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1월 24일 달구벌 산악회의 민주지산 등정은 우리 동문들의 뜨거운 정과 결속을 다지는 또 한번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등반 대장이신 김창수 선배님의 달구벌 산악회를 이끌어 나가시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님께 절로 고개가 숙어지면서 멋진 우리 등반대장님께 파이팅을 외칩니다. 한번 간 사람을 또다시 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력을 지닌 그 모습에 반해서 달구벌 산악회를 찾는 우리 모두는 창사모(창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팬크럽 회원들이기도 하고요.
거기에 우리 후배들을 챙겨 주시기에 내한몸 아끼시지 않으시는 친 오라버니 같은 이인기 대선배님, 달구벌의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 애를 쓰시는 前 現 동문회장님, 그리고 구수한 입담으로 모두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시는 선배님들... 언제나 뒤에서 후원을 아끼시지 않으시는 달구벌의 호프 정금자 사무국장님, 이철만 차장님...(어제 오시기를 기대했었는데 안오셔서 모두가 찾았지요)
그곳에 가면 늘 고향같은 안식을 얻을 수 있고 직장생활에서 어른 노릇을 해야만 하는 위선이나 가식도 떨쳐 버릴 수 있어서 정말 마음이 편하답니다.
그동안 감기로 찌푸듯하던 몸과 마음을 민주지산에 훨훨 날려 보내고 오늘 새로운 마음으로 월요일 첫날을 맞이하였습니다.
늘 갈 때 마다 죄송한 것이 차비에도 부족할 10,000원을 내고 너무 잘 얻어먹게 되니 실비 정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넉넉지도 못한 동문회비에서 보조까지 받는다니 더욱..
아무튼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어제는 9회 윤화숙 동문님 내외분이 현지까지 마중을 오셔서 환대해 주고 멋진 선물까지 주셔서 더 풍성한 하루였습니다. 예쁜 여자선생님으로 상상해 왔는데 키가 크고 늠름하게 잘 생긴 남자 후배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쁜 아내도 9회 동기였다니 천상배필로 보였습니다. 저는 오늘 후배님이 선물해 주신 멋진 머플러를 두르고 출근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마음 써 주시는 우리의 동문들, 정말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산꼭대기가 가까워 오면서 응달엔 눈이 쌓여 미끄럽기도 하거니와 길을 잘못 들어 산죽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길로 들어서게 되어 같이 가던 사람들 끼리도 서로 잃어버리고 큰 소리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 가면서 잡목 숲을 헤치고 힘겹게 정상에 올라갔지요. 일부는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가기도 했고요. 정상에 올라간 우리들은 민주지산이 어떻게 해서 붙여진 이름인가 의아해 하면서 나름대로의 해설을 했지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이 뼈를 묻은 곳이라는 우스개 소리 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월간 산 별책으로 나온 산행책자를 보고 그 유래를 알려 드립니다.
삼도봉과 민주지산
조선 태종때인1414년 조선을 팔도로 나눌 때 충청, 경상, 전라 삼남의 분기점이 되면서 얻은 이름이 삼도봉이다. 백두대간 본 줄기에 속하는 이 삼도봉에서 석기봉(1,200m), 민주지산(1,242m), 각호산(1,176m)으로 이어지는 늠름한 산줄기가 뻗어나간다.
민주지산은 충청도 쪽에서는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에는 민주지산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白雲山)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왜정시대 지도를 제작할 때 민두름산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잘못 굳어진 듯하다.
이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었던 민주지산은 충청, 경상, 전라 3 도 방언권은 물론 풍습과 음식문화 등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이 민주지산을 중심으로 한 신라의 금물현(김천)과 길동현(영동), 소라현(황간), 백제의 무산현(무주)은 신라와 백제가 격돌하면서 힘겨루기를 했던 것이다.
삼도봉에서 민주지산을 거쳐 각호산으로 뻗어가는 8㎞ 능선은 활처럼 휘어 그 안에 물한리 계곡을 감싼다. 특히 대불리에서 석기봉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물한리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아직 때타지 않은 심산유곡이다.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다녀와서 그 유래를 알고 보니 더욱 의미있게 느껴지고 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산행시에도 마나마니 참석하시고 늘 건강하십시오.