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교황청 장관, 한국 네 번째 추기경에 서임돼
중앙일보
입력 2022.08.28 05:38
업데이트 2022.08.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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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구독
유흥식 라자로(71)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 27일 바티칸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추기경에 서임됐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김수환ㆍ정진석ㆍ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네 번째 추기경이 배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7일(현지시각)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서임식에서 유흥식 라자로(70)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게 추기경의 상징인 빨간색 사제 각모(비레타)를 씌우고 있다. (로마교황청 유투브 캡쳐). 뉴스1
이날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5월에 임명을 예고한 신임 추기경들에 대한 서임식이 열렸다. 유 추기경을 비롯해 모두 20명이 새롭게 추기경이 됐다.
가톨릭 교회에서 추기경은 교황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종신직이다. 염수정 추기경도 서울대교구장에서는 은퇴했지만, 추기경직은 유지하고 있다.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이 있다. 다만 만 80세가 넘으면 교황 선출 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염 추기경은 만 80세가 되는 내년 12월까지 투표권이 있고, 유 추기경은 앞으로 10년간 투표권이 있다.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은 현재 226명이며, 이 중에서 교황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은 132명이다.
이날 서임식에서 신임 추기경 대표는 전체를 대신해 교황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 교황직을 지혜롭게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를 올렸다. 이어서 복음 봉동과 교황의 훈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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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식 신임 추기경은 이탈리아어 구사에 능통하다. 주교 시절에도 프란시스코 교황을 알현하면 유창한 이틸리아어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중앙포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렬로 늘어선 신임 추기경들을 한 명씩 불러냈다. 새 추기경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아가 교황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이 쓰는 사각모자인 비레타와 추기경 반지를 수여했다. 추기경의 비레타는 빨간색이다. 가톨릭에서 빨강은 순교를 상징한다. 추기경은 교회의 성장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추기경 비레타의 아래쪽은 사각형이고, 위쪽에는 성부ㆍ성자ㆍ성령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각이 있다.
교황은 비레타ㆍ반지와 함께 새 추기경들에게 로마의 성당 하나씩을 명의 본당으로 지정하는 칙서도 전달했다. 유 추기경은 로마의 ‘제수 부온 파스토레 몬타뇰라(착한 목자 예수님 성당)’를 명의 본당으로 받았다. 빨간 비레타를 비롯해 추기경 복장을 모두 갖춘 유 추기경은 오는 29~30일 교황이 주재하는 추기경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서임식에서 유 추기경은 영국의 아서 로시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이 불리었다. 앞에 선 유 추기경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이에 유 추기경은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서임식 후에 유 추기경은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은 교황님께 편지를 쓸 때 내가 첫머리에 항상 쓰는 표현”이라며 “죽을 각오로 추기경직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거듭 밝혔다.
한국 가톨릭 안팎에서는 대전교구장을 맡던 유흥식 당시 주교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될 때, 교황 방북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교황 방북은 남북 관계를 비롯해 국제 정세가 무르익어야만 가능하다. 또 교황 방북 기간 북한의 내부 사회가 세계에 일정 정도 공개가 되는 만큼 북한 측의 판단과 교황청의 판단이 서로 맞아야 성사될 수 있다.
지구촌의 모든 분단과 아픔의 현장을 찾아가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만약 교황 방북의 가능성이 무르익는 시점이 온다면 유 추기경의 교황청 내 역할이 한껏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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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시절 바티칸을 방문한 유흥식 신임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복은 입은 성 모자상을 선물하고 있다. 사진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추기경을 임명한 것은 2013년 즉위 이후 여덟 번째다. 이번 서임식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영국ㆍ스페인ㆍ프랑스ㆍ나이지리아ㆍ브라질ㆍ인도ㆍ미국ㆍ동티모르ㆍ이탈리아ㆍ가나ㆍ싱가포르ㆍ파라과이ㆍ콜롬비아 출신 추기경이 배출됐다.
바티칸에서 열린 서임식에는 염수정 추기경이 추기경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정순택 서울대교구장, 김종수 대전교구장 등도 함께 경축 순례단으로 참석했다. 정부 대표인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여야 국회 대표단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