으며 유순의 손을 잡는다.
유순 : (손을 빼며 인상을 쓴다.) 너 왜 자꾸 느물대? 누가 보면 진짜 불륜하는 줄 알겠네.
복수 : 으이그, 꿈두 야무지셔? 나처럼 탱탱한 놈이 미쳤나? 할머니랑?
유순 : 아, 더워.
복수 : 엄마. 잠깐만 앉아 봐. (강가 옆에 손수건을 펴 준다.)
유순 : (손수건 위에 앉으며 미소) 말년에 호강하네.
복수 : (옆에 나란히 앉는다.) 엄마.
유순 : 왜?
복수 : 요즘두 그 선글라스 만나? 멸치같이 비쩍 마른 남자.
유순 : (복수를 노려 본다.) 또 시작이네.
복수 : 엄마한테 잘해줘?
유순 : (일어선다.) 아, 골 아퍼. 나, 갈래.
복수 : (일어서며 유순을 부등켜 안는다.)
유순 : (당황한다.)
복수 : (유순을 안은채) 엄마한테 잘 해주면, 그 사람 만나아. 잘 되면 재혼두 하구...
유순 : (복수의 어깨를 밀며 못마땅하게) 무슨 수작이니? 응?
복수 : (우울하게) 엄마가 잘 되야 되는데... 씨.
유순 : 하, 더워. 나, 갈래. (바삐 걸어간다.)
복수 : (유순을 제지하며 다시 자신의 손수건 위에 앉힌다.)
유순 :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유순 앞에 마주보며 쪼그리고 앉는다.) 난... 엄마가 남자 만나야 한다구 생각해. ...이렇게 늙기엔 엄마가 너무 억울해.
...대신, 엄마가 막 구박해두, 닭다리 막 집어던져두, 그래두 좋다는 남자.
...엄마가 박박 소리 질러대두 웃는 남자. ...그런 남자.
...엄마가 먼저 좋다구 날치지 말구, 조게 나한테 관심있다 싶으면, 나한테 선 뵈. ...내가 남자니까, 남잘 더 잘 보잖아. 응?
엄만, 엄마한테 그럴 남자 없다 그러는데, ...세상에 단 한 사람두 없을까? 그럴리가 없어.
...남자 하나에 여자 하나는... 필수야. 서루 어울리게 돼 있어. ...안 그럼, 너무 억울하잖아, 사는 게? 아니야?
유순 : ...(피식 웃으며 복수의 눈길을 피한다.) 짚신두 짝이 있다구? 그 얘기 듣긴 너무 늦었네.
복수 : 엄마가 왜 짚신이야? 엄만... 이태리 명품 구두야. 그 비싼거... 가짜 말구, 진짜.
...엄만, 그걸 믿어야 돼. ...엄마가 얼마나 비싼 사람인지, ...그거 믿어야 돼. 응? 아직... 엄마 인생, 멀어.
유순 : (물끄러미 복수를 본다. 젖어오는 눈길) ...복수야.
복수 : 응?
유순 : ...고맙다.
복수 : 그렇게 믿을거지?
유순 : ...근데, 믿지 않는게 좋겠다. ...그런 기대 하다가, ...(목이 맨다.) 또 자빠지기 싫다.
...뭐가 무서운 줄 알어? 이젠 넘어져두, 아픈게 아니라, 웃을 거 같애. ...아픈 것두 모르구, 화두 못내구, 웃을 거 같애.
...다시 일어날 생각두 않구... ...그래서... 넘어지면 안돼, 이젠... 조심조심 살거야. 기대않구...
복수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는 유순의 모습이 애처롭다.
64. # 건물 연습실 계단 (낮)
경이 계단 위를 살피며 부리나케 뛰어나온다.
65. # 연습실 건물 앞 (낮)
멀찍이 복수가 서 있다.
경, 복수에게 달려간다.
경 : 여기 있으면 어뜩해요? (복수를 끌어 당기며) 저쪽으로 숨어요.
복수 : 안 숨어요.
경 : 들켜요.
복수 : 들킬래요.
경 : ...
복수 :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내린다.) 나, 이렇게 골 아프게 안 살래요.
경 : ...
복수 : 다들... 헷갈리게 살다가 후회해요. 지금 당장... 기면 기구, 아니면 아닌거 예요. ...참구 사는 거, 웃기는 거예요.
...난, 지금 당장... 미래보다 경이씨가 더 좋아요. ...그래서 내가 나중에 후회해두, 어쩔 수 없어요.
...지금 하구 싶은 거 하구, 나중에 후회 할래요.
경 : ...
복수 : 경이씨만 괜찮다면... 난 그렇게 할래요.
경 : ...
복수 : 괜찮겠어요?
경 : 네.
복수 : 고마워요. (창을 향해 손을 모은다.) 미래야. 미래야.
창가에 미래가 와 선다. 활짝 미소를 짓다간 옆에 선 경을 보고 놀란다.
미래가 사라진다.
복수가 경의 손을 굳게 잡는다. 그리곤 현관을 본다.
경, 긴장된 표정으로 복수를 바라보다가 현관을 본다.
복수, 경의 손을 잡고 한 발을 내딛는다. 복수, 아득한 눈빛으로 휘청...
놀라는 경. 넘어지는 복수를 재빨리 품에 안는다.
이 때, 현관에서 부리나케 내려오는 미래. 경 품에 안겨 쓰러진 복수의 모습을 보고 얼음처럼 굳어 버린다.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