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달리 오늘은 비교적 따뜻한 초겨울의 날씨로 베란다 밖에서 밝은 해가 비친다.
점심을 먹으려면 한시간 정도가 남아 간편한 행장으로 집을 나왔다.
아파트 정원 안의 목련은 두터운 솜털로 내년 봄에 피어날 꽃 봉우리를 싸고
나무를 덮고 있던 낙엽이 다 떨어지고 나니 빠알간 열매만이 돋 보인다.
길건너 간이 커피집도 겨울 차비를 마치고
주인인 젊은 아가씨는 휴일이라 쉰다.
늘 가는 고속도로 변 산책로에 며칠전 보았던 강아지 두마리가
겨울옷을 입고 젊은 여자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장난을 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개 한마리가 줄도 매지 않은 체 나타나
두 강아지를 이리 쫓고 저리 쫓고,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간신히 개주인 처녀애가 잡아 목줄을 채운다.
그러면 안되지. 분명 큰개는 줄을 매고 끌고 다녀야 된다고 안내도 나와있지요.
놀란 강아지를 "엄마가 안아줄께'하며 달랜다.
고속도로 exit의 붉게 피었던 철쭉은 단풍만 남기고.
잠깐의 온화한 날씨에 철없이 피어난 꽃.
나비는 날아가고, 벌들은 집 속에서 월동하고 있는데
찬 바람에 파르르 떠는 저 꽃은 과연 씨를 맺을 수가 있을까?
여기는 아직 홀씨도 못 날라보낸 풀까지.
지나간 여름의 흔적 들.
허물을 벗은 매미는 땅속에 알을 낳고 이미 사라졌겠지.
찬 말씨에 코가 찡하고, 카메라를 잡고 가는 손이 시리다.
고속도로 옆 산책로의 작년 태풍 곤파스로 쓰러져 베어 낸 나무테를 헤아려 보니까 제법 연수가 되었다.
우면산 쪽으로 건너가려다 햇빝쪼이는 길 쪽이 좋아 걷는다.
새로 생긴 가게들도 보고.
"우면산 버드나무집"에는 주차장을 점심 이른 시간에 차들이 매운다.
그 이유는 갈비를 손질하고 난 "찌라시"갈비를 넉넉하게 넣어 푹 끓인 갈비탕때문.
하루에 약 100여 그릇을 팔고 오늘도 12시가 되기 전에 "매진"이란 안내가 붙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마노"란 간판이 보인다.
"마노"라면 대전 둔산의 지금은 없어진 "롯데호텔" 앞에 있던 그 집.
서초동에도 있어 찾아 보았으나 없어졌던데.
이리로 옮겼나? 하고 살펴보니 문을 열지 않았고 위스키와 와인을 판다고 쓰여있다.
생각난다.
십년도 더 되었나?
한번 처와 같이 수요일 하루 휴가를 내어 화요일 저녁을 롯데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전라도 쪽으로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저녁은 불포함, 바에서 생맥주 한잔에 조식을 포함한 패키지 상품이라
호텔 앞 쌈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들른 곳이 바로 "마노"
시골답지 않게 치장이며 차맛도 좋았고 자그마한 소품도 팔아 사왔었다.
차를 마시고 있는 그 때. 아는 인물이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외면한다.
일전에 내가 외래에서 본 처 친구의 동생이 내가 평일에 여자와 이런 곳에 같이 있으니
이상한 관계라 지레 짐작을 하였고, 처는 그 동생을 하도 어릴 적에 보아 얼굴을 기억 못하였기 때문.
불러서 서로 인사를 시키며 오해를 푼다.
멋적은 듯이 "아, 사모님이세요."
차를 타고 아래를 지나다니며, 우면산에 갔다가는 길을 건널 일이 없어,
한번도 가 보지 않았던 육교를 오늘은 넘어간다.
오른쪽에 보이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낙엽이 진 능선이 그대로 보인다.
저 다리의 끝은 예술의 전당 쪽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우면산으로 오를 수도 있다.
저멀리는 타워 팰리스.
다리 이름은 아쿠아아트 육교
뒤돌아 보니까 높은 건물인 슈퍼빌이 보인다.
컴퓨터 하드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여러 분야에 진출한 내 친구회사의 근사한 빌딩
예술의 전당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 놓아 둔 크리스마스 트리.
저 식물들은 추위에도 수액이 부동액인지 잘 얼지 않는다.
마을 버스를 타고 가며 쓰인 간판에 "파닭과 마늘치킨"
똑같은 재료라도 이렇게 이름을 달리 쓰는 모양.
시골에서 보내어 준 더덕을 술 담으려 35도짜리 1.4리터 페트병의 소주를 사서 집으로 귀환.
첫댓글 사진 속에 서대리 커피집 주인 아가씨는 놀거 다 놀면서도 임대로 물면서 영업이 제대로 될까 모르겠네요....
내 생각에는 집 주인의 딸이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