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4]
온통 아시아인밖에 없고, 온갖 방언이 보이지 않는 전선처럼 정신없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곳. 눈에 들어오는 영어라고는 달랑 핫포트 hot pot와 리커스 LiQuors 뿐이고, 그마저도 귀여운 호랑이나 춤추는 핫도그 캐릭터 옆의 상형문자 같은 글자들 아래에 푹 파묻혀 있다.
H마트 단지에 들어서면 식당가와 전자제품 매장과 약국이 보인다. 그리고 어김없이 화장품 코너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달팽이 점액질이나 캐비와 오일이 들어간 한국 화장품, 또는 '태반' [대체 누구의 태반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함유를 넌지시 내세우는 페이스 마스크를 판다. 묽게 내린 커피와 버블티와 각양각색의 빵을 파는 유사 프랑스 빵집도 있다. 진열대 위에서 반들반들 자태를 뽑내는 그 빵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맛있어 보인다.
요즘 내가 다니는 H마트는 필라텔피아 북동쪽 엘킨스 파크라는 도시에 있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일주일 치 장을 보고, 그날 사온 신선한 재료로 그때그때 당기는 대로 저녁을 지어 먹는것이 나의 일과다.엘킨스 파크H마트는 두 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식당 가는 2츤에 있다.
식당가에서는 별의별 음식을 다 판다, 오로지 스시만 취급하는 식다, 정통 중국 음식만 파는 식당, 전통 한국 찌개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등 다양한 찌개는 뚝배기라고 부르는 전통 도기 냄비에 내용물이 보글보글 끓는 상태로 나오는데, 이때 뚝배기는 식탁에 오르고 나서도 10분은 족히 더 보글거릴 수 있게 하는 미니 가마솥 역할을 한다.
한국식 길거리 음식점도 있는데, 거기에선 한국 라면 [기본적으로 그냥 신라면컵에 계란 하나를 톡 깨뜨려 넣은 것]도 팔고, 두툼한 피에 돼지고기와 당면을 꽉 채워 만든 큼지막한 찐만두와, 한입 크기의 길쭉하고 쫄깃쫄깃한 떡과 함께 어묵, 붉은 고춧가루, 고추장 소스를 넣어 끓인 떡볶이도 판다. 달짝지근하고 매운맛을 내는 이 고추장은 거의 모든 한국 음식에 사용되는 3대 기본 소스 중 하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식 중국 음식점이 있다. 그곳에선 탕수육 --반들반들하고 새콤달콤한 오렌지빛 소스에 버무린 돼지고기 튀김--과 짬뽕과 볶음밥과 짜장면을 판다. 식당가는 짜고 기름진 짜장면을 후루룩거리면서 사람 구경하기에 아성맞춤인 곳이다.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한국에서 살았던 내 가족들을 떠올린다.엄마와 내가 장장 열네 시간의 비행 끝에 서울에 도착할 때마다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이 바로 한국식 중국 음식이었다. 이모가 전화로 주문하고 20분이면 아파트 인터폰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멜로디가 울려 퍼졌고, 곧이어 머리네 헬멧을 쓴 남자가 거재한 철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