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금 일만 달란트의 비유로 설명한다면 우리가 평생 쓸 수 있는 돈은 그 중 100분의 일도 안 될 것이다. 나머지는 하느님께 마땅히 돌려드리는 것이 그분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면 보답일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우리와 분리된 인격체로 보았을 때, 그분은 아무 것도 보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보답들이 하느님께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을 우리의 이웃에게 돌려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유는 우리가 행복한 존재가 되어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최대의 보답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웃과의 관계들이 좋아져 평화스럽고 질서 있는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며, 연구와 노력을 통해서 번영하며 나아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적절한 보답이며 이러한 보답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성이 강화되고 동시에 하느님의 존재성을 보다 더 정립하고 강화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이로써 하느님의 존재 방식은 인간이나 사물처럼 개체화 된 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연 전체가 그분의 신체인 것이며 사물 하나하나에 그분이 내재해 계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존재 방식이 이와 같이 자연에 내재하는 방식이므로 그분의 은혜와 친절은 자연의 질서와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우리가 생명을 연장시키고 나아가 죽음을 극복하게 되는 과정도 당연히 자연 내적인 방식이어야 하는 것이지, 순식 간에 천년의 수명으로 연장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다. 만일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생명이 연장 가능하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유일성을 깨뜨린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자연을 이루시며 자연의 방식으로 활동하시는데 다른 신이 존재하여 자연 외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자연의 방식 만을 따르게 되는 것이고 흔히 오해하는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에 언급된 기적들은 문자적이 아니거나 어떤 기대치 않은 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기적으로 보았다는 뜻이며 당시의 환경과 대중의 생각에 맞는 언어로 기술된 표현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맹신이나 미신 또는 광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오류의 추측들을 근거로 해서 또 다시 그러한 기적의 종류인 아마겟돈 전쟁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기대하며 믿는 자는 요행히 천년 이상의 수명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자연을 창조한 하느님을 유일한 아버지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연 외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신을 끌어들이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유일하시며 자연과 온전히 일치하시는 전일하신 하느님임을 깨달을 때, 합리적인 믿음을 갖게 되며 하느님이 인간으로 작용하여 인간의 노력을 통해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고 영원한 생명과 죽은 자의 부활까지도 가능하다는 비젼을 가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