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대한 담론, 붉은 장미 vs 백장미 전쟁 근대 군복의 시초 되다
장미전쟁 중 가문 문장을 옷·깃발에 부착…피아 식별 용도로
사용
오늘날 군복은 신분 등 다양한 의미 상징…단결심 배양에도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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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전쟁의 전투 장면. 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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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피아 식별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사례가 있다. 15세기 영국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이 사건은 비교적 최근에 개봉된 영화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다루고 있어 특별히 관심이 간다. 아울러 이 사건은 근대적인
군복의 탄생과 진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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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후화'에서는 반란군(황금
갑옷)과 이들을 진압하는 정부군(은색 갑옷)의 대비가 두드러졌다. 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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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갑과 은갑
먼저 소개할 영화가 하나 있다. 2006년 개봉된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황후화(皇后花)'다. 원제는 당나라 말기 '황소의 난'의 주인공 황소가 지었다는 한시 '국화(國花)'의 한 구절에서 딴
'만성진대황금갑(滿城盡帶黃金甲)'이다. 영어로는 'Curse of the Golden Flower(황화의 저주)'로 소개됐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 영화는 493억 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주윤발·공리·리예·주걸륜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캐스팅했다.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과감한 노출 장면을 소화한 아름다운 궁녀 300명을 선발했으며, 실전 같은 전투 장면을 위해 군인 역할을 하는 인원이 무려 10만
명이나 동원됐다. 화려한 궁중 의상과 금·은색의 갑옷, 전투장구는 40명의 장인이 두 달여 동안 만들었을 정도로 공을 들인 영화다.
투자에 비해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장면이 있다. 황권에 도전하는 반란군과 진압군 간의 전투 장면이다.
영화에서 반란군은 피아 식별을 위해 은색 갑옷을 입은 정부군과 달리 황금 국화를 수놓은 황금 갑옷을 입었다. 원전인 황소의 시에 충실한
설정이다. 이 장면에서 공격은 당연히 반란군이고 정부군은 방어를 맡았다. 기습으로 다중의 외곽 경계선을 뚫은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궁 안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나 반란의 조짐을 미리 일고 있었던 진압군은 모든 전투준비를 마치고 반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최후
방어선에서 격돌한 두 군대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공격이 임박했을 때 정부군이 들고나온 카드가 신의 한 수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거대한
무언가를 굴리며 반란군의 공격을 차단했다. 적확하진 않지만 '이동식 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던 반란군 앞에 순식간에
성이 나타난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이 성은 움직일 수 있도록 아래에 바퀴와 고정장치가 달려 있고 마치 성벽에 서서 방어하는 것처럼 설계됐다는
점에서 바리케이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성을 공략하기 위해 수비자들의 성보다 높은 대보(對堡)나 이동 가능한 공성탑을 만들어 활용한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런 기묘한 전법은 솔직히 처음 봤다. 결국 반란군의 기세는 정부군이 선택한 '신의 한 수' 앞에 무참하게 짓밟혔다.
오랜 시간 준비한 역모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 은색 성벽과 그 앞에 즐비한 시신들의 황급 갑옷이 이루는 대비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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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유나이티드
엠블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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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엠블럼. |
장미전쟁의 유래
영화에 나온 반란군의 황금 갑옷과 정부군의 은색 갑옷은 군복의
개념과 유사하다. 오늘날 피아 구분의 시작이 군복에서부터인 것처럼 말이다. 군복은 피아 구분 말고도 각종 부착물을 통해 신분·소속·계급을
알려주며 다양한 상징을 강조한다. 또한 단결심을 배양하고 소속감·용기·명예·애국심 등을 불러일으킨다. 군의 규모가 커지고 보병·기병·포병 등
다양한 병종이 등장하자 적에게 규모를 과시하고 병종 간 협동전투를 위해 색깔도 추가됐다.
이러한 군복이 없었던 시기에 피아를
식별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차용한 전쟁이 있었다. 1455년부터 1485년까지 영국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벌인 왕위계승전쟁이다. 양
측은 무거운 갑옷을 보호하는 겉옷 위에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마크를 부착했다. 랭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를 새겼고 요크 가문은 백장미를
달았다. 깃발에도 서로의 장미를 식별 표시로 추가했다.
전쟁은 랭커스터의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정략결혼으로 튜더 왕조를
열면서 끝났다. 튜더 왕조의 문장 역시 두 가문의 문장을 살려 빨간 장미 안에 백장미를 넣은 새로운 형태(튜더 장미)로 만들어졌다. 이 전쟁이
'장미전쟁(Wars of Roses)'으로 불리는 이유다. 문양을 피아 구분 용도로 사용한 하나의 사례지만 동시에 복식의 관점에서는 근대적인
군복의 시초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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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전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문장의
진화. 사진=필자 제공 |
현대 축구클럽의 엠블럼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에도 '장미전쟁'이 있다. 랭커스터 가문의
랭커셔 주에 위치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요크 가문의 요크셔 주에 위치한 리즈 유나이티드 간 경기가 그것이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맨유는 붉은
유니폼을 입고 리즈는 하얀 유니폼을 입어 장미전쟁을 상기시킨다. 장미전쟁의 앙숙이었던 두 지역을 대표하는 맨유와 리즈의 경기는 '장미
더비(Rose Derby)'로 불린다. 맨유의 엠블럼엔 장미가 없지만 리즈의 엠블럼에는 백장미 문양이 그려져 있다. 간혹 이 더비는 둘 다 붉은
유니폼을 입는 맨유와 리버풀 간의 더비와 혼동되기도 한다. 같은 연고지(랭커셔 주)에 있는 맨유와 리버풀의 매치는 '레즈 더비(Reds
Derby)'로 불린다. 두 팀의 홈 유니폼이 붉은색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윤동일 육사 북극성 안보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