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철에도 스스로 정한 훈련스케줄을 묵묵히 실천할 수 있는 러너는 몇이나 될까. 전문 선수들처럼 따뜻한 지역으로 동계훈련을 떠날 수도 없고, 실내 트랙이 완비된 훈련장을 사용할 수도 없는 달림이들에게 겨울은 시련의 계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만 지킨다면 오히려 의욕적으로 기량 향상을 이룰 수도 있다.
저강도로 훈련하라 혹서기와 혹한기에 훈련 양과 강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혹서기에 러너를 위협하는 것이 탈수와 열사병 등이라면, 혹한기에는 저체온증, 동상, 굳어진 근과 인대의 손상 등이다.
겨울에는 신체 대사가 저하되고 근과 인대가 경직돼 야외에서의 운동이 부담스러워진다. 워밍업을 해도 몸이 잘 풀리지 않고 움직임이 둔해져 부상의 위험도 높다. 가급적이면 실내에서 몸을 풀어 훈훈해진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부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일정한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훈련 시간은 같더라도 강도는 줄여서 안정적이고 리듬감 있는 주행을 해야 한다. 또한 충분히 몸이 달궈져서 땀이 나더라도 코나 귀, 손가락, (남성의)성기, 발가락 등 신체의 말단부위에는 동상이 올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이는 개인차가 커서 경험을 통해 알 수밖에 없다. 살갗이 노출된 부위에는 바셀린 등을 발라주고 그렇지 않은 부위는 방한용품을 이용해 보온해주어야 한다.
익숙한 환경에서 훈련하라
“겨울에는 낯선 산에 오르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위험하고 변수가 많으므로 많이 가 본 산에 오르라는 말이다. 마라톤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두터운 바지에 파카를 입고 주머니에 충분한 돈이 있을 때는 전혀 위험하지 않던 길도 가벼운 운동복을 입고 장시간 달릴 때는 나를 위협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평소에는 가지 않던 곳까지 멀리 뛰어갔다가 발목이 시큰거려 달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될까. 되돌아 걸어오는 길에 땀에 젖은 옷이 얼어 체온을 빠르게 훔쳐갈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몸도 굳어오고 발을 떼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조차 없다면 저체온증이나 동상에 걸려 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훈련 코스는 어떤 것일까. 우선 평소에 늘 다녀 봐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주로의 시설이나 노면 상태도 숙지하고 있어야 부상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든 출발지(집처럼 추위를 피할 수 있는)로 복귀하기 쉬워야 한다. 출발지를 중심으로 좌 우 몇 킬로미터씩 왕복하거나 집 근처를 에도는 순환코스가 좋다. 코스 주변에는 화장실과 편의점, 경찰서, 식당 등 유사시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따뜻한 음료를 사먹고, 집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올 정도의 현금을 지녀야 함은 물론이다.
동계용 러닝장비를 동원하라
많은 러너들이 동계용 러닝장비를 구입하는 것을 아까워한다. 다른 계절 용품보다 비싸고 가짓수도 많기 때문이다. ‘겨울 동안 얼마나 꾸준히 훈련할 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사버려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 몫 한다.
그러나 좋은 겨울철 러닝 장비는 투자한 만큼 보람이 있다. 방풍과 보온이 뛰어나면서도 땀이 차지 않는 장갑, 따뜻하면서 활동성도 좋은 스트레치, 셔츠처럼 가볍고도 포근한 러닝 재킷 등 각 브랜드의 첨단 기술이 적용된 겨울 용품은 겨울철 달리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기복이 생기기 쉬운 겨울철 러닝 컨디션을 잘 유지시켜줌은 물론이다. 이 밖에 자신의 기호에 따라 귀마개와 모자, 다용도 두건 등을 활용해도 좋다.
발이 잘 굳고 동상이 쉽게 생기는 러너라면 겨울철 신발도 따로 장만해볼 만하다. 보통 러닝화는 겉창에 메쉬 소재를 많이 써서 통기성을 좋게 하면서 무게도 줄인다. 그러나 겨울철 러닝에 맞춰 나오는 신발은 가죽이나 인조가죽을 써서 내구성과 보온성을 높이고 중창도 저온에서 잘 굳지 않는 것을 사용하여 부상을 방지한다. 따라서 체중이 많이 나가서 좋은 쿠셔닝이 절실한 러너 역시 동계용 러닝화를 구입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보통의 러닝화는 겨울에 정상적인 쿠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믿을 만한 대회에만 참가하라
혹서기, 혹한기에는 가급적이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겨울철에도 여전히대회가 개최되는 것이 또 현실이다. 하기야 남극이나 사막에서도 달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으니 그에 비하면 평범하달까.
굳이 대회에 나가야겠다면 대회의 질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2~3년 이상 같은 시기에 열려온 대회가 좋고, 주관을 맡은 기획사도 노하우가 축적된 전통 있는 곳이라야 안심할 수가 있다. 겨울철 대회는 다른 시기에 비해 더 번거로운 준비와, 예산과, 경험 많은 실무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회 시작 전후에 주자들이 찬 바람을 피할 부스는 마련해 두었는지, 손이라도 녹일 야외용 난로는 충분한지, 완주 후 따끈한 국물 정도는 나눠주는지 미리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준비가 미흡하다면 그 대회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해마다 주자들을 위한 방한 대책을 잘 세워두는 대회라면 설령 참가비가 더 비싸더라도 이해해주자. (사무국에 전화 한 통 걸어보면 대충 알 수 있다. 준비가 철저히 된 대회라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막힘 없이 답변해줄 것이다!)
또한 참가자 쪽에서도 겨울철 대회에 참가할 때는 다양한 방한용품과 여벌 옷, 파카 등을 풍족하게 챙겨가도록 하자. 완주 후 옷이 땀에 젖은 상태에서는 순식간에 저체온증에 빠지기 때문이다. 비단 잘 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적절한 대비를 할 줄 아는 것도 실력의 일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