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서고자 하나 넘어지고 마네. 가늘고 고와 아마도 어려울 것 같으니, 손바닥 위에서나 보아야겠네" 중국 송나라 때의 대표적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7 ~ 1101)가 전족을 한 여인의 자태를 아름답게 표현한 시구다.
전족은 중국 송나라 때 무희들이 신던 작고 뾰족한 신발을 상류층 부녀자들이 모방해 신으면서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독특한 풍습이다. 어릴 때부터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을 안으로 바짝 구부린 채 고정시켜 발을 기형적으로 작고 굽게 만들었다. 이상적인 크기는 9∼10㎝였다.
중국 고대에는 세 가지의 性적 의미를 가지는 기형적 현상이 있었다. 그것은 창기(娼妓)와 환관(宦官) 그리고 여성의 전족이다. 이 중, 창기나 환관은 외국에서도 존재했지만, 여성의 전족은 중국만의 것이었다. 宋代 말기, 사회에서 「큰 발은 부끄럽다」라는 기풍이 왕성하게 번지고 있었다. 明代가 되어서는, 전족의 기풍은 더욱 심각해져, 당시의 유행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여자가 유아 때 발을 천으로 감아 조그만 구두를 신겨서 후천적으로 교정하여 기형으로 만들어 버리던 풍습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발이 10㎝ 정도의 크기 밖에 안된다. 발뒤꿈치에서 발끝까지 약10cm가 이상적이라고 하며, 모양에 따라 춘순(春笋: 봄 죽순), 금련(金蓮: 여자의 예쁜 발을 형용하는 말)이라고도 하였다. 한걸음 나아가 고대 중국미인의 10대 조건에는 연보소말(蓮步小襪)이란 말이있다. 연보란 전족을 한 작은 발을 말하며 소말은 그것을 싸는 일종의 조그마한 양말을 말한다.
전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수나라(581~618년) 혹은 당나라(618~907년)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나라 양귀비는 구두크기가 10㎝도 안 되는 전족을 했다고 전해지며 전족 ’3貴의 美’는 ’肥(비), 軟(연), 秀(수)로 肥는 지방이 있어서 윤기가 흐르는 것, 軟은 부드러워서 살집이 좋은 것, 秀는 모양이 아름다운 것을 의미한다.
전족의 구체적인 방식은 가늘고 긴 포대(布袋)로, 여성의 다리의 복사뼈를 확실히 묶고, 이것으로 근육의 형태를 변화시켜,다리의 형태를 정상적으로 성장시키지 않고 작은 채로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심미안(審美眼)에 일치하고 있었다. 아이가 6-7세때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들을 발바닥 쪽으로 꺾은 다음에 천으로 동여맨다. 그러니까 뼈를 부러뜨려서 성장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동여매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전족을 하기 시작한 초기 1-2년 정도를 억지로 많이 걷게 해서 발가락 관절에 일부러 상처를 내고 부러트려서 그걸 반복한다. 그렇게 되면 뼈가 곪아서 연해지는데 계속 강하게 동여매서 크기를 작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통 10명 중에 1명의 여아가 전족을 하던 도중 패혈증 등으로 죽는다. 이렇게 전족이 완성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린다.
그 시대, 대부분의 여성이 4세, 5세부터 전족을 시작해 성년이 되면 뼈의 형태가 정형(定型)이 되어 있으면, 포대를 풀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일생 전족이었던 여성도 있었다. 또한 이「세치금연(三寸金蓮)」이라고 불리는 작은 다리는 가장 프라이버시한 부분으로, 절대 모르는 남성에게 보여져선 안 되었다.
실생활로 여러가지 불편이 있을뿐만 아니라 , 전족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은 심한 아픔을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족의 고통과 그를 위해 뼈를 삭히면서 까지 매일 발을 동여맨, 여성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중국 여성들은 매일 두 발을 통해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편견속에 출세와 아름다움을 위해 참아왔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며 생활에 있어 엄청난 불편을 주었던 전족을 중국의 여인들은 왜 천여년에 걸쳐서 유지 하였던 것일까?
첫째 심미관(審美觀)에 의한 작은 발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비정상적인 세태는 당시 사람들이 전족을 여성 미의 필수적인 요건이나 심지어는 제일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하도록 몰고 갔다. 둘째 예교관(禮敎觀)으로 중국의 고대사회에서 신분제도와 종법질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제정된 예의규범과 도덕표준이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다. 셋째, 기형적 성욕의 발현으로 문인들이 비뚤어진 심미관으로 여성의 작은 발에 대한 찬사를 늘어 놓으면서 그것이 사회 전반의 미적기준으로 확산이 된것이다. 기형적인 전족을 두고 세치금련(三寸金蓮)이라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대며 수많은 미사어구를 달아 댄것도 바로 이들이다.
위의 세가지 외에도 얘기되어지는 전족의 이유는, 남자들이 잘 사는 경우 몇 명씩이나 첩을 거느리고 있었고, 또 못사는 경우 남자 몇 명이 돈을 모아 공동의 처를 겨우 사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속에서 여성의 수가 모자라므로 달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을 못쓰게 했다는 얘기가 그 하나다. 또 다른 얘기는 발이 작고, 운동은 부족하므로 둔부가 커질 뿐 아니라 걸을 때 엉덩이를 뒤뚱뒤뚱하며 걷는 모습이 더없이 섹스어필하게 보였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1894년 서태후가 금지령을 내렸으며, 20 세기들어 중화민국 초기가 되어 이 풍습은 점차 폐지되었고 1949년 중국 공산당은 야만국이란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강력한 ‘전족폐지령’을 발표했다.
첫댓글 아무리 봐도 돼지족발인데 저걸 이쁘다고 생각했다니 미적감각이 참...
전족이란게 여자들이 도망을 못가도록 발을 변형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네요..^..^
@대두머리 도망못가게 한다는건 좀 의심이 갑니다
저리 어려운 방식으로 3년이상 고생고생 개고생을 시킬바에야 차라리 엄지발가락을 절단해버리는게 더 효과적이겟지요
우리나라에..저문화가 안들어와서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