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며!
<내가 태어난 1963년,
스스로 혁명이라 부른 쿠데타를 성공시킨 박정희가 드디어 제3공화국을 연 그 해,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았고, 대한중석 등 3개 국영업체 광업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시위가 일어났던 그해,
미국에서 케네디가 암살되었으며 한강나루엔 동양 최대규모의 휴양지 워커힐이 건립되어
우리의 누이들이 허벅다리를외국인들 앞에서 번쩍번쩍 들어올리기 시작하던 바로 그해,
겨울에는 엄청난 추위가 닥쳐서 개항 80년만에 인천바다가 70센티미터나 얼어붙었다 는 그 해,.....................
공지영, 봉순이 언니 중에서.....>
그렇습니다.
저도 1963년에 태어 났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해에 저는 고고지성을 이 땅에 울렸습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성공리에 추진되면서 40대들은 그 혜택을 온몸으로 받으며 자랐습니다.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면 미국이 제공한 급식빵으로 한끼를 때우면서도
부자와 가난한자가 서로 위화감이 없었던 시절!
저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 별로 부족함이 없이 학창시철을 마쳤고,
비록 고문관 소리는 들었지만 군대도 다녀 왔네요! ( * 고문관 - 눈치없고, 코치없는 찌질이 군인 )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저는 드디어 사회생활 원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의 제 이야기이자 동시대를 살았던 40대들의 이야기입니다.
입사후 첫 부서에 발령 받은 부서가 무역부였습니다.
말이 거창해서 무역부였지 수많은 하청회사(지금은 협력회사)에서 입고한 부품들을 확인하고,
그 부품을 조립공장에서 완성시켜 수출하던 회사!
선배들은 자기들의 선배들한테 당했던 것처럼,
후배가 들어와서도 그 효율적인 노하우를 전수하기는 커녕, 자기만의 비법인양 거들먹 거렸고,
고참들은 후임을 똥개 훈련시키듯 잔소리를 주절주절 거려도 폼이 나던 시절!
어쪄다 반공일 토요일날!
점심먹고 퇴근을 할라치면 귀신같이 알고서는 혀를 차며하는 말!
"나 신입때는 토요일이 없었는데......."
"그럼 야근해야 하나요."
"꼭 그렇다는 말은 안했는데....."
(c8, 뭘 어쩌라는거야? 하라는 거야,말라는 거야? )
그 놈의 회식은 얼마나 많았는지!
1차는 식사!
2차는 음주가무!
3차는 입가심!......
회식이 끝나면 50대 부장님의 온몸은 우리 신참 사원에게 신주단지로 모셔져야 했고,
불러도 오지않는 첫사랑 여인처럼 택시를 잡으려 애원해야 했고,
양손엔 가방 두개,
겨드랑이엔 부장님 양복을 끼고 "따블, 따블을 목청껏 외쳐 간신히 잡아타고,
부장님댁에 초인종을 누르면 하루 업무 끝.
그러나 진상부장을 만나면 사모님 주제하에 안방까지 가서 눕혀주고 신발까지 가지런히 정리해주고 있을때,
"이 웬수는 회사를 다니는건지 술쳐 먹으러 다니는 건지........" 소리를 뒤로하고 집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저런 부류의 여편네랑 결혼을 할 바에야, 차라리 고자로 늙어 죽을 것이다!" .........
출근시간은 있으되 퇴근시간은 남에 일이 되어버려도 하소연 할데가 없었으며,
첫사랑 그녀와는 몇 번의 만남을 뒤로하고 퇴짜를 당했고!
모든 생활이 일 중심인 사람이라고.......
울며 잡고 애원도 해보고 싶었지만, 남자는 평생 눈물을 3번만 흘려야해! ( 태어 날때 1번, 군대서 1번......그럼 ...아직 1번 남았군!)
또는 그 놈의 자존심때문에 팡세에서 말한 "여자는 흔들리는 갈대야.' 라며
유명한 지성인인 파스칼도 차였는데 나같은 놈 차이는것 당연하지라며 숙명론자가 되었고,
사랑의 아픔을 주옥같은 시어로 엮어 낼 줄도 몰랐지요!
그저 술한잔으로 시름을 달래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주어질까를 점을 치던 패배자!
당연히 매사에 시키는 일 만 죽어라 하는 극히 수동적인 인간인 일 로봇이 되어가고 있었고,
필요한 내 쫄다구는 오지 않고 테트리스 게임만하던
컴퓨터란 녀석이 회사의 중심사원으로 떡허니 자리를 차지해 버렸고!
1997년 IMF!
이 경천동지 할말 한 사건은 한국의 직장생활의 페러다임을 바꿔버리기에 충분했다.
회식이 거의 없어졌고,
이웃하던 부서가 업무효율을 명분으로 통째로 없어져도 어디에다 찍소리 못하고 보다리를 싸야했고,
신입사원 충원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이에 늘어가는 업무에 혈압은 자꾸 높아지고,
뒷목을 잡으면서 퇴근을 했습니다.
급기야 심근경색으로 수많은 또래 사람들이 죽거나 혹은 반신불수가 되어도
누구하나 울분을 토하며 세상의 비겁함을 토로 할 줄도 모르는 시대!
부장을 신과 같이 떠받들던 차장, 과장!
그런 과장의 전지전능한 업무처리 능력을 배우는 대리,
아무것도 모르지만 평사원은 그저 패기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인 시절이, IMF로 인해 치시하지만 정겹던 직장문화는 소설에서나 나오는 전설이 되어버렸다!
어쪄다 회식!
1차에서 속전속결로 식사와 술을 한꺼번에 먹으면서,
그나마도 젊은 직원은 하나,둘씩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2차는 나랑 처지가 비슷한 또래부장과 어느 편의점 모퉁이에서 오비 캔을 들고는 ,
맥주는 말이야 뭐니뭐니해도 OB가 최고지!라며 분위기를 잡으면서.....
저기 있잖아 .........전에 .....총무김과장.....이혼했다며......누구는,택시 운전하고,...
과거의 동료들 전부를 나열하고는 편의점주인이 눈을 찟뿌리기 시작하면 우리들만의 회식은 끝납니다.
누구라도 할것없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면,
보란듯이 OB 몇개를 들고 나오며, 이마가 훤한 (나도 훤한데....) 편의점 주인을 째려 보면서 썩소를 날려 주고 싶지만,
아들 등록금에다, 뛰는 전세값을 생각하면
소말리아 빈민처럼 생긴은 휑한 지갑만 만지작 거리며,
"오늘은 그만 하지!
(지나고 보니 내일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더라!!)
그렇게 질긴 목숨 이적지 부지하고 보니
나는 저 짓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가장 미워했던 그 들을 닮아버린 그림자 인생!
가치관과 역사에 대한인식이 무딜대로 무너져 버린 사이에,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결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택복권 대신 롯또가 가난한 서민을 한탕주의로 겉멋만 들여 놓았고,
막장에 목숨을 거는 탄광자리는 카지노가 들어서 피를 빨고 있고,
전국체전은 뉴스거리도 못되고, 월드컵, 올림픽 정도는 되어야, 행사 축에 끼네요!
테레비전에선 이름도 생소한 2AM, 2PM, 샤이니등이 판을 치지만,
끊어질듣 간드러지는 주현미의 트롯트가 정작으로 정겹고,
뭔말이지 알아 듣지도 못하는 랩보다는, 송창식 윤형주의 기타소리가 듣고 싶고,
아무리 프로야구가 인기가 좋지만,
선린상고,군상상고,대구상고,광주일고등 상업화에 찌든 지금의 프로야구 보다는
조금은 서툴었기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지역색이 겹겹이 쌓인 아마 야구가 더욱 보고 싶습니다.
지난 날을 고백합니다.
하나. 명분과 비논리에 울분을 토할 줄 알았으면서도,회사의 방침엔 무조건 순종하였고,
둘, 왕년에 웅변한 가락으로 불의에 책상을 주먹으로 칠 줄도 알지만, 높은 사람 앞에서 두손을 비벼가며 고개를 조아렸고,
셋, 승진의 기준이 업무 능력을 연마하기 보다는 연과 줄에 동원했고,
넷, 상사에겐 No 보다는 Yes를 입에 달고, 후배에겐 Yes 보다는 No를 지즐댔습니다.
다섯, 윗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선 몰래가서 술값을 계산했고, 아랫 사람들과의 술 한잔은 구두끈만 매고 있었습니다.
반성합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 버렸고,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려 버렸던, 장자와는 대비되는 가치관과
프로크라테스의 침대를 능력의 기준이라고 금과옥조 하였다면,
앞으로는,
양지 보다는 음지를 돌보며
가진자 보다는 못가진자 편에 서며
기쁨보다는 슬픔에 관심을 기울이는 다수 보다는 소수에 목소리를 기울 이겠습니다.
비록 그 날로 짤리는 한이 있더라도!!!!!
............................
그러나!
아무리 신세대가 치고 올라와도,
바이어 만나면 영어 울렁증 때문에 등뒤에 식은 땀이 흘러도,
비록 제가 대한민국이 가난한 나라에서 밥은 먹고 사는 나라!(쥐20) 를 만드는데 이바지한건 없지만,
제겐 할 일이 많습니다.
오던 길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제게 힘을 달라고 갈구해봐야 부질없는 몸부림 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은 절대자께 능력을 달라고 기원해 봅니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어서 감사합니다.
여보!
당신의 남편이어서 고맙습니다.
아들아!
니가 있어 내일은 희망이다.
어머니, 와이프, 아들!
당신들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제가 좋은 부모 만났듯이,
저도 제 아들에게 좋은 부모이고 싶습니다.
지금!
저의 49살이자 40대의 마지막 여름이 지나고 있습니다
조석으로 서늘해진 가을 문턱에서..........
첫댓글 우리나라에서 잊혀지는 투명인간 50대는 끝까지 서글픕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거품이 날정도로 고생한 세대가 50대들 현제도 다음도 나라꼴 돌아가는걸 보니 비참하더이다.
형님, 그때 제게 왜 그러셨어요? (40대를 대표하여......)
이젠 같이 50대인데 뭘 그러슈 같이 고생한 세대들의 공감
시대 같이 살아온 나로서는 더욱 마음에 와 닫는군요 지친몸에 이제 건강을 생각해야하는 한여름이 지나가고 있네요....
맞습니다, 그래서 운동 시작 했네요.....오기 아님 까무라 치기로 .....끝까지 운동 할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으로 부지런하지요. 남자분들 일년에 2주정도 휴가 가라고 해도 잘 안간다고 하더라구요. 자기자리가 없어질까봐 불안한 심리, 또는
노는 문화에 익숙치 않아서? 이제는 경제대국이 되어서 좀 일을 즐기면서 하려나 했더니 경기가 세계적으로 안좋아 마음이 불안불안, 인기없던 공무원
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시대적인 지금의 현실이 직업의 인기선호도까지 바꿔 놓고 있네요.
최영훈님의 각 시대별로 표현하신 글 잘 봤어요.~
이하 동문 ^^
전에 다니던 회사는 책상을 빼버린 사람들만을 위한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주어진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때가 되면 월급은 꼬박꼬박 주고요....3일만에 사표내는 사람부터(NT 형.), 최장 1년까지 버티는 사람들(SJ형)이 있더군요. 보는 사람이나 당한 사람이나 참으로 몹쓸 짖이었죠!
구구절절하게 늘어 놓으신 글을 읽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네요.
그러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네요. ㅠㅠ
님은 여자인듯! 부군에게는 흔들리는 갈대는 되지 마세요. 남잔 눈물이 3번 뿐이라 잖아요!
그러한 세싱을 겪으면 살아온 남성들이여~
그래도 그대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입니다.
칭찬 맞죠!
같은 시대를 살아 오면서 ...남자로서 이나라에서 살아가기에는 벅찬게 많습니다~ 이제는 산을 즐기고 마음을 내려 놓으며 살고 있지여.
산! 저도 한달에 두번은 꼭 산에 갑니다. 오르기만 했으니 내려감을 배우려구요!!
이젠 오십줄에 들어 오시네요~ 빨리빨리 오세요~ 조급해 하시지 마시고 우울해 하시지도 마시고 오십대 나름 잼 나거든요
사실 저가 오십줄에 접어들면서 많이 우울했었거든요
받아 주실건가요! 안가면 안되나요?
본인 스스로 안오면 떠밀려 와야 해요 마음을 비우고 오심 만사가 편해집니다
아직은 마흔아홉이란 책을 읽으며 50을 맞았지요....49살을 만끽하느라 장난끼가 돋아 라 50살 먹은 친구에게 에드벌룬이라고 놀렸더니 제가 50 되는날 울 아파트 앞에서 에드벌룬 나오라고 고함 치겠다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요....ㅎㅎㅎ이제는 60을 바라보니 너무도 기가 막히네요....ㅎㅎㅎㅎ
10년 후를 기대 한다거나, 기약 따위는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잠시후 저도 낼모레가 60이 되는 날이 있겠죠! 큰일이다..
정말 공감하는 글이네요,전 세살선배입니다 여자이구요,,그렇게 생활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했던 여자이구요,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일요일도 없이 내남편 정말 삼성에 충성하고 충성한다고 뭔상인지 서울가지가서 상도 받고,여러가지 상주데요 여행도 시켜주고,,,우리도 이제까지 그대기업에 일해주고~돈받고 세아들 키우고,,,허구헌날 회식에 일차 이차,,그담시 룸싸롱~~ㅎㅎㅎㅎ협력업체들 상납,,,명절이면 꼭 집비우지 말아라~ㅎㅎㅎ
이제는 구조 조정에 ~
참 지난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애들을 이만큼 키웠으니,,,
전이제 육십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답니다,오십가지만 살았어도 감사해야죠,,,하루하루 새날에감사합니다,,,
고개숙인 남자
100번 동감. 저도 삼성 비슷한 회사에 다녔었구요 (2005년 까지!)
고개숙인 남자들 화이팅!!!!!
전 지금도 무지 작은 회사지만 할 일이 많기에 아직은 고개에 깁스를 하고 다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