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꿈
토란잎에 쓴 편지 여우비에 지워질까
돌돌 말아 감춰 안고 소낙비를 맞는다
우체통 찾아 헤매다 여기 섰네, 예순둘
파도
낮에 뜬 하얀 반달 푸른 바다 섬이 된다
파도가 쳐낸 상처 바람마저 휘몰고
가슴에 붉게 멍든 기억 동백꽃 눈물이네
뱃고동 소리에도 잠 못 이룬 어릴 적
가슴 뛴 육지 소식 맨발로 맞았는데
머릿속 자라는 지우개 닳지도 않는다
바다만 바라보던 웃음마저 지우고
단절된 섬마을에 파도만 가득하다
귀먹은 우리 엄마는 외딴섬이 되어 있고
사람이 맛이라고
백장 불빛 구공탄 동네가 따듯했다
겨울 준비 분분한데 김장 배추 꼴랑 세 포기
손맛이 빈방에 맴돌다 바람 따라 떠났네
이모 집 밀떡 맛을 찾아 나선 서녘 바람
빈 마당 갈잎 소리 낮달만 들락대고
갈바람 날리고 간다 사람이 맛이라고
이별은 어렵다
사람 앞에 우쭐댈 날 기다리다 색이 바래
늘 혼자 뽐내다가 잊힐까 두려운데
벼르고 또 벼르다가 아끼던 옷 풀이 죽네
월남치마 꽃무늬가 옛사랑을 불러온다
젖내 나는 홈드레스 이야기 풀고 풀어
원피스 살짝 나서며 스민 눈물 뿌린다
하늘하늘 치마 입고 살랑살랑 스텝 밟다
낙엽이 떨어지듯 아깝다를 떨쳐네고
내일을 언약해 본다 속울음을 닦는다
- 시집 『시간을 정산하다』 책만드는집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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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시인 시집 『시간을 정산하다』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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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
23.10.1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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