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배터리
- 강 문 석 -
불경기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상거래에서 짜증나는 일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상인들의 비양심적인 바가지 상혼이다. 갑자기 손목시계가 멈춰 섰다. 구입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배터리 수명이 다 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몸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된 휴대폰만 켜면 바로 나타나는 게 시간이지만 평생 손목에 시계를 달았던 몸인지라 아직도 시간이 궁금할 때면 팔목을 들여다보게 된다. 스테인리스로 투박하게 깎아 만든 손목시계는 속도표시장치 기능까지 갖추다보니 덩치가 보통이 넘는다.
그렇지만 전자식인지라 배터리는 소형화하여 이제 와이셔츠 단추 크기만큼 작아졌다. 직경 9밀리미터에 1.5밀리미터 두께의 원형배터리가 시침과 분침 초침을 무려 7백일 가까이나 돌렸으니 그 에너지 양이 놀랍기만 하다. 이 배터리를 수은전지라 부르는 것은 양극과 음극 그리고 전해질 중 양극이 산화수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소형 배터리를 대량으로 취급하게 된 것은 전력회사의 안전장구 시험업무를 맡으면서였다. 영남지역과 제주도 그리고 서울의 일부지역까지 담당했으니 안전장구는 물량이 엄청났다.
그만큼 건전지 수요도 많았다. 당시 전자상가에서 구입한 배터리 단가는 제작사와 용량에 따라 가장 비싼 것이 천 원 정도였고 대부분 5백 원 안팎이었다. 손목시계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배터리는 안전장구에 쓰는 것들이었다. 배터리 원가를 몰랐던 시절엔 남포지하상가나 서면지하상가의 시계점포에서 주로 3천원을 주고 건전지를 교환했다. 그랬던 것이 어느 날부터 5천원으로 뛰었다. 오래 거래하던 단골집을 찾아도 그 가격은 차이가 없었다. 물론 인건비와 비싼 점포 임대료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 가격의 10배나 되는 폭리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느 집을 찾아가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까하고 망설였다. 전자상가를 찾아가면 도매가로 살 수 있겠지만 시계 뚜껑을 열 수 있는 공구도 없을뿐더러 시간마저도 촉박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계점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하상가를 내려서는 계단참에 붙은 점포는 닭장처럼 작고 협소했다. 그가 한창 젊었을 때 카메라 기사로 일하던 점포에서 만난 사람이니 벌써 30여 년 세월이 흘렀다.
딱히 해줄 만한 덕담이 없어서 염색하지 않은 머리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기에 좋다고 했더니 정수리 부분에 탈모가 심해서 걱정이라며 웃었다. 그는 시계 뚜껑을 열더니 “앞에 어디서 갈았능교?”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주 형편없는 걸 넣었네예” “그래? 제작사에서 만들면서 넣었을 건데…… 일본 사람들이 그런 비양심적인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순간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단골손님이라 특별히 오늘 좋은 걸 넣었어예. 이번엔 좀 오래 갈낍니더”
왜 이리 큰소릴 치나 싶어 손톱크기 만한 포장지를 확인했더니 ‘SONY’라는 영문자 4자가 박혀 있었다. 배터리 제작사는 우리나라 기업 삼성전자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일본 기업이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부른 7천원을 지불하면서 내 얼굴은 순간 굳어졌을 것이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지 다리가 불편한 그를 대할 때마다 난 애잔한 마음이 생겨 그럴수록 많이 걸어야한다고 격려해오던 터였다. 전자식카메라로 바뀌던 20여 년 전에도 그는 어디서 신기술을 익혔는지 새로운 카메라의 고장까지도 척척 해결해내고 있었다.
나와 연배가 같은 카메라점포 주인도 서면에서 가까운 동서대학 사진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사진가이자 카메라 기술자였다. “김 사장, 저 홍 기사가 당신 집에선 보배야. 알고 있겠지?” 사람 좋은 그는 씩 웃기만 할 뿐 나의 공치사엔 응답이 없었다. 사진 찍기 열풍이 드세지만 카메라 유통업이나 사진인화 사업은 이미 사양 산업이 된지 오래다. 이제 '전 국민이 사진사'라는 말은 휴대폰의 카메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처럼 스마트폰이 카메라를 대신하기도 했지만 인터넷구매로 얼마든지 값싸고 품질 좋은 카메라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미지는 파일로 저장하면서 언제라도 편리하게 그것도 입맛대로 크기까지 조절해가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에서 열어볼 수 있으니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 사진을 인화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2년 이상 손목시계는 멈추지 않고 시간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몸까지 불편한 사람에게 이삼천 원 더 보태준 것을 굳이 들먹이는 것은 소비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상도에 어긋났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계적인 시계 제작사 게스GUESS에서 만들 때 넣은 정품 배터리를 타박한 것은 그가 큰 실수를 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버릇처럼 다른 손님에게도 그러한 수법으로 바가질 씌우면서 영업을 해왔을 것이다. 부산의 교통중심지로 도시철도 환승역까지 있어서 가끔씩 급하게 소지한 물품도 맡기고 더러는 기념품도 하나씩 선물하면서 쌓아왔던 그와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 아쉽다. 황혼에 접어들어 이래저래 주위의 지인들이 하나 둘 담을 쌓는데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
첫댓글 흔히 수은전지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저도 이것을 갈아 끼울때마다 크기에 비해 매우 비싸다는 생각을 자주했습니다만.... 원가를 모르니 부르는데로 지불하고 나오지만 기분은 찝찝하곤 했습니다. 얄팍한 상술때문에 중요고객을 한분을 잃은 그분이 참 안타깝네요
정도를 지켜 이윤도 적당히 붙이면서 많은 손님을 상대하면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나름대론 경영이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관심 가져줘서 감사합니다.
시계내의 밥솥에 밥이 없어졌네요 가게에서 보통 오천원을 달라고 합디다. 제는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남겼었는데 회장님 글을 보고 참 비싸게 받는구나 느낌표 하나 찍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하더니만 오랜 단골님께 바가지를 씌우셨는지? 건강하시길 빕니다 김홍두드림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하고 또 단돈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을 가지고 그러느냐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작은 것도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선진국에 들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외국인을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