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35]“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장인용 지음, ‘그래도봄’ 2025년 2월 28일 펴냄, 330쪽, 22000원)라는 책을 信實한 지인 두 명으로부터 소개받았다. 지체없이 아내에게 사보내달라 했다. 언제나 어떤 책이든 주문만 하면 군말없이 택배로 보내주는 아내가 예쁘다. 다른 일상사는 '바가지 잔소리꾼'이다. 나뭇가지(tree-map)를 형상화한 듯한 책표지가 신박하다. ‘읽기만 해도 어휘력이 늘고/말과 글에 깊이가 더해지는 책’이라는 부연설명만 봐도 어떤 책인지 알겠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내 스타일’의 책이다. 아무리 세상이 두 쪽 난다해도 ‘말과 글’만은 살아남을 거라는 게 나의 오랜 지론. 言語가 '존재의 집’이라는 건 진리일 터.
날개쪽지에 있는 저자 소개를 보니, 알만한 사람같기도 해 더욱 반가웠다(성균관대 같은 연배의 동문). 대학에서 중문학을, 대학원에서 중국미술사를 전공했단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창기 사장로부터 2년여 동안 국어에 관한 이야기를 귀동냥하는 ‘행운’이 이 책의 뿌리가 된 듯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한창기 님은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너무, 정말, 진짜로 <이 땅의 아름다운 이름>이다. 저자는 그를 “한국 문화계의 심미적 천재”라 했다. <지호출판사>를 만들어 인문학과 과학분야 책을 펴내며 이 세상에 ‘먹물 흔적’을 조금 더했을 뿐이라는 謙辭를 한다. 얼마 전 지인이 친구에게 선물받았다면서 보여준 『중국미술사』(이림찬 지음, 장인용 번역, 다빈치출판사 2017년 펴냄, 630쪽, 15만원)라는 책에 깜짝 놀랐는데, 이 책의 저자 장인용이 필생의 사업처럼 번역을 했다고 한다. 15만원이나 되는 책을 과연 몇 명이나 살까? 그 책을 펴낸 출판사 사장도 뜻있는 분이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출판사 이름 <지호>는 논어 첫구절 <學而時習之 不亦悅乎>에서 따왔다한다. 저자는 우리말의 한 單語도 소홀히 (평생동안) 지나치지 않고, 몇 번이고 그 말의 語源이나 由來를 곱씹으며 오랜 省察 끝에 이 力著를 낳은 것같다.
▲뜻이 바뀌어 새로이 쓰이는 말 ▲뜻이 역전되는 말 ▲유래를 알면 더 재밌는 말 ▲한자로 바꾸거나 구별하여 오해를 부르는 말 ▲우리말이나 진배없는 말 ▲공부가 쉬워지는 말 ▲종교에서 유래되는 말 등 7부로 나누어 이야기를 펼쳐가는데 흥미진진하여 눈을 뗄 수가 없다. 권말부록 ‘찾아보기’를 보니 단어가 족히 500개는 넘는 것같다. 일종의 辭典인 셈인데, 우리말과 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必讀書이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류의 책은 많이 있었지만, 이처럼 총체적으로 500여 단어의 ‘事緣’들을 낱낱이 쉽게 풀어쓴 것은 드문 것같다. 바뀌어가는 언어의 story가 이렇게 interesting 할 줄은 몰랐다. 말이라는 게 時代의 産物이고 疏通의 도구이므로, 다양한 變化를 거쳐 進化를 하고 燒滅되기도 한다. 사라졌으나 다시 쓰고 싶은 우리말은 또 무릇 기하인가.
건방지고 못난 말이지만, 책 내용의 절반쯤은 저자처럼 一目瞭然하게 정리하지는 못해도 알고 있는 까닭은, 말의 語源에 대해 평소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80년대초 咸錫憲( 1901~1989) 선생님이 “남자로서 할 직업의 첫 번째는 農事이고, 평생學問은 語源學(etimology)이다”고 어느 특강에서 하신 말씀을 직접 들었던 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당시 나의 직업이 신문사 校閱記者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챗GPT와 AI(인공지능시대)가 到來해, 우리는 오직 오는 세상이 두렵기만 한 超情報化 社會 21세기, 가장 글로벌한 언어로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앞다투어 꼽고 있는 ‘訓民正音’ 24자를 아시는가? 그 훈민정음을 구한말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는 명칭으로 명명했으나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으로 본래 이름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세종대왕을 더 이상 욕보이지 않으려면, 훈민정음 28자 중 ‘잃어버린 네 글자’도 되살려야 하는 민족적 과제가 '문화선진국' 대한민국의 앞에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할 터. 우리나라는 <훈민정음>의 宗主國임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얘기가 빗나갔지만, 장인용 님이 지은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의 한 페이지를 들춰내 實例 하나만 들어보자. 經濟(경제)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쩌면 국정의 최고목표로써 가장 중요한 단어일 듯. ‘경제’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으로 되어 있다. 경제에는 이런 학문적 해석 말고도 ‘물자가 잘 돌아 景氣가 좋다’는 뜻과 ‘節約’의 의미도 있다. 한자는 經濟. 우선 經은 우리말로 ‘날줄’. 베틀에서 실로 천을 짤 때 세로로 늘어져 있는 실이 경이다. 가로로 씨실을 넣어 실을 짜는데, 이 씨실이 ‘緯’이다. 지구의 위치를 표시할 때 세로선이 경도, 가로선이 위도임은 아실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經緯’라 하는데, 낱줄과 씨줄처럼 짜인 경과을 말한다. <사서삼경> 할 때의 經書는 ‘세상의 질서를 낱줄과 같은 책’으로 佛經, 聖經, 詩經 등이 그렇다.
두 번째 글자 ‘濟’는 건너다, 돕다는 뜻. ‘經’과 ‘濟’ 두 글자를 합하면 무슨 뜻인지 모호하다. 억지로 해석하자면 ‘질서를 세워 돕다’는 정도일 터이나, <經世濟民>의 줄임말로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하다’는 뜻. 조선후기 실학자 洪萬選(1643~1715)의 <山林經濟>라는 저작을 아실 터. 山林이 오늘날에는 ‘숲이 우거진 산’을 말하나, 그전에는 '居住地'를 뜻했으므로, 살면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혜를 담아놓은게 이 문집이다. 이 ‘산림’은 ‘살림’의 어원이기도 하다. ‘경제’는 본래 ‘세상을 올바르게 해서 백성을 구한다’는 계몽(결코 ‘계엄’이 아니다)적인 뜻이 담겨 있다. 그런 경제를 일본인들이 서구의 용어를 옮기면서 ‘이코노미(economy)’를 ‘경제’로 번역하면서 전래의 유교적 개념이 없어지고, 서양 언어의 개념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바뀌면 말도 따라 바뀌는 법. 그래도 ‘살림살이’를 뜻하는 의미이므로 엉터리개념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여담 하나를 하자면, 서울의 어느 명문대 경제학과 교수 이야기이다. 미국 유학해 경제학박사가 됐는데, 경제를 漢字로 쓰지 못한다해 弄談하냐고 하니까 한글전용세대라 한자를 배우지 못해 그렇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믿을 수 있는 얘기인가? Believe or Not. 출간한 지 보름도 안돼 2쇄에 들어갔다는 신간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이야기는 계속 된다(아직 절반밖에 안읽었으나 마음이 급해 쓴다). 출판사 이름 <그래도봄>이어서 너무, 더욱 좋다. 아무리 북풍한설과 말도 안되는 역풍이 몰아쳐도 봄은 오고, 봄은 봄이지 않았던가. 그래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